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코디언 기획기사] 수습편집위원 재주 / 편집위원 달백
아코디언 기획 기사 ‘코비컴퍼니를 멈춰주세요’와 ‘하루노동일기’는 반복되는 청소경비 노동자 문제와 노조탄압 및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는 연세대학교 청소용역업체 코비컴퍼니 사태를 다룬 글입니다. 기사 발행 이후, 사태의 여러 변화가 있어 연세대학교 청소노동자가 마주한 현 상황을 간략하게 소개 드립니다. 11월 말부터 연세대학교는 청소용역업체 계약을 위한 입찰 과정이 진행되었습니다. 입찰 결과 비로소 코비컴퍼니가 학교에서 퇴출 되었습니다. 코비가 맡던 관할 구역에는 ‘ONE E&S’(이하 이앤에스)라는 새로운 업체가 선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코비 퇴출을 축하하며 나눈 기쁨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학내 노동에 뿌리박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이앤에스는 노동시간을 기존 7시간에서 5시간으로 단축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고, 노조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노조를 감시하고 괴롭혀왔던 갑질 총괄반장을 그대로 관리자로서 승계하는 등 교묘하게 노조 탄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앤에스는 노동자들을 면접하는 과정에서 60세 이상이거나 혈압이 있는 노동자들은 고용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일방적인 해고를 통보했습니다. 노조와의 면담을 통해 전원 고용 승계 및 70세 정년을 보장받았으나, 이앤에스가 지금까지 행한 태도는 대부분 노동자의 동의 없이 진행된 통보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건강한 노동 환경, 나아가 노동 인권 보장과는 거리가 멉니다. 비록 코비는 퇴출되었지만, 이앤에스는 겉모습만 다를 뿐 또 다른 ‘코비’로서 학내 청소노동자들의 온전한 노동 인권을 침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이앤에스를 견제하고 청소노동자들과 연대해야 합니다. 청소노동자들과 한 공간에 함께 서있는 사람으로서, 학내 공간의 주인으로서 한 번 더 우리 손에 쥐어진 청소노동자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아직도 반복되는 코비 문제, 아니 연세대학교 학내 청소노동자 문제가 더 이상 지속되지 않도록 눈을 뜨고 귀를 열어야 할 때입니다.
지난한 코비 퇴출 과정과 향후 학내 노조 행보에 대해 더 상세하게 알고 싶은 학우는 연세대비정규공대위 페이스북 및 인스타그램(@laboryonsei), 학내 언론 단체의 아코디언 기사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2020 아코디언 기획기사⑦]
코로나 시대의 대학생은 게으르다. 아침햇살을 맞이했던 마지막 기억이 언제였더라. 요란스러운 새벽 알람에 까마득한 옛 기억을 붙잡으며 간신히 눈을 뜬다. 끝없이 늘어지는 몸을 일으켜 허둥지둥 나갈 채비를 한다.
겨울이 오는 냄새가 난다. 찬 공기가 피부를 덮쳐오는 순간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수백 번은 걸었던 학교 서문을 올라가는 길이 새롭다. 새벽에 이 길을 걸어보는 일이 처음인 탓일 것이다. 모든 존재가 잠들어있는 것 마냥 칠흑 같은 어둠과 고요가 무겁게 내려앉는다.
캠퍼스 또한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한 모양새다. 적막한 캠퍼스를 걷다 보니 어딘가에서 말소리가 들린다. 홀로 길을 걸어왔던 나는 들려오는 소음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옅은 불빛을 따라가니 청소노동자 아주머니 세 분이 모여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다. 그녀들의 팔은 바쁘게 움직이지만 무슨 이야기가 그리 재밌는지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아주머니 몸통만 한 커다란 쓰레기 봉지가 그녀들의 담소를 엿듣는 듯하다. 백양로 길목에는 조끼를 입은 청소노동자가 빗자루로 낙엽을 치운다. 이어폰을 꽂고 빗자루를 움직이는 그의 입 밖으로 허연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다시금 당신과 내가 살아가는 하루의 시작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당신이 당신의 하루를 살아가기에, 내가 살아가는 하루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달백은 커피를 마시고 싶다 했다. 재주 또한 하품을 하며 느릿하게 움직였다. 달백과 재주는 백양누리 주차장에서 ‘하루노동일기 취재’를 위해 만났다. 새벽부터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백양누리는 사람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그 준비의 대부분은 청소노동자의 몫이다. 수년 동안 대학생의 권리로써 캠퍼스를 누려왔다. 우리는 학내 공간에서 공부하고, 상상하고, 성장했다. 때론 동아리 활동을 하고, 축제를 즐기고, 친구들과 공강 시간에 벤치에 앉아 간식을 먹었다. 우리가 누렸던 캠퍼스의 낭만은 누군가의 노동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당연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기저에 깔린 노동에 호기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달백과 재주는 무심코 지나쳐왔던 학내의 필수적인 노동이 궁금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는 누군가의 하루가 어떻게 학생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지 직접 경험하고 싶었다.
한 청소노동자 분과 만나 인사를 나눴다. 그는 이른 시간부터 취재를 와줘서 고맙다고 연신 감사를 전하며 본인을 윤 반장이라 부르라 했다. 반장님은 노동자로서 본인과 당신의 하루 노동, 그리고 그가 처한 노동 환경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다. 그는 주로 실내 청소를 맡는다고 하셨다. 보통 출근 후에 계단 청소를 하고, 백양누리 중앙에 위치한 커다란 전면 창의 유리를 닦는다. 그 외에도 다른 청소노동자들의 업무량이 지나치면 일을 돕는다. 이를 모두 합하면 그가 하는 청소 종류의 가짓수가 17~18개에 달한다고 한다. 그는 노조활동을 하기 이전까지는 백양누리 전체 노동자를 책임지는 반장 역을 했다는 부가 설명과 함께 미소를 지으셨다. 옷을 단정하고 멋스럽게 입는 그는 정말 넉살이 좋았다.
“ 노조를 가입하고 거의 혼자 청소하는 상황이에요. 계단 청소와 창문 닦는 일은 원래 세 명이서 했었는데 이제는 저 혼자 해요.”
연세대학교에서 청소노동자 문제가 공론화된지는 벌써 오래전 일이다. 특히 청소용역업체 중 하나인 코비 컴퍼니의 직장 내 괴롭힘, 부당 해고, 노조탄압 등 여러 문제가 대두되었고, 노조원들이 코비 퇴출을 외치며 투쟁하는 상황이다. 백양누리는 코비 컴퍼니의 관할 구역이다.
2019년 7월 즈음, 함께 근무하던 백양누리의 야간 반장이 오전 반장인 윤 반장에게 코비컴퍼니㈜(이하 코비) 사장이 보낸 문자를 보여줬다. 사장은 다른 업체 소속 노동자 10명이 맡아서 청소하던 구역을 갑작스레 그들에게 맡으라고 지시했다. 기존 백양누리 청소노동자 중에서 차출할 수 있던 인원은 기껏해야 3명 정도였다. 다른 구역에 뛰어든다면 백양누리 관리는 어려워지는 실정이었다. 관할 구역도 아닌 곳을 담당하게 된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해당 구역은 학교가 다른 업체와 계약을 맺어서 진행하면 되는데 왜 우리가 해야 되지? 형 우리 노조에 가입하자.” 그렇게 야간 반장의 권유로 노조활동을 시작했다 말하는 윤 반장님의 표정은 씁쓸해 보였다.
사실 그전에도 노동자들은 불합리한 업무지시를 받아왔다. 크리스마스 기간에는 학생들에게 즐거움을 줘야 한다는 명목으로 노동 시간에 산타 모자를 쓰게 했으며, 청소 중에 거추장스러워 모자를 벗으니 코비 측 직원이 청소노동자에게 꿀밤을 때리는 등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학교 내 다른 용역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명절 상여금을 받았지만 코비 소속 청소노동자는 그런 바람을 가질 수도 없었다. 심지어 노동 공간에 정수기조차 없어 그들은 학생과 교수의 눈치를 보면서 강의실이나 사무실에 들어가 갈증을 해소해야 했다. 무엇보다 노동자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언급하는 일은 노조에 들어가고 나서야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이 없는 백양누리는 광야처럼 끝없이 넓었다. 백양누리의 노동자들은 모두 단시간 노동자다. 오전 7시부터 노동이 시작된다면 점심 식대가 나오기 전 11시에 업무가 종료되는 식이다. 그렇게 4시간 분의 임금을 받지만 대부분 6시 30분 전에 준비를 시작한다. 취재 당일처럼 백양누리에 행사가 있는 경우 추가적인 청소의 부담은 오롯이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평소에도 아침조차 먹지 못하고 출근하는 청소노동자가 많지만 행사가 있는 날에는 정도가 더 심하다.
노동자들은 코로나 확산으로 학교가 비대면 강의를 실시하며 노동 강도가 줄었다고 말했다. 캠퍼스에 사람으로 가득했던 시절에는 짧은 시간 동안 주어진 노동을 끝마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고 한다. 학생이 없는 학교에서 노동은 과거에 비해 확실히 줄었지만, 윤 반장님은 여러 사람이 하던 일을 홀로 해내야 하기에 여전히 마음이 급하다.
윤 반장님은 커다란 솔을 들어 계단 청소를 시작하신다. 반장님이 담당하는 이 계단은 백양누리 파리바게뜨 앞에 위치하며, 스타벅스나 셔틀 정류장이 있는 지하주차장을 갈 때 꼭 지나쳐야 한다. 재주는 새삼 이런 계단과 바닥 하나하나가 매일 깨끗하게 청소된다는 사실에 놀란다. 반장님이 하얀 액과 녹색 액을 계단에 뿌리자 화학약품 냄새가 코를 찌른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냄새가 심해지자 하얀 거품이 온 계단을 뒤덮는다. 반장님은 계단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꼼꼼히 솔질을 한다. 쓱싹쓱싹 - 인적 없는 백양누리에 솔질 소리가 퍼져나간다. 원칙적으로 계단 청소는 물을 먼저 충분히 뿌린 후 약품을 쳐야 한다. 그러나 빠듯한 시간 동안 혼자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인해 윤 반장님은 약품을 먼저 치고, 그 후 물을 적신다. 물에 중화되지 않은 약품 냄새는 더욱 지독하다.
“청소에는 시작, 끝도 없어요. 사람이 걸어가면 발자국이 남잖아요. 청소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돌아보면 뭔가 부족하고.. 아무래도 시간이 없어서 변칙적으로 정신없이 일을 해요.”
학교를 다니며 나는 이 계단을 몇 번이나 오르고 내렸을까. 나는 흔적을 남기고 있었고, 누군가는 나의 발걸음을 매일 정리하고 있었다. 하얗게 물든 계단이 점차 본인의 색을 찾으며 멀끔해진 모습으로 드러난다. 계단 청소는 기계로 갈무리되었다. 기계의 브러쉬가 빙그르르 돌아가며 바닥을 닦는다. 윤 반장님은 노련하게 기계를 만진다. 보기에는 쉬워 보여도 브러쉬에 이물질이 끼면 바닥에 스크래치가 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한 작업이라고 한다. 기계 소음을 잠자코 들으며 창밖을 보니 어슴푸레 아침이 밝아온다.
문득 백양누리는 몇 명의 청소노동자가 담당하는지 궁금해진다. 윤 반장님께 여쭤보자 백양누리 본 층에 남자 두 분과 여자 세 분 그리고 M1층에는 여자 두 분이 일하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여성 노동자분들은 보통 화장실과 백양누리 안쪽에 있는 금호아트홀 청소를 하신다. 재주는 또 다른 청소노동자를 만나 뵙고 싶어 스타벅스 앞 화장실로 향한다. 코너를 돌아 화장실 앞을 서성이니 벽에 커다란 네 개의 대자보가 붙어 있다.
‘연세대학교는 청소노동자 부당 해고를 철회시켜라', ‘연세대학교는 청소노동자들과의 약속대로 코비 컴퍼니를 퇴출하라' 지난한 시간을 거치고도 반복되는 코비 문제를 외치는 투쟁의 움직임이 글에 여실히 드러난다.
반면,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의 목소리가 담긴 대자보 사이에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글이 있다. 글씨체마저 사뭇 다른 이 대자보는 ‘(주) 코비 컴퍼니 비노조원의 주장'이라는 굵은 글씨로 시작한다. 이는 코비 퇴출 투쟁에 대한 비노조원들의 생각을 담은 글로, 노조의 일방적인 주장이 비노조원에게 상처를 남겼으며 비노조원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사실을 알리고자 하는 점을 명시한다. 예를 들어, 비노조원 측은 민주노총 공공운수 노조 서울지부 연세대분회에 가입한 노조원은 13명(25%)이고 비노조원은 38명(75%)라는 점을 부각하며 ‘소수의 투정이 아닌 다수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주장한다. 바로 옆에는 연세대 분회의 ‘코비 비노조원의 주장에 대한 답변입니다'라는 제목의 커다란 대자보가 위치한다.
사이좋게 붙어있는 대자보가 흥미롭다. 코비는 분명 노동자들의 권리를 존중하기 보다 그들을 철저히 관리하며 부당한 대우를 해왔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재주는 언제나 코비와 노조의 관계에 집중하여 청소노동자 문제를 바라봤다. 노조원과 비노조원 사이의 관계나 갈등에는 주목하지 못했다. 노조원과 비노조원은 한 공간에서 함께 업무를 하는 동료다. 크고 작은 갈등에 얽혀있는 동료와 매일 마주하며 일을 한다니. 상상만으로도 피로감이 몰려온다.
“나는 여자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고, 남자 화장실에서 일하는 이는 비노조야. 같이 일해. 빨리 화장실 청소 끝내고 저 뒤쪽(금호아트홀) 청소해야지. 학생 와줘서 고마워요.”
취재하러 온 학생을 알아보신 권 여사님이 말을 거신다. 마스크에 얼굴의 반이 가려져도 드러나는 호탕한 미소와 반쯤 뒤집어 올려 매어 가슴 쪽에 둘러진 앞치마가 인상적이다. 권 여사님 뒤로 다른 노동자 한 분이 힐끔 우리를 쳐다보시더니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신다. 나란히 위치한 남녀 화장실과, 그 바로 옆에 나란히 위치한 노조와 비노조의 반대되는 입장을 담은 대자보, 그리고 나란히 노동을 하는 노조원과 비노조원. 재주는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한 번도 주목해보지 못했던 문제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생생한 노동 현장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여사님은 금호아트홀 청소 생각에 바빠 보인다. 금호아트홀은 공연장인 만큼 면적이 넓고 객석도 많다. 유동 인구도 많은 편이라 그만큼 손이 많이 가는 공간이다. 그녀는 최근 평소보다 이른 시각에 시작되는 금호아트홀 스케줄에 맞춰 자발적으로 1시간 일찍 출근했다. 그녀는 정규 출근시간에 진행되는 총 반장님의 발열체크 시간 보다 이르게 노동을 시작했고, 마냥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없었기에 노동 시작 전 자율적으로 발열 체크를 했다. 이에 코비 컴퍼니는 권 여사님의 행동을 사 측 발열 체크 규정을 따르지 않은 ‘중범죄 행위'라 칭하며 경고 문자를 보냈다. 노조원인 그녀는 본인이 겪었던 사 측과의 갈등이 부당하다며 속상한 마음을 토로하셨다.
청소 업무가 끝나고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뒤집어진 앞치마는 코비에 대항하기 위한 권 여사님만의 일인 투쟁 방식이었다. 백양누리 청소노동자들은 코비 로고가 박혀있는 노동복을 지급받는다. 여사님은 본인의 앞치마가 좋아 이를 고집했지만 코비 측에서 업체 앞치마를 입으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결국 그녀는 이를 따르지만 따르지 않기로 결정했다. 본인의 앞치마 위에 코비 앞치마를 입고 이를 뒤집어 포개 매 허리에 걸친다. 그렇게 매일 아침 그녀만의 투쟁이 완성된다. 달백과 재주는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특이한 앞치마가 멋있다고 생각한다.
여자 화장실에는 청소가 한창이다. 물을 들이붓는 소리와 걸레질 소리가 화장실의 공기를 채운다. 권 여사님이 한 칸씩 문을 열고 물을 뿌리며 걸레질을 한다.
“백양누리 화장실은 물이 잘 넘쳐요. 변기에서 꼭 물이 넘치는 일이 있어. 그래서 한 칸 한 칸 신경 써야 해.”
재주의 머릿속에 흥건히 젖어있는 바닥을 이리저리 피하며 백양누리 화장실을 사용했던 기억이 스친다. 윤 반장님 또한 변기가 말썽을 부려 여사님들을 도와 넘친 변기 물을 치운 적이 있다 하셨다. 변기가 심하게 넘치면 역한 냄새가 진동하는 화장실에서 고무장갑을 낀 손 하나로 그 고된 일을 해내야 한다. 여사님은 한 칸씩 문을 열어 변기를 재차 확인하고 청소한다. 이는 화장실 칸막이가 다 열릴 때까지 반복된다. 그녀 옆에는 이동식 청소 물품 카트가 놓여있다. 카트에는 타월, 걸레, 밀대, 청소 약품, 양동이, 쓰레기로 가득 찬 봉투가 차곡히 담겨있다. 거울이 걸레질로 반짝이며 빛날 때쯤이면 그녀는 카트를 챙겨 금호아트홀로 이동할 것이다. 재주는 권 여사님의 노란 카트가 청소노동자의 노동과 썩 닮았다 생각한다. 묵직한 짐을 지탱하고 있는 든든한 카트는 바퀴를 열심히 구르며 캠퍼스 곳곳을 유랑한다. 카트의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이는 때론 짐이 유독 무겁게 느껴지는 날에도 어제와 같이 움직여야만 하는 카트의 고된 노동을 들려주는 것 같다. 그러나 카트는 오늘도 다양한 청소 물품을 끌어안아 본인의 역할을 묵묵히 해낸다. 물통에 물이 가득 차오르는 소리를 들으며 화장실을 나온다.
윤 반장님이 팔을 길게 뻗어 유리창을 밀대로 닦는다. 유리창 청소는 세정제를 희석해서 창에 칠하고, 브러시로 닦아내는 작업이다. 윤 반장님은 브러시로 닦아내는 작업 시에는 섬세하게 강약 조절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많은 경험이 쌓여야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씀하시며 은근한 자부심을 드러낸다. 계단 청소와 같이 통유리를 닦아내는 작업은 하루 만에 혼자서 하기 어려워 반장님은 창문 닦기에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
한편, 윤 반장님 뒤로 다른 청소노동자분이 지나가신다. 달백과 재주는 그분을 쫓아가 인터뷰를 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그들은 새로운 청소노동자 세 분을 더 만난다. 세 분은 모두 비노조원으로, 백양누리 본 층을 청소하는 노동자다. 노동 환경에 있어 불편한 점은 없냐는 질문에 그들은 손사래를 치며 전혀 불만이 없으며, 편하게 일하고 계시다고 답한다.
“다 늙어서 일을 할 수 있으니 좋은 거죠. 용돈도 벌 수 있고.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니까 잠깐 나와서 움직일 수도 있으니까요.”
“학교가 일하기 좋은 곳이에요. 학생들도 친절하고 젊은 사람들 옆에서 일할 수 있고...“
사뭇 다른 시선을 엿본다. 학내 청소노동자들은 대부분 60대이다. 노년에 접어든 그들에게 ‘학내 청소노동'이란 ‘늙어서도 내가 노동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자리’이기에 소중하다. 한가로운 노년의 일상을 잠시 벗어나 젊은 청춘들이 가득한 공간에 속해 소속감을 느끼며 일한다. 캠퍼스에서 만난 학생들은 그들에게 밝게 인사하기도 하고, 안부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스마트폰이 다루기 어려워 지나가는 학생에게 물으면 친절하게 알려준다. 세 분의 청소노동자들은 그렇기에 학내 청소 노동이 좋다고 말씀하신다.
청소노동자들은 50분을 일하고, 10분을 쉰다. 청소는 칼같이 끝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쉬는 시간은 유동적이다. 그토록 넓은 백양누리에는 청소노동자 휴게실이 한 개뿐이다. 심지어 휴게실은 청소용품이 뒤섞여 공간마저 비좁다. 세 분은 휴게실 보다 백양누리의 공간을 활용해서 쉰다고 하셨다. 곳곳에 위치한 의자나 계단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린다. 그곳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스마트폰을 하거나 간식을 먹는다. 재주는 백양누리의 넓은 공간에 비해 적은 휴게실로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을 한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분이 놀러 나온 것도 아닌데 소파나 침대가 있는 휴게실은 청소노동자에게 사치라며, 백양누리는 의자가 많아 충분히 쉴 수 있다 말씀한다. 그들은 “다 늙어서 학생들 옆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주어진 노동에 감사해야 하는 노동자는 더 나은 환경을 바라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된다. 재주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단기 노동에 대한 불만을 묻자, 한 청소노동자분께서 네 시간 단기 노동이 오히려 본인에게는 더 편한 노동 방식이라 답한다. 세 분은 모두 아침 일찍 노동을 하고 이후에 집안일을 하거나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일상을 선호하기 때문에 단기 노동에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다. 신선한 지점이었다. 오늘 만난 한 노조원 청소노동자는 새벽같이 출근하고, 업무량이 많으니 8시간 노동이 보장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누군가에게는 청소 노동이 용돈벌이 오전 아르바이트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생업일 수 있다. 같은 노동 환경이 개인이 서있는 환경과 맥락으로 인해 전혀 다른 양상으로 다가온다.
하루 노동이 마무리되기 전 취재 내용을 정리한다. 달백과 재주가 마주한 백양누리의 청소 노동은 일면적이면서도 입체적이었다. 청소 노동의 첫인상은 고요하고 드넓은 공간에 잔잔하게 퍼지는 걸레질 소리, 물 트는 소리, 청소기 소리였다. 그러나 그 속에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서도 반대되는 입장에 서서 서로를 바라보는 노조원과 비노조원의 갈등이 있었다. 또한, 코비의 끝없는 괴롭힘에 고통받는 노동자가 있었다. 코비컴퍼니는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를 존중하지 않았다. 오히려 권리를 외치는 청소노동자를 명백히 차별 대우하며 연세대학교 용역 업체로 견고히 자리했다. 코비의 노조탄압으로 인해 노조원들은 여전히 부당한 업무지시를 받고 있고, 감시와 경고에 시달리고 있다. 여전히 부실한 휴게실 문제 등 노동환경은 개선 또한 갈 길이 멀다.
각기 다른 삶의 맥락을 가진 청소노동자가 청소 노동 환경에서 동일한 불편을 느끼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달백과 재주가 겪은 노조원과 비노조원의 입장 차이는 지나치게 이질적이었다. 무엇 때문에 같은 노동 공간에서 어떤 이는 분노하는 반면, 어떤 이는 바랄 것이 하나도 없게 됐을까. 달백과 재주가 청소 노동자를 만나면서 느꼈던 특이점은 다양한 인터뷰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일상적인 청소 노동 관련 질문을 해도, 학생들과의 에피소드를 질문해도, 모든 이야기는 코비와 관련된 것으로 귀결됐다. 코비 퇴출을 위해 노조활동을 하는 노조원들은 이야기의 중심이 코비에 있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비노조원과의 인터뷰 또한 마찬가지였다. 질문을 끝마치기도 전에 “저희는 행복해요. 불만 하나도 없어요.”라는 답변을 받는 순간, 위화감은 더 짙어졌다.
인터뷰를 하는 노조원과 그를 흘겨보는 비노조원. 서로 다른 이야기를 펼치는 대자보들. 투쟁을 외치는 노조원과, 바랄 것이 없다는 비노조원. 취재가 끝난 뒤에도 잊히지 않는 장면은 최소한의 노동인권을 호사라고 말하는 비노조원의 얼굴이었다. “호사 부리려면 집에서 쉬지 뭐 하러 나왔냐”라며 노조원을 흘겨보던 한 노동자는 놀랍게도 부당한 해고를 당한 뒤 투쟁을 통해 다시 복직할 수 있었던 노동자였다. 근무시간에 눈치 보지 않고 물을 마시는 일이, 백양누리에 달랑 하나밖에 없는 휴게실을 개선하는 일이 사치라 생각하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
“근로자들이 다 같이 어려움을 겪을 거예요. 노조원은 노조원대로, 비노조원은 비노조원대로. 이런 문제를 없애주는 것,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주지 않는 것이 관리자, 오너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환경개선이라는 것은 근무의 양을 떠나서 그야말로 마음 편하게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면 힘든 일도 힘들지가 않아요.”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노동 환경이란 무엇인가? 윤 반장님은 ‘좋은 노동 환경’이란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이라 답하셨다. 명쾌한 해답이었다.
청소노동자에게 학생은 노동 환경을 구성하는 친밀한 공동체의 일원이다. 나아가 투쟁의 동료이자 원동력이다. 윤 반장님은 비노조원과 사 측 감시단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달백과 재주의 눈을 직시하며 당당하게 취재해달라고 부탁하셨다. 활발한 노조 활동을 펼쳐왔던 반장님은 무엇보다 강력한 것은 학생들의 목소리라고 호소했다. 실제로 고려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집합적인 참여로 코비를 쫓아낸 사례가 있다. [1]
“학교의 주인은 학교 관리자도, 코비 컴퍼니도 아닌 학생이잖아요. 그러니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의지하게 돼요.”
네 시간을 함께 보낸 청소노동자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나오니 밖은 한낮이다. 윤 반장님의 말씀이 귓가에 울린다.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 환경을 보장하는 일, 그리고 한 청소노동자의 권리를 지켜가는 일에는 분명 학생들의 힘이 필수적이다. 대학은 학생들이 만들어가고 변화시킬 수 있는 공동체다. 바야흐로 대학의 의의가 퇴색되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학생에게는 학내 공간에서 주체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렇기에, 연세대학교의 주인으로서 우리에게는 아직도 반복되는 코비 컴퍼니의 문제를 멈출 수 있는 목소리가 있다. 하루 노동을 마치며 캠퍼스를 돌아본다. 그 순간, 수많은 청소노동자와 같은 공간에 서 있는 우리를 마주한다.
수습편집위원 재주 (rkdud4904@gmail.com)
편집위원 달백 (dkro1357@gmail.com)
[1] “고려대 청소 노동자들이 학교 측의 공격을 막아내다.”, 노동자 연대 학생 그룹 236호, 201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