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일상에 보내는 이야기

편집위원 루, 애옹

by 문우편집위원회

2018년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은 ‘퀴어라운드Queeround’였다. ‘당신의 주변(Around)에는 항상 성소수자(Queer)가 있다’는 의미로, 이 슬로건 아래에서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 우리는 함께 있다.”는 메시지를 외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서울광장에 모였다. 퀴어는 어디에나 있지만 쉽게 지워져 왔다. 비록 최근 들어 여러 경로를 통해 퀴어의 존재가 조금씩 수면 위로 대두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일상 속에서 퀴어는 종종 막연한 ‘타자’의 이야기로 상정되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까운 주변이나 자신이 속해 있는 이 공간에는 퀴어가 있을 거라 감히 생각하지 못하곤 한다. 그러나, 오늘 등교길 버스의 옆 사람, 3교시 강의의 발표자, 잠시 들렀던 카페의 알바생 모두 퀴어였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해보자. 상상이 잘 안 된다고. 좀 더 놀라운 이야기도 있다. 당연하게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자기 자신도 퀴어일 수 있다고 생각해보는 것은 또 어떤가. 어디에나 있는, 어쩌면 당신일지도 모르는 퀴어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총 열두 명의 이야기를 조금씩 가져와보았다. 당연히 이들이 모든 퀴어의 삶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당신이 퀴어의 삶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 ‘내 주변에는 퀴어가 없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인터뷰 질문

1.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2. 어떤 계기와 과정을 통해 정체화하게 되었나요?

3. 퀴어로서 겪은 어려움이나 혐오가 있었나요?

4. 퀴어라는 집단(혹은 특정 정체성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시나요?5. 요즘 관심 있는 건 무엇인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



#01

저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2지망 대학에 붙은 바람에 1지망을 목표로 수능을 다시 준비하려고 하고 있어요. 아무튼 생명과학 비슷한 걸 전공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의 자아정체성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레즈비언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즈음인가 웹서핑을 하다가 퀴어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잠시 고민했죠. 한 5분정도? 그러고는 그냥 자연스럽게 생각했어요. 아, 난 바이 아니면 레즈비언이겠구나. 그때 되게 좋아하던 여학생이 있었거든요. 3대 째 모태신앙으로 교회를 다니고 있는 집안 사람 치고 자신이 레즈비언일 수도 있다는 데에 아무런 의심도 없었던 것 같네요. 중학교 말 즈음 와선 이성애에는 재능이 전혀 없음을 느꼈죠. 그렇게 계속 레즈비언으로 살고 있답니다.


퀴어들은 어플을 통하지 않고는 연애 상대를 안정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적다는 게 어려움이라면 어려움이겠네요. 또 교회에서 심심하면 퀴어축제 혐오세력으로 끌고 가려고 하고… 동성애 반대 서명을 시키고… 심심하면 게이 비난하면서... 와중에 레즈비언은 언급도 안 해주고… 그거 말고도 일상적으로 애들끼리 “너 게이스럽다~” 같은 말을 주고받을 때 소소하지만 확실한 상처를 받는 답니다.


제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은 제 삶의 극히 일부이기 때문에 그냥 고등학교 학급 내지는 조 수준의 소속감을 느껴요. 물론 퀴어 사람 만나면 반갑고 신나고 할 얘기가 많아지기는 하죠. 할 수 있는 대화 폭이 넓어져서 편하기도 하구요. 하지만 그 이외에 소속감에 대해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는 듯 해요. 제일 좋아하는 건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기. 고양이를 가장 좋아하고, 이외에도 작은 포유류랑 설치류는 다 좋아해요. 요즘은 또 어떤 배우님께 꽂혀서 아침저녁으로 덕질을 하고 있습니다. 꿈은 언젠가 여자친구랑 결혼해서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사는 것이랍니다. 제 꿈이 이뤄지는 그날까지, 퀴어들 파이팅.



#02

자기소개를 하라고 하니 주절주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저는 상대에게 끌림을 느끼는 데에 있어 성별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팬로맨틱 팬섹슈얼, 동시에 깊은 정서적 유대감이 선행되지 않으면 연애적 끌림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데미로맨틱(에이로맨틱의 일종이에요), 그리고 남성도 여성도 아닌 성별로 스스로를 정의하는 논바이너리입니다. 물론 커밍아웃을 할 때마다 이런 것들을 전부 구구절절 설명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이 언어들을 정체성으로 늘 마음에 담아두고 있기는 해요. 저 중에 무엇을 특히 중요하게 담아두는지는 시기마다 다릅니다. 연애를 하고 있을 때에는 지향성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사는데 요즘은 아니라서, 성별 정체성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볼게요.


저는 세상에 태어나면서 여성으로 지정된 사람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에게 요구되는 일련의 수행들이 분명 존재하고, 저 또한 성장과정 내내 그런 것들을 의식하고 자랐지요. 하지만 그런 것들을 어찌저찌 해 나가면서도 저는 늘 저에게 주어진 여성이라는 이름이 묘하게 불편했습니다. 물론 그 불편함이 정확히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는 몰랐지만요. 그러던 중, 어쩌다보니 논바이너리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열심히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세상은 여자와 남자로만 딱 나누어지는 게 아니고, 나 또한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깨달음은 성별이분법적인 생각의 우물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자아성찰의 폭도 더 크게 넓혀주었던 것 같아요. 저는 천천히 생각을 이어가면서 이런저런 언어를 하나씩 걸쳐보았고 그 끝에 현재 다다른 곳이 딱히 구체적인 수식어 없는 그냥 '논바이너리'입니다. 스스로가 삶에 아무런 선택권이 없던 시절부터 당연하게 주어지던 여성이라는 옷을 줄곧 입어왔지만, 참 이상한 일이지요, 나를 표현할 언어를 남이 정해준다는 게 말이에요. 논바이너리라는 언어를 선택한 지금의 저는 훨씬 홀가분합니다. 은연 중에라도 여성 혹은 남성이라는 오직 두 가지의 틀 안에서 스스로를 맞추려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분이 들어 마음이 가볍고, 비로소 어색하지 않고 저에게 잘 맞는 자리를 찾아낸 기분이랍니다.


퀴어로서 겪은 혐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있어요. 저는 여자고등학교를 나왔는데요, 고3 때 같은 학교 안에서 사귀던 애인이 있었어요. 당시에 애인이랑 수업시간에 심심하면 서로의 이야기를 끄적였다가 공유할 수 있게 교환일기장을 썼었는데, 어느 날은 어머니가 제 가방을 정리하다가 그걸 발견하고는 제가 퀴어라는 사실을 알아버렸죠. 안타깝게도, 집이 발칵 뒤집어졌고 저는 참다못해 지금까지 제가 연애했던 이야기를 전부 쏟아내고는 한밤중에 집을 나왔어요. 쉼없이 날아오는 부재중 전화와 함께 분노와 경멸에 찬 문자메시지가 쌓여가는 휴대전화를 안고 무려 8박9일 동안 여러 친구집과 24시간 카페를 전전했지요. 처음에는 마냥 억울해서 엉엉 울기만 했었는데, 다행히도 저를 지지하고 도와주는 친구들이 많아서 어머니의 말에 반박하는 장문의 문자를 보낼 용기도 얻었고 주변의 따뜻한 걱정도 받으며 결국 잘 살아 돌아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무서운 일이었지만 비참하지 만은 않았어요. 저와 제 친구들 모두 수능이 끝난 시점이라 바쁘지 않기도 했고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연말이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이랑 부둥부둥 재미있게 잘 논 기억들이 많이 남아있네요. (여러분도 주변의 친구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꼭 힘 닿는대로 도와주세요. 저도 충분히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친구들이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잘 살아있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요.) 안타까운 건 사실 지금까지도 저의 퀴어니스에 대한 이해와 합의가 부모님과 확실히 되어있지는 않다는 거예요. 부모님은 그냥 저 때의 일을 잊어버린 듯 아예 신경 쓰지 않고 더 이상 저의 연애사에 대해 궁금해하지도 않기로 한 것 같아요. 잘 된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연애나 결혼 등에 대한 잔소리를 일절 하지 않으니 좋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하하.


퀴어 집단에 대한 소속감은... 글쎄요. 저는 퀴어 이론을 통해 저 자신을 좀 더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찾고 큰 안정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지금 자신에게 어느 정도 들어맞는 언어를 찾아 헤매고 있거나, 이미 찾아냈거나, 아니면 찾기를 거부하거나 포기하거나, 기타 이런 과정을 거친 모든 친구들에게 약간의 동질감을 느낍니다. 성격이나 좋아하는 것 등이 비슷한 사람에 대해 동질감을 느끼는 거랑 비슷한 것 같아요. 저는 인간과 관계 맺고 친밀감과 애정을 주고받는 행위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때 아무래도 서로 비슷한 면이 있으면 이야기가 쉽게 통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도 훨씬 편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퀴어'한 경험을 공유한다고 묶이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을 만 한지 모르겠지만)에게도 동질감에 기반한 모종의 소속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애초부터 소속감이라는 데에 의미를 크게 두는 타입은 아니라 미미하게 인식되는 그 느낌에 작은 안정감이 드는 게 전부예요. 누군가 나의 존재를 짓밟고 욕해도 그런 경험을 공유하고 함께 싸워줄 사람들이 있다는 인식에서 오는 안정감 정도?


마지막으로 저에 대해 조금만 더 이야기하자면, 전 따뜻한 사람이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해요. 저를 구성하고 지탱해주는 많은 이들에게 꾸준히 감사하고 다정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 뿐만 아니라 저 자신에게도 애정이 많아서 중심을 잘 잡고 제 삶을 지켜내는 것에도 관심이 많아요. 강렬하면서도 강인한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랍니다. 이 외에는 음악 듣는 걸 좋아해요. 허구한 날 사랑과 이별 타령만 늘어놓는 발라드 빼고는 거의 모든 장르를 다 조금씩 즐겨들어요. 제일 좋아하는 건 락! 영화관에 가서 예술영화를 보는 것도, 연극이나 뮤지컬 보러다니는 것도, 책 읽고 공부하는 것도 좋아요. 물론 사랑하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주아주 좋아하고요. 가끔씩 피아노랑 우쿨렐레도 연주하고, 엽서 수집도 하네요. 얕고 많은 취미를 가진 편입니다. 지금 1년째 휴학 중인데 다음 학기부터 복학할 생각하니 눈 앞이 캄캄해요. 학교 다니면서도 계속 잘 지내는 게 올해의 주요한 목표입니다. 저도 여러분도 오늘 하루 잘 붙잡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 최고예요. 특히 퀴어들 사랑합니다 힘냅시다!!



#03

확실하지는 않은데 일단 시스젠더 여성 헤테로로맨틱으로 정체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나 섹슈얼리티에 대해 관심이 많고, 성적 지향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해봤어요. 이성에 있어서나 동성에 있어서나 성적인 끌림은 딱히 느끼지 않는 편인 것 같아 에이섹슈얼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성적인 교감을 원하는 게 보통인데, 내가 이상한 거 아닐까?’ 예전에는 스스로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불편했어요. 그러다가 무성애자에 대한 설명을 읽고 아, 나도 정당화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렇다고 해서 저라고 성욕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단지 ‘좋아하는 상대와 성적인 행위를 반드시 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일 뿐, 제 방식대로 성욕을 해소하는 것은 좋아요. 아직 저도 찾아가는 단계라서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네요. 동성애보다도 가시화가 덜 된 게 무성애 같아요. 좋은 사람을 만나보지 못해서 그렇다던가, 위선을 떤다는 식으로 일축해버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에이섹슈얼(무성애자)의 논의 안에도 여러 층위가 있다는 점은 굉장히 흥미로워요. 누군가는 성관계 자체에 혐오감을 갖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성관계에 대한 끌림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일 수 있고, 누군가는 성관계 그 자체를 지향하지는 않아도 이를 연애관계의 또 다른 발현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인식이 존재할 수 있잖아요. 에이섹슈얼이 이러한 논의를 모두 포괄하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성애와 성욕을 구분하는 것도, 어떤 두 사람이 만났을 때 그 관계를 규정하는 데에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이 명확하게 서로 공유되지 않으면 성폭력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저의 성적인 부분만큼이나 그 사람의 욕구도 파악하고자 노력하는 편이고, 이런 부분에서 에이섹슈얼 등의 성지향성에 대한 공부를 이어나가고 싶어요.


저는 윤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옳고 그름’이라는 범주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데 있어서 감정이 기준이 되는 것에 관심이 많고요. 무언가가 ‘그르다’고 규정되는 순간부터 사람들이 혐오감을 갖는 경향이 있는데 이 점이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또, 저는 자연 속에 혼자 있는 동떨어진 듯한 느낌도 좋아합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어떻게 보면 난데없이 세상에 뚝 떨어진 (?) 존재들인데, 열심히 적응하고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게 좀 슬픈 것 같아요. 모두 힘냈으면 좋겠습니다.



#04

지금까지 오게 된 과정은 가지고 살아온 생각보다도 오래인 것 같습니다. 저는 스스로가 동성애자라고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성에게서 끌림을 느끼지 못하니 동성에게서 끌림을 느낄 거라는 생각은 흑백의 닫힌 생각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흔히 그러듯이 아직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그런가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똑같은 이야기에 ‘너는 라마를 사랑하지 못한다고 해도 아직 좋은 라마를 만나지 못해서라고 말 할거냐?’ 라고 답했던 일화를 기억하며 현재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 것 같습니다. 아닌 건 아니고 그런 건 그런 거니까요. 따로 시간을 가져 골몰할 정도로 마음 속의 큰 부분을 차지하진 않습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공부를 열심히 해본 적도 없고요. 오늘의 정체성이 내일 바뀌어 버릴 수 있다거나, 단어가 어렵다는 생각은 종종 하기도 합니다. 나는 사실 나에 대한 정체화를 왜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요. 하고 싶지도 않고요. 하지만 나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어떤 부분을 함께 하고 싶고, 지금은 그를 위해선 힘을 합하여 누구라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답하게 되었네요.


무관심이 가장 큰 괴롭힘이라는 말이 있지요. 물론 말도 안 되는 말도 몇 들었습니다. 혹은 방법이 알맞지 못한 나름의 격려이거나요. 하지만 지금 제일 크게 다가오는 건 곳곳이 아닌 전체에 대기처럼 깔린 무관심이라 생각됩니다. 개개인의 단편적인 상황에서의 무관심이 아닌, 사회에서 당연시되는 전제들이나 통념으로 인한 배제 같은 것 말입니다. 치마를 입은 여자화장실의 푯말 속 그림이나, 새학기에 여자 아이의 수가 적어 남자아이와 남자아이를 짝지어 놓으면 여러 군데에서 쏟아지는 야유, 모두에게 사랑은 똑같고 특별하고 무한할 거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퀴어가 아니라 하더라도 다들 어릴 때부터 겪고 살아 왔잖아요.


퀴어라는 집단에 소속감이요. 평소에는 잘 모르겠지만 퀴어들을 대상으로 한 행사 혹은 행진을 가면 느낍니다.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듣는 팬들이 서로서로를 모르고 살았어도 콘서트에 가면 갑자기 모두와 함께 있는 기분을 느끼는 그런 정도로요. 사람들이 소속감을 느끼는 것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때가 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같은 콘서트에 온 사람들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느끼지 못할 수도 있고, 혹은 (진심으로 화목한) 가족 같은 품처럼 느낄 수도 있게 말이지요. 저는 원래 소속감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특정한 집단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밀려나고 위협을 당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지금은 어느 정도의 소속감을 지키려 합니다. 더 이상 지키지 않아도 될 때까지. 오늘도 분명히 어제가 됩니다.


하는 것을 합니다. 담배 한 갑이 필요한데 천 원이 모자라 서러운 날은 그나마 나은 날이지요. 보통은 3500원도 없으니까요. 돈이 없어 상하차 막노동을 하기도 하고, 없는 대로 펑펑 놀기도 합니다. 며칠 전엔 소규모 단편 영화에 출연했으니 세상에 아는 사람 딱 두 명 밖에 없는 무명 배우고요. 아무런 글이나 쓰는 것도 드문드문 좋아요. 밀린 일을 한 번에 처리하는 건 그다지 기분 좋을 일은 아니지만 좋아해야 할 것 같고요. 다른 것들도 좋아하는 게 참 많지만 담배와 친구들을 좋아한다는 걸 특히 쓰고 싶었어요. 힘 안 내도 될 때까지 힘 냅시다. 할 수 있다면 해 보는 것도 참 괜찮으니까요.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공룡도 멸종했는데 사람도 언젠가는 멸종하겠죠. 하지만 그 날이 오기까지 내일은 항상 있으니까요. 오늘도 참 고맙습니다. 한 게 아무것도 없더라도요. 나는 그래요.



#05

안녕하세요, 저는 바이섹슈얼 여성이고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조금 더 끌리는 편입니다. 성별 정체성에는 확신이 없지만 그렇다고 시스젠더 정체성을 강하게 갖고 있지도 않아요. 지금 애인은 트랜스젠더 레즈비언이고요, 엄청 귀엽고 예쁩니다. 요즘 취미는 게임 문명5 하기, 유튜브로 고양이 영상 보기, 그림 그리기예요.


초등학교 때 좋아했거나 썸 탄 남자애들이 종종 있었고 중학교 때는 남자친구도 사귀었어서 그때까진 제가 퀴어라고 생각을 못했습니다. 하지만 옛날부터 웹툰 사이트에 올라오던 백합물들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볼 정도로 GL을 좋아했었어요. 그때까진 백합물을 좋아한다고 모두 레즈비언인 건 아니라고 친구들에게 자주 항변하면서도 주변에 예쁜 여자애들만 보면 기분이 야시꾸리해지는 평범한 디나이얼 여성애자였습니다. (참고로 디나이얼 퀴어는 자신이 퀴어라고 인식하지 않고 있거나 마음 속에서 부정하는 퀴어를 통칭해요.) 그러다가 전여자친구가 자기가 레즈라고 고백했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아무튼 그 친구가 좋아져서 연애하고 섹스까지 하고 나서 제가 퀴어라는 사실을 자각했고, 그때 바이섹슈얼이라고 정체화를 했어요. 정체화를 한 순간 새로운 내가 재탄생한 것만 같고 갑자기 부모님이나 친구들한테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불안했던 기억이 있네요. 하지만 정체화를 하기 이전이나 이후나 제가 하는 행동들과 생각, 사고패턴 등 자체가 크게 바뀌지는 않았단 사실을 깨달은 지금은 예전보다 마음이 편해졌어요. 한편으론 정체화라는 행위 자체가 한정된 카테고리 내에서 선택하는 과정이라는 건 조금 아쉽습니다. 최근 들어선, 내가 여자라고 생각하고 좋아했던 사람이 갑자기 트랜스젠더 남자라고 커밍아웃한다면 나는 여성을 좋아한 것인가, 남성을 좋아한 것인가 이런 고민도 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퀴어가 아닌 사람들과는 공감대가 덜 형성되니까 이전보다 비퀴어 커뮤니티에 있기에 어색할 때가 많습니다. 애인에 대한 얘기라도 나오면 일단 말은 남친이라고 하는데 마음 속으론 패배해버린 기분이 들거든요. 부모님에게도 뭐라 말해야 될지 아직 막막하고. 기사 댓글을 볼 때라던가 가족이나 친척들과 대화할 때라던가 혐오를 직접적으로 경험할 때면 가시밭길을 걷는 기분입니다. 음, 아무튼 그것과는 상관없이 최근엔 먹고 살 길이 걱정되어 복전 준비를 하고 있어요. 어쨌거나 경제적으로 독립을 해야 사회적 소수자인 퀴어로서도 좀 더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요.



#06

학내 자치언론에서 나름대로 오랜 시간을 보냈어요. 요즘은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있고, 일대일 독점연애를 하고 있습니다. 글 쓰고 읽기를 놓치지 않고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친구들하고는 조잘조잘 떠들기는 잘하지만 불특정다수를 향해서는 글을 통해 말하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합니다. 롱스커트를 즐겨입고 요즘은 포니테일로 묶이는 단발머리를 하고 있습니다. 정체성 고민을 게을리하고 있어서 일단은 시스젠더 논모노로맨틱/섹슈얼입니다. 바이엄브렐라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고3 때 처음으로 '바이'라는 언어를 얻었습니다. 바이섹슈얼이란 단어를 배우고나니 스스로를 좀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분명 이성애자가 아니었고, 하지만 동성애자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바이섹슈얼로 정체화를 하고 나서는 혼란스럽고 두려웠습니다. 이성애가 다들 '정상'이라고, 혹은 더 나아가 '자연'스러운 것,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규범에서 이탈했다는 두려움은 같은 바이섹슈얼 정체성을 가진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차츰 잦아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친구도 퀴어였던 것이죠. 그러고는 약 2년 간 스스로의 바이 정체성을 잊고 지냈습니다. 2017년 군내 동성애자 처벌법이 이슈가 되었고, 그때 제가 속해있던 학내언론에서 퀴어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말해보자는 친구들이 손 내밀어준 덕에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페미니즘을 제 삶에 적극적으로 녹여내게 된 계기라면, 2017년이 저에게는 퀴어 당사자로서 목소리 내고 글을 쓰고 고민을 하게 된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애인과의 연애 또한 스스로 퀴어 정체성을 내재화한 중요한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같이 평생 살고 싶은데 넘을 산이 많네요.


정체화라는 것은 결국 퀴어라고 스스로를 규명하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만일 스스로가 확실하게 시스젠더 헤테로라도 정체화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에 대해, 자신이 타인을 어떻게 욕망하는지에 대해 고찰하는 것은 필요하니까요. 저를 규정하는 것은 늘 유동적이고 가변적입니다. 그냥 옷 갈아입는 것과 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마음에 드는 옷일지라도 매일 남색 니트에 골덴 롱스커트를 입진 않잖아요.


그래서인지 요즘 제가 귀찮아하는 건 정체화보단 커밍아웃입니다. 이성애규범과 성별이분법을 당연한 듯 고착시킨 이 구조가 문제지 퀴어인 제가 문제일까요?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당연히 당신을 시스젠더 이성애자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 사회가 당신을 속이는 거죠. 강제된 성별이분법과 이성애규범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단지 커밍아웃을 한 나만이 이상한 인간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이 구조를 지우지 않는, 섬세한 커밍아웃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네가 뭘하든 신경쓰진 않지만, 내 앞에선 티 내지마" 따위의 말을 이젠 듣고 싶지 않아요. 커밍아웃은 청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내 가까운 사람이 성소수자라는 인지에서 그치지 않고, 어째서 우리는 이성애만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라고 배웠는지 의심해봐야 합니다.


요즘따라 시스젠더 헤테로 친구들이 자꾸 "나는 한심한 남자들이 싫어서, 여자 사귀어보고 싶어"라고 말하는 걸 듣고 있기에 힘이 듭니다. 퀴어연애를 낭만화하는 방식의 타자화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법 제도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지요. 저 또한 애인과 법 아래에서 살아가고 싶은 욕망을 어떻게 숨기겠습니까. 이성애 결혼제도를 넘어선 새로운 제도와 차별금지법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요즘 좋아하는 것들은 애인, 고양이, 강아지, 단팥 찐빵과 붕어빵, 삼색 털목도리, 새로 산 눈꽃 모양 귀걸이, 황정은의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와 박민정의 <미스 플라이트>입니다. 한국땅이 퀴어 살기에는 영 안 좋지만, 아직은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이곳에 많으니 할 수 없지요. 힘내서 조금씩 바꿔 나가봅시다.



#07

안녕하세요, 대한민국에서 여성 퀴어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고,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며, 또한 동물권을 위해 비거니즘을 실천하고 있는 비건지향인입니다. 이런 저를 친구들은 종종 ‘소수자성 모음집’이라며 장난스럽게 놀리기도 해요. 물론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기 쉬운 유형의 사람은 아니지만, 저는 나름대로 제 삶을 잘 살아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에는 다른 전공을 선택했지만 지금은 디자인 공부를 하고 있어요. 드디어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지 찾은 기분입니다. 앞으로도 소수자를 위한, 또 그들을 배제하지 않는, 모두의 디자인을 하는 기획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퀴어에 장애인인데 비건이기까지 한 사람은 대체 뭔가 특별하려나 싶기도 하겠지만, 넷플릭스와 왓챠 보는걸 좋아하고 혼자 해먹는 요리에 뿌듯해하는, 그저 여러분과 다를 것 없는 사람입니다. 최근에는 뜨개질로 이것저것 만드는 것에도 취미를 두고 있어요.


퀴어로서의 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저는 스스로를 퀴어로 칭하지만 그 외의 어떠한 이름으로도 저 자신을 규정하지 않으려 정체화를 거부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팬로맨틱 팬섹슈얼로 정체화한 적도 있지만 그러한 정체성들이 저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팬로맨틱 오토코리섹슈얼로 재정체화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역부족이라고 느꼈어요. 그러던 중 퀘스쳐너리 개념에 대해 알게 되었고, ‘굳이 정체화를 해서 하나의 이름으로 나를 표현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라는 인간은 세상에 단 한 명뿐이고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단어보다는 저 자체로 저를 설명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정체화를 거부하고 단지 ‘나’로서 살고자 한 이후부터, 수많은 이름을 가져와 저를 설명하려는 데에 지치고 그럼에도 완벽하게 저를 표현할 수 없음에 갈증을 느끼는 행위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이 저의 정체성에 대해 궁금해하거나 ‘너는 레즈비언인거야? 아니면 바이?’ 같은 질문을 할 때, 혹은 데이팅 어플이라던가 모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을 때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해 당혹스러울 때도 있지요. 또 아주 가끔은 저 스스로도 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기분이라 괜히 우울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정체화라는 틀에 얽매여 머리 아픈 고민들을 거듭하던 지난 날의 저를 다시 생각하면 정체화 거부인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것이 매우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까지 ‘정체화 거부’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고, 정체성에 대해 골머리 앓는 많은 퀴어들이 이런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정체화를 거부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퀴어로서 겪은 일반적인 경험들은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퀴어 집단에 소속감을 느낍니다. 저를 설명할 한 마디 말은 없지만 어찌되었든 사회에서 말하는 ‘비정상’의 범주에 속하니까요. 저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그런지 이렇게 퀴어 공동체에 일원으로 속하는 것이 굉장히 안정적이고 기쁘게 느껴졌습니다. 작년에 처음으로 서울 퀴퍼에 참여했는데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했어요.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없는 말들을 퀴어라는 집단 안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하는 것이 즐겁기도 하고요.



#08

자기소개를 할 때는 조금 그럴싸한 '이름'들을 사용해야 하는 생각이 드네요. 예전엔 저도 이러한 이름 찾기에 골몰했을 때가 있습니다. 이름은 자신을 설명하기 위한 아주 편리하고 강력한 수단이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 이름들이 제 삶을 결코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이름'으로 날 소개했을 때, 그것이 대변하는 것은 나의 삶이 아니라 그 이름의 정의에 부합하는 무언가들이니까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체화 거부를 적극적으로 선언하는 사람이라고 하기에도 뭐합니다. 그 일련의 '부정'이 오히려 이름보다도 확고한 경계를 발생시킨다는 생각이 종종 들어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제 자신이 누구인지는 밝혀야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연애 혹은 사랑과 관련한 주변의 압력이 꽤 부담스러웠습니다. 그것들은 한없이 이성애중심적이었지요. 적당한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일단은 저를 독신주의자라고 말하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18살 여름, 인터넷 게이 커뮤니티를 접하면서 그때부턴 내가 게이이겠거니 했습니다. 실제로 남성들과의 연애나 성적 접촉에 그렇게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아니라 그려려니 했지요. 그 후 SNS를 시작하고 여러 가지로 고민해오면서 꽤 잦은 재정체화를 겪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저의 삶이 이름들 사이에서 한없이 미끄러져 나가는 것을 경험하였고, 구체적인 언어로 자신을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끼게 된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정체화 거부자'가 되고 싶지도 않습니다. 불필요하게 붙여진 이름에 의해 내 삶이 짐작되는 것도 싫고, 한편으로 그 이름에 부합하는 삶을 살기 위해 욕망을 제한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럼에도 분명 이름에 기대야만 가능한 것들이 있습니다. 적당한 이름이 없으면 그 존재 혹은 삶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경우들이 있지요. 이러한 점에서 퀴어로서의 정체화 과정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개개인에게 힘을 북돋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소속감을 느낄 수도 있을 거고요. 사회의 아웃사이더 혹은 비정상인으로 간주되는 퀴어들에게 정체화라는 경험은 그래서 중요한 것이겠지요. 제가 욕망과 행위에 이름을 별로 붙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서, 타인의 정체화에 대고 왈가왈부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퀴어라는 집단에 소속감은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공동체에 소속되는 것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떠한 ‘퀴어’로 스스로 정체화하고 있을 때도 그렇게 크게 소속감을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겪을 수 있는 여타의 문제들, 비정상으로 낙인 찍히거나 혹은 배제 당하는 일들도 제가 퀴어로서 겪는 일이라고 별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회에 퀴어혐오가 없다는 식으로 비약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제가 겪는 일들은 누군가가 저를 퀴어라고 인식하면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끔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낼 때는 있지만, 어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목소리를 낸다기보다 오히려 어떤 사안에 관련한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는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방학을 맞아서 집에서 어떻게 하면 계속 놀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 공부를 더 할 예정이고, 이 밖에는 별 다른 재주가 없네요. 다들 고양이를 좋아하시던데 저는 개를 더 좋아해요. 코 납작하게 눌린 애들.



#09

안녕하세요, 게으름 피우고 잡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학생이고, 지금은 휴학 중이에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종종 일이 되면 골치 아플 때가 많아서 정말 좋아하는 게 맞는지 고민 중입니다. 가끔 책을 사들이는 걸 좋아하고, 도서관에서 무작정 책 한 더미씩 집어오는 것도 좋아합니다. 읽던 못 읽던 일단 책을 쌓아두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요즘은 돈 벌어먹고 살 계획 세우기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일단 저의 지정성별을 밝히고 싶지 않아서 넓은 범위의 표지만 사용하는 것 양해 바랍니다. 저의 정체성을 커다란 구름이라고 한다면, 그 중에 상당히 많은 물방울들은 ‘호모섹슈얼’로 보일 특성을 가지고 있어요. 특별한 과정은 없었어요. 끌림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부터 동성에게 눈길이 갔고, 딱히 의심할 여지없이 나는 그런 사람인가보다 하고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스무 살이 되어 더 많은 퀴어 지식을 접하고는 저의 의사와 상관없이 태어날 때부터 지정되어 버린 성별에 대한 불만을 정체성으로도 끌어오게 되었어요. 그래서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했고, ‘호모’라는 말이 맞지 않게 되어서 폴리섹슈얼/로맨틱으로 재정체화했습니다. 지금은 저를 정체성 표지로 설명하는 것을 딱히 선호하고 있지 않아요. 물론 사회에 이미 만연한 이분법보다야 낫지만, 결국 한계가 있잖아요. 언어라는 수단 자체에 한계가 있기도 하고, 저를 조금 더 오랫동안 지켜보니 제 정체성이란 것을 딱 한 줄로, 명확하게 말하기가 참 어렵고 또 완벽하게 맞지 않더라고요. 시기에 따라, 심하면 하루동안에도 제 구름은 엄청나게 변하곤 했거든요. 어떤 때는 제드로맨틱/섹슈얼이었다가 어떤 시기에는 에이로맨틱/섹슈얼이기도 하고요. 어제까지는 에이로맨틱이었다가 오늘은 갑자기 제드로맨틱일 때도 있어요. 물론 당연히 용어, 정체화는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이죠. 당사자에게 퀴어로서의 자존감과 발언권을 가지게 해주니까요. 정체화는 평생에 걸쳐 이루어지고 정체성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타인과 소통할 때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당사자의 말을 귀담아 듣고, 상대가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퀴어 친구를 배려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인 것 같습니다.


퀴어는 언제나 어려워요. 일단 마음에 맞는 친구나 연인 찾기가 어려워요. 퀴어는 딱 본다고 알아볼 수 있는 게 아니죠. 간판을 붙이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비퀴어들은 대부분 그런 두려움 없이 누군가를 대상화하고, 고백하고 사랑을 나누잖아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 참 힘든 것 같아요. 좋아하지만 좋아한다고 표현할 꿈도 꾸지 못하고, 오히려 그 사람에게 퀴어 혐오 발언을 대놓고 들어야하는 그런 현실이죠. 또 뭐가 있을까요, 한창 논바이너리라고 정체화하고 지정성별과 맞지 않는 옷차림을 하고 다닐 때가 있었어요. 그렇게 밖을 다니면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느껴요. 그 시선이 무서워서 최대한 사람 없는 길로 다니고, 문을 나서다가도 옷을 갈아입으러 다시 집에 갔던 적도 있죠. 사실 혐오의 경험이 막 떠오르지는 않아요. 기억에서 지운 것도 있고, 무엇보다도 혐오 당하지 않기 위해 먼저 스스로 고슴도치처럼 저를 가리고 방어모드로 일상을 견디는 순간이 대부분이거든요. 나는 아닌 척 괜찮은 척하는 거죠. 이렇게 벽장에 숨을 수밖에 없는 현실 자체가 커다란 혐오덩어리인 것 같아요.


저는 소속감을 좇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집단에도 특별한 소속감을 느끼지는 않는 것 같아요. 이분법적인 사회의 동성 커뮤니티보다야 퀴어 집단에 친밀감을 느끼지만, 그래봤자 제가 친밀감을 느끼는 퀴어 집단이 ‘집단’이라고 할 만큼 크고 구체적이지는 않고요. 본격적으로 관련 단체에 들어가 활동해 본 적도 없어서 그에 대한 소속감도 잘 모르겠어요. 앞에서 밝혔듯, 소속감을 딱히 갈망하지도 않고요. 물론 저에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퀴어 친구들이 있어서 일 수도 있겠죠. 만약 저의 퀴어적 경험을 소통할 창구가 전혀 없었다면, 퀴어 집단에의 소속감을 어느 정도 바랐을 것 같아요. 내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감정은 일상생활을 안정감 있게 영위하는 데에 큰 힘이 되니까요.



#10

대학 학부 졸업예정인 자연대생이고, 생화학 분과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입니다. 일대일 독점연애 중이에요. 고등학생 때 이성애/동성애/양성애 테스트라는게 유행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양성애자’라는 단어를 처음 인지했습니다. 엉터리 테스트였지만 어쨌거나 그때도 결과가 이상하다고는 딱히 생각하지 않았어요. 대학 입학 이후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스스로를 바이섹슈얼이라고 정확히 규정했습니다. 간결한 용어를 이용해 나에 대해 규정함으로써 긴 설명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편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여러 종류의 퀴어 정체성이 모두 구분 없이 ‘동성애자’라고 퉁쳐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여타의 소수자적 정체성을 언어화하는 작업은 우리의 존재를 외부에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퀴어 당사자가 세밀한 정체화를 거부한다면 그것 또한 물론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교양 팀플을 하는데 어떤 사람이 “퀴어들 자기들끼리 사귀든지 말든지, 근데 내 앞에서는 싫어.”라고 하는 말을 바로 앞에서 들은 적이 있어요. “동성부부가 아이를 입양하면 아이가 상처받을지 모르니 무조건 입양을 반대한다”라는 말도 들었고요. 연애 중인데도 부모님을 비롯하여 커밍아웃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애인 이야기를 일절 할 수 없는 데다 연애 이야기만 나오면 일단 긴장하고 봐야하는 것도 힘든 일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행법 상 서로가 서로에게 법적 보호자 및 대리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구리네요.


퀴어 집단에의 소속감에 대해서는,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하는 날이나 동성혼 및 생활동반자법 의제가 화두가 되는 날에 주로 느낍니다. 늘 엄청난 소속감을 느끼지는 않아요. 학내 퀴어동아리에도 소속되어는 있으나 그 곳에도 대단한 소속감이나 사명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퀴어를 지나치게 집단적으로 뭉뚱그려 바라봄으로써 나의 개별적 특징이 희석되거나 왜곡되는 것을 바라지 않아요.


저는, 음, 폼생폼사 인간이고, 흡연자고, 꽤나 행복한 사람입니다. 최근엔 새로운 취미를 찾았고, 열심히 해보려 하고 있어요.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고, 커피도 좋아하고, 얼터너티브 락을 좋아합니다. 몸에는 4개의 타투가 있어요. 새로운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넉넉한 후드티랑 발목이 높고 밑창이 두꺼운 신발도 좋아해요.



#11

안녕하세요, 젠더 상관없이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입니다. 아직 ‘사랑’이라는 걸 느껴본 적이 없어서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표현하고 있어요. 언젠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온다면 꼭 안아주고 싶네요! 평소에 딱히 크게 가리는 것도 없고, 무던하고, 큰 욕심 없는 사람이었는데, 최근에 동물을 좋아하게 되면서 마당 있는 전원주택에 세 마리의 털북숭이 친구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어요. 그러기 위해 이것저것 돈을 모을 방법을 궁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돈 모을 생각만 하는 사람은 아니구요! 허허! 글 쓰는 것도 좋아해서 소설이든 에세이든 곧잘 쓰곤 하고(밖에 내놓지는 못하지만), 뒹굴거리면서 시간 보내는 거 제일 좋아해요.


정체성 얘기를 조금 더 해보도록 할까요. 지금의 저는 범성애자라는 이름을 가장 선호하고 있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렴풋이 나는 남녀 모두(그 때는 남자 혹은 여자만 존재한다고 생각했어요.)와 사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당시 친구들은 대부분 “너는 여자/남자니까 남자/여자친구 사귀겠네!” 하고 당연하게 말하곤 했기에 막연하게 드러내면 안 되겠구나 싶었죠. 그래서 누군가와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었어요. 스스로도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그냥 저도 남들처럼 ‘이성’을 좋아하고 ‘이성’의 애인을 사귀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죠. 그러다보니 아직까지도 그런 연애 밖에 해 본 적 없고요. 어쨌건 그러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BL/GL 문화를 소비하는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물론 그러한 문화들을 소비하는 것과, 퀴어 프렌들리가 다르다는 건 알지만, 여지껏 동성애를 포함한 퀴어 요소들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제가, '조금은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건 아닐까?'하고 생각할 수 있었던 계기였답니다. 이후 대학교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정체성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그러면서 그간 무시했던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죠. 아직도 저를 완벽하게 정의 내리진 못해요. 앞으로 달라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어쨌든 지금까지의 저는 젠더 상관없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이라고 정체화한 상태입니다.


저에게 정체화는 ‘나를 알아가는 여정’이에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다 심층적으로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다만 아주 무겁기만 한 여정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마냥 가벼운 건 아니지만 굉장히 설레고 떨리고 새로운 그런… 어쩌면 일생에 걸쳐서, 종종 예정된 선로를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아가기도 하고… 너무 모호한가요. 저에게 정체화란 고정적이지 않고,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고, 나를 깊이 알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직접적으로 커밍아웃을 한 적은 거의 없어서, (“나는 성별 안 가리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친한 사람들끼리 모였을 때 장난스럽게 말한 적은 있습니다. 진담이라는 것을 알아챘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운 좋게도 노골적인 혐오를 받은 적은 아직 없네요. 다만 일상 속에서 지나치게 이성애중심적이거나 젠더이분법적 대화들에 흠칫흠칫하는 순간들이 많아요. 이제는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하지만 가끔 ‘그래서 이성친구는 언제 만들 거야?’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면 슬프기도 하네요.


마지막으로, 저처럼 범성애자라고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퀴어라고 생각하는 집단 전체에 소속감을 느낀답니다!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져요! 힘냅시다 여러분!



#12

넓은 의미의 FTM에 속하는 논바이너리입니다. 테스토스테론 호르몬 치료를 시작한 지 2년이 되어가고 있어요. 외모는 거의 남성으로 패싱되지만 법적 성별은 여성이어서 언제는 남자, 언제는 여자로 생활하느라 곤란할 때도 있는 란마 같은 라이프를 살고 있습니다. 공적으로 뭐하는 사람인지도 자신있게 소개하고 싶지만 아직 마땅한 답이 없네요. 트랜스젠더로서, 또 나로서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내 전문은 이것’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4-5년 전, 트랜지션의 존재를 알고 난 후 충격을 받고 본격적인 정체화 과정을 겪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젠더/바디 디스포리아가 있긴 했지만 트랜스젠더 치고는 지정성별 사회에 잘 적응해서 산 편입니다. 그저 자신이 좀 별난 놈인 줄로만 알았어요. 그래서 다른 트랜스들보다 정체화가 늦었던 것 같습니다. 보통은 2차 성징이 시작될 때부터 청소년기 즈음에 정체화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20대 초반에야 트랜지션에 대해 알게된 후 '트랜지션을 할지 말지' 결정하기 위해 정체화를 시작했거든요. 여자는 무엇이고 남자는 무엇인지 무던히도 고민했지만, 칼같이 딱 나뉘어지는 기준은 없었습니다. 성격적 특성이 기준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외모, 염색체, 성기의 모양 따위도 그 기준이 될 수 없었어요.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붕 떠있는 듯한 저의 디스포리아를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생각에 지친 저는 결국 바디 디스포리아에만 집중했고 신체적 변화, 즉 호르몬 치료와 수술을 원하는가에 대해서만 고민하기로 했습니다. 답은 '그렇다'였고, 트랜지션을 시작했지요.


지금은 저 자신을 넓게 '논바이너리'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정체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데, 제 경우는 주류 바이너리 사회에 대한 소속감이 기준이었습니다. 저는 주류 여성사회와 남성사회, 두 바이너리 집단 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했습니다. 제가 ‘젠더퀴어’보다 논바이너리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것도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음'이 더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한때는 안드로진, 뉴트로이스, 젠더플루이드 등 저를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는 단어를 찾아 헤맸었는데, 어느 샌가 그러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그만두었습니다. 기존 바이너리 사회에 속하지 않는 트랜스임을 자각한 것과 논바이너리라는 단어를 얻은 것만으로 충분했고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정체성을 설명할 목적으로 단어를 찾아 탐험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정체화를 통해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보다 잘 이해하게 되니 삶의 크고 작은 선택을 하는 것이 예전에 비해 한결 수월해졌고요. 정체화 이후에야 진짜 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좀 더 어릴 때 정체성을 깨달았으면 좋았겠다고도 종종 생각해요. 성별 정체성의 정체화 과정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성별이란 불분명한 개념을 명분으로 개인 내지 집단에게 가해지는 사회 구조의 폭력을 마주하게 됩니다. 사회는 개인의 개성을 무시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남성과 여성 단 두 가지로 분류하여 욱여넣고 각각에게 일정한 특성을 강제하지요. 누구나 살면서 이러한 폭력성을 인지하기도 하지만 꽤 많은 경우엔 이를 자연스럽게 내면화하여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에게 같은 폭력을 행사하기 마련입니다. 정체화는 이러한 문제점을 깨닫고 자신과 또 타인을 각자의 개성을 가진 개인으로서 존중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따라서 거시적 관점에서 정체화는 이러한 사회 구조의 폭력에 대항하는 운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퀴어라고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정체화를 권하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꼭 명확한 단어로 정체화 할 필요는 없어요. 다만 '사회화'의 폭력성을 인지하고, 사회 구조 내에서의 자기 자신을 고찰해보는 경험을 해보면 됩니다. 최근 페미니즘이 대두되면서 퀴어가 아닌 사람들 또한 코르셋 혹은 맨박스를 인지하고 그것에서 벗어나 자신을 찾아가고 있는데, 이 또한 넓은 의미의 정체화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향성 측면에서는 바이 엄브렐라와 데미 스펙트럼 안에 포함되지만 그로 인한 불편함은 아직까지 크게 느끼지 못했고, 그보다는 성별 정체성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 가장 힘이 들어요. 세 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시스젠더들이 자연스럽게 향유하는 기본적인 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화장실에 갈 때만 해도 패싱이 잘 될지 아는 사람을 마주치지는 않을지 눈치를 봐야하고, 수영장이나 온천, 목욕탕 같은 곳에 가는 것은 어드벤처 영화가 따로 없지요. 그래도 이 정도는 참을 만 한데, 아플 때 병원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가장 서럽습니다. 의료진에게 커밍아웃은 어떻게 해야 하며, 그들이 혐오자라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입원을 해야 한다면 어느 병실을 써야 하고 여성 또는 남성 간호사 중에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는가. 그래도 정신이 멀쩡하면 어떻게든 스스로 방도를 찾겠지만 혹시 의식이 없는 상태라면? 그런 경우를 상상하면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쓰러져서 구급차에 실려가는 와중에도 지정성별이 밝혀져 아웃팅을 당할까봐 정신이 퍼뜩 들더라는 얘기를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서 두 번이나 들었습니다. 저라고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웃팅도 아웃팅이지만 의료비도 큰 문제입니다. 트랜지션을 받기 위해 필요한 정신과 진단서, 호르몬 치료, 몇 회에 걸친 수술, 정기 검진 등은 전부 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가격도 비쌉니다. 그 과정에서 의료사고가 나도 항의할 창구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트랜지션 등의 기록이 남으면 애초부터 보험 가입도 어렵고 어찌저찌 보험을 가지고 있어도 다른 질병에 대해 제대로 된 보장을 받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가장 걱정하고 또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이 의료 시스템 구축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는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여자라고 알리고 지내든 남자라고 알리고 지내든, 내가 트랜지션 중인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임을 밝히기 전까지는 다소 불안한 사이라고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잘 맞는 친한 친구여도 퀴어라는 이유 하나로 관계가 두쪽나는 건 흔한 일이기 때문이지요. 가족이라고 예외는 없습니다. 저는 다행히도 가족들이 잘 받아준 편이지만, 제가 트랜스젠더라서 겪는 혐오와 어려움에 가족들도 함께 상처를 받고 있는 것이 저를 많이 힘들게 합니다. 제 탓은 아니지만 제 탓처럼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어요.

마지막은 불확실함의 연속인 삶입니다.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퀴어는 늘 삶을 개척하고 투쟁해가야 합니다. 원하는 파트너와 결혼할 권리, 법적 성별을 정정할 권리, 트랜스젠더로서 군대에서 복무할 권리 등 비퀴어들에게 당연한 것들을 퀴어는 늘 쟁취해야만 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 (예를 들어 공무원 준비라든지) 선례가 적거나 아예 없어서 모험을 하는 일이 십상이지요. 그렇지 않아도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현대 사회에 이러한 퀴어의 삶은 지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합니다.


좁다고 하는 퀴어 사회지만 그 안에서도 다양한 집단이 있습니다. 제가 주로 속한 논바이너리 집단은 비퀴어 바이너리 집단에 비하면 소속감이 아주 약하게 형성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규범적 성별 체제에 들어맞지 않는 논바이너리들이 성별이라는 기준 하에 끈끈하게 뭉치는 모습이 모순처럼 생각되기도 하네요. 그래서인지 이 집단은 성별이라는 특성으로 뭉쳐지기 보다는 저항이나 연대의 목적으로 뭉치는 일이 더 많다고 느낍니다. 제가 여성사회 또는 남성사회에 느끼는 소속감만큼 이 집단에도 그와 별 다르지 않은 정도로 소속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다지 강하지 않습니다. 논바이너리 개인에게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것이 집단에 대한 소속감은 아닙니다.


저는 여러가지 시시콜콜한 것들을 좋아합니다. 카페인 영향을 전혀 받지 않지만 집중할 일이 있을 때 기분내기로 커피 한잔 마시기, 한달에 한번 정도 산꼭대기에 있는 도서관에서 월간 잡지 읽고 책 빌려오기, 침대에서 넷플릭스 보며 뒹굴거리기, 주머니 사정이 여유 있는 달엔 전시회 가기, 새로운 요리 도전해보기, 이런 저런 운동하기 등. 우리 존재 화이팅^^~



앞서 언급했지만, 이 기사는 퀴어가 미디어 화면 속 혹은 어렴풋한 현실 너머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전달하고자 하였다. 여기저기에 존재하는 다양한 모습의 퀴어들이 앞으로 점점 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인지될 수 있기를 바란다. 기사에 생소한 단어가 굉장히 많겠지만 그럼에도 일부러 각주를 달지 않았는데, 이는 똑같은 정체성이나 지향성 표지를 붙였더라도 각각의 이야기가 지닌 맥락과 의미가 전부 다르기 때문이다. 퀴어는 하나로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다. 각자가 정체화에 무게를 두는 정도도 모두 다르고, 퀴어 정체성을 가진 집단에 대한 소속감 여부도 모두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절대 ‘아, 이런 이름/지표를 가진 사람들은 다 이렇구나’라고 섣부르게 단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또한 생소한 언어가 범람하는 글을 보면서, 퀴어들이 낯선 언어와 체계의 늪에서 정체성을 고민하며 느꼈을, 그리고 결국 단어만으로는 메우지 못한다고 느끼기도 한, 그런 미세한 공백들이 독자 여러분에게도 직접 와닿을 수 있었으면 한다.


더 나아가, 정체화에 대해서는 한 번 더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정체화는, 자신의 ‘퀴어성’을 발견하는 과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체화는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를 깊게 생각해보고 언어로 표현하는 법을 연습하면서 얼핏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폭력적 사회 규범과 정상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게 해 주는 과정이다. 이들이 정체화를 통해 자신의 퀴어성을 발견한 것 또한 일률적인 이성애 중심적, 성별 이분법적 규범에 의문을 제기하는 데에서 출발했던 것이었듯 말이다. 정체화의 가능성에 있어, 지금 퀴어라고 정체화를 하고 있는지 하지 않고 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욕망과 행동을 고찰하고, 이름과 지표를 붙이거나 붙이지 않기로 결정하는 과정을 거쳐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지금 독자 여러분들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기를 제안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당신 안에서, 그리고 사회 속에서 과연 어떠한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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