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루
작년 9월 동인천 북광장에서 열린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 날, 보수기독교 혐오세력이 축제에 난입하여 행사 진행을 방해하고 격한 소동을 일으킨 덕에 포털사이트 메인에는 인천퀴퍼 관련 기사가 한참 오르내렸다. 혐오로 점철된 기사 댓글은 고사하고라도 그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실시간 검색어에 ‘성소수자 뜻’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인권 문제를 운운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성소수자가 무엇인지조차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번 메인 기획은 성소수자, 즉 퀴어가 주제인 만큼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퀴어’ 개념부터 짚고 넘어가보자.
아마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표현은 ‘성소수자’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수준이 아직 낮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성소수자와 관련된 이론이 발달된 만큼 언어가 따라가지 못한 상태이다. 즉, 안타깝게도 제대로 된 번역어가 거의 없고, 대부분 영어단어를 그대로 들고 와 쓰고 있다는 말이다. 그만큼 성소수자 이론은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 구조를 찬찬히 보면 간단하다. 통상적으로 ‘성소수자’ 혹은 ‘퀴어(queer)’라고 하면, 시스젠더[1]와 이성애자의 교집합이 아닌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것이 기본 정의라고 해서, 전부는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퀴어는 앞선 정의로 일축할 수 없는 훨씬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굉장히 포괄적이고 모호한 경계의 집단이다. 심지어 퀴어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기준은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갑자기 더 복잡하고 어려워 보인다고? 그럼 여러분이 이번 메인기획을 좀 더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기획의 핵심인 퀴어, 즉 가부장제에서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현재 어디까지 자리했는지 함께 따라가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QUEER라는 단어가 어떻게 유래하여 변화해왔는지부터 간단히 알아보자.
- 16세기 초기현대영어에서 QUEER는 ‘이상한’, ‘특이한’, ‘별난’, ‘기이한’ 혹은 ‘사회적으로 부적절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 20세기 초반부터 QUEER는 성적 일탈의 함의를 띄기 시작했고, 점점 ‘여성스러운 남성’이나 ‘동성연애관계를 가지는 남성’에 대한 경멸적 의미를 담게 되었다. 이후 레즈비언 등의 가시화와 함께 ‘남성스러운 여성’이나 ‘동성연애관계를 가지는 여성’까지 천천히 포괄하게 되었다.
- 1960년대 무렵, 당시의 성소수자 집단을 통칭하는 gay라는 표현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QUEER는 수동적이거나 소극적으로 섹스하는 동성애자(주로 게이남성)에 대한 멸칭으로 축소되었다.
- 1980년대쯤부터, 성소수자들은 기존에 멸칭으로 널리 쓰이던 QUEER를 재전유하여 중립적이거나 긍정적인 자기표현 용어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 1990년 6월 뉴욕 게이프라이드에서 배포된 익명의 홍보지 “퀴어들은 보아라(Queers Read This)”에서 발췌한 글, 퀴어라는 의미가 어떻게 변주되었는지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아, 정말 그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가? 고민스럽도다. 모든 성소수자들은 그 단어에 대해 각자 생각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이상하고, 기이하고, 약간은 신비로움을 의미하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유년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끄집어내도록 한다…. 물론 “gay”는 훌륭하게 자리잡은 표현이다. 하지만 수많은 레즈비언과 게이들도 아침에 짜증이 가득한 채 눈을 뜬다. 즐겁지(gay) 않게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를 queer라고 부르기로 선택하였다. “queer”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바깥 세상에 어떻게 인식되는지 잊지 않고 계속 상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2]
* 타임라인을 보면, ‘퀴어’라는 용어가 어떤 식으로 변주되었는지 볼 수 있다. 단순히 이상하고 기이하다는 뜻에서, 남성 동성애자에 대한 멸칭으로, 이어서 부정적 의미가 재전유되어 전반적 성소수자들의 자기표현언어로 끊임없이 바뀌어 온 것이다.
앞서 언급한 시점까지 게이와 트랜스여성(당대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성적인 남성’…)에게만 거의 집중되어 있던 퀴어 담론은 현재 더 크게 확장되고 있다. 이전까지는 별달리 가시화되지 못하던 레즈비언과 트랜스남성은 물론이고, 나아가 바이 엄브렐라[3], 에이스 엄브렐라[4], 논바이너리[5] 등 더 많은 퀴어들이 열심히 이론을 정리하고 세력을 구축하여 목소리를 키워나가는 중이다. ‘LGBT’[6]로 시작한 퀴어담론의 이름은 LGBTQ, LGBTAIQ, LGBTAIQPK 등으로 계속 길어지다가 더 이상 기존의 나열 방식으로는 모든 정체성을 수용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때 최선의 대안이 바로 ‘퀴어(queer)’가 아닐까? 퀴어는 이제 다시금 의미 확장의 길목에 놓여있다. 규범적이지 않은 모든 섹슈얼리티의 사람들을 모두 포괄하는 단어로서 말이다. 실제 한국어 인권담론장에서는 가장 포괄적 표현으로 ‘퀴어’를 선호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여기서, 하나의 연결고리를 더 추가하고자 한다. 바로 퀴어 담론과 페미니즘 담론의 교차성이다. 가부장제는 ‘성별’이라는 이름의 절대적이고 타고난 것이라 믿어지는 신화적 속성으로 자신들을 포함한 지배집단과 나머지 피지배집단을 이분하고 각 집단에 임의로 성격을 부여했다. 가부장, 즉 ‘남성(적)’인 가장 집단의 권력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배계급인 자신들을 제외한 나머지 집단을 ‘여성(적)’이라 멋대로 이름 붙이고 열등한 것으로 치부해 온 것이다. 다시 말해, 성별 이분법에서 성별 체계를 조직하는 주요한 기준은 바로, ‘남성성’이다. 성의 범주는 현 체제가 재생산적 섹슈얼리티라는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특정한 자연 범주를 정치적으로 활용한 용례에 불과한데,[7] 즉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기준에 의해 구분된 것이 아니라 그저 ‘남성성’을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적 수단의 일종일 뿐이란 것이다.
때문에 퀴어 담론과 페미니즘 담론은 불가피하게 닿아있다. 아니, 사실 가부장제로 인한 직접적 피해를 겪은 사람들의 목소리라는 점에서 둘은 근본적으로 분리될 수가 없다. 일례로 ‘제3의 성(The Third Sex/Gender)’라는 용어가 있다. 19세기 독일의 게이 사상가 칼 하인리히 울리히는 남성 동성애자를, 20세기 레즈비언 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 모니크 위티그는 여성 동성애자를 공통적으로 ‘제3의 성’이라 명명한 바 있다. 이는 당시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중심주의의 변수임과 동시에 남성성/여성성이라는 범주에서 구성되는 성별 이분법과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치명적 균열과도 같은 존재였음을 나타낸다. 오늘날 ‘제3의 성’이라는 개념은 스스로를 여성이나 남성 중 하나로 범주화할 수 없는, 혹은 스스로를 범주화 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정체성 용어로 확장되어 다시금 주목받고 있으며, 이는 페미니즘과 퀴어담론이 오래 전부터 꾸준히 함께 성장해왔음을 부정할 수 없는 중요한 지점으로도 꼽을 수 있다. 퀴어 그리고/혹은 페미니스트인 우리는, 가부장제에서 탈락된 그 누구 하나도 빼놓고서는 제대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을 늘 기억해야 한다. 가부장제에서 지배집단을 제외한 인간들은 사실상 모두 임의로 ‘queer’하다는 특성을 부여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배층이 설정한 ‘충분히 ‘남성적’인 남성’을 제외한 모두는 항상 어딘가 이상하고, 특이하고, 별나고, 기이하고, 일반적이지 않으며, 부수적이고, 주변적인 곳에 자리하는 데에 그쳐왔다.
따라서 ‘비남성’, 즉 비정상적 위치에 놓여있던 우리는 기존의 이원적 사고와 체계에서 벗어나 더욱 더 탈중심화된 다층적인 발화주체를 상상해 나가야야 한다.[8] 이렇듯 ‘퀴어’는 하나로 정의될 수 없는 아주 거대하고 동시에 느슨하게 연결된 분열적 성격의 여집합으로 정의되며, 그러하기에, 역설적으로 ‘퀴어’한 모든 이는 보다 크고 강한 저항을 발휘할 잠재력의 주체인 것이다.
[1] 시스젠더(cisgender). ‘태어날 때 의사로부터 부여받은 성별과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 정체성에 불일치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을 의미하며,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반대말이다.
[2] "Ah, do we really have to use that word? It's trouble. Every gay person has his or her own take on it. For some it means strange and eccentric and kind of mysterious… And for others "queer" conjures up those awful memories of adolescent suffering… Well, yes, "gay" is great. It has its place. But when a lot of lesbians and gay men wake up in the morning we feel angry and disgusted, not gay. So we've chosen to call ourselves queer. Using "queer" is a way of reminding us how we are perceived by the rest of the world."
[3] 바이 엄브렐라(bi umbrella). 여성 혹은 남성 한쪽 성별에만 끌림을 느끼는 동성애자(homosexual)나 이성애자(heterosexual)와 달리, ‘하나 이상의 젠더에게 끌림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을 크게 통칭하는 말. 양성애자(bisexual), 범성애자(pansexual), 다성애자(polysexual) 등이 포함된다. 여기서, 엄브렐라(umbrella term)는 ‘여러 집단이나 특성을 한데 포괄하는 용어’를 의미한다.
[4] 에이스엄브렐라(ace umbrella). 크게 에이섹슈얼(a-sexual)과 에이로맨틱(a-romantic) 두 가지로 나뉘는데, 사회에서 합의된 일률적이고 규범적인 섹스/로맨스 시나리오와 그 과정에서 재현되기를 요구받는 감정들을 거부하거나 그대로 느끼지 않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대표적으로 상대에게 매우 가까운 정서적 친밀감이 선행되어야만 섹슈얼/로맨틱 끌림을 느낄 수 있는 데미섹슈얼/데미로맨틱 (demi-sexual/demi-romantic) 등이 있다.
[5] 논바이너리(non-binary). 여성 혹은 남성으로만 나뉘어지는 성별이분법에 들어맞지 않다고 인식하여 그 바깥에서 자신을 정체화하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6] LGBT, LGBTQ : 각 알파벳은 L(lesbian, 레즈비언), G(gay, 게이), B(bisexual, 양성애자), T(transgender, 트랜스젠더), Q(Questioning, 성소수자 정체성을 아직 고민하고 있거나 명확하게 정의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를 의미한다. 다른 성적 정체성들의 이니셜까지 더 길게 가져다 붙이기도 하지만 가장 많이 쓰이는 형태는 위의 두 가지다. 더 많은 정체성이 있지만 표기를 생략한다는 의미로 Q 뒤에 +를 붙이기도 한다.
[7] Monique Wittig, "The Straight Mind", 《Feminist Issues》, 1980
[8] Julia Kristeva, 《Powers of Horror: An Essay on Abjection》,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