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편집위원 몽구애비
이 글은 125호 『연세』의 기획입니다. 여섯 명의 편집위원들이 각자의 취미를 네 글자의 키워드와 엮어 짧은 글을 지었습니다. 어느 때보다 자신을 들여다 볼 시간이 많아진 요즘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이 우리를 더 잘 설명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각자의 열정을 풀어내는 편이 아무래도 더 즐겁지 않나 싶습니다. 부디 가벼운 마음으로 취미열전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고양이는 종잡을 수 없다. 이 녀석과 처음 만난 날, 이동장에 실려 집으로 이동할 때 뭐가 불편한지 계속 울어 대는 녀석이 걱정스러웠다. 후에 사정을 물어보니 첫 집사는 안타까운 사연으로 이 녀석을 키울 수 없게 되었고, 첫 집사의 친구였던 두 번째 집사가 임시보호하고 있던 터였다. 그렇게 세 번째 새로운 거처로 떠나게 된 녀석이 본인의 기구한 사정을 알고 슬퍼하며 우는소리 같았다. ‘책임지고 이 아이를 잘 보살피리라’ 다짐하며 조금만 참자고 녀석을 달랬다. 택시에서 내려 방에 도착했다. 급하게 입양하게 된 터라 치운다고 치운 방 상태가 여전히 맘에 들지 않았다. 잠시 이동장을 열어주지 않고 거슬리는 물건을 치웠다. 녀석의 보채는 소리가 땀으로 적신 옷도 깨닫지 못한 채 서둘러 청소를 마무리하게 했다. 이동장을 열어주고 아이의 반응을 살폈다. 울음소리를 뚝 그치고 나에게 얼굴을 비빈다. 엄청나게 애교를 피우는데 생각해보니 낯선 환경에서 잘 보이려고 과하게 애교를 피운 느낌이었다.
우선 이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어야 했다. 원래 불렸던 이름 그대로 호두라고 부를까 고민했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 새로운 이름을 생각해봤다. 반려동물에게 촌스러운 이름을 붙이면 오래 산다는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득구라고 불러봤다. “득구야” 이 녀석 표정이 썩 좋지 않다. 미리 사둔 장난감이 없어 보슬보슬 거리는 줄을 가지고 놀아줬다. 애가 멍해 보이는 게 맹한 구석이 있었다. 그래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몽구다. (몽구라는 이름을 들은 지인들은 십중팔구 기업 총수를 떠올렸고 되돌릴 수 없는 이름에 후회한 것은 나중 일이었다.)
나는 일평생 반려동물을 키울 여유가 없는 집에서 자랐다. 언젠가 집사가 될 로망만을 간직한 채 각종 고양이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고 있던 흔한 집사 지망생일 뿐이었다. 하지만 고양이를 임시보호한 경험이 있었고, 몽구를 입양하기 전 유튜브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몇 개월간 공부를 했기에 충분히 준비되었다고 착각했다. 양치, 목욕, 화장실 치우기, 식사 준비, 병원 데려가기, 한 시간씩 놀아 주기 등등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문제는 몽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몽구의 행동은 예측하기 어려워 교육을 시켜야 했다. 나는 몽구가 위험한 행동을 할 때마다 좋아하는 행동을 못 하게 하는 방식으로 벌을 준다. 몽구는 내 옆에 있는 걸 좋아한다. 혹은 옆에 있지 않더라도 시야에 내가 들어오는 공간에 항상 있는다. 바로 그 점을 이용해 콘센트를 건드리려 할 때나, 위험한 곳에 있거나, 깨물 때(물론 이건 몽구가 너무 귀여워 계속 만지작거린 내 잘못이 크다. 요즘은 그냥 깨물림 당한다) 다른 방에 가 문을 닫고 혼자 있는다. 하지만 방문 앞에서 몇 분간 애옹거리는 몽구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약해진다. 날 키운 부모님의 마음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혼자 망상에 빠지며 문을 열어준다. 어느 경우엔 만져 달라고 배를 까뒤집다가 막상 만져주면 깨물고 도망간다. 놀자고 혼자 요란스럽게 뛰어다니다가 내가 장난스레 다가가면 싫어한다. 아, 나는 한낱 집사에 불과하다는 걸 자꾸 까먹는다. 그냥 몽구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면 그만일 뿐인데...
‘나만 고양이 없어’를 외치던 내가 이제는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됐다. 하지만 이제는 고양이는 가지고 있고 없고를 논하기 어려운 하나의 생명체라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혼자 사는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 내 버킷리스트였기 때문에 키우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생명체이다. 괜히 고양이를 키우는 분들을 ‘집사’라 명명하는 게 아님을 배웠다. 고양이를 내 뜻대로 원하는 모습만 보고 키울 수 없다. 비록 몽구와 함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나는 일개 집사라는 마음을 잊지 않으려 지금도 노력 중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취미의 첫 번째 의미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 한다. 다른 의미로는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이라고 한다. 코로나19가 더 기승을 부리는 요즘, 집에 콕 박혀 있는 나의 취미는 오롯이 몽구와 관련된 일들이다. 몽구가 혼자 수다 떠는 모습이 귀여워 재빨리 동영상을 찍거나, 자는 모습이 귀여워 사진을 찍는 일, 몽구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고르는 일, 몽구 옆에 누워 몽구 털을 얼굴에 부비는(생각해보니 몽구가 짜증 날 만도 하다) 일들이 내 일상이다. 그러니 내 취미는 ‘몽구’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수습편집위원 몽구애비 (dkro135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