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온도
한 인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제인’, 겉으로 보기에는 여성이라 성인이 될 때까지 당연히 모두들 그를 여성으로 여겼다. 그 스스로도 자신이 여성임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아이까지 가졌으니 의심할 틈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는 몸 안에는 온전하고 미성숙한 음경과 정소, ‘남성’의 신체 기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스스로조차 알지 못했던 ‘신체의 비밀’이었다.
제인은 영화 <타임 패러독스>의 주인공이자 인터섹스(Intersex)를 재현한 인물이다. 상업 SF 영화에 인터섹스 인물이 등장하다니 꽤나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영화에서 제인이 인터섹스로 드러난 채 살아간 순간은 단 한 순간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인터섹스 당사자성이 밝혀지는 순간에는 이미 남성기 재건 수술이 마쳐진 상태였고, 곧바로 의사는 그에게 당신이 ‘남성이 되어야 함’을 선고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절대로 제인의 ‘인터섹스인 신체’를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남성의 생식기를 사용한다면 여성형 유방은 절제되어야 했고, 남성 호르몬을 맞으며 걸걸한 목소리와 각진 몸을 갖춰야했다. 그렇게 제인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변기 앞에 ‘서서’ 소변을 보는 ‘존’이 되었다. 영화는 그렇게 제인에게 끔찍한 아픔을 씌워주었다. 그런데 더 끔찍한 것은, 그 끔찍한 장면들이 모두 인터섹스 당사자들을 향한 사회의 묵은 폭력을 고스란히 답습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괴물이 다 있어?”
사실 관객의 시선에서는 <타임 패러독스>가 인터섹스 인물을 다룬다는 사실조차 가려져버리기 쉽다. 제인의 인터섹스 당사자성은 자꾸만 뒤집히는 영화 서사에서 그저 하나의 충격적인 반전 요소로만 작용하면서 동시에 ‘타임머신’이라는 공상 과학적인 설정과 함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엮여 들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영화의 리뷰나 댓글에서 ‘인터섹스’를 언급한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어떤 이는 제인에 대한 설정을 ‘개소리’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는 영화 자체의 특성으로부터 기인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런 인간은 없다’는 편견과 ‘정상적인 인간의 신체’에 대한 공식이 무서울 만큼 확고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회를 지배하는 생물학적 인간관은 너무나 분명하다. 인간은 여성과 남성의 두 개의 성(sex)으로 구성되어 있고, 여성은 XX염색체와 난소, 자궁, 질 등의 생식기를 가지고 여성 호르몬을 분비하면서 유선형의 골격을 만들어가고 남성은 XY염색체와 정소, 음경, 고환 등의 생식기를 가지고 남성 호르몬을 분비하면서 각진 골격을 만들어간다. 그 외의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이라면 여성이 가져야 할 것들을 가져야 하고, 남성이라면 남성이 가져야 할 것들을 가져야 한다. 이는 너무나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사실이라서 반박할 여지가 없다. 이 사실에 의문을 제기한다면 거대한 인류 문명을 이룩해 온 과학을 부정하는 몰상식하고 뚱딴지같은 공상가가 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별 이분법에 들어맞지 않는 인터섹스 당사자들은 ‘인간’이라는 범주로부터 밀려나버린다. 만약 그 누구도 밀려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면, 그 순간의 그 생각조차도 인터섹스 당사자들을 보일 새도 없이 밀어내버리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일 뿐이다.
과학은 생각보다 완벽하지 않다. 인간의 몸은 과학이 정의하는 2가지 외에도 훨씬 많은 변수를 지니고 만들어진다. 복잡한 신체기관 어디에서든 변수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세계에는 인간의 몸을 몇 가지로 유형화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다양한 인터섹스 당사자들이 살아가고 있으며, ‘인터섹스’는 단 하나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수많은 개인들을 포함하는 용어이다.
2017년 국제엠네스티는 『First, Do No Harm – 덴마크와 독일의 다양한 성징을 가진 아이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라는 보고서를 통해 인터섹스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도 함께 제공했는데, 그에 따르면 세계에는 40가지 이상의 인터섹스 사례가 존재하고, 아직 의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해당 보고서에서 자주 언급되는 사례 중 하나인 선천성 부신증식증(CAH;Congenital Adrenal Hyperplasia)의 경우, 음핵(clitoris)이 남성 성기로 인식될 수 있을만큼 커지거나, XX염색체를 가졌음에도 남성 호르몬의 영향으로 남성형 생식기를 가질 수 있다. 또한 XY염색체를 가지고 태어났음에도 남성형 생식기가 잘 발달하지 않는 남성호르몬 둔감 증후군(PAIS, CAIS), 요도의 위치가 ‘일반적인’ 여성 또는 남성의 것과 다르게 자리잡은 요도하열(Hypospadias)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성염색체는 XX, XY외에도 다른 염색체가 존재할 수 있고, 성염색체와 성호르몬의 종류가 일률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다양한 염색체에 다양한 호르몬 발현 정도, 다양한 생식기 발달 정도가 더해져 수많은 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잠깐!
인터섹스 당사자의 신체를 특정 ‘증상’, ‘질환’으로 치부하는 태도는 지양해야한다. 인터섹스를 병리화하는 것은 당사자들의 몸을 ‘비정상’의 범주에 두고 교정 치료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하지만 인터섹스를 글로 표현해내는 과정에서 이러한 방향성을 지키기 어려울 만큼, 현재의 의학계는 철저하게 인터섹스를 ‘병’으로 간주하고 있다. 의학계는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의료기술을 발전시키고 체계화하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의 하나라고 변명하지만, 이는 절대로 그들이 ‘치료’의 대상으로 삼는 당사자들의 입장을 고려한 것이 아니다. 당사자들이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1990년대부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며, ‘인터섹스’는 그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가시화를 위해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이기도하다.
그래봤자 대다수는 ‘정상적인 신체를 가진’ 여성과 남성이고, 인터섹스의 경우는 손에 꼽을 만큼 적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터섹스 당사자는 일반적인 통념보다 훨씬 많이 존재한다. 2000년에 시행된 생물학자 안나 파우스토 스털링의 연구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1.7%가 인터섹스로 태어난다. 이에 더해 국제엠네스티는 인터섹스에 대한 진단 기록이 없는 경우가 많아 정확한 측정이 어려우며, 실제로는 인터섹스 당사자의 수가 그 수치를 웃돌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섹스의 실제 인구가 몇 퍼센트가 넘는다는 수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찌되었든 인터섹스 당사자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인터섹스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로 인터섹스를 철저히 ‘비정상’으로 여기는 사회적 통념과, 당사자들의 출생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교정 수술 이 있다. ‘너는 비정상이야’라는 편견어린 시선과 ‘바로잡아야 해’라는 폭력적인 접근은 인터섹스 당사자들의 출생 직후부터 평생을 따라다니며 숨통을 옥죈다. 그렇기에 당사자들의 생애 과정을 살펴보면 이 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당사자들이 왜 가시화될 수조차 없었는지를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당사자들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의 물꼬를 트기 위해 소설 『애너벨』의 내용을 인용하고자 한다. 책의 주인공 ‘웨인(애너벨)’은 저자 캐슬린 윈터가 전해 들었던 인터섹스 당사자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인물이다.
그녀는 공포감이 밀려올 때 여자들이 흔히 그러듯, 영원처럼 느껴지는 한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 담요를 추스르면서 토마시나는 가만히 아기의 한쪽 고환을 들어 올려 그 아래에 있는 음순과 질을 확인했다. (『애너벨』, p.28)
“둘 다 결정을 못 내리고 있으니 내가 결정하겠어. 아들로 키울 거고, 이름은 할아버지 이름을 따서 웨인이라고 하지.” (p.42)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가정은 재신타와 남편 트레드웨이로 구성되며, 그들 곁에는 재신타의 친구 토마시나가 있다. 재신타와 트레드웨이의 아이는 여성과 남성의 생식기를 불완전하게 모두 가지고 태어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세 사람은 충격에 휩싸이지만, 재신타와 토마시나는 이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위해 노력한다. 때로는 아이가 당당하게 성장해서 여성성과 남성성을 고루 갖춘 멋진 인물이 되는 장면을 상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버지인 트레드웨이는 생각이 다르다. 그에게 아이의 몸은 ‘비극’이었으며, 반드시 ‘치료되어야하는 대상’이었다. 결국 그는 수술을 통해 아이의 여성 생식기를 가리고 아이를 ‘남자’로 키우기로 정한다.
『애너벨』의 초반부는 인터섹스의 출생 당시 혼란스러운 주변의 모습을 잘 담아냈다. 퀴어, 인터섹스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이 선행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터섹스의 존재를 그 출생과 동시에 알게 된다. 때문에 아이의 성기, 성징이 남들과는 유별나다는 사실은 부모에게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상상하지 못했던’ 아이의 몸 자체에 대한 순간의 꺼림칙함, 내 아이가 ‘사지 멀쩡한 정상인’이 아니라는 좌절감, 아이의 상태가 남들에게 알려질 것에 대한 불안감, 아이가 장차 자라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겪을 수모를 예견하며 드는 두려움 등등. 복잡한 감정들이 떠올라 아이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다만 소설이 현실의 일반적인 경우와 다른 점은, 대부분 인터섹스인 아이의 몸을 둘러싼 논의는 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주된 발언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아이의 출생을 신고하고 신상을 등록하기 전 아이의 성별을 검증하는 권한은 의료진에게 있다. 그리고 법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성별은 여성과 남성, 두 개밖에 없다. 대부분의 부모는 인터섹스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도 부재한 채 두려움에 휩싸여있다. 이제 막 태어난 아이는 당연히,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조차 없다. 이 상황에서 의료진은 의학적인 정보와 성별 지정 권한[1], 수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자연스럽게 아이의 몸에 대한 판단에 가장 큰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된다.
문제는 부모들은 물론이고, 인터섹스 당사자를 받아든 의료진 대부분이 성별 이분법적인 고정관념을 가지고 그에 따라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인터섹스 당사자는 비정상적인 신체 기관을 가지고 태어난 ‘수술 대상’, ‘교정 대상’이다. 그들은 당사자들이 얼마나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를 따지기보다는, 당사자들이 사회적으로 여성 또는 남성으로서 이상 없이 살 수 있는지를 따진다. 그에 따른 의료진의 권고는, 혼란에 빠진 부모들에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따라야 할 단 하나의 선택지가 되어버린다. 이 과정에서 인터섹스 당사자의 주체적인 의사, 아이가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철저히 배제되어버린다.
물론 인터섹스로 태어난 당사자들 중에 생명 유지를 위해서 수술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요도하열(Hypospadias)의 일부 경우에 요도를 보호하고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요도 위치를 옮기는 수술이 필요하기도 하며, 일부 선천성 부신증식증(CAH)에서 코르티솔(cortisol)이 부족한 경우 생명이 위험해지기 때문에 호르몬 치료를 필수로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인터섹스의 신체는 수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수술을 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도 충분히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어떤 의료진은 인터섹스의 ‘발암 가능성’을 경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인터섹스의 발암 가능성은 0.8% ~ 60%로 분석되어, 학술적으로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에 대한 의견이 다양하며, ‘고위험군’이라고 판단되는 사람들에게서조차도 그 위험성이 높지 않은 편이다. 국제엠네스티는 발암 위험은 성장 과정에서도 초음파 검사를 통해 충분히 대비할 수 있으며, 오히려 무리한 성별 교정 수술이 추가적인 위험을 가져온다는 전문가들의 입장을 인용하기도 했다. 단순히 ‘당신의 아이의 몸에 여성기와 남성기가 동시에 존재하여 암이 발생할 수 있으니 둘 중 하나를 없애봅시다’라고 하기에는 의학적으로도 그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그의 아들은 여자애처럼 생겼고, 여자애처럼 말했고, 머리카락도 여성스러웠으며 목이나 가슴도 그랬다. 멜빵바지를 벗을 때 트레드웨이는 아들의 속옷 속으로 가슴에 작고 부드러운 멍울이 잡혀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웨인도 알고 있었을지, 아니면 학교의 다른 남자애들이 놀리지나 않았을지 걱정되었다. (p.179)
아이는 ‘우리 아들 웨인’으로 자란다. 여성으로서의 아이를 지우고 싶지 않았던 토마시나는 그를 몰래 ‘애너벨’-사고로 죽은 토마시나의 딸의 이름이 ‘애너벨’이었다-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삶의 모든 순간에서 그는 ‘웨인’이다. 아버지 트레드웨이는 웨인(애너벨)에게서 여성적인 면모가 보일까봐,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이 명백히 밝혀져 괴롭힘을 당할까봐 노심초사한다. 그래서 더더욱 트레드웨이는 웨인(애너벨)에게 남성성을 강하게 주입시킨다.
무엇보다도 인터섹스 당사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성별 이분법적인 사회적 시선과 제도이다. 인터섹스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회적 공간은 정말 드물다. 당장 아이가 십여 년을 지내야 할 학창시절만 생각해도 그렇다. 대부분의 학교 프로그램은 여학생과 남학생을 구분한 채 진행된다. 또래집단에서는 동성 내의 커뮤니티가 생활의 큰 영역을 차지하고, 그 사이에 인터섹스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다. 공중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 수 없다. 사회적 시선은 제쳐두고서도 일단 한국에서는 주민등록조차 안 된다. 한국에서 국민으로서 권리를 가지는 인간은 주민번호가 1 또는 2, 3 또는 4로 시작해야한다. 그 어떤 법제도도 인터섹스의 복지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이 세계에서 인터섹스로 산다는 것은 곧 거리를 지나는 수많은 발들에 짓밟히고 뭉개질 그림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인터섹스 당사자의 부모들이 교정 수술을 선택하는 이유도 결국 이러한 성별 이분법적인 사회 체계가 너무나 견고하기 때문이다. 트레드웨이가 오직 자신의 편견 때문에, 정상 가족의 가장으로서의 체면 때문에 웨인(애너벨)을 아들로 키워낸 것은 아니다. 그가 수시로 웨인(애너벨)이 호르몬제를 끊고 여성적인 몸을 선택했을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겪을 고통을 걱정하듯이, 수술대 앞에 선 수많은 부모들은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며 칼을 든 의료진에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그런 걱정도 일리가 있다. 인터섹스 당사자가 태어난 그대로 자라 생활한다면 수없이 많은 조롱과 멸시, 차별과 폭력을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의문도 든다. 과연 고쳐져야 하는 것은 인터섹스 당사자의 몸인가, 아니면 당사자들에게 칼을 휘두르는 사회인가? 이렇게 고압적이고 독단적인 사회에서, 수술을 받는다고 안전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가?
“여름방학이 끝날 때쯤부터였어요. 발에서 껍질이 벗겨지는데, 아프지는 않고 그냥 이상해요. 그때부터 배도 같이 아프기 시작했고요.” (p.217)
웨인(애너벨)의 수술은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발육이 시작되면서 그의 몸에 숨겨진 생식선이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의 몸 안에서는 월경이 일어나지만 질이 막혀있어 배가 볼록 튀어나올 만큼 자궁이 피로 가득 찬다. 결국 고통을 견디지 못한 웨인(애너벨)은 병원으로 실려 가고, 의료진은 절개 수술을 통해 배속에 찬 피를 빼낸다. 그런데 의료진은 이러한 상황의 ‘재발 가능성’에 대해 확답을 내리지 못한다. 아무리 호르몬 약을 먹더라도 언제 또 같은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웨인(애너벨)의 여성기를 봉합해 가려놓은 이상, 그는 언제든 수술대에 오를 준비를 해야 했다.
웨인(애너벨)이 수차례 수술을 받고, 기억도 없는 어릴 적부터 매일 호르몬제를 먹어야했던 것처럼, 교정수술은 절대 한 순간에 끝나지 않는다. 한 번 수술을 선택하면 평생, 오랜 기간 동안 반복해서 수술과 잡다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일단 교정 수술을 받는 것 자체가 복잡하고 위험하다. 예를 들어 음핵비대(hypertrophic clitoris)인 인터섹스 당사자들에게 의료진은 종종 음핵 축소 수술을 권하는데, 이 수술은 당사자들에게 신경 손상, 음핵 조직 감소, 음핵 감도 감소, 눈에 띄는 흉터 등의 고통을 가져다준다. 더군다나 인간의 몸은 영유아기의 상태 그대로 남아있지 않는다. 나이를 먹으면서 신체는 몇 배로 성장하고 그 모양새를 바꾸기에 수시로 보강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제엠네스티에 자문한 한 소아과의사는 “어떤 수술이든 흉터를 남긴다. 아이들은 자라고, 흉터 조직은 다른 조직처럼 자랄 수 없다. 유아일 때는 문제 없어보여도, 아이가 자라면서 문제가 생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수술을 받은 대부분의 인터섹스 당사자들은 적으면 수년, 많으면 평생에 걸쳐 ‘수술로 만들어진 몸’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매일 노력해야한다. 질이 닫혀있거나 너무 조금 열려있는 상태로 태어난 아이에게 의료진은 보통 성형 수술을 통해 인공 질을 만들어주는데, 이 때 부모는 아이의 ‘질 스트레칭’을 도와야 한다. 매일 밤 아이의 질에 막대를 넣고 붕대를 한 채 잠에 들어야 하는 것이다. 호르몬 치료는 필수다. 대부분 인터섹스의 발현은 ‘정상 범위’와는 다른 호르몬의 분비 때문으로 여겨지므로, 당사자들은 지정받은 성별로 몸을 빚어내기 위해 호르몬을 억지로 늘리거나 억제해야한다. 당연히, 호르몬제는 많은 부작용이 따를뿐더러 그 가격도 매우 비싸다.
아빠가 마을 사람들 중에서 가장 먼저 트랩라인에 나가 가장 늦게 돌아오는 게 혹시 자기 잘못이 아닐까 하는 생각, 엄마가 슬퍼하는 이유가 자신이 무슨 수를 쓴들 평범한 아들이 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고환이 한 개가 아니라, 두 개인 아들. 아빠가 싫어하는 사람에게 강아지를 팔아버릴 일을 만들지 않는 아들. (p.283)
웨인(애너벨)이 태어났을 때부터 재신타와 트레드웨이 사이에서는 잦은 의견 충돌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아이의 성별을 결정하는 것에 대해 논쟁하고 아이를 위해서라면 잘된 것이라고 다독이지만, 웨인(애너벨)이 자꾸만 ‘남자답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그의 몸이 수술 자국을 견디지 못할 때마다, 그의 몸의 진실을 마주해야 할 때마다 가족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고 점점 멀어졌다.
여자도 남자도 아니었던 아이가 수술을 받고 둘 중 하나로 편입될 수 있게 되었다고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짚었듯이 교정 시술이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는 만큼 그로부터 오는 심리적인 압박감 또한 성장기 내내 따라다닌다. 아무리 치료를 열심히 받는다고 해도 ‘무언가 다름’이 눈에 띄기 쉽고, 그것을 또다시 가리기 위해 인터섹스는 더욱 몸을 옥죄어야한다. 원치 않는 성별을 지정받고 그에 수반되는 성역할을 강요받을 때, 말도 못했던 어린 시절에 자신의 몸에 벌어졌던 일들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 인터섹스 당사자는 물론이고, 지켜보는 가족들, 주변인들의 마음까지 무너지고 병들어버리기 쉽다.
“나의 가장 큰 문제는 나의 첫 11년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살았다는 것이다. 나는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헤쳤고, 겨우 2년 전에 나의 몸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동안, 34년간 나는 비참했다. 5살 때 나는 정소를 없애는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다른 수술들, 다른 생식기 수술을 받았다. 내가 질을 태어날 때 가지고 있었는지 아니면 그것이 재건(reconstruction)된 것인지 모른다. 나의 요도는 다른 위치에 있다. … 나는 내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지만, 내가 일종의 괴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젠더 정체성을 발달시킬 수 없었다. 나는 여성이도록 억압받았고, 치마를 입고 머리를 길러야 했다. 남자와 섹스를 하는 것은 고통스러웠고 그것이 보통인 줄 알았다.” - Sandrao, Germany (2016)[2]
웨인은 욕실 장에서 남은 초록 알약을 꺼내 변기에 넣고 내려버렸다. 그는 원래 두 알씩 먹어야 하는 이 작은 알약들이 떨어질 때까지 하루에 한 알씩 먹기로 했다. 이 약이 떨어진 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감당해야 하리라. (p.380)
자신의 몸에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자신이 사실은 어떻게 태어났던 것인지 모두 알게된 웨인(애너벨)은 온갖 수술과 호르몬제로 억눌려 몸속에 가려져있던 ‘애너벨’을 살려내기로 결정한다. 그는 호르몬제를 먹는 것을 그만두었고, 봉합되었던 질을 수술을 통해 다시 열었다. 몸속의 호르몬 수치가 달라지면서 몸의 형태도, 인상도 달라지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위협을 받기도 하지만 몸의 변화를, 원래의 ‘나’로 돌아오는 모습을 조금씩 받아들인다.
사실 『애너벨』의 엔딩은 현실적으로 실존하는 많은 경우들을 다루지 못했다. 우선 웨인(애너벨)은 자신의 몸의 진실을 청소년기부터 알게 되었지만, 현실의 어떤 당사자들은 스스로가 인터섹스였다는 것을, 또는 인터섹스라는 것을 모른 채 훨씬 많은 세월을 흘려보내거나 평생을 지내는 경우도 많다. 본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수술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알게 되지 못하고 살거나, 인터섹스로서의 몸의 특징이 외형적으로 크게 발현되지 않아 자신이 인터섹스라는 것 자체를 모르고 사는 것이다.
또한 현실은 소설처럼 해피엔딩이지 못하다. 웨인(애너벨)은 수술을 받고 호르몬 치료를 그만두면서 원래의 몸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교정 수술이 끝난 인터섹스의 몸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있다. 이미 음경이나 고환, 난소, 음핵 등을 적출하거나 완전히 변형시켜버린 후 남아있는 것은 ‘돌아가겠다’는 선택지가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흉터뿐이다. 돌아가겠다는 선택을 하더라도 그 수술에 수반되는 고통과 경제적인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용기’가, 그것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살아남기 위해 인터섹스로의 몸이 지워졌던 것인데, 인터섹스로서의 몸을 선택하고 표현한다는 것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세상과 싸움을 시작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실은 배드엔딩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렇게 인터섹스의 삶은 시작부터 끝까지 어려움과 어려움의 연속으로 이루어져있다. 인터섹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근본적인 이유는 보이지 않는 성별 이분법적인 젠더 규범이지만, 당장 가장 기초적인 법제도도 마련되어있지 않다는 점은 당사자들이 처한 위험을 더욱 치명적으로 만든다.
때문에 현실적으로 가장 먼저 법제도 하에서 인터섹스 당사자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자체를 하나의 시민으로서 인정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주민등록제를 개정하여 여성, 남성이 아니더라도 법적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인터섹스 당사자들이 출생 직후에 마주하는 교정 수술의 폭력을 법적으로 막아야한다. 국제엠네스티에서 상세히 밝혔듯이 대부분의 인터섹스는 교정 수술을 하지 않는다고 생명에 위협을 받지 않는다. 그렇기에 꼭 수술이 필요한 경우를 살피고 불필요한, 성별 이분법적인 사회화를 위한 수술을 방지하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국제엠네스티는 덧붙여 해당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인터섹스에 대한 정보를 잘 갖춘 전문가 양성을 권고하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터섹스 당사자가 주체적으로 자신의 몸에 대한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출생 당시에 부모나 주변 가족에게 신뢰성 있는 단체나 기관, 인터섹스 당사자 간 네트워크, 인터섹스에 대한 방대한 추가 연구를 바탕으로 한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그리고 당사자가 성장하여 그 정보를 함께 인식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며, 그 과정을 지속적인 심리적 지원, 경제적 지원이 따라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법적으로 보장해야한다. 특히,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인터섹스 당사자가 성별 이분법적인 사회 규범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성별 이분법의 규범으로 편입되는 일이 없도록, 인터섹스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함께 동반되어야한다.
사회적으로 인터섹스의 존재는 깊숙이 가려져있다. 인터섹스에 대한 인식은 딱 ‘괴물’을 보는 시선과 비슷하다. 픽션이나 전설에서나 등장하는 그런 존재, 가끔은 실제로 존재하기도 한다던데, 그렇다면 잡아들여 치료하거나 제거해 버려야하는 존재. 그 인식이 인터섹스의 삶을 두려움의 구덩이로 몰아넣고, 꺼내주기는커녕 구덩이를 파묻어버리는 법제도를 만든다. 인터섹스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흔적들이, 잘못된 관습으로 고통 받은 사람들의 흉터가, 그 사회는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여성도 남성도 아니더라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고, 또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인터섹스로서의 몸을 바꾼다고 해도, 그 누구에게도 그것을 대신 결정할 권한은 없다.
얼마 전 27살이 되어서야 병원을 찾았다가 자신이 인터섹스 당사자임을 알게 된 한 중국인의 이야기가 기사화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소름 끼친다’거나 ‘중국은 역시 별의별일이 다 있다’라며 그의 존재를 깎아내렸다. 어떤 이들은 동정심을 발휘해 그를 비극적인 환자로 치부하며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인식은 눈을 가리고 그 ‘가운데’는 없다며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그리고 만약 가운데에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괴물’일 뿐이라고 단정 짓는다. 하지만 인터섹스는 ‘괴물’도 아니고, ‘가운데’에 놓인 인간도 아니다. 같은 모습 하나도 없는 수십억 인간의 몸에 어느 쪽이란 건 없다. 애시 당초에 ‘가운데’라 할 곳은 없다. 그러니, ‘가운데’에 놓일 ‘괴물’도 있을 수 없다.
[1] 사실 병원에서 아이의 성별을 판별하는 방법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육안으로 여성인지 남성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 간단한 수치적인 기준이 있는데, 그것은 ‘2.5cm’이다. 돌출된 생식기가 음경인지 음핵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에, 그것이 2.5cm를 넘으면 음경으로 ‘남성’으로 판정되며 2.5cm 아래이면 음핵으로 ‘여성’이 된다. 그 외에도 염색체 검사, 초음파 검사, 혈액 검사, MRI, 내시경 검사, 생식기 조직 검사 등을 진행할 수도 있지만 이 검사들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어 일반적으로 잘 실시되지는 않으며, 검사를 하더라도 정확한 진단은 어렵다.
[2] 『First, Do No Harm』, Amnesty International, 2016, p.34에서 발췌
참고문헌
Amnesty International, 『First, Do No Harm – Ensuring the rights of children with variations of sex characteristics in Denmark and Germany』, 2017.05.
캐슬린 윈터, 송섬별 역, 『애너벨』, 자음과모음, 2016.12.
「임신이 안 돼서 병원에 갔는데… 제가 남자였대요」, 『국민일보』, 2018.11.29.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2878513&code=61131111&cp=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