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편집위원 이일
작년에 방영한 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정신병원 보호사로 일하는 남자 주인공 강태(김수현 분)와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동화작가인 여자 주인공 문영(서예지 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강태의 형, 상태(오정세 분)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는 캐릭터이며, 어릴 적 어머니를 살해한 범인을 목격했다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캐릭터를 연기한 오정세 배우는 생생한 연기로 호평을 받았고, 지난 5월 열린 제 57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이코지만 괜찮아> 속 상태와 그 배우에게 쏟아지는 칭찬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서 배우가 보여준 연기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재현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생각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모습’을 재현한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ASD)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주목받는 정신 장애 중 하나로, 어린 시기에 나타나며 지속적인 의사소통 결함과 제한되고 반복적인 행동 패턴 및 관심과 활동을 보인다. 2019년 보건복지부에서 진행한 장애인 현황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에는 28,678명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것으로 등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인물을 등장시킨 대표적인 예시는 영화 <말아톤>이 있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 <말아톤>은 주인공이 마라톤에 도전하는 내용을 담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초원 역을 맡았던 배우 조승우도 당시 ‘자폐아를 실감나게 연기했다’라는 찬사를 받았는데, 이는 앞서 오정세 배우가 받은 찬사와 마찬가지로 단지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에 대한 제한적인 관념을 잘 재현한 것에 대한 칭찬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말아톤>은 자폐성 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고 인식을 개선시킨 첫 한국영화라는 의의를 가지지만,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지적하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왜곡된 재현을 보여주어 수용자가 또 다른 편견을 가지게 하기도 했다(김세령, 남세현, 2020).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을 특별한 능력(월등한 기억력, 그림 실력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을 가진 사람이라고 강조하거나, 이런 사람들을 순진하고 천진난만한 성격으로 묘사하는 것은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사람들은 그동안 미디어가 장애를 부정적으로 재현하는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곤 했다. 그러나, 단순히 장애를 소재로 이용해 감동적인 이야기를 퍼뜨리거나 장애를 긍정적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사실과 동떨어졌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재현과 다를 것 없다는 한계가 존재한다(Ellis, 2020). 김미옥(2002)의 연구에 따르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거리감을 조성하는 요인 12개 중 상위 5개는 교육, 정책, 관습 등 일상적인 요인에 관한 것이었지만, 이후 여섯 번째부터 여덟 번째는 각각 ‘장애인을 흉내내는 코미디언 연기’, ‘장애인을 나쁘게 그리는 대중영화’, ‘장애인에 의해 일어난 비극적 사건에 대한 신문, 잡지 기사’로 모두 대중매체와 큰 연관이 있었다. 이러한 결과를 볼 때, 장애에 대한 편견, 사회적 거리감에 대중매체가 끼치는 영향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특히나 최근에는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동영상 공유 플랫폼의 성장으로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영상을 공유할 수 있는 곳이 더욱 많아졌다. 이러한 미디어 기술 산업의 급격한 성장을 고려했을 때, 대중매체 수용자들의 인식과 태도에 이들이 미치는 영향은 이전보다 점점 커진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에 대한 재현은 장애인과 그들이 받는 사회적 편견, 차별에 대한 섬세한 고려가 동반되어야 한다. 대중매체 등의 영향으로 인해 고착화되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은 장애인에게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편견과 차별은 이들을 사회적으로 외면, 배척하고, 이들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치료와 도움을 받지 못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디어에서의 장애 재현에 있어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 중 서번트 증후군 환자가 보이는 특출난 능력은 드라마 제작자들에게 신선한 이야기를 하고 더불어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소재로 쓰였다. 서번트 증후군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나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어떤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지금까지 서번트 증후군을 다룬 가장 대표적인 드라마는 KBS에서 2013년에 방영된 <굿 닥터>일 것이다. <굿 닥터>는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의사’라는, 지금까지는 쉽게 이을 수 없던 두 가지를 연결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장애를 재현한 영화들과 다른 의미를 가졌다.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계속 문을 두드리고, 처음에는 그가 꿈을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주변 인물들도 점차 그를 응원하는 내용은 당시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굿 닥터>의 주인공 박시온(주원 분)은 뛰어난 기억력과 공간지각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의사로서 판단을 내리거나 수술을 할 때 다른 인물들보다 더 월등한 성과를 보이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상태는 뛰어난 그림 실력을 가지고 있어, 드라마에는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도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것으로 추측된다. 그 역시 특별한 능력이 있어 출중한 그림 실력을 가지고 있고, 드라마의 후반부에서는 그러한 능력을 이용해 정신병원 벽화를 그리거나, 동화책 삽화 작가가 되는 모습도 보여준다.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상태는 줄무늬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하고, 집에서 애니메이션 비디오테이프를 반복해서 돌려 보고 대사를 따라한다. 또한 여전히 아이들처럼 공룡을 좋아하고, 동화책을 즐겨 읽는다. 상태가 어린 아이와 같은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어린 아이의 지능을 지닌,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이는 장애라고 생각하기 쉽게 만든다. 이러한 재현 방식을 사용한 것은 이 드라마가 처음이 아니다. <굿 닥터>의 주인공 박시온(주원 분)도 상태처럼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박시온이 가진 뛰어난 암기력과 공간지각능력과 함께 돋보이는 것은 그의 순수하고 어린 마음이다. 그는 소아외과 의사를 꿈꾸며 어릴 적에 형이 준 병원놀이 장난감의 가짜 메스를 지니고 다니고, 자신이 맡은 환자가 무사히 수술을 받으면 의식이 없는 환자의 머리맡에 앉아 “고마워, ~야.”라고 소리내어 말한다. 또한, 상태가 공룡을 좋아하듯 소아 환자가 가진 건담 로봇을 좋아해 자신도 갖고 싶어 하다가 환자의 건담 로봇을 망가뜨리는 소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와 같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인물을 순수하고 아이 같은 성격으로 재현하는 방식은 사람들에게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성격은 이렇게 일관적이구나’와 같은 편견을 심어주기 쉽다.
현실에서도 드라마 속 장애인들의 성격과 행동 양식만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밖의 다양한 모습을 지닌 수많은 장애인들의 모습을 부정하게 하고, 이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장애인의 모습과 다르면 현실의 장애인에게 한 층 더 벽을 세울 것이다. 실제로 장애인들에 대한 이런 방식의 편견과 차별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원샷한솔’은 시각장애인 한솔을 중심으로 장애인의 일상 생활이나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알아보는 다양한 콘텐츠들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해당 채널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10만 구독자를 돌파해 실버 버튼을 받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사람들의 의심이 있는데, 바로 영상에 등장하는 시각장애인 한솔이 정말 시각장애인이 맞냐는 것이다. ‘어떻게 시각장애인인데 카메라를 보고 말할 수 있는지’,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지팡이 없이 걸어다닐 수 있는지’와 같이 그를 향한 의심들은, 의심의 주체들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시각장애인의 모습에 대한 편견 을 보여준다. 그들이 생각하는 시각장애인들은 사람들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항상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함께 채널을 운영하는 PD가 카메라 위에서 박수를 쳐주면 그 방향을 응시하여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려 하는, 자신이 매일 가는 길이 익숙해 지팡이 없이도 걸어갈 수 있는 시각장애인의 존재는 대중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나아가 인식하지 않으려함으로써 지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의 장애 재현은 사람들의 인식을 좁은 영역에 한정시키고 이들이 상상하는 장애인의 모습을 제한하는 방식보다는, 다양한 삶의 방식과 성격, 목표를 가지고 사는 장애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변화해야만 한다.
2017년 미국 방송사 ABC는 한국 드라마 <굿 닥터>를 리메이크 한 미국판 <굿 닥터>를 선보였다. 첫 시즌 방영 이후로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인기를 끌고 있으며, 2021년 현재까지 미국에서는 시즌 4, 한국에서는 시즌 3까지 방영되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해 알리고, 새로운 분야에서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 인물의 모습을 재현했다는 점에서 미국판 <굿 닥터> 역시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작품이었을 것이다. 물론 미국판 <굿 닥터>에서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모습, 예를 들면 굽은 등과 어깨, 말을 더듬는 버릇, 특출난 능력과 낮은 사회성이 그대로 나타난다. 하지만 미국판 <굿 닥터>는 여기에서 좀 더 나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주인공 숀(원작 <굿 닥터>에서 박시온과 같은 역할)의 주변 인물들은 숀이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도와주지 않고, 그와 경쟁하고 그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한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숀과 주변 인물들은 서로를 돕는 관계가 되지만, 이는 비장애인들 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즌 3에서 숀이 임상병리과 의사 칼리와 연인 관계를 맺었을 때, 칼리는 그녀의 진심을 의심하는 동료 의사에게 숀이 자신의 일을 도와주기 위해 새벽까지 함께 있었던 일화를 이야기하며 ‘숀이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좋아하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잘해주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숀과 주변 인물의 관계를 통해, 우리는 여전히 전형적인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재현을 보면서도, 이전의 일방적인 도움을 받던 인물의 재현을 넘어 여러 사람과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인물을 볼 수 있다.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상태는 결국 평생 그를 돌보던 동생 강태를 떠나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상태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떠나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감동적이지만, 드라마의 두 주인공 강태와 문영이 연인이 되고 새로운 삶을 꾸려나갈 시기에 상태가 그 둘을 떠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작위적이다. 어릴 때부터 장애가 있는 형을 먼저 챙기는 엄마를 보며 속상함을 느끼고, 성인이 된 후에도 형의 트라우마와 장애로 인해 항상 떠돌이 삶을 살아야 했던 강태는 상태가 떠나면서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게 된다. 드라마에서는 이를 강태가 가졌던 엄마와 형에 대한 내적 갈등의 해소, 그리고 형에 얽매여 있던 삶으로부터의 해방으로 그려나간다. 하지만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의 가족이 겪을 수 있는 수많은 어려움들을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해만으로 재현하는 것이 충분할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상태는 ‘자기도 이제 다른 작가들과도 일하며 자신의 삶을 살고 싶다’며 강태를 떠나 출판사 대표 상인의 차에 올라타지만, 현실에서도 모든 장애인에게 그러한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와 돌봄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말아톤>이나 <굿 닥터>도 마찬가지로 이들이 자신만의 꿈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돌봄이 아닌, 가족이나 조력자 개인의 헌신과 노력 덕분이다. 이렇게 특별한 능력을 가진 장애인과 이를 헌신적으로 돕는 비장애인 간의 관계를 그리는 서사는 감동적이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사회의 장애인 돌봄 문제를 지워버린다.
여전히 장애를 가진 인물은 미디어에서 평면적으로 그려지고, 그들이 가진 장애는 드라마의 흥미와 내용 진행을 위한 도구로 쉽게 소비되곤 한다. 따라서 우리는 드라마를 즐기는 소비자로서 이 드라마들을 보는 동시에 미디어에서 장애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아 나타나는 잘못된 재현이 없는지, 미디어에서의 잘못된 재현이 우리의 인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이 갈수록 미디어에서 더욱 다양한 장애의 재현 방식과 장애인의 서사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참고문헌
김미옥. (2002).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거리감 연구. 정신건강과 사회복지. 14. 99-126.
김세령·남세현(2020). 영화 <말아톤>에 재현된 자폐성 장애인 연구. 이화어문논집. 51. 440-477.
Ellis, K. (2020). 장애와 미디어(방송문화진흥총서 203). 우리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