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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에세이

<127호> 제 생일선물은 위스키 한 병이면 충분합니다

두 병은 안 돼요. _ 편집위원 지긍

by 연세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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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일선물은 위스키 한 병이면 충분합니다.

두 병은 안 돼요.

편집위원 지긍 (ourindepen@gmail.com)



고된 하루의 끝, 즐겨 가는 바에 털썩 앉는다. ‘싱글 몰트 위스키’라 말하며 손가락 하나를 펼쳐 보인다. 바텐더는 아무 말 없이 잔을 내민다. 위스키를 들이키고 숨을 후 내쉰다. 하루를 돌아보며 상념에 빠진다.


- 이상 필자의 지독한 로망, 혹은 망상이다.


아니지 아니지, 술은 막걸리지. 갓 대학에 들어온 봄, 나는 고대하던 농활을 가게 됐다. 거창한 이유는 뒤로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신선한 막걸리였다. 서울 것과 차원이 다르다며 호들갑을 떨고는 밥그릇에 따라 꿀떡꿀떡 마셨다. 이 글을 쓰며 침을 꼴딱 삼킨다.


첫 술을 마신지 오래되지 않은 듯 느껴지나 술에 대한 호오를 끊임없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술에 대해 오래 입을 놀리고 나면 괜히 머쓱한 마음에 자기반성으로 빠져든다. 묘한 죄책감에는 술이 가진 복잡 미묘한 성질이 한몫한다. 얼큰하게 기분 좋은 순간 한 잔을 더했다가 울렁거리는 아침을 맞이하게 되기 십상이다. 분명 좋자고 마셨는데 결국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자신을 마주하면 인간의 주체성이란 얼마나 허술한 개념인지 돌이키게 된다.


인류 역사와 함께 한 술은 양면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술은 기분을 좋게 만드는 도구이며, 사회적 관계 형성의 매개이자 의학적 효능까지 지녔다는 긍정적 평가와 동시에 개인의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사회적 규율을 무너뜨리는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은 술을 어떻게 다룰지 고민했다. 술에 온갖 형태의 맥락이 덕지덕지 붙어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당연히 술을 선택하는 것도 개인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술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알코올 분해가 빠르든 느리든, 술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이 한국 사회다. ‘밥 한번 먹자’만큼 ‘술 한잔하자’를 남발하며, 간 건강을 사수하는 것이 그리 중요하여 노래까지 만들어진 마당이다. 술을 좋아하는 것이 나인지 이 사회인지 알 수 없어지고 말았다.


저 교회 다녀서요….


고등학교가 개신교 미션스쿨이라면 채플에서 이런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 대강당 화면에 “꿋꿋이 사이다!”라는 여섯 글자와 함께 세 잔의 술잔 사이에 자신이 든 사이다 잔을 찍은 사진을 띄운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자발적으로 음주를 거부하는 모습에 대한 진지한 분석과 칭찬이 이어진다. 교회를 다닌다면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는 명제를 자연스럽게 학습하는 기회다.


중요한 지점은 아무도 ‘왜’ 술을 마시면 안 되는지 몰랐다는 거다. 성경에 술에 취하지 말라는 내용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예수님도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냐는 말대꾸를 하고 싶어진다. 옆 동네 성당 사람들은 술을 마셔도 된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어떤 이들은 한국 개신교가 유독 금주에 강경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한국 개신교의 금주령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


실마리는 한국에 개신교가 상륙한 배경에 있다. 한국의 경우 개신교 도래에 있어 미국에서 비롯된 선교의 역할이 크다. 다시 말해, 한국 개신교 교리는 미국의 영향권 내에 위치한다.[1] 한참 한국에서 선교가 이루어지고 있던 시점에 미국 사회에서 금주 운동은 상당히 활발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금주 운동은 선교사를 통해 한국에 전래되었다. 한국 개신교의 금주 교리는 여기서 시작한다.


본래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강력한 금주 원칙을 내세우지는 않았다. 금주보다는 절주에 가까우며, 과음에 대한 경계 위주였다. 이런 분위기는 새로운 술의 유행과 함께 술렁이기 시작했다. 주조 방식의 발전하면서 16세기에 이르러 유럽에서 증류주 제조가 시작된다. 초기에 증류주는 알코올 도수가 높아 의학용으로 사용되었고 일상적인 음료와는 거리가 멀었다. 산업화 과정에 따라 도시로 모여든 노동자는 대량 생산이 가능하여 비교적 값이 싼 증류주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또한 고된 노동 후에 빠르게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에도 알코올 도수가 높은 증류주가 훨씬 적합했다. 증류주가 대중적으로 자리를 잡고 점차 기독교가 금기시하던 과음이 사회에 만연하자 증류주를 금지해야 한다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한편으로 음주에서 비롯된 병리적 증상이나 폭력과 같은 문제에 대한 비판과 함께 기독교 내 경각심은 사회 전체로 확장된다.


과음을 경계하던 사회 분위기에서 비롯된 금주 운동은 빠르게 확산되며 국가적 차원의 금주령으로 나아갔다. 증류주에 대한 경각심에서 시작된 만큼, 초반 주류 규제는 증류주의 일종인 스피릿에 먼저 적용되었다. 금주령은 주종 규제에서 멈추지 않고 규제를 적용할 ‘사람’에도 차별을 두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북미 선주민에게 적용되었던 법령이 그렇다.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금주령은 1920년에 적용되어 1933년에 끝났으나, 북미 선주민은 1892년부터 1953년까지 술을 소비할 수 없었다.[2] 선주민에게 금주 원칙이 차별적으로 적용된 배경에는 음주를 절제하는 능력에 대한 우생학적 믿음이 있었다. 북미 선주민은 술을 절제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이를 금지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북미 선주민 사례와 같이, 열등하다고 여겨진 사람들에게는 보다 강력한 금주 원칙이 적용되었다. ‘제3세계’로 떠난 선교사들이 보다 강력하게 전개한 금주 운동에서 유사한 맥락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 눈에 비친 ‘타인종’은 음주 조절 능력 부족으로 타락을 피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이런 시각은 경멸적 평가로 이어지기 쉬웠다. 한국에 기독교가 처음 전래될 때 선교사들은 한국 사람들의 음주습관이 “게으름, 불결, 무절제”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3] 금주운동의 양상은 다양했기 때문에 모든 시도를 경멸적 태도와 연결 지을 수는 없다. 금주 원칙이 개인이 지닌 조절 능력에 따라 다르다고 바라본다면 몇 가지 의문이 남게 된다. 현대 의학계는 알코올 의존과 개인의 특성 사이 관계를 밝히고자 다방면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유전적 요인, 알코올 해독 능력, 유아동기 주변 환경 등 여러 요인과 상관관계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떠한 요인도 명백한 연결고리가 되지는 못한다.


알코올의 영향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4] 쾌감보상경로를 활성화하는 긍정적 강화(positive reinforcement)와 긴장 불안을 줄여주는 부정적 강화(negative reinforcement)다. 두 개념은 영향을 미치는 방향이 다를 뿐 뒤집어 보면 뇌에 유사한 효과를 준다. 두 효과는 모두 중독에 이르는 원인이 되는데, 특히 부정적 강화는 점차 뇌가 더 많은 양의 알코올이 필요하도록 만든다. 알코올은 중추신경계 활동을 늦추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을 흉내 내고 반대 효과를 가진 자극성 신경전달물질의 활동을 방해한다. 뇌는 이러한 영향을 상쇄시키고자 자극성 신경전달물질을 더욱 많이 만들게 된다. 그 결과 알코올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 더 많은 술을 섭취하게 된다.


술의 중독성을 피해갈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알코올 의존 사례를 기반으로 통계적 설명은 할 수 있어도 알코올 의존 가능성을 예측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즉, 알코올 의존에 이르는 인과적 요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술을 마시는 모든 사람이 병리적 알코올 의존에 이르는 것은 아니더라도 모두에게 의존으로 향하는 가능성의 씨앗은 있다. 모든 사람이 알코올 중독에 이를 수 있다는 상투적인 말속에서 찾을 수 있는 의의는 중독 가능성을 높이는 환경에 대한 접근이다.


새로운 관점의 차이는 분명하다. 중독에 취약한 ‘개인’이라는 프레임을 지우고 중독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을 분석할 수 있다. 북미 선주민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개인’에게 의존의 원인을 찾는다면 음주 조절 능력의 부족을 지적하게 된다. 특히 당시에는 인종 차별적 시각과 결합되어 북미 선주민과 음주 조절 능력 부족을 결부시킨다. ‘환경’에 집중하면 다른 설명이 가능하다. 유럽계 미국인이 북미를 침략하는 과정에서 선주민은 그저 이윤을 남기기 위한 시장으로 여겨졌다. 이전까지 음주 문화가 없었던 북미 선주민 사회에 지속적으로 많은 양의 술이 공급되었다.[5] 그 결과 형성된 환경을 고려한다면 선주민 집단 내에서 알코올 의존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여기까지 본다면 한국 개신교의 절대적인 음주 금지는 일견 타당해 보인다. 알코올을 접할 환경을 없애고 애초에 가까이하지 않으면 알코올 중독에 이르지 않게 된다. 그러나 금지는 유혹적이다. 새빨간 선악과 같은 술을 나는 똑 따먹었다. 신은 에덴동산 한가운데에 선악과를 세우면서 열매를 먹지 말라고 명령했다. 먹지 말라는 명령은 먹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한 결정이었다. 한국에서 술을 멀리하기에는 도처에 술을 마셔야 할 자리가 널려 있었다. 필자 역시 새내기 시절 술을 마시지 말까 고민했으나 술자리를 몇 차례 거치면서 종국에 마시게 되리라는 예감을 느끼고 말았다.


논알콜방에 덩그러니


성인이 된 1월, 고등학교 기독교 동아리 선배들과 간 MT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술게임을 했다. 술게임에 통달하면 벌칙에 걸리지 않아 술을 마시지 않고도 대학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고등학교 선배들과 딸기게임을 연습한 노력이 무색하게 새내기 시절 나에게 억지로 술을 마시도록 하는 사람은 없었다. 요즘 대학에서 누가 술을 강권하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술을 억지로 먹이던 야만적 과거는 그리 멀지 않다. 몇 년 전만 해도 신입생 OT에서 강요에 의해 술을 마시다 발생한 사망사고 소식이 간간이 들려왔다. 대학 내 술 문화에 대한 자발적 성찰과 교육부 점검에 의해 대학 내 음주 문화는 점차 바뀌고 있다.[6] 캠퍼스 곳곳에 있는 포스트를 돌아다니며 선배가 주는 술을 마시는 행사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모두 둘러앉아 각종 ‘술게임’을 하며 술이나 음료를 마신다.


술을 마시지 않고 술게임을 하려면 상당한 재능이 필요하다. 술게임을 절대 지지 않거나, 지더라도 재밌게 져야 한다. 오만 가지 술게임을 관통하는 하나의 규칙은 틀리면 ‘벌칙’으로 술을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술 대신 음료를 마셔도 된다고 하지만, 달달한 음료는 벌칙이 될 수 없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 다들 술을 마시며 고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술 한 방울 없이 게임을 즐기기는 쉽지 않다. 술게임을 하는 원 안에 있어도 나는 바깥에 있는 듯한 이질감을 느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술을 마시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는데도 속으로 술을 마셔야 하나 반문했다. 술을 마셔야만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면 어쩔 수 없지 않나 싶었다. 강요하는 이 하나 없어도 강요가 있을 수 있었다. 소란스러워지는 방에서 나는 점점 조용해졌다. 이상하게 앞날이 캄캄했다. 과연 내가 대학 문화에 안착할 수 있을지 재빠르게 가늠을 해보았다.


더 이상 강권이 없는 술자리에서도 술은 여전히 벌칙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술이 왜 벌칙이 되어야 할까. 벌을 주거나 받는 것을 즐긴다면 모를까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벌칙인지 알 수 없다. 기묘한 모순에도 술게임은 20대가 즐기는 놀이 문화로 단단히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가지는 술자리에서 술게임은 필수 관례가 되었다. 복잡한 게임을 하고 틀리면 요란한 노래를 부르면 술을 마시는 모든 과정은 인간관계를 맺도록 돕는 도구로 둔갑한다. 그러나 이 시기를 거쳐간 사람이라면 술게임만으로 관계를 형성할 수는 없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테다. 관계 형성을 이유로 술게임을 정당화할 수 없는데도 술게임을 대체할 새로운 문화는 등장하지 않았다. 술게임이 필요한 까닭은 결국 게임보다는 술에 있다. 술을 마셔야 하기 때문에 술게임이 필요하다.



높은 대학 진학률을 고려한다면 20대의 음주 습관은 대학 사회 내에서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대학 사회의 문화가 술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면 절대다수의 대학생이 음주를 피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술 없이 만들어가는 대학 문화를 상상하기란 불가능한 것일까? 강권이 사라진 공간에 ‘논알콜’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등장했다. 술을 마시지 않는 테이블이나 방을 정하고 논알콜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논알콜 테이블 혹은 논알콜 방은 술을 기반으로 한 문화 바깥의 공간이다.[7] 술을 마시는 사람과 마시지 않는 사람 모두가 어울리는 자리를 만들기 보다 술을 선택하지 않은 이들이 그곳으로 움직이도록 만든다. 논알콜 테이블이나 방을 만들면서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도 환영하는 분위기가 형성됨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결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점점 고조되는 술게임을 견디지 못해 발걸음을 옮긴 논알콜 방에는 나와 술을 깨기 위해 쉬고 있는 선배 둘뿐이었다. 논알콜이라는 이름만으로는 음주 문화에 스며들지 못한 이들이 머무르는 유예의 공간 이상을 만들어가기 쉽지 않다.


대학 행사 뒤풀이 그리고 OT와 새터에서 테이블과 방의 경계가 알코올와 논알콜로 나누는 것은 대학 사회의 기본 값이 술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술이 없다면 성립되지 않는 문화라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술을 마시지 않으면 만나지 못할 인간관계가 공허하듯, 술 없이는 상상 못할 대학 문화 또한 허무하다. 물리적인 강권이 없다면 술에 대한 강요가 없으리라는 생각은 환상에 가깝다. 무언가를 선택함에 따라 명백한 이득이 돌아온다면 간접적인 형태의 강요가 된다. 대학 생활 초반에 참여하는 행사는 관계 형성의 장이다. 만약 누군가 술을 마시지 않아 행사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관계를 맺기 어렵겠다는 불안을 느낀다면, 그것이 음주문화가 주는 간접적인 압박이다.


어제 누가 소주를 몇 병이나 깠다는 식으로 만들어지는 영웅담이나 교정에서 캔맥주를 까마시며 사진을 찍어 올리는 문화는 생소하지 않다. 20대 초반에 술을 마시다 토를 하는 건 누구나 겪는 일이라 치부하며 그때아니면 하지 못한다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이런 술에 대한 신화와 환상은 대학 사회 내 스며든 음주 문화의 한 단면이다. 술을 마셔야만 하니 술은 좋은 것으로 보는 편이 낫다. 술을 청춘의 낭만으로 치환하는 이들조차 술을 긍정하는 이유를 모르거나 고민 자체를 회피한다. 아무도 술을 왜 마셔야만 하는지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그 많은 포장마차는 어디에 있는 걸까?


쾌락을 늘리고 긴장을 줄이는 술의 효과는 자연스럽게 술을 낭만적인 것으로 그려내며 술의 매력적인 특성만을 남긴다. 이는 빈센트 반 고흐가 좋아한 술로 유명한 압생트의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다.[8] 압생트는 알제리 정복 전쟁 중 군인들에게 지급되었고 그들과 함께 파리에 들어오게 된다. 당시 가격이 싸고 도수가 높은 증류주가 인기를 얻던 형세였으니 압생트가 와인과 맥주의 인기를 앞지르는 건 금방이었다.


압생트는 고흐뿐 아니라 어니스트 헤밍웨이, 에두아르 마네, 기 드 모파상, 에드가 드가 외에도 여럿이 즐긴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들의 작품에서 압생트에 남긴 찬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은 그들의 기호를 술의 환각효과에서 찾으며 예술가들이 찾는 영감의 원천과 연결 지었다. 집단적 선호에 힘입은 압생트의 선풍적인 인기는 그 속도에 박차를 가한다. 낭만화의 끝에서 압생트는 ‘초록 요정’[9]으로 탈바꿈한다. 새로운 술이 불러온 알코올 의존 문제와 부작용은 요정이라는 이름 뒤에 사라졌다.


현대에 들어 압생트에 환각 물질은 없으며 환각 효과가 아니라 높은 알코올 도수로 인한 현상임이 밝혀졌다.[10] 그럼에도 여전히 압생트는 고흐가 사랑한 술이며 예술가들이 즐겨 찾은 매혹적인 초록 액체다. 술로 인한 치명적인 결과는 술이 주는 쾌감에 쉽게 가려진다. 더러는 파괴적인 결과마저 자기 연민의 대상이 된다. <위대한 개츠비>를 쓴 스콧 피츠제럴드는 습관적인 음주로 고통받으면서도 술이 감정을 고양시켜 작품 완성을 돕는다고 말했다.[11] 불안정한 세계에서 살아가기에는 지나치게 예민한 자신에게 술은 필수적이라는 그의 말에서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마저 정당화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술의 낭만화는 먼 이국의 사람들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한국 대중문화 속 수많은 노래, 드라마 그리고 영화 속 장면이 술을 주요 소재로 삼는다.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라며 말문을 꺼내는 비교적 온순한 취객의 노래[12]나 ‘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 거다’라는 장면[13]은 미묘하게 닮아 보인다. 술의 힘을 빌려 사랑을 성사시키는 클리셰는 다양한 방법으로 다시 등장한다. 술은 이별의 자리에도 함께 한다. 술기운에 ‘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니’[14]라고 묻거나 이별을 선고 받고 양주를 들이키는 재벌 주인공이 그렇다.


프랑스 사람에게 압생트가 있다면 한국 사람은 포장마차를 찾는다. 대중문화에서 포장마차는 사랑도 위로도 한탄도 싸움도 가능한 마법적 공간으로 그려진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술은 포장마차에서 빠질 수 없다. 술이 있어야만 사건이 벌어진다는 의식 저변에는 술을 온갖 형태의 결핍에서 벗어나는 도구로 삼는 태도가 있다. 소주를 따라 마시며 씁쓸한 표정으로 ‘오늘은 술이 달다’고 말하는 상징적인 장면을 떠올려 보자. 그 순간 일시적으로 힘든 상황이 해소된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남아있으며 결핍은 다시 찾아온다. 분명 술을 마신 원인은 고달픈 현실에 있음에도 남는 대사는 ‘술이 달다’는 자조적 찬사다. 음주문화가 공고한 이 세상은 도피적 선택을 낭만적인 것으로 바꾸어 내며 술을 인생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만들기도 한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포장마차는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나 영화 속 포장마차 장면은 꽤 낯익다. 포장마차가 일상 바깥에 있는 공간이기에 술과 낭만을 연결하기 적합하다. 사람들은 포장마차를 보며 술의 일면에 불과한 낭만적인 이미지를 포착한다. 어느 순간 자신의 음주 경험은 낭만이 가득한 장면과 동일시된다. 그러나 현실을 돌아보면 그곳에 포장마차는 찾아보기 힘들다. 현실 속 음주 경험은 고통과 결핍이 서려 있어도 결국 남아있는 기억은 낭만 가득한 밤이다.



지독한 로망은 이제 그만


JTBC 예능 <독립만세> 출연자 재재는 독립을 위해 용달차로 이삿짐을 옮기며 기사님과 대화를 나눈다. 온갖 주제가 나오다 ‘약주는 하시냐’며 던진 질문에 평생 술은 입에 대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재재는 반사적으로 ‘무슨 낙으로 사시냐’며 반문한다. 다른 출연진이 맥주잔을 특별히 아끼는 이유를 묻자 그 잔에 칭따오 두 병을 따라 마시고 나면 잠이 잘 온다고 답한다. 대답을 이해하지 못하는 악동뮤지션 수현에게 아직 마셔보지 않았기에 그렇다는 설명이 따라붙는다. 이사를 마친 밤 재재는 아끼는 맥주잔에 칭따오 한 병을 털어 넣고 홀짝이며 창틀에 걸터앉아 야경을 바라본다.


한 편의 예능에 나온 장면들이지만 하나하나 앞서 살펴 본 음주 문화와 닮아 있다. 절대적인 것으로 변해버린 음주 문화 앞에서 술을 마시지 않기로 결심했거나, 아직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들은 쉽게 배제된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은 지루하거나 미성숙하다고 칭해진다. 동시에 술의 양면성을 고루 다루지 않고 오로지 술을 마신 긍정적 결과만 부각하고 있다. 고된 일정 후 술로 스트레스를 풀 수밖에 없는 노동 환경에 대한 의문은 지워진다. 잠에 들기 위해 술을 마시는 행위는 알코올 의존의 전조 증상 중 하나지만, 오히려 직장인들이 공감하는 대상이 되어버린다. 어디에도 술의 이면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술에 대한 호오를 늘어놓으며 내가 느꼈던 묘한 죄책감은 단순히 술이 양면적인 물질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미 세상은 술 중심의 문화를 형성했고 그 압박 속에서 필자는 술을 선택했다. 그러나 마치 그것이 스스로 형성한 선호라 믿었고 술을 좋아한다는 말과 글을 남겨 다시 음주 중심 문화를 옹호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글이 인간이 자신의 의지 바깥에서 술을 선택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시도는 아니다. 혹은 술을 당장 끊어야 한다는 계도적 문장으로 끝내고자 하는 마음도 없다. 그저 당연하게 여기던 음주문화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지워진 음주 계기와 가려진 폭력을 바라보는 여정을 담고자 했다.


술을 금지하며 악마화하는 종교와 술을 예찬하며 들이키는 예술가는 결을 같이한다. 술에 따르는 양면적 평가 가운데 한 면만을 절대적으로 부각해선 안된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술에 대한 무한정한 긍정은 어디에 기인하는가. 억압과 도피로 비롯하여 술을 선택하고 거기에서 비롯된 폭력을 끊임없이 지워내고 있지는 않았나 돌아본다. 술에 덧붙여진 온갖 환상을 걷어내고 나면 남는 것은 술의 낭만화도 악마화도 아닌 음주 문화를 향한 질문들이다. 당장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술에 대한 단상을 고쳐 쓴다. 적어도 온갖 낭만을 읊으며 술을 향한 애정을 뿜어내는 일은 이제 그만이다.


“저의 음주 여정과 함께한 분들께,

제 생일 선물은 위스키 한 병이면 충분합니다. 두 병은 안 돼요.”




각주

[1]「기독교 역사 속 술」에서 성기문은 미국 개신교가 남긴 영향에 대해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미국 근본주의의 영향, 청교도주의의 영향, 그리고 미국의 감리교의 절제 운동의 영향이다. 세세한 교파 별 차이는 해당 지면에서 다루지 않는다.

[2] 로드 필립스, 「알코올의 역사」, 윤철희, 연암서가, 2015, 373쪽

[3] 성기문, 「기독교 역사 속 술」, 시 커뮤니케이션, 2017, 197쪼

[4] 올리비아 랭, 「작가와 술」, 성미나, 현암사, 2017, 50쪽

[5] 로드 필립스, 앞의 책, 366쪽

[6] “대학 술 문화 '2009 vs 2019'…"꺾어 마시냐" 사라졌다”, 매일경제, 2019.05.10.

[7] ‘대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 역시 음주를 기본 전제로 하는 점에서 논알콜과 동일하다.

[8] 로드 필립스, 앞의 책, 288쪽

[9] “누군가에게는 '초록 요정', 누군가에게는 '에메랄드 지옥'-압생트”, 메트로신문, 2015.10.22.

[10] “Absinthe's Mind-Altering Mystery Solved”, live science, 2008. 04. 29.

[11] 올리비아 랭, 앞의 책, 129쪽

[12] 전람회 <취중진담>

[13]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14] 임창정 <소주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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