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편집위원 안즈
우울증. 이 세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그만큼 많이 쓰이는 단어이고 우울증 자체도 만연하기 때문이다. 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 등 우울감과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관련이 있는 증상 혹은 질환은 매우 많다. 그러나 우울증이 정말로 뭔지, 우울증 환자가 어떤 삶을 사는지 알기는 어렵다. 단어만으로 추측하기에는 꽤 복잡하다. 그렇다면 우울증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우울증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본인의 삶을 이끌어가고 있을까?
나는 우울증 환자다. 벌써 만으로 2년이 넘게 정신과에 다니고 있으며 학교 상담센터와 사설 상담센터에서 총 40회 이상의 상담치료를 받았다. 이 글은 한 명의 우울증 환자인 내가 나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나는 모든 우울증 환자를 대표하지 않으며 그럴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이유는 당신에게 나름의 정보를 전달하고 위로를 건네고 싶기 때문이다.
우울감을 느껴도 상담치료를 받거나 정신과에 가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나의 경우에는 모든 일이 한순간에 진행되었다.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지금까지 혼자 앓고 있었을지 모른다. 지금부터 나는 어떻게 상담센터와 병원에 가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시작은 성평등상담소였다. 우울증이 찾아오는 계기는 각자 다 다르겠지만 나는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된 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학내 성평등상담소를 찾았다. 당시 나는 과호흡과 어지러움 등의 공황 증상이 매우 심각해서 수업을 들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결국 휴학을 했음에도 가해자가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꾸역꾸역 진술하러 성평등상담소를 드나들었다. 나와 가해자 사이의 대리인이 되어주셨던 선생님께서 상태가 이러니 학교 상담센터에 가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하셨고, 나는 그때 학교에 상담센터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렇게 찾아간 상담센터는 매우 고요한 분위기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 상담 신청을 하러 왔다고 하자 이름을 물어보고 학생증을 확인하시더니 잠시 앉아 있으라고 하셨다. 이후 한 방에 들어가 1시간 30분 정도 심리검사를 진행하였다. 다양한 객관식과 주관식 문항에 다 답하고 나니 상담센터 선생님께서 결과 분석 상담은 2주 후 즈음부터 가능한데 언제 하겠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당차게 “저 휴학생이라 언제든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얼굴이 파래지며 “휴학생에게는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아요”라고 말씀하셨다.
1시간 반 동안 헛짓을 한 건가 하는 생각에 화가 났지만 일단은 감정을 억누르고 그런 건 미리 안내하셔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거듭 죄송하다고 하시며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본인의 잘못이니 결과 분석까지는 진행하겠다고 하셨다. 일단 첫 번째 고비는 넘었다. 그렇게 2주 뒤로 결과 분석 상담 약속을 잡았고 백양관을 걸어 나오는 나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2주가 흘러 해석 상담을 받는 날이 되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상담실에 들어갔다. 평소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던 나였기에 우울증은 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자아에 대한 인식이 평균보다 한참 낮고 우울증 고위험군이라는 분석이었다. 그러더니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다며 학교와 연계되어있는 정신과를 소개해주셨다. 나는 그 길로 봉인된 심리분석 결과지를 받아들고 정신과로 직행했다. 그렇게 나는 고민할 틈도 없이 정신과에 다니게 되었고, 현재도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병행하고 있는 3년 차 우울증 환자이다.
지금부터는 나의 자해 경험에 대해서 공유하려고 한다. 민감한 주제인 만큼 어떻게 풀어나가는 게 좋을지 여전히 고민이 된다. 그렇지만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 혹은 자해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제 자해 경험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내가 해석 상담 당시에 ‘우울증 고위험군’이라는 말을 듣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자해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즈음 내가 썼던 일기를 참고해서 경험을 풀어놓겠다.
자해를 했었다. 갑자기 하고 싶어서 했는데 할 때마다 공황 상태가 돼서 엄청 울었다. 손톱으로 손등을 쥐어뜯은 적은 전에도 몇 번 있었지만, 도구를 사용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마지막으로 자해를 한 지 이미 1년 정도 지났다. 이제는 상상만 해도 너무 아플 것 같고 싫은데 도대체 어떻게 내가 그랬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니까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무섭다.
처음 자해를 한 이후 한동안은 가위만 봐도 공황발작이 일어나서 뾰족한 걸 전부 치워 놓고 살았다. 한번은 아주 우울한 상태로 집에 들어가다가 이대로 집에 가면 자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엄마한테 전화해 방에 있는 가위와 칼을 모두 치워 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당시 내 일기를 보면 너무 구체적으로 적어 놓아서 일기의 주인인 나도 볼 때마다 흠칫 놀란다. 자해는 우울함이 극에 치달았을 때 이를 표출하기 위해 본인을 해하는 행동이라고 한다. 표출이라는 건 나의 우울함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고 갇혀있는 우울을 말 그대로 피를 통해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기도 하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내 몸 밖에 없으니 결국 몸이 해코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사실 자해 충동은 스스로 조절하기 굉장히 힘들기 때문에 억제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는 다행히 제때 상담치료와 약물치료의 도움을 받아서 호전될 수 있었다. 상담선생님께서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것 같은지’ 매번 물어봐 주시고 ‘대체할 수 있는 행동에 무엇이 있을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경험이 크게 도움 됐다. 개인적으로 대체했던 행동은 친구와 통화하기, 코인노래방 가기 등이 있었다.
자살 충동을 느낀 적도 꽤 있다. 근데 정말 내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기보다는 ‘이 모든 게 끝났으면 좋겠다’라거나 ‘내가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좀 더 가까웠다. 자살 충동이 들 때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 모든 증상이 다 같이 난리법석을 떨어서 나 자신을 제어하기 힘들다. 내 몸인데 내가 지배할 수 없는 기분이다. 자꾸 내가 죽는 상상을 하게 되고 이를 통제할 수 없어서 불행하다.
내가 죽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한 친구가 “너에게 죽지 말라는 말을 하려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네가 죽지 않아야 할 이유는 그저 내가 슬퍼할 거라서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야. 너무나도 이기적인 이유더라고. 너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서 죽지 말라는 주제넘은 말은 하지 않을게.”라는 메시지를 보내준 적이 있다. 친구의 솔직한 마음이 와닿아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이미 자살 충동에 사로잡힌 사람에게는 때로 이런 진심 어린 말이 더 위로되는 것 같다.
대개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하면 매일, 하루 종일 우울하기만 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나 또한 알게 모르게 우울증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겪으면서 실제로 우울증이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다가오는지 새롭게 알게 되었다.
우울증은 흔한 정신질환으로 ‘마음의 감기’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우울증은 성적 저하, 대인관계의 문제, 휴학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며 심한 경우 자살이라는 심각한 결과에 이를 수 있는 뇌 질환이다. 다행히 우울증은 효과적으로 치료가 가능한 질환으로 초기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나는 제때 도움을 받아 증상이 호전될 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정신과에 다니고 상담치료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더 이상 우울함에 잠식되어 하루를 흘려보내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우울증은 치료가 가능한 병이지만 다른 병과 마찬가지로 하루아침에 나아지기는 어려우니 인내심과 의지를 가지는 일이 몹시 중요하다.
나는 우울증과 함께 공황장애를 겪었다. 공황장애는 심한 불안 발작과 이에 동반되는 다양한 신체 증상들이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불안장애의 일종이다. 나는 주로 사람이 많은 공간에 가거나 가해자가 자주 갔던 공간에 갈 경우 공황이 찾아왔다.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꾸준히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약을 먹으면서 혹은 약을 갑자기 끊으면서 생긴 부작용도 있다. 먼저 체중이 단기간에 늘었다. 또한 정신과를 옮기는 과정에서 평소에 복용하던 공황장애약이 누락되어 3주 정도 고생한 적이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것은 고사하고 집 밖으로 다섯 발자국만 나가도 숨이 가빠오고 머리가 어지러워 집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있다고 느낀 적도 종종 있었다. 먼저 우울장애, 공황장애와 같이 병명에 ‘장애’라는 단어가 들어있다. 그렇다면 나는 장애인인가? 나는 우울’장애’를 앓고 있지만, 장애인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비장애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다들 흔히 생각하는 건강한 청년의 이미지에 부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자 주변인으로서 바라보는 세상은 비장애인의 눈으로 바라보던 것과 전혀 달랐다. 나는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밖에 나갈 수 없기도 하고 수업을 듣다가 공황이 오기도 했다. 이와 같은 상황은 꽤 자주 일어났고 내가 흔히 말하는 정상적인 일상을 지낼 수 없게 했다. 우울증 이전과 이후로 내 세상이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나는 ‘아픈 사람’, ‘불편한 사람’에 대한 생각을 전보다 훨씬 많이 하게 되었다.
우리대학교에는 성평등상담소와 심리상담센터가 있다. 성평등상담소는 본관 오른쪽에 있는 논지당에 자리하고 있으며 심리상담센터는 백양관 북측동 3층에 있다. 혼자 가기 힘들다면 주변인이나 학생회의 도움을 받아도 좋다.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일이라 어려울 수도 있다. 겁이 나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는 자체가 이미 좋은 신호이자 당신이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주저하지 않기를 바란다. 참고로 휴학생은 심리상담센터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참으로 불합리한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상담센터의 장점은 바로 재학생이면 초반 몇 회기는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설 상담센터의 비용 문제 때문에 고민이 된다면 우선 학교 상담센터를 방문해보기를 권한다. 학교에 있다고 해서 사설 상담센터보다 질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상담사가 얼마나 내담자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처음에 만난 상담사가 본인과 맞지 않을 수 있고 본인과 맞는 상담사를 찾는 데에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 수 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신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본인과 맞는 선생님을 찾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학교와 가까운 신촌에 두 곳 이상의 정신과가 있다. 특히 서울지역에는 곳곳에 정신과가 존재한다. 정신과는 다른 병원에 비해 진입장벽이 높게 느껴지곤 한다. 그러나 감기에 걸리면 내과에 가고 다리가 부러지면 정형외과에 가듯 마음이 다치면 정신과에 가면 된다. 정신과에 간다고 해서 당신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건 절대 아니다. 나는 신촌에 있는 한 정신과에 다니다가 최근에 본가 근처에 있는 곳으로 병원을 옮겼다. 병원에 따라 크고 작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당신의 증상을 나아지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전문가들이 있는 곳이라는 사실은 똑같다. 요즘은 웹사이트에서 예약이 되는 곳도 많다. 덧붙여 말하자면 정신과는 다른 병원과 달리 약국에서 약을 짓지 않고 병원에서 직접 지어주며 약 봉투에는 병원 이름이 생략되어 있거나 정신과라는 명칭이 빠져있다. 세심한 배려인지 새로운 낙인인지 종종 고민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한번은 공황발작이 너무 심해서 강의실 앞까지 갔다가 울면서 병원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교수님께 진단서를 제출해 출석을 인정받은 기억이 있다. 정신과에 가서 약을 처방받아 먹는다고 단기간에 상태가 호전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상담과 같이 본인에게 맞는 약을 찾기까지도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우울증이 가장 심했던 시기에 나는 오늘의 할 일 리스트를 만들었다. 거창하게 플래너를 쓰거나 그럴 성정은 되지 못해서 휴대폰 메모장에 ‘책 읽기’, ‘경의선 숲길 산책하기’, ‘마카롱 먹기’ 등을 적어 넣고 실행할 때마다 하나하나 지워내면서 성취감을 느꼈다. 작은 목표를 세우고 지키면서 뿌듯함을 느끼는 건 실제로 심리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또한 좋아하는 일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문화생활을 굉장히 좋아한다. 상태가 많이 안 좋았던 시기에 마침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 공연 중이었다. 그 작품을 예매하고 보러 가면서 대중교통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실제로 공황이 너무 심해 대중교통을 거의 타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연습을 하기 위해 공연을 일주일에 한 번 씩 총 8번 두 달 동안 보러 다녔다. 두 달 전의 나는 밖에 잘 나가지도 못했으나 두 달이 지나자 밖에도 잘 나가고 좀 더 밝아졌다.
나는 서점을 좋아한다. 책 냄새도, 책을 사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한다. 나의 우울감은 대체로 스스로가 무능하다는 감각에서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책으로 가득한 공간에 가면 어느 정도 무능감이 해소되는 느낌이 들어서 더 서점을 찾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위로가 되었던 책을 몇 권 소개하고자 한다.
・ 아무것도 할 수 있는 / 김현경 – 우울증을 겪고 있거나 겪은 사람들의 글과 인터뷰를 비롯한 여러 테마의 콘텐츠로 이루어진 책이다.
・ 폐쇄병동으로의 휴가 / 김현경 – 저자가 정신과 폐쇄병동에 다녀오는 동안 쓴 일기를 모은 책이다.
・ 망가진 대로 괜찮잖아요 / 재은 – 깊은 우울에서 함께 했던 책과 음악, 그리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은 책이다.
・ 판타스틱 우울백서 / 서귤 – 저자가 ‘정신과 치료일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려낸 책이다.
기억은 어떻게든 몸에 남는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기억은 흉터가 된다. 성폭력 피해를 당한 이후 나는 성인지 교육을 들을 때마다 공황 상태를 이겨내기 위해 애써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여전히 성폭력과 관련된 뉴스 혹은 기사를 보는 게 힘들다. 가위와 칼을 보기만 해도 토할 것 같은 날도 있고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가해자의 마지막 얼굴이 꿈에 나와서 식은땀을 흘리며 깰 때도 있다. 한동안은 정문에서 수업을 듣는 건물까지 걷는 게 무서워서 택시를 타고 등하교를 하기도 했다.
지금도 매일 5알의 약을 우울과 함께 삼키고 3주에 한 번씩 상담센터를 방문하는 삶을 산다. 그렇지만 내 삶은 정말 많이 달라졌다. 갑작스레 공황이 찾아와도 정말로 내가 죽는 게 아니라 단순히 ‘증상’을 느낀다는 걸 스스로에게 상기시킬 수 있게 되었다. 흉터 자국이 흐릿하게 남아있던 손목에는 내 자신을 아껴주겠다는 의미의 타투를 하였고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하루하루를 소중히 보내려 노력하고 있다. 물론 가끔 우울함이 찾아와 나를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나는 이제 이 녀석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안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살아갔으면 좋겠다. 매일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매일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무슨 일을 겪었든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혹시라도 안 좋은 생각에 사로잡혀 눈물이 나오는 날에는 그냥 펑펑 울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당신의 감정을 마주하고 직면하며 그 감정과 함께 살아갔으면 좋겠다.
수습편집위원 안즈
chicchick9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