수습편집위원 유랑
이 글은 125호 『연세』의 기획입니다. 여섯 명의 편집위원들이 각자의 취미를 네 글자의 키워드와 엮어 짧은 글을 지었습니다. 어느 때보다 자신을 들여다 볼 시간이 많아진 요즘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이 우리를 더 잘 설명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각자의 열정을 풀어내는 편이 아무래도 더 즐겁지 않나 싶습니다. 부디 가벼운 마음으로 취미열전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게으른 삶을 두고 지겹도록 자학했던 때가 있었다. 그간의 성취가 이루 못 봐줄 만한 것은 아니었으나 4시간 자고 줄곧 공부를 했다거나 다이어리 빼곡히 일정을 정리했다거나 하는 무시무시한 열정 종자들의 이야기만 자기계발서의 주제가 되며 선망받는 세상이다. 그런 내가 자신만의 페이스가 있음을 깨달은 것은 칵테일을 함께 기울이던 친구 덕이었다. 한 학기에 두어 번 지독한 번아웃이 찾아오는데, 그때마다 손쓸 도리 없어지는 자신이 싫다고, 아니 굳이 번아웃 시기가 아니어도 나는 언제나 쓰레기같이 산다고 어린 말을 주절거릴 때였다. 그래서? F를 받았어? 아니면, 하고자 했던 일을 다 마무리 짓지 못했어? 묻는 말에 잘 생각해보니 성적은 최상위권은 아니더라도 늘 잘 나오는 편이었으며 늘 일이 미뤄져 울상이었으나 하려고 마음먹은 일을 해내지 못한 적은 없었다. 다만 조금 무력하고, 타인보다 쟁취적이지 못할 뿐이었다. 놀지 않았다면 A+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낙담은 애초에 있을 수도 없는 평행세계를 달리고 있었다. 네가 번아웃이 왔을 때 잔뜩 놀지 않았다면 네 지금 성적에도 도달하지 못했을 수 있어. 그게 네 루틴인 거지. 뭔가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혹하는 말에 머리가 늘어져 버렸나. 게으른 것은 천성이며 뭘 다이어리를 깜지처럼 적진 않지만 적어도 나는 내 할 일은 해내는, 어쩌면 조금 느릴 뿐인 성실한 자라고 자신을 잘도 포장했다. 그랬더니 마음이 편하더라.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고전 시가의 주제로 안빈낙도가 호명되는 순간 나의 가슴은 그 어느 때보다 뻐렁쳤고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솟구쳤다. 일하지 않고 자연과 음률을 부르짖으며 늘어진 삶을 살고 싶다. 분명 모두의 꿈일 테지만 내 경우엔 더 원초적인, 선비의 삶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선비의 삶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봤던 고전 시가에 나오는 이들은 그렇다. 현을 뜯고 먹을 갈고 차를 마시고 수양을 하고 자연에 투신했더랬다. 오리엔탈리즘인가? 할 말이 없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안빈낙도에 귀의한 삶을 살게 되었다. 내게는 특이한 이력이 있다. 중학생 때 서예 학원을 다닌 것이 그것이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가 먹을 갈았다. 한지를 정갈히 펼쳐 놓고 문진으로 다소곳이 내리누른다. 일반적으로 미술시간에 쓰는 작은 붓과 다르게 내 붓은 크기가 아주 컸다. 모를 먹에 잔뜩 침수시켜 한 자 한 자 내리긋는다. 사실 마냥 재미있다고 할 순 없었으나 나의 자랑스러운 일필휘지(一筆揮之), 그 행위에 취해 있었던 것은 맞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였다. 나는 동아리 활동에 동경이 많은 사람이었다. 대학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을 해보고 싶은 욕망에 여러 동아리 목록을 훑어보던 차, 전통다도 동아리를 발견했다. 하늘에서 마치 한 줄기 빛이 내리는 기분이었다. 평소 차를 즐기는 편은 아니었으나 알게 뭐냐, 다행히 동아리는 초심자도 애틋하게 품어주는 관대한 곳이었고, 나는 차의 맛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더욱 본격적으로 안빈낙도의 삶을 탐문하는 내 게으른 성격은 어디 가지 않은 채였다. 차에 대한 기초 강의를 동아리에서 열심히 해주었으나 그렇게 3년여가 된 현재 나는 차에 관한 지식이 거의 없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차가 좋다. 처음 마셔본 차종이 신기했고, 이렇게 넓고도 황홀한 세계가 있다는 데 감화되었다. 찻잎을 넘어서 차를 우리는 다구도 좋아한다. 어쩐지 범접하기 힘든 고아한 유럽식 다기도, 고매한 지조를 가진 중국식 다기도 모두 좋아한다.
2020년의 나는 새로운 취미를 발견했다. 집 근처 국궁장을 알게 되어 친구와 무작정 방문했더랬다. 국궁을 처음 접하는 입장에서 활쏘기란 사치였다. 자세를 잡고 활을 당기는 연습부터 시작해야 했다. 활은 무거웠고, 시위를 당기는 데 필요한 평생 쓴 적 없던 근육이 고통을 호소했다. 그러나 엄중한 산속 고요히 자리 잡은 국궁장 안에서, 소리라곤 새와 나뭇잎에 스치는 바람과 흙을 밟는 소리뿐인 그곳에서 나는 안정을 얻었다.
어쩌면 오리엔탈리즘으로 환원될지도 모를 나의 동양 전통문화 사랑은 그렇게 이름을 얻었다. 정적인 안정감, 그것이 내가 그토록 바랐던 감정이었다. 지나치게 바삐 돌아가는 세상이다. 나는 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서예도, 다도도, 국궁도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들이 주는 강요 없는 풍류가 좋았다. 강박 없이 즐길 수 있는 것, 그것이 취미가 아닐까.
수습편집위원 유랑 (cyoon0402@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