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애옹
※ 전반적인 내용과 결말에 대한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지워지고 공식적으로 다뤄지지 않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누군가는 분명하게 경험하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탈정치화 된 채 아예 존재가 인식되지 않는 것들 말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걸 온 더 트레인>은 지워진 이야기들 중에서도 오랫동안 ‘폭력’의 범주에 포함되지 못했던 종류의 폭력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폭력은 이름을 가지지 못한 채 그저 수많은 이들의 삶 속에서 파편처럼 존재하던 것이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하는 공사영역 이데올로기에 따라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으로 나눠진 것들은 부차적이고 덜 중요한 것으로 여겨질 뿐만 아니라 사회-국가적인 차원에서의 개입이나 논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되어 왔다.[1] 공사영역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보통 공적인 것은 남성의 범주에 속하고, 사적인 것은 여성의 범주에 속하였기 때문에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대부분 비정치적이고 은밀한 개인적 차원의 일로 여겨져 국가가 처벌해야 할 ‘범죄’라기보다는 피해자 개인의 ‘불행’ 정도로 치부되었다.[2]
특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들이 빈번하게 경험해 온 가족 관계 내 폭력, 즉 가정폭력은 보통 가해 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이 ‘집’이라는 공간적 특성과 친밀한 관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관계적 특성상 피해자의 발화가 더더욱 어려웠다. 한국에서 가정폭력의 법제화는 1997년, 영화의 배경이 된 미국의 경우에는 1984년 이루어졌는데[3] 현대적 개념의 사법 체계에서 형법이 제정된 시기가 한국의 경우 1953년, 미국의 경우 19c 초반이었음을 고려했을 때, 가정폭력이 ‘폭력’이라는 이름을 찾고 범죄로 인식된 것이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걸 온 더 트레인>은 레이첼, 애나, 매건이라는 세 여성 인물의 시점이 교차하며 전개된다. 레이첼, 애나, 매건은 가정폭력의 피해를 입는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때리거나 밀치는 등 물리적인 행위로 폭력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영화에서 그려지는 폭력의 대부분은 물리적인 것과 거리가 먼 방식으로 나타난다. 한국의 「가정폭력 특례법」은 가정폭력을 ‘가정구성원 사이의 신체적, 정신적 또는 재산상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때 영화 내용과 관련하여 보다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정신적 피해’라는 항목이다. 가정폭력범죄를 정의내린 제2조 3항을 보면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강요죄, 명예훼손이나 모욕, 주거 및 신체의 수색, 공갈 등으로 정신적 가해를 서술하였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작중에서 레이첼, 애나, 매건이 겪는 폭력을 설명하기에 불충분하다. 영화 내용을 통해 자세하게 알아보자.
레이첼은 전 남편 톰과 이혼한 사이로 등장한다. 레이첼이 이혼 사유로 알고 있던 것은 자신의 알코올 중독 증상이었다. 자신이 불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알코올 중독에 걸리면서, 그로 인한 히스테리가 레이첼 자신의 일상뿐만 아니라 톰의 일상생활까지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톰의 직장 상사가 주최한 파티에서 레이첼이 직장 상사의 부인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기억을 회상하는 장면이 있다. 레이첼은 이 일을 이혼의 결정적인 원인이라 생각하여, 오랫동안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우연히 마주친 부인에게 뜻밖의 사실을 듣게 된다. 레이첼이 무례하게 행동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부인은 레이첼이 몸이 안 좋아 잠깐 방에서 쉬었다가 집에 돌아간 것이 전부라고 말한다.
애나는 톰과 재혼한 사이이다. 애나는 톰이 레이첼과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중에 톰과 만났고, 재혼 후에 톰과 레이첼의 신혼집이었던 곳에 살림을 차리고 아이를 낳는다. 하지만 재혼 후에도 계속해서 레이첼이 톰에게 전화를 하거나 레이첼이 몇 번씩 집 주변에 나타나는 것을 보고 애나는 매우 불안해하며, 톰에게 계속 레이첼에 대한 걱정을 내비친다. 하지만 톰은 그저 애나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일 뿐이라며 자신이 알아서 잘하고 있다는 식으로 애나의 걱정을 일축해 버린다.
메건은 톰과 애나 부부의 옆집에 살고, 둘의 아이를 돌봐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매일 부부의 집에 들르던 메건은 톰과 외도를 하게 되고, 결국 임신까지 한다. 임신 사실을 톰에게 알리자 톰은 다정하던 모습을 바로 거두고 아이를 낳지 말라며, ‘너 따위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냐’며 메건의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건드려 폭압적으로 협박한다. 하지만 메건이 의견을 바꾸지 않고 아이를 낳겠다고 하자 결국 톰은 메건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세 명의 주인공은 각각 ‘톰’이라는 인물이 휘두른 폭력의 피해를 받는다. 톰이 레이첼, 애나, 메건에게 가하는 폭력의 공통적인 특징으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즉, <걸 온 더 트레인>에서 정면으로 마주하는 폭력의 형태는 바로 ‘가스라이팅’이라고 이름 붙여진 정서적 학대이다. ‘가스라이팅’이라는 이름은 1938년 영국 연극인 <가스등(gaslight)>에서 유래했다. <가스등>은 남편이 거짓말과 상황 조작으로 아내를 정신병자로 몰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1944년에 영화화된 바 있다. 로빈 스턴은 저서 『가스등 이펙트』에서 “상대방을 조종하고자 하는 가해자(gaslighter)”와 “상대방이 자신의 현실감을 좌우하도록 허용하는 피해자(gaslightee)” 사이에서 발생하는 정서적 학대를 가스라이팅이라고 정의하였고, ‘잘못이 없는데도 잘못한 것 같고 괜히 미안한 감정이 들어 상대방의 말을 믿게 되는 병리적 심리 상태’를 ‘가스등 이펙트’라고 말했다. 가스라이팅은 가해자는 교묘하게 상황을 조작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대방을 다루고 억압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면서 피해자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정말 맞는지, 자기 자신의 판단과 기억에 의심을 품도록 만든다. 의심하는 경향이 심화되면 결국 피해자는 자신의 지배권 자체를 가해자에게 넘겨주게 된다.[4]
가스라이팅은 국가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없는 개인적인 일로 치부된다는 점에서 해결하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가해나 피해 사실 자체가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고 서서히 아주 치밀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해결하기 더욱 어렵다. 또한 더 넓은 의미에서 여성을 의심하고, 여성 또한 자기 자신을 의심하도록 만드는 것은 가해자-피해자의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가스라이팅의 가해자는 한 개인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사회에서 여성의 발언이나 생각, 판단이 남성에 비해 쉽게 의심받고 더 쉽게 검열 당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 여성을 향한 가스라이팅은 사회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을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존재, 변덕스럽고 자연적인 것의 속성을 가진 존재로 보았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연장인 것이다.
<걸 온 더 트레인>은 이처럼 가정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고, 가정폭력 중에서도 정서적인 폭력을, 또 그 범주 안에서도 ‘가스라이팅’이라는 교묘한 형태의 폭력을 그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가스라이팅을 그리는 많은 작품 중 특별히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 것은 서사를 이끌고 있는 주인공이 모두 여성일 뿐만 아니라, 피해자였던 레이첼에게 가스라이팅 피해에서 벗어날 실마리를 주는 것도 여성 인물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또한 그와 더불어 작중에서 피해자였던 주인공들이 서로 연대하며 영화가 마무리된다는 점이 주목해 볼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영화 내내 레이첼과 애나는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의 가해자인 톰을 사이에 두고 간접적으로만 서로를 마주한다. 레이첼은 애나가 톰과 바람을 피우면서 발전한 사이인 것에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고, 애나는 레이첼이 항상 술에 취해 자신과 아이를 해칠 것 같다는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레이첼과 애나는 톰을 중간에 두지 않은 채 비로소 서로를 직접 대면함으로써 톰을 자신들의 손으로 죽이고 연대한다. 서로가 가지고 있던 불신과 적대감을 극복하고 피해자 간의 직접적인 연대를 통해 자기 자신을 의심케 하던 요소를 없애는 장면은 메건의 죽음에 대한 복수처럼 보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레이첼은 ‘불륜’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있는 인물로, 메건이 남편이 아닌 다른 남성과 키스를 나누는 모습을 목격한 후 메건에 대한 일방적인 분노를 품게 된다. 또한 애나는 자신의 아이를 돌봐주던 일을 당일 통보를 통해 그만두고,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는 메건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메건이 실종되자 레이첼은 곧바로 메건을 찾기 위해 움직이고 톰이 죽였다는 사실을 알자 위험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톰을 찾아가 싸운다. 그리고 한 발자국 물러나 있기만 하던 애나 또한 스스로 생각을 바꿔 레이첼을 돕고 톰을 죽인다는 점에서 이는 메건까지 포함한 세 여성 간의 연대로 거듭나는 것이다.
페미니즘 제2 물결을 대표하는 구호는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였다. 1차대전 이후 많은 서구 국가에서 여성들은 교육 받을 권리, 소송할 권리, 노동할 권리, 더 나아가 참정권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왜 해방되지 못하였는가를 질문하였고, 우리의 일상, 행동, 관습 모두에 성별권력 차이가 퍼져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따라서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는 시민권, 교육과 같이 공적 영역으로 여겨져 온 분야뿐만 아니라 개인적 경험이라는 사적 영역에서도 성별화 된 권력구조가 뿌리 깊게 작용한다는 인식을 확대하고자 한 정언이었던 것이다.[5] 더 나아가 문제에 대한 인식과 각성을 넘어서 <걸 온 더 트레인>이 제시하고 있는 억압 해결의 방식은 ‘연대’이다. '#MeToo' 운동이 단순히 성폭력 범죄 사실을 고발하는 것뿐만 아니라 피해자 간, 더 나아가 여성들의 연대를 이끌었던 것처럼, 서로의 옆에 서로가 있음을 알고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대의 경험이 꼭 문제 상황의 해결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서로 용기를 가지게 하고 치유를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알코올 중독 때문에 자신마저 자신의 기억과 판단을 제대로 신뢰할 수 없었던 레이첼이 메건의 실종과 연관된 자신의 기억을 되찾아 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여성에 대한 폭력과 이를 해결하는 연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영화를 통해 어떤 생각을 펼치든, 단순한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로만 받아들여지지는 않기를.
[1] 허라금, 「서구 정치사상에서의 공사개념과 가부장적 성차별성」, 『여성학논집』, 2013, 335-338
[2] 이유정, 「여성 폭력과 사법」, 『저스티스』, 2015, 585-625
[3] 이유정, 「여성 폭력과 사법」, 『저스티스』, 2015, 585-625
[4] 조은채, 「[페미&퀴어] 가스라이팅 : 성별화된 세뇌」, 『제3시대』, 2017, 10-14
[5] 정승화, 「치유적인 것은 정치적인가」, 『페미니즘 연구』, 2014, 193~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