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정돈 어디
중간고사도 모두 끝나 학기의 절반을 훌쩍 넘긴 11월 초, 문우방에는 소중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문우 62호를 읽고 소중한 감상을 나누어 주기 위해 연세대학교는 물론 타대에서도 찾아와 주었다. 편집장 루와 편집위원 어디, 찌부찌, 독자위원 세미, 눔, 박하, 우디, 죠스가 모여 함께 가벼운 이야기를 나눈 뒤에 독자모임을 진행했다. 62호를 비롯한 지난 호들은 신촌캠퍼스 외솔관 지하 문우방에서 읽을 수 있다.
눔 루가 문우 활동을 꾸준히 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문우도 쭉 읽게 되었다.
세미 문과대 교지가 따로 있는 것은 모르고 있다가 루가 활동하는 걸 보면서 알게 되었다.
우디 문과대생이 아니어서 직접적으로 접하지는 못했고, 새내기 때 페이스북에서 추천 페이지에 학내 동아리들이 있는 것을 따라가 보다가 알게 되었다. 실물은 신촌에 와서 중앙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 것을 처음 봤는데 제목이 너무 멋져서 읽어 보았고 독자모임에도 관심이 생겼다.
박하 찌부찌의 권유로 독자모임에도 여러 번 왔다. 이번 62호는 귀여운 꼬마 유령이 중도 앞에서 홍보하고 있는 것을 보고 하나 읽어 보았다.
ㄱ. 표지 디자인
루 표지 디자인에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결국은 찌부찌가 거의 대부분 직접 디자인했다. 사진도 직접 미국의 사진기사분과 연락해서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이용하는 등 품이 많이 들었다.
눔 전체적인 분위기가 소설과 잘 어울린다.
박하 처음에 ‘별에도 이면이 있다면’이라는 제목을 보고 대도시와 대비되는 빈곤층의 삶과 관련된 내용을 연상했는데 아니어서 신기했다.
루 그 부분이 비판점이라고 생각한다. 편집장 서문에도 썼지만, 소비자로서 바라본 문제의식에서 한 발 나아가 문화 산업의 이면을 드러내고 싶었는데 제목에서 담고자 했던 만큼 쓰지는 못하고 조금 유한 글이 많이 나와서 아쉽다.
ㄴ. 권두시 - 찰리
박하 인권축제에서 권두시의 문장 하나가 멋지다고 생각해서 책갈피로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62호를 읽으면서 전체 맥락을 보니 새로운 결심을 하고 새로운 자신만의 세계로 나아가는 무의식 같은 것이었구나 하고 알게 되어서 멋졌다.
세미 이 시에서 독특하게 느껴졌던 점은 머리를 기르는 부분이었다. 보통은 어떤 결심을 할 때 머리를 자르는 행동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서 신선했다. 또 이 시의 화자와 ‘언니’가 연인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언니가 머리를 기르기로 마음먹었다는 게 헤어지고 이성 연인을 만나려는 의지일까? 싶기도 했다.
ㄷ. 편집장 서문 - 루
박하 표지는 도시적인 느낌이 강한데 서문 부분 디자인이 귀여워서 인상적이었다.
루 디자인에 의견이 잘 반영되지 못한 결과였다.
ㄹ. 글의 구성
우디 순서가 잘 짜여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찌부찌의 글을 통해 ‘중립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 다음, 이후의 다섯 글은 각각의 글에서 필요로 하는 ‘기울기’를 보여 주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읽혔다. 찰리와 현오는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고, 마지막에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보여 주는 글까지 이어지는 구성이 좋았다.
ㄱ. 찌부찌, 「중립적인 글, 기울어져 있어도 괜찮아」
박하 기사 제목 보여주는 부분이 신선했다. 기사의 제목이 정말로 중립적인지를 의식하고 다시 보도록 만들었던 점이 좋았다. 덕분에 늘 중립적이라고 여겨지는 기사들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와닿았다.
세미 글의 짜임새가 탄탄하다. 평소에 많이 읽는 글이나 주로 쓰는 글이 주로 감정에 기반해 있어서인지, 개인적으로 근거가 잘 뒷받침된 글을 쓰는 일이 어렵게 느껴져 왔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면서 아무리 사실 기반인 글을 쓴다고 해도 자기 자신에게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하셨던 교수의 말도 떠올랐다.
루 언론은 늘 중립적이기를 요구받는다. 같은 맥락에서 문우가 과감하고 ‘편향된’ 기사들이 있어서 신기하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래서 수습 세미나를 할 때마다 중립성이라는 게 없다는 이야기를 꼭 짚고 넘어가는데, 그런 이야기를 독자들에게도 전달해야 할 필요가 있기에 적절한 글이었다.
박하 귀엽게 설명해주는 문체여서 쉽게 읽혔다.
눔 디자인과 합쳐져서, 약간 부드러운 교과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ㄴ. 찰리, 「천재의 작품은 뮤즈로부터, 혹은 폭력으로부터」
루 문장력이 좋아 잘 읽힌다. 번역 투 없이 처음부터 한국어로 잘 쓰인 글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탤릭으로 쓰인 부분은 직접 상상한 이미지를 글로 형상화해서 쓴 부분인데, 시도 직접 쓸 정도로 문학적인 감각이 풍부해서 편집위원들도 놀랐다.
죠스 등단해도 되지 않을까.
눔 되게 특이하다고 느낀 점은 창작한 부분을 빼고 보면 공식적이고 단정한 글이지만 사이사이에 작가가 실제로 쓴 듯한 창작이 들어갔다는 점이었다.
루 찰리 글과 현오 글이 같은 이야기를 다른 시각에서 다루었다는 부분이 재미있다. 글 스타일도 아주 다르고. 소재도 하나는 문학이고 하나는 게임인데 주제의식은 같다. 처음 기획안이 나올 때 같은 주제에서 다른 글이 나올 것 같아 기대했었다. 광기에 대해 다루는 부분이 있어서 조심스러웠는데 염려할 필요 없이 적절하게 다루었다.
눔 고민하게 만드는 지점이 많았다. 희곡 수업을 듣는 중인데, 최근에는 연구할 수 있는 희곡 수가 적어서 옛날 희곡을 다룰 수밖에 없는데 오래된 작품에는 여성혐오적인 인식이 당연한 것처럼 담겨 있다. 교수가 “여성혐오가 들어가지 않는 작품을 다루려면 이 수업에서 다룰 작품이 없다.”는 말을 할 정도였는데, 수업을 들으면서 어디까지를 작품성으로 보아야 하고 어디까지를 비판 지점으로 봐야 하는지 고민하던 차에 이 글을 읽게 되어서 공감이 되었다.
ㄷ. 현오, 「전지적 소비자 시점-문제적인 창작자를 대하는 우리」
눔 관심 있는 주제라 재미있게 읽었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도 좋아해서 비판지점을 혼자 정리해본 적도 있었다. 마냥 좋아하고 즐기기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문제의식이 이 글과 닿아 있다. 제작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공을 들여 제작하는 과정에서 제작 기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최근에 사람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읽어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한편 그 결과로 나온 작품이 너무 나이브하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그래서 제작자랑 콘텐츠를 완전히 분리할 수 없다는 입장이 되었었는데, 글을 읽고 나니 뒷부분에서 다룬 것처럼 어디까지 소비해도 되는지도 고민이 되었다.
눔 최근 불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에 대한 피로감까지 같이 다루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문학의 목적이 온전히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므로 문학만으로 명쾌한 결론을 주기는 어렵겠지만, 기사에서는 방향을 제시하고 돌파구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죠스 소비주의와 연관되어있는 것 같다. 모든 책임과 권력을 소비자에게 쥐여 주는 사회가 되었으니까.
루 문학과 게임의 다른 지점을 짚어준 점이 좋았다. 여러 사람이 참여한 작품은 책임의 소지도 불분명해질 수밖에 없고, 그런 점을 어떻게 소비에 반영할 것인지도 고려해야 하니까.
세미 문학은 작가와 작품이 분리되지 않을 때가 많고 작품에서 자의식이 많이 드러나는 편이지만, 게임이나 영화는 작가나 디렉터, 혹은 중간에 참여한 사람 중 누구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는지 결과물만 봐서는 알 수 없다는 점이 다른 것 같다.
눔 보통은 최고 책임자의 영향을 많이 받을 텐데, 결국 제작 과정에 위계가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으로도 보인다.
세미 게임이나 영화 등은 창작자가 다수이다 보니 한 사람이 지휘하고 다른 사람들이 따라가는 건지 아닌지 생각해볼 만했다.
루 사과 꼭지도 좋았다. 어떤 사과를 해도 누군가에게는 불만족스러울 텐데, 올바른 사과에 대한 전면적 합의라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할 것이다.
ㄹ. 루, 「디즈니 리메이크에 PC 한 스푼」
우디 ‘라이언 킹’과 비교하며 상업적인 가치의 중심이 된다고 쓴 부분이 좋았다. 앞에까지는 끄덕이면서 읽었는데 거기서는 아, 이런 면도 있구나 하고 새롭게 다가왔다. 과거의 작품을 현대의 입맛에 맞게 바꾸는 데 총력을 기울이지 않았으면 한다는 시사점도.
눔 이 호의 큰 주제를 고려했을 때 꼭 필요했을 주제라고 생각해서 좋았는데, ‘요즘 디즈니 경향 중에 하나가 다양한 가족 형태를 제시한다.’고 한 부분에 ‘코코’가 들어간 부분은 의문이 들었다. 확대가족과 그들의 모습이 보수적이라고 느껴졌었는데.
루 아시안 확대가족이 서구 입장에서는 굉장히 이질적인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죠스 ‘서구 백인사회’의 시각에서 보는 멕시칸 가정의 모습이 아니었는지 하는 비판도 많았다.
루 디즈니가 가족의 역할을 강조하는 점은 화가 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영화를 보면서 신선하게 느꼈던 지점이기도 했다. 정글북에서 동물들이 모글리를 너무 당연하게 ‘가족’으로 받아들이지만 명확하게 친자식은 아닌 모습이 보여서 그랬다. 조금 더 잘 엮어 썼으면 좋았을 것 같다.
ㅁ. 어디, 「PC쇼핑」
우디 현오 글과 같이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소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직접 창작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대상과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간접 창작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2차 창작자라기보다는 기업으로 치면 말단 직원이나 하청업체 정도. 대표 창작자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소비가 꺼려지는 게 사실인데,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소비를 반대한다고 생각했을 때 이게 간접적 창작자들에게도 영향을 준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하고, 경계를 정하기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 소비자 페미니즘이 대두되고 있는데 사실 소비자가 얼마나 힘을 가질 수 있고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굉장히 회의적이다. 좋은 점이나 나쁜 점이 조금만 있어도 팔아주자, 불매하자 하는 것 자체가 사람들이 너무 신자유주의에 적셔져 가는 것 같고, 이상한 점을 누군가 말할 때가 되지 않았나.
박하 서두에 공감이 많이 되었다.
눔 완전히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화가 자본과 결합하여 ‘문화산업’이 되면서 모순된 특징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여성 히어로물이나 여성 주연이 많이 나오면서 아이들한테 영향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거기에도 많은 맥락이 있고. 얘는 불매, 얘는 구매. 명확하게 나눌 수 없다는 점에 공감이 많이 되었다.
루 ‘파워 페미니즘’ 문제도 같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여자 감독이 돈을 많이 벌면 무조건 잘 된 일인가? 마가렛 대처나 박근혜 같은 경우도 여성이 권력을 얻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냥 지지하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이야기까지 확장되지 않을까.
ㅂ. 날, 「엑소더스: 소속이라는 의무로부터 벗어나기」
눔 특정 분야를 깊이 좋아하면 공통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라 공감이 됐다.
세미 읽으면서,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도 힘들었던 생각이 나서 재미있었다.
박하 분명 처음에는 취미 생활을 하려고, 자유롭게 여가를 즐기려고 들어온 걸 텐데 도리어 그렇게 모인 사람들 사이에 또 규약이 생겨서 스스로를 통제하고 검열하는 게 되게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세미 ‘연뮤덕’ 문화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충분히 공감되었다. 남자 배우들 관련해서 화나는 부분도 납득이 갔고.
눔 관심이 없던 사람도 이해할 수 있게 잘 쓰였다. 본인의 경험담이긴 하겠지만, 취미 문화에도 룰이 있다는 내용에서 그치지 않고 페미니즘 기류와 합쳐져서 더욱 의무로 다가온다는 점이 잘 그려졌다.
죠스 ‘시체 관극’이 무섭다고 느껴졌던 게, 그 규율이 생기는 순간 이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동료 시민들의 범주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교환학생을 갔다가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뒤에 있는 어린이가 자리에 발을 올리거나 공연 중에 질문을 해도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이도 성원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날의 글에서 보이는 모습은 단순히 매너와 규율을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특정 문화 안에 들어오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람의 범주를 정해놓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깨끗하고 고상한 사람만 들어올 수 있고, 그런 사람만 문화 자본을 소비할 수 있는 것처럼.
세미 취향으로 본인의 일부를 표현할 수 있는 건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개인성이 없어지는 느낌을 이야기해주었다는 점에서 마지막 인용구가 좋았다.
ㅅ. 脫
눔 처음 시작할 때는 얼개가 얼마나 있었는지 궁금하다.
어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눔 여러 사람이 쓰는 만큼 한계점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 지점이 덜 보였다. 서로 미루다가 늘어지고 스토리를 안 끌어가기 쉬울 텐데도 뒷부분으로 가면서 긴박감도 있고 재미있었다.
루 처음에는 성별을 정해 놓지 않았는데 오히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남성으로 읽을 것 같아서 일부러 탐폰이나 치마, 언니 같은 것들을 넣어서 신경을 썼다.
눔 기성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운동권 묘사는 전혀 볼 수 없거나, 아포칼립스 장르에서는 혁명과 같은 소재가 종종 나오더라도 제대로 못 다루는 경우가 많아서 하편에서 제대로 보고 싶다.
죠스 찰리의 「천재의 작품은 뮤즈로부터, 혹은 폭력으로부터」. 요즘 잘 읽히는 텍스트에 대한 갈증이 있는데 잘 읽히는 좋은 문장들이었다. 예술이 광기로부터 나온다면서 광기를 숭상하거나 예술가에게는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시선을 해체하려 했다는 점에서 꼭 생각해 보아야 했던 내용이었다.
박하 릴레이 소설, 기사 중에서는 날의 「엑소더스: 소속이라는 의무로부터 벗어나기」.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었던 분야였는데 현실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어 많이 이입하며 읽었다.
세미 찌부찌의 「중립적인 글, 기울어져 있어도 괜찮아」. 요즘 많이 생각하고 있는 지점이어서 더 잘 다가왔다.
눔 비슷한 이유로 어디의 「PC쇼핑」. 덕분에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또 그게 기사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박하 원래는 귀여운 이미지로 생각했는데, 이번 편은 표지도 도시적인 느낌인데 미래도시 느낌의 소설이 있어서 더 인상적이었다.
눔; 이전 독자모임 후기에 ‘귀여움’이 적혀 있던데 그 말대로 쉽게 읽혔다. 전체적으로 잘 쓰여있기도 하고, 다른 글에 비해서 가장 해체적이라고 해야 할까, 어디에 틀어박혀 있지 않은 점이 좋았다.
세미 교지에 연재소설이 들어간 것도 신선하고,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느낌이 정말 좋았다.
어디 하나의 메인 기획을 두되, 목표 지향적으로만 가지 않아서 좋았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구성된 글이 아닌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