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은 어떤 색입니까?

편집위원 온도, 찌부찌

by 문우편집위원회

당신의 이름은 어떤 색입니까?

- 퀴어 정체성 용어 사전


문우 편집위원들은 2018년 2학기에 책 『LGBT+ 첫걸음』을 함께 읽으며 <퀴어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많은 퀴어 정체성 용어들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편집위원들은 수많은 용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나에게 맞는 용어를 골라 보기도 했고, 세부적으로 들어갈수록 복잡해지는 퀴어 용어의 세계에서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퀴어 용어를 사용하고, 스스로를 언어로 정체화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고민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이 글을 통해 저희가 공부했던 용어 몇 가지를 나누고, 또 퀴어 용어에 대한 우리의 고민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글을 읽으며 독자 여러분도 스스로의 젠더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나는 누구? 나의 젠더는 무엇? 성정체성 용어


시스젠더(Cis-)

인간 사회에서 태어난다면 누구나 성별을 지정받습니다. 보통 타고난 신체적 특성에 따라, 여성 또는 남성으로요! 사회적으로 주어진 ‘여성’, ‘남성’이라는 개념이 스스로의 젠더 정체성과 일치하는 사람들을 시스젠더라고 부릅니다.


트랜스젠더(Trans-)

하지만 무조건 지정된 성별에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지정 성별에 일치하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트랜스젠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트랜스젠더라고 하면 하리수씨를 많이 떠올리지요. 그런데 트랜스젠더라는 용어는 생각보다 무척 넓은 의미를 포괄해서, 트랜스젠더는 성전환수술을 받았을 수도, 받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성별을 바꾸어서 트랜스남성 또는 트랜스여성일 수 있고, 성별 이분법 밖의 성별을 선택한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일 수도 있어요.


논바이너리(Non-binary)

성별을 여성 또는 남성으로만 구분하는 성별 이분법 안에서 정체화하는 사람을 ‘바이너리’, 성별이분법 밖에서 여성도 남성도 아니라고 정체화하는 사람을 ‘논바이너리’라고 부릅니다.


뉴트로이스(Neutrois)

논바이너리의 예시 중 하나로 뉴트로이스가 있습니다. 여성도 남성도 아닌, 스스로를 중성이라고 여길 때 사용하는 이름표이죠.


젠더퀴어 (Genderqueer)

젠더퀴어는 좀 더 포괄적인 이름표입니다. 성별이분법(바이너리)에 저항하는 모든 사람을 젠더퀴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드로진 (Androgyne)

꼭 딱 들어맞는 성별 개념 하나만 차용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여성이기도 하고 남성이기도 한 것 같다면, 내 안에 여성성과 남성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다면 안드로진이라고 정체화할 수 있습니다.


바이(Bi)/트라이(Tri)/멀티젠더(Multi)

젠더 정체성은 정말 무한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꼭 하나만 선택하라는 법은 없죠. 두 개의 젠더 정체성을 느낀다면 바이젠더, 세 개의 젠더 정체성을 느낀다면 트라이젠더, 두 개 이상의 젠더 정체성을 느낀다면 멀티젠더라고 정체화할 수 있습니다. 뉴트로이스면서 여성일 수 있고, 에이젠더이면서 안드로진일 수 있습니다. 무슨 그런 법이 있나고요? 그럴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이죠.


젠더플루이드(Genderfluid)

젠더는 정말 무어라고 고정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스로의 젠더가 계속해서 변화한다고 생각하는 경우, 젠더 사이를 왔다 갔다 흐른다고 느끼는 경우 젠더플루이드라는 이름표를 사용할 수 있거든요. 어제는 남성성이 조금 강한 안드로진이었지만 오늘은 에이젠더에 가까울 수 있는 것이죠.


젠더플럭스(Genderflux)

젠더를 느끼는 정도 자체가 변화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날은 나의 여성성이 강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어떤 날은 딱히 표현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약하게 느껴질 수도 있죠. 이렇게 젠더를 경험하는 강도가 변하는 경우 젠더플럭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이젠더(A-)/젠더리스(Genderless)

꼭 젠더를 가져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젠더에도 정체성을 느끼지 않을 수 있죠. 그럴 때 에이젠더 또는 젠더리스라고 정체화할 수 있어요. 모든 용어가 그렇지만 ‘에이’는 정말 넓은 우산 같은 용어라서, 꼭 젠더 경험이 완전히 없어야만 에이젠더라고 정체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젠더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이 가끔씩 들더라도, 그런 느낌이 다른 젠더 경험과 공존하더라도 에이젠더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를 좋아하냐고? 성지향성 용어


헤테로(Hetero-)

‘이성애자’라고도 하죠. 성별 이분법 하에서 다른 성별에게 끌림을 느끼는 경우 헤테로라는 말을 쓸 수 있습니다.


레즈비언 (Lesbian)

여성으로서 같은 여성에게 끌림을 느낄 때 레즈비언이라고 정체화할 수 있습니다.


게이(Gay)

남성으로서 같은 남성에게 끌림을 느낄 때 게이라고 정체화할 수 있습니다.


바이(Bi-)

두 개의 젠더에 끌림을 느끼는 경우 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은 성별 이분법을 따라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끌림을 느낄 때 사용하지만, 논바이너리의 범주를 포함해서 두 개의 젠더에게 끌림을 느낄 때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폴리(Poly-)

나의 끌림에 제한은 없습니다. 여러 젠더에게 끌림을 느낄 때 폴리라고 정체화할 수 있습니다.


팬(Pan-)

모든 젠더에게 끌림을 느낀다면, 끌림을 느끼는 데에 젠더를 상관하지 않는다면 팬이라고 정체화할 수 있습니다.


플루이드 (Fluid)

성정체성처럼 끌림 또한 흐르듯이 변할 수 있습니다. 나의 지향성이 여러 용어 사이를 흘러다니는 것 같다면 플루이드라는 용어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에이(A-)

인간이 꼭 성적인, 또는 로맨틱 끌림을 느껴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타인에게 끌림을 느끼지 않는 경우 에이(무성애자/무로맨틱)라고 정체화할 수 있습니다. 에이는 정말 넓은 용어라서, 그레이(Gray-, 끌림의 강도나 빈도가 낮음), 데미(Demi-, 정서적 유대감이 있어야 끌림을 느낌), 오토모노(Automono-, 자기 자신에게 끌림을 느낌), 콰이(Quoi-, 기존의 끌림에 대한 개념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느끼거나 스스로의 끌림에 대한 확신이 없음) 등 수많은 용어들을 포괄해서 사용되기도 합니다.


제드(Zed-)

타인에게 끌림을 (강하게) 느끼는 경우, 제드(유성애자/유로맨틱)라고 정체화할 수 있습니다.



섹슈얼(-sexual)? 로맨틱(-romantic)?


위의 용어들은 끌림의 종류에 따라서도 수없이 분화될 수 있습니다. 끌림에 크게 성적 끌림과 로맨틱 끌림이 있다고 할 때, 팬섹슈얼(모든 젠더에게 성적 끌림을 느낌)일 수도, 팬로맨틱(모든 젠더에게 로맨틱 끌림을 느낌)일 수도, 팬섹슈얼이면서 팬로맨틱일 수도 있는 것이죠. 그런데 성적 끌림과 로맨틱 끌림을 구분해서 느끼는 경우도 있지만, 그 경계가 애매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이 성적인 끌림인 것 같기도 하고, 성적이지는 않은데 호감이 생기는 게 로맨틱 끌림인 것 같기도 할 수도 있고요. 어찌되었든 정해진 틀은 없습니다. 자신에 대해 곰곰이 살펴보고 맞는 것 같은 용어를 사용하면 되지요.


퀘스처닝(Questioning)

정말 끝없이 많은 용어들을 살펴보고 나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에게 퀴어한 구석이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게 정확히 어떤 용어에 해당되는지 아직 알 수 없을 때, 또는 주어진 용어를 선택하지 않고 자신만의 정체화를 위해 고민하는 경우 퀘스처닝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만나 본 정체성 용어들, 많이 생소하신가요? 사실 퀴어를 표현하는 용어는 이보다도 훨씬 많답니다.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지 않는 이상 쉽게 접하기 힘든 이름들. 자칫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어 버리는 건 아닐까 싶지만, 그렇다고 당황하거나 물러설 필요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주변의 세상은 사람들에게 여자 또는 남자라는 두 가지 선택지만을 쥐어 줘 왔고, 우리는 이런 선택지에 점차 익숙해져 왔으니까요. 이 성별 이분법적 시스템은 세상에 성이 단 두 가지 밖에 없다는 인식을 지속적으로 심어 주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체계에 저도 모르게 녹아들게끔 하죠. 그렇다면 이 낯선 용어들은, 아니, 이 용어들을 ‘알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이 세상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장 이 기사를 읽고 계신 여러분 하나하나 역시도 남들과는 다른 각자의 색깔을 지니고 있지요. 이 색은 여러분이 어떤 옷을 가장 즐겨 입는지,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필기도구는 무엇인지 등을 통해서도 결정되지만, 앞서 알아보았던 성 정체성 또한 여러분만의 고유한 색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언어를 제공해 주곤 한답니다. 두 가지 선택지 이야기로 잠시 돌아와 볼게요. 우리는 자라면서 많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선택지들은 대개 양자택일의 형태를 띠고 있지요.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 ‘커피 마실래, 아니면 차 마실래?’ 같은 질문들을 떠올려 봅시다. 이렇게 단 두 가지의 항목만을 받고는 어느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 많이 겪어보시지 않으셨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런 때에 어떤 대답을 하는지 여쭤 보고자 합니다. 나는 커피를 자주 마시지만, 그 맛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 사람이라고 해봅시다. 누군가 찾아와 커피와 차,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 한다면 나는 무어라 답하면 좋을까요? 자주 마시기는 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커피를 고르자니 영 내 것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 하여 차를 고르자니,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선택지가 당황스럽기만 하네요. 어쩌면 그 순간의 나는 커피도 차도 아닌 다른 음료를 마시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아니, 아니면 아주 아무것도 입에 대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 경우에도 꼭 정해진 두 개의 항목 중 한 개만을 골라 내 이름자 앞에 붙이고 다녀야 한다면, 과연 그 선택이 나를 온전히 표현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여자와 남자로 사람들이 나뉘고, 그 기준 내에서의 이성을 좋아하는 것만을 ‘정상’이라 칭하는 사회. 두 가지로만 나타나는 경우의 수. 이 속에서 무수히 존재하는 우리의 가능성은 마땅히 어울리는 이름표를 찾기 힘들 수 있습니다. 아무 거리낌 없이 둘 중 하나를 골라 앞에 턱 붙여 놓는다 하더라도, 그 수식어가 정말 나를 확실하게 표현해 줄지 고민이 될 수도 있겠지요. 이 상황에서 우리가 여자, 남자가 아닌 다른 정체성을 끌어와 우리를 표현할 때에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을 줍니다. 중간에 있어도, 모든 것을 아울러도, 심지어는 그 사이를 왔다 갔다 돌아다녀도 그것이 ‘비정상’이 아닌, 또 하나의 정체성이라 불릴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옳지 않다는 고정 관념 없이 우리를 더욱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여지가 항상 있다는 말이니까요. 다른 모든 세부적인 속성을 무시한 채 단지 ‘커피를 좋아하는 나’가 될 것이 아니라, ‘커피를 자주 마시긴 하지만 사실은 딸기 스무디와 녹차라떼도 좋아하는 나’로서 스스로를 관찰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지요.


이 용어들을 새로 알고, 자신에게 하나하나 대어 볼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지금 붙이고 있는 이름표가 언제든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이름이란 건 자신을 설명하기에 가장 좋은 매개이지만, 동시에 자신을 한정 짓는 울타리가 되기도 하니까요. 기존의 단어들로 표현하기 힘든 성 정체성 및 지향성을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들인 만큼, 그 용어들이 도리어 우리가 우리를 지칭하는 데에 방해가 되면 안 되겠죠. 따라서 이 수많은 퀴어 용어들을 받아들일 때에는 굳이 이 항목들 중 하나를 반드시 가져가야겠다!는 마음을 품을 필요는 없어요. 언제든 붙였다 떼어낼 수 있는 포스트잇처럼, 이 용어들이 만들어 내는 이름표 또한 여러분이 원한다면 언제나 바꾸어 달 수 있거든요.[1]


어떤가요? 앞서 말씀드렸듯 이 글을 통해 이전까지는 몰랐던(또는 알고 있었을 수도 있는) 새로운 정체화의 가능성을 조금씩 짚어 보면서, 여러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보았으면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우 편집위원회가 준비한 아주 아주 아주 작은 선물이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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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짜잔! 여러분만의 유니콘입니다. 61호 표지에 펑 하고 등장한, 무지갯빛 찬란하던 유니콘을 기억하시나요? 그 유니콘이 표지에서의 모든 색을 지워 버리고 여러분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색을 입기 위해 이렇게 다그닥 닥닥 달려왔습니다. 이 작은 선물을 오롯이 여러분의 것으로 만드는 법은 간단합니다.


우선, 표지에서 보았던 그 유니콘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세요. 이 유니콘은 ‘원래’ 무지갯빛이 아니었으며, 표지의 모습은 단순히 어떤 누군가의 유니콘일 때일 뿐입니다. 그 다음엔, 지금까지 가져왔던 유니콘의 색에 대한 고정 관념을 지우는 거예요. 미디어에서 보이는 반짝반짝한 유니콘이 정말 유니콘의 본 모습일까요? 여러분의 유니콘은 빛이 나지 않을 수도, 온 몸이 땡땡이 무늬로 이루어져 있을 수도 있답니다. 자, 준비가 되셨나요? 그렇다면 이제부터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색들로 여러분만의 유니콘을 그려봅시다. 남들의 기준에 구애받지 않는, 다양하지만 그로 인해 자신과 더 가까운 모습의 유니콘을요(그런 의미에서 밑그림의 자유로운 변형 역시 권장합니다!). 이렇게 완성된 유니콘은 혼자 마음에 품을 수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도 있어요. 전부 여러분의 마음입니다. 이 작은 유니콘이 위의 글과 더불어, 여러분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하도록 돕는 징검다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귀여운 모습에 기분 좋아진다면 그것만으로도 꽤 의미 있는 일이지만요.


❖‘젠더 유니콘 그리기’는 『LGBT+ 첫걸음』을 참고하여 재구성했음을 알립니다.



[1] 여러분에게 맞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는 일도 언제나 가능해요! 위에서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젠더 까짓것(Gender WTF)처럼 사람들이 그들의 필요로 인해 직접 만들어낸 용어들도 꽤 많이 존재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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