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편집위원 재주
이 이야기는 노인의 작은 축제에서 시작된다. 상영 10분 전, 백발노인이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나의 상기된 얼굴을 들여다본다.
“학생, 천천히 해. 천천히. 자리는 앉고 싶은 곳 앉고.”
그는 표를 툭 뜯는다. 표가 끊기는 소리와 함께 나는 이곳이 마치 미지의 세계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한 번도 방문해보지 않았던 곳. 나의 세계에는 차마 자리할 수 없었던 무관심의 공간. 낯선 공기와 감각이 나를 감쌌다. 나는 커튼을 걷어 어둠 속으로 입장했다.
상영관은 고요했다. 캄캄한 인영이 드물게 공간을 채웠다. 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적막을 깼다. 나는 같은 자리에 앉아 네 작품을 감상했다. 모두 노인 감독의 작품이었다. 마지막 작품이 끝나고 다시 어둠이 찾아왔을 때 나는 벌건 눈과 반쯤 벌린 입 모양으로 얼어붙어있었다. 객석이 반도 차지 못한 그 공간이 자아낸 울림이 있었다.
2019년 서울노인영화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강복녀 감독의 ‘나의 일생’은 기획부터 편집까지 한 사람의 손을 거쳐 탄생한 영화다. 그녀의 삶 그 자체를 담은 영화는 다양한 면모에서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플롯도 탄탄하고 연출도 훌륭하다. 영화는 내레이션, 영상, 사진 등 다양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그녀가 직접 그린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는 묘미가 있다. 영화는 그녀의 20대 시절부터 시작되어 긴 시간을 조망하지만, 매끄러운 진행과 생동감 넘치는 묘사, 그리고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지루할 틈이 없다. 무엇보다 그녀의 이야기는 놀랍도록 자연스레 관객에게 스며든다. 영화는 개인의 삶을 보편으로 뻗어나가게 하는 힘이 있다. 우리는 그녀의 삶을 따라가며 누군가의 삶을 떠올린다. 그녀의 일생이 마음에 잔잔히 퍼져나가는 감각을 느낀다. 강복녀씨는 이 작품을 위해 노인복지관에서 영상 편집을 배우고, 각본을 쓰고, 카메라를 대여하여 촬영을 했다. 무엇이 그녀가 번거로운 영화 제작의 모든 과정을 기꺼이 하게 만들었을까. 그녀는 카메라를 또렷하게 응시하고 말한다.
“그동안 한 번도 말해보지 못했던 나의 일생을 영화로 만들어보았습니다.”
진솔한 목소리로 더듬더듬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가는 그녀의 눈빛에는 힘이 느껴진다. 닫혀있던 입을 열고 내 이야기를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그녀의 강한 의지. 왜 나는 그녀의 일생을 이제야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일까. 새로운 세계와 나의 세계가 충돌하며 여러 물음을 던진다.
페미니즘, 퀴어, 장애인, 노동자... 계급, 권리, 자유, 평등... 나름대로 혐오와 구조에 투쟁했던 대학생활이었다. 그러나 나의 세계에 자리 잡은 노인은 ‘다정한 조부모’ 혹은 ‘틀딱’[1]에 불과했다.
‘노인’이라는 이름 아래 뭉뚱그려진 수많은 개인의 얼굴을 본다. 그들의 얼굴은 특정 생애 주기에 머무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흐려진다. 노인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그들만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번져있는 얼굴에 뚜렷한 형체를 부여하는 일에 묘한 의무감이 든다. 내가 별일 없이 살아간다면, 내 늙은 얼굴도 노인이라는 거대한 집단이 드리운 그림자에 가려져 번져버릴 테니까.
노인이란 무엇인가. 나와 노인의 만남은 보통 공공장소에서 이루어졌다. 번잡한 지하철에서 어깨와 허리를 밀치며 자리를 차지하는 노인이 있고, 노약자 석에 앉은 임산부에게 임신한 사실을 증명하라고 고함치는 노인이 있다.[2] 벤치 옆자리에 노인이 앉으면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고 다른 자리를 탐색한다. 광화문에서는 여전히 많은 노인들이 동의하기 어려운 정치 활동을 펼친다. 택시도 마찬가지다. 승차거부를 하거나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노인 기사님이 있다. 귀갓길에는 홈리스 노인 혹은 폐지 줍는 노인을 지나친다. 노인은 억척스럽고 답답하다. 동시에 병약하며 경제적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회적 약자다. 노인을 향한 부정적인 감정이 일렁인다. 그들은 나와 다르다. 이질적인 역사를 걸어온 완벽한 타인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진정 없을 수도 있겠다. 최근 한국 언론은 노인 혐오가 만연한 우리 사회를 ‘혐로(嫌老)사회’로 일컬었다.[3] 노인인권종합보고서에 따르면, 청년(19~39세) 중 80.9%가 ‘우리 사회가 노인에 부정적 편견이 있고, 이 때문에 노인 인권이 침해된다’고 응답했다.[4] 급격한 고령화로 청년층은 노인 복지, 연금 등에 대한 부담을 호소한다. 노인에게 빼앗길 수도 있는 본인의 밥그릇과 청년 세대가 짊어지고 가야 할 부양에 막연한 거부감이 든다.[5] 코로나19와 함께 확산된 혐오도 노인을 피해 가지 않았다. 정치 집회나 교회 모임에 참석해 코로나 확산을 부추기는 일부 노인들에 대한 혐오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혐오는 사회에 뿌리박힌 노인의 이미지를 더욱 견고히 한다.
대한민국은 노인의 기준을 명문화하지 않는다. 노인복지정책마다 연령 기준도 상이하다. 다시금 노인의 형상이 모호해진다. 그렇다면 노인의 삶을 고민하는 노인복지관은 어떤 정의를 가지고 있는가? 노인복지관은 노인의 ‘교양・취미생활’ 및 ‘사회참여 활동’ 등에 대한 각종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건강증진’ 및 ‘질병예방’과 ‘소득보장・재가복지’ 그 밖에도 노인의 복지증진에 필요한 종합적인 노인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이다.[6] 노인복지관의 정의에 따르면 노인은 취미생활을 즐기고, 사회참여 활동을 할 수 있으며, 안정적인 소득과 건강이 근간이 되었을 때 잘 살아낼 수 있다. 얼핏 보면 내가 잘 살아낼 수 있는 삶의 조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노인복지센터는 ‘차별적인, 그 이상으로, 이상적이라는 다양하고 열린 지향을 담아’ ‘더 이상한 복지관’이라는 이름을 걸고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 이름이 가진 관점의 중심에는 노인의 주체적인 삶이 있다. 사회나 미디어에서 통용되는 노인의 단편적인 모습이 아닌, 다양한 노인의 삶을 끌어내는 복지를 기획한다. 노인은 글, 그림, 춤, 영화 등 여러 수단으로 본인의 삶과 생각을 표현한다. 노인이 영화를 제작하고, 웹툰을 그린다. 탑골 미술관에 본인의 그림을 전시하고, 상담 기술을 배워 상담가로서 활동을 하고, 실버 DJ가 되어 보이는 라디오를 진행한다.
서울노인복지센터의 일러스트. 노인이 기타를 연주하고, 방송을 진행하고, 감독이 되어 촬영 현장을 지휘한다.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고, 외국인에게 서울을 소개하는 노인도 있다. 쪽 찐 머리에 암울한 표정을 한, 혹은 스웨터를 입고 지팡이를 든 전형적인 노인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 노인복지가 가진 한계 중 하나는 노인을 심층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은 부분에 있어 부재한다는 사실이다. 노인 일자리 사업은 저임금 단순노동으로 국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인에게 사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으며 청소, 도시락 배달, 경비와 같은 단순 업무가 주어진다. 노인 무료 급식 사업도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 있다. 이는 노인 빈곤율이 극심한 대한민국에서 어떤 노인에게는 삶의 유지를 가능케하는 복지로 기능할 수 있지만, 다른 시각에서는 미봉책에 불과할 수 있다.[7] 노인이 무료 급식에 기대며 살아가는 것보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기본적인 경제적 자원과 교육이 마련된다면 장기적으로 건강한 순환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젠더 역할이 분명한 시대를 살아와 밥 한 번 해본 적 없었던 노인 또한 집안일을 배우고 자립하며 살아갈 수 있다. 노인이 언제나 의욕 넘치게 배우려는 태도를 고수하지만은 않을 것이며, 복지가 기대했던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여주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어떤 노인은 타인의 노동을 당연시하며 변화하는 일을 꺼릴 수도 있다. 변화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잡음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누군가는 분명 변화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가능성을 놓친다면, 노인은 계속해서 커다란 집단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노인은 다양하며, 변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주름에 가려졌던 역동적인 노년의 삶을 포착한다. 이러한 움직임을 혐로사회가 알 수 없었던 이유는 노인을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 때문일 것이다. 우리 안에 자리한 편견들이 모여 명문화되지 않았던 노인의 정의와 낙인을 만들어간다.
노인이란 집단 안에는 경계가 있다. 여성 노인과 남성 노인의 빈곤율은 큰 차이를 보이며, 지역별 학력별 격차에 따라 노인들은 서로 다른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장애 노인, 고위직으로서 살아온 노인, 평생 일 한 번 안 해본 노인, 혹은 유학파 노인 등 그 숫자만큼 다양한 노인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통틀어 ‘늙은 사람’이라 부른다.
나는 늙는 것이 싫다. 연말이 되면 나이를 먹는 일이 공포스러워 몸이 절로 사시나무처럼 떨려온다. 나의 무한한 가능성을 잃어가는 일이 두렵기 때문이다. 나는 활력 넘치는 삶을 사랑한다. 누군가는 허상을 쫓는다 할 수 있겠지만, 나의 이상을 그려내고 이를 향해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내게 늙어가는 것은 세월과 함께 나의 가능성 또한 빛이 바래져가는 일이었다. 다가올 미래에 설레는 시간 보다 지나간 선택을 돌아보는 과업만 남은 시간이 노년의 삶이라 생각했다. 나의 사고 흐름에 따르면, 노인이 된 내 모습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루 하루가 버거워 온몸의 세포가 감당할 수 없이 가라앉던 나날이었다. 유독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에 나는 연신 코트를 여맸다. 한적한 장소가 그리워 술집과 식당으로 빼곡한 신촌에서 간신히 찾아낸 공원을 향하는 길이었다. 그곳을 가기 위해서는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끝없는 오르막은 여유를 찾는 방랑자를 시험하는 과제 같기도 했다. 마침내 공원에 도착한 나는 홀로 고독을 즐기고 싶었지만 나약한 인간 따위가 한파를 이길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발걸음을 돌려 공원 앞에 있는 허름한 슈퍼마켓으로 들어갔다.
온기로 가득 찬 작은 공간이었다. 얼어붙었던 귀가 녹으며 긴장이 풀렸다. 음료를 들고 멍하니 밖을 바라보는 나에게 주인 할아버지는 갑작스레 말을 몇 마디 거시더니 슈퍼마켓 주인으로 살았던 인생사를 영웅담처럼 늘어놓기 시작했다. 10년 전만 해도 이 근처에 하숙하는 대학생들이 많았다며 나를 보니 그 학생들이 생각난다고 너스레를 떠셨다. 할아버지는 완연한 노인의 얼굴을 하고 계셨다. 그러나 할아버지라고 부르기에는 어딘가 아이 같은 분위기를 가진 분이셨다. 물끄러미 나를 관찰하던 그는 나의 꿈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낯선 노인과 꿈을 이야기하는 일은 삶에서 처음이기에 환상에 사로잡힌 듯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훌쩍 고학년이 되어버린 나를 알아채고 앞으로의 밥벌이에 대한 현실적인 질문부터 나의 순수한 이상에 대한 낭만적인 질문까지, 우리는 서로의 꿈을 관망했다. 서툰 대화는 잔잔하게 이어졌다.
할아버지는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다. 가난이 지겨워 일찍이 독립을 해 자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신촌에 자리를 잡고 슈퍼마켓 주인으로서 긴 세월을 살았다. 당신의 자녀는 많이 배워서 꿈도 많이 꿨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목표 하나로 좁디좁은 공간에서 매일을 반복했다고 한다. 때론 슈퍼마켓을 지키는 그에게 우울이 찾아오기도 했다. 삶의 소소한 행복이 당신을 위로했지만 사무치는 공허함에 지배되는 날이 있었다. 어쩌면 신촌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울지도 모르는 작은 구멍가게에 그는 가까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꿈을 심었다. 자식들을 다 키우고 나면 당신이 사랑하는 산에 올라 멋들어진 산의 풍채를 사진에 담아내고, 인사동 거리에서 당신 이름으로 된 전시회를 열겠다는 단단한 꿈의 씨앗을 심고 가꿨다. 적막한 공간에서 그의 되뇜으로 자란 나무는 어느새 거목이 되었다. 나는 나무가 커다랗게 드리운 그늘 안에서 그의 꿈을 봤다.
아쉽지만 그는 아직 꿈을 향해 큰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자식들은 다 커서 떠나갔지만 생활비는 벌어야 했고, 높은 언덕 위에 아슬하게 놓여있는 슈퍼마켓을 유지하면서 취미생활을 즐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진을 좋아해 종종 출사를 갔던 나는 신이 나서 할아버지와 심오한 사진의 세계를 이야기했다. 할아버지는 슈퍼마켓을 닫는 몇 안 되는 날이면 산에 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사진 동호회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여유가 된다면 슈퍼마켓을 벗어나 비싼 카메라로 사진만 실컷 찍어보면 여한이 없겠다고 덤덤하게 말씀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꼭 그렇게 할 것이라 덧붙였다. 나는 당신과 산에 올라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는 말을 남긴 채 슈퍼마켓을 나왔다. 슈퍼마켓을 비집고 솟아오른 그의 커다란 거목이 그제서야 선명히 보였다.
시니어 모델 김칠두 씨는 올해로 데뷔 3년 차가 됐다. 큰 키와 풍성한 회색 수염, 강렬한 눈빛이 인상적인 그는 각종 패션쇼는 물론, 청년들에게 잘 알려진 브랜드 스파오, 무신사 등의 모델로도 활동했다. 번쩍이는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그를 보면, 그가 내뿜는 분위기에 압도되며 ‘힙하다!’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는 20대 때 패션에 관심이 많았지만 경제적 이유로 모델 일을 포기하고 남대문 시장에서 직접 옷을 디자인하여 도매로 판매하는 일을 했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잠깐이었다. 생활고로 순대 국밥 장사를 시작하여 27년을 국밥집 사장으로 살아왔다고 한다. 노인이 된 그는 딸의 권유로 묵혀뒀던 꿈을 꺼내어 먼지를 털고 세상에 내보였다. 인터뷰에서 그는 죽기 직전까지 모델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본인의 꿈을 전했다.
꿈을 꾸고 나아가는 일은 개인의 역량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개인에게 주어진 조건, 환경, 상황, 시대적, 사회적 장벽이 개인의 삶에 많은 부분 영향을 끼친다. 노인이 꿈의 나무를 꺼낼 수 있는 토대를 사회가 불어넣어 준다면 세상은 어떤 변화를 맞이할까. 꿈 또한 현실적인 조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진부한 명제에 마음이 아려와도, 조금은 희망찬 생각을 해본다.
슈퍼마켓에서 나와 청년이 가득한 신촌의 전경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늙은 사람도, 내가 늙은 사람이 되어도 저 아래 대학가에서 청춘을 즐기는 이들처럼 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다. 나는 늙는 일이 이전처럼 무섭지 않아졌다.
노인복지론 교수님께서 과제를 주셨다. 가장 가까운 노인을 인터뷰하고 녹취를 푸는 일이었다. 인터뷰의 주제와 형식은 자유로웠다. 노인과 대화를 나눈 경험이 손에 꼽고, 조부모와 친밀한 관계가 아닌 나는 이 과제가 마냥 막막했다. 나와 가장 가까운 노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고등학교 1 학년 때 외할머니와 단둘이 산 적이 있다. 여러 상황으로 할머니 댁에 신세를 지게 되며 희한한 동거가 시작됐다. 할머니와 나는 서로의 건조한 동거인이었다. 우리는 철저하게 각자의 영역을 지켰고, 서로에게 동거인 이상의 애정 어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으면 작은방에 앉아 머리를 손질하시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할머니는 언제나 자신에게 푹 빠져 계셨다. 할머니는 평소에도 세련된 옷을 입으시고, 가슴에는 은빛 브로치를 하나씩 꼭 다셨다. 동네 사람들은 내게 멋쟁이 할머니가 있어 부럽다는 농담을 했지만 나는 할머니에게 애틋한 감정이 없었다. 매일 밤 마스크팩을 얼굴에 붙이시면서도 손주에게 단 한 장도 나눠주시지 않던 할머니의 선 긋기에 미묘한 서운함이 있었다.
나 또한 다정한 손주는 아니었기에 우리는 관계에서 쏠쏠한 이익만을 챙기며 함께 살아갔다. 할머니는 나의 부모님께 월세를 받았고, 나는 할머니가 해주신 맛있는 콩자반을 열심히 먹었다.
엉켜있는 기억뿐이지만 ‘가장 가까운 노인’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사람은 외할머니뿐이었다. 6개월가량 동거하며 대화 다운 대화를 나눈 적조차 없었는데 과제 때문에 찾아와 당신의 얘기를 하라고 마이크를 들이미는 손주라니. 아무리 무미건조한 관계라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양심에 가책을 느꼈다. 그러나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나는 복잡한 마음을 안고 할머니 댁을 찾아갔다.
“인터뷰가 뭐여.”
“인터뷰는 어떤 사람의 생각을 묻는 거야. 내가 할머니한테 질문하면 솔직하게 할머니의 이야기를 말해주면 돼요.”
오랜만에 뵌 할머니는 내가 자란 만큼 늙어 있었다. 할머니는 전 동거인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내심 기뻐하시는 듯했다. 요즘 많이 외로우셨다며 대화를 하러 자신의 공간을 방문한 이가 반가우셨던 모양이다. 그렇게 인터뷰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할머니와의 인터뷰가 시작됐다.
“내가 비밀이 뭐가 있어. 사는 대로 사는 거지!”
할머니의 호탕한 수다가 어색한 공기를 뚫고 쏟아져 내렸다.
“할머니 즐겁게 살아~ 무릎이 아파서 그렇지.. 그런데 요새 조금 신경 쓸 일이 생겨가지고(웃음). 남자친구가 있는데 이놈이 전화를 안 해 요새. 그래서 할머니가 신경이 쓰여 잠이 안 와서 수면제 사다 먹고 잔다.”
할머니의 애인이라니. 대화가 시작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줄줄이 이어지는 할머니의 연애상담으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20년 전 할머니는 카바레에서 애인을 처음 만나셨다. 애인은 17살 연하로, 카바레에서 함께 춤을 추며 가까워지다 어느새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혀 다른 삶을 살다 늘그막에 만났고 나이의 간극도 있었지만 둘은 주말마다 춤을 추러 갔다. 할머니는 화려한 조명 밑에서 사랑하는 이와 손을 맞잡고 음악에 몸을 맡기던 시간을 회상한다.
하루에 한 번은 전화를 걸어오고, 일주일에 두 번은 할머니를 찾아오던 애인이 갑작스레 잠수를 탔다. 할머니는 하릴없이 다정했던 애인이 연락이 안 되는 이유를 도무지 몰라 괴로워하셨다.
“나쁜 남자네! 왜 갑자기 연락을 안 하지?”
“그렇지! 무슨 일이 없는데 그러면 나쁜 놈이지! 그렇지 않니? 끝내자면 끝내자고 확실하게 해야지. 그렇게 잘 해주다가... 늙었어도 애인이니까 신경이 쓰여. 아픈 건 아닌가 싶고 젊은 나이인데 죽으면 안 되니까. 괜찮겠지?”
우리의 시간은 시시콜콜한 연애담으로 채워졌다. 지난한 이별의 과정을 마치고 친구와 소주를 들이켜며 밤새 나눈 수많은 이야기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노인 커플은 연락이 안 되면 서로의 생사를 진지하게 걱정하는 등 내 또래 집단과는 극명히 다른 점도 있었지만, 할머니의 연애 또한 설레고 구질구질한 보통의 연애였다.
할머니는 21살에 팔려가 듯 결혼을 하셨다고 말씀했다. 난생처음 보는 타인의 가정에서 시집살이를 하며 할아버지와 그의 가족들 뒷바라지를 하셨다. 가족이 먹고 남긴 찌꺼기로 끼니를 해결하고, 시어머니에게 자주 맞았다고 한다.
“젊을 땐 정말 힘들었어. 지금 즐겁게 사는 거지. 그전에 할아버지하고 살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어. 사랑이 뭔지도 몰랐지. 난 이상하게 자식한테도 마음이 별로 안 가. 내 인생에서 정 주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뿐이지. 딴 사람은 다 필요 없어. 지금이 가장 행복해 할머니는.”
우리는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대화했다. 남편과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다 당당하게 말했던 할머니는 끝으로 내게 시집을 잘 가야 한다며 당부하셨다. 여든을 넘기신 할머니는 복지관에서 도시락 배달로 용돈을 버신다. 한글도 쓰지 못하시고 6·25 시절 피난도 가셨다. 손녀딸이 아무리 똑똑해도 좋은 남자를 만나야 인생이 핀다는 그녀만의 절대 진리를 고집하신다. 할머니는 내가 스쳐 지나온 평범한 노인 중 한 명일 것이다.
잠들기 전 할머니 생각을 한다. 가본 적도 없는 카바레가 머릿속에 펼쳐지며 한껏 멋을 낸 할머니와 그녀의 애인이 무대 위에서 춤을 춘다. 할머니 얼굴에 빛의 스펙트럼이 드리워지고 경쾌한 리듬이 들려온다. 그녀의 은빛 브로치가 조명을 반사한다. 빙글빙글 돌며 몸을 흔드는 할머니. 자유와 사랑을 만끽하는 그녀. 할머니는 더 이상 평범한 노인이 아닌 사랑을 하는 한 사람이 된다.
한국 사회에서 노인은 보통 탈성애화된다. 그렇기에 노인의 연애와 성생활은 음지 문화로써 우리에게 제한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노인의 연애와 노인의 섹스. 우리는 분명히 이 단어들의 조합이 가져오는 이질감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노인은 몸과 함께 성 기능이 노화되고 성적 욕구도 줄어들 것이라는 인식은 만연하다. 또한 노인이 성적 욕구를 표출하고 성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사회에 단단히 자리하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성적 욕구를 느끼고, 기회가 된다면 연애를 하고 싶다고 대답한 노인의 비율은 청년층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연애와 성생활은 노년기 삶의 만족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8]. 노인 성매매, 배우자의 죽음으로 인해 성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 중매결혼이 당연시됐던 노인 세대의 역사를 담론할 필요가 있다.
사랑하는 이를 이야기하는 할머니는 누구보다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설픈 연애를 몇 번 거치고도 사랑이 무엇일까 고민했던 내게, 할머니의 모습은 어떤 사랑의 정의보다 명쾌했다.
할머니는 평생의 사랑을 60대에 만났다. 사랑과 성생활은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난 끼가 있다고 생각해. 가정주부 마냥 사는 여자가 아니여.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지. 어딜 가든지.. 그렇게 살아야지. 음악 소리만 나오면 그렇게 좋아. 즐겁게 살려고 하는 사람이야. 가만히 있지 못해 성미가.”
“할머니는 어떤 사람이에요?” 꽤나 철학적인 질문을 물어오는 손주의 질문에 할머니는 당신을 ‘자유롭고 즐겁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 정의한다. 할머니와 비슷한 정의로 자신을 소개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넘실댔다. 요즘 동네 할머니들이 아코디언을 배운다고 한다. 할머니는 소리가 좋아 배우고 싶으셨지만 악기 값이 비싸 포기하셨다. 할머니는 가끔 아코디언 학원에 놀러 가서 연주를 듣고 혼자 춤도 춘다고 자랑하셨다.
노인이 된 내가 길가에서 버스킹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위스키 한 잔을 마시는 모습을 그려본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하는 나의 노년기를 상상한다.
노년기는 특수한 생애 주기이다. 질병에 취약하고 생체기능이 저하된다. 경제활동이 어렵고 죽음과 가장 가까이 있다. 그러나 노인은 그저 늙은 ‘사람’일뿐이다. 생각하고 후회도 하고 욕심도 부린다. 두렵고 외롭다. 꿈을 꾸고 사랑한다.
노인을 낭만화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이 이야기의 목적은 아니다. 빈약한 연금 체계, 노인 일자리 정책 부족 등 노인복지의 허점이 분명 존재하는 대한민국에서 많은 노인이 4가지 고통, 즉 질병, 빈곤, 무위, 고독[9]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빈곤의 무게가 내려앉은 노인의 삶에서 꿈과 사랑을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청년층이 일상 속에서 만나는 노인의 고집불통 언행에 대한 불쾌한 경험을 기꺼이 이해하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의 땀이 녹아든 복지를 당연시하거나,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노인을 일방적으로 포용하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다만, 나는 노인이라는 커다란 집단을 분해하여 늙은 ‘사람’과 마주하고 싶다. 늙지 않은 사람과 늙은 사람이 대화하고 때론 지독한 갈등을 겪기도 하면서 서로의 삶을 느껴보는 것이다.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다.[10] 무지로 인해 지나쳐온 공동체의 영역을 밝혀나간다. 까마득한 거리감을 직시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타인의 감정과 감각을 느끼며 있는 그대로 서로를 알아간다. 우리는 이해의 고통 속에서 서로의 삶을 지켜나간다.
늙은 사람에게 당신은 어떤 사람인지 질문을 던지는 사회가 필요하다. 그 답변이 모이면 무수한 색채를 가진 노인의 정의가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나만의 색채를 표현하고, 찾아가며 늙고 싶다. 다시 한번 흐릿하게 번진 노인의 얼굴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 모두가 자유로이 늙어갈 수 있도록.
수습편집위원 재주(rkdud4904@gmail.com)
[1] 틀딱충. 틀니+딱딱+충(蟲/虫, 벌레 충)의 합성어이자 신조어. 노인들이 틀니를 착용한다는 발상에서 만들어진 폄하성 신조어다. 보통 틀딱이라 줄여 사용한다.
[2] “”자리 양보하라” 노약자석에 앉은 임산부 폭행한 노인”, 국민일보, 2016.9.29
[3] “노인충을 위한 변명”, JTBC, 2016.2.24
[4] 국가인권위원회, 노인인권종합보고서, 2018
같은 보고서에서 청·장년은 약 88%가 노인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약 80%는 노인과 청·장년 간 갈등이 심하다고 응답했다.
[5] 노인인권종합보고서(2018)에 따르면, 청년 응답자의 56.6%가 ‘노인 일자리 증가 때문에 청년 일자리 감소가 우려된다’는 문항에 동의했다. ‘노인복지 확대로 청년층 부담 증가가 우려된다’고 답한 청년 응답자는 77.1%에 달한다.
[6] 2019 노인보건복지사업 안내
[7] 홍채은, 황은정, 복지제도가 노인빈곤 완화에 미치는 영향,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5
[8] 이상붕, 노인의 성생활 실태와 다면적 요인 분석, 한국노인복지학회, 2019
[9] 최근 고독을 고립으로 부르자는 시각도 대두되고 있다.
“[고독사 경고등③] 홀로 죽는 죽음 '고독사', 명칭부터 바꿔야...”, 1코노미뉴스, 2020.7.20
[10]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교양인,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