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단(丹)
‘커피 한 잔 할래요~’ 몇몇 사람들은 이 문장만 보고도 저절로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웃게 될 것이다. 이는 개그맨 김해준이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에서 비대면 소개팅 컨텐츠를 통해 선보인 캐릭터, ‘최준’의 시그니쳐 대사 중 하나이다. 최준이라는 캐릭터는 독특한 개성에 힘입어 광고계와 방송계의 블루칩이 되었으며, 이후 최준 캐릭터를 넘어 개그맨 김해준의 튼튼한 팬층을 형성하는데 기여하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코로나 블루에 시달린 작년 여름으로 넘어가보자면, 이효리와 비, 유재석이 한데 모여 결성한 그룹 ‘싹쓰리’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우리가 익히 아는 이름 대신 각각 ‘린다G, 비룡, 유두래곤’이라는 활동명을 내걸고, 2020년 여름의 무료함을 물리칠 음악과 무대를 선보인 바 있다.
여기서 조금 더 과거를 살펴본다면, 2019년 EBS 유튜브 채널에 혜성같이 등장해 이듬해 수능특강 표지까지 장식한 국민스타 ‘펭수’가 있다. 누구나 하고 싶었지만 사회적인 시선 등으로 인해 하지 못했던 말들을 펭귄의 모습으로 속시원하게 해주는 펭수는 연령을 가리지 않고 큰 팬클럽을 이끌기도 하였다.
이 셋은 언뜻 보기에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 말고는 특별한 공통점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사실 이 3가지 사례는 디지털 시대에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은 ‘다중정체성’이라는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부캐릭터를 줄여서 부르는 ‘부캐’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다중정체성이라는 개념을 더 친숙하게 제시한다. 이 단어는 기존에 사용하던 캐릭터 혹은 계정 대신 게임 진행의 효율성을 위해 새롭게 만든 부(副)캐릭터를 이르는 말로서 게임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사용되는 단어였다. 그러나 이제 이 개념은 더욱 확장되어 한 사람이 사용 용도에 따라 여러개의 SNS 계정을 동시에 사용하거나, 더 나아가 ‘놀면 뭐하니’ 등의 오락방송에서 유명인들이 새로운 캐릭터를 구축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부캐릭터를 통한 다중정체성의 개념을 대중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자연스럽게 알린 것은 바로 펭수일 것이다. 처음 펭수라는 캐릭터가 등장했을 당시, 대중들은 펭수를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하기보다는 인형탈 안에 있는 사람을 알아내려는 모습을 보였다. 통념상 하나의 육체가 하나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이 보편적이었고, 또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펭수는 이러한 대중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인형탈을 벗지 않고, 펭수는 펭수 그 자체라는 말과 함께 독립적인 정체성을 굳혀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중들은 더 이상 펭수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하지 않았고, 그 대신 펭수의 세계관 안에서 펭수라는 하나의 캐릭터를 온전히 즐기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펭수의 사례를 필두로 사람들은 한가지 육체에 한가지 정체성을 부여하는 대신,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정체성을 제각각의 다채로운 모습으로 선보이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다중정체성이 우리들 사이로 성큼 다가온 순간이었다.
물론 기존에도 트위터와 같은 특정 SNS 상에서 부계정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 경우 부계정은 주로 공개적인 장소와 분리되는 폐쇄적인 장소로서의 기능을 점하였다.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경우 계정을 비공개로 운영하거나, 공개 계정을 이용하더라도 개인의 신상 정보는 비밀에 부치는 등 ‘숨기는’ 특성을 지닌 정체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던 사례들처럼 최근 등장하는 다중정체성은 기존의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습을 다르게 ‘드러내는’ 특성을 갖고 있다. 기존의 정체성 안에서 온전하게 보여주기 어려웠던 개인의 새로운 모습들을 다중정체성의 형태로 표현하면서, 사회적인 프레임을 타파할 수 있는 형태가 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방송인 유재석이 ‘놀면 뭐하니’ 프로그램을 통해 오케스트라 연주자, 트로트 가수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 있다.
이렇듯 드러내기 위한 다중정체성은 유명인, 방송인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활발하게 향유되고 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코로나19의 타격으로 인해, 대중들이 온라인 상에서 타인들과 상호작용하며 다중정체성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오프라인의 기존 정체성과 구분되는 온라인 정체성을 형성하거나, 온라인에서 여러 계정을 넘나들면서 다양한 정체성을 운용하는 식으로 나타났다.
온·오프라인을 분리한 경우의 예시 중 하나로 자신의 이름이나 얼굴 등을 공개하지 않은 채로 활동하는 유튜버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자신에 대한 오프라인 상의 정보를 밝히지 않은 채, 유튜브에서만 사용하는 새로운 이름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이렇게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한 이들은 본래의 직업이나 전공에 상관없이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분야의 영상을 제작하곤 하는데, 그 종류는 요리, 반려동물, 슬라임 등 다양하다. 이처럼 개인이 상황과 필요에 따라 정체성을 분리하고, 분리된 정체성을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것은 우리 사회 속에서 하나의 문화로 굳건히 자리잡게 되었다.
온라인 다중정체성은 대중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자신의 모든 가능성과 특성을 드러낼 수 있는 표현의 장을 제공한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사람의 다중정체성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형성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인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온라인에서 다중정체성이 활발하게 형성되기 이전에도 개인의 정체성이 완벽하게 하나로 통합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인간은 분열된 속성을 갖고 있으며,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 상대에 따라 각각 다른 정체성을 선택하곤 한다. 한 개인이 가족, 친척, 초등학교 동창과 대학교 동기, 직장 동료 등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전부 다르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개인은 ‘부캐’의 대두 전에도 다양한 정체성을 조율하고, 또 이를 상황에 맞춰 제시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정체성은 온라인에서 형성된 다중정체성과는 조금은 다른 논의를 가져온다. 온라인 공간 외에서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정체성들은 모두 하나의 육체에 소속되어 있다. 육체라는 명백하고 공통된 매개체를 통해 정체성들은 서로를 온전히 인정할 수 있으며, 이러한 연결점을 통해 어느정도 단일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에서 존재하는 다중정체성들은 지속적이고 공식적인 사회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탄생 이후 인간은 부모와 학교 속에서 사회화를 경험하는데, 이때의 사회화는 육체에 연결된 정체성을 우선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때문에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학교를 졸업하면서 사회화 교육이 일단락 된 후에도, 육체에 속한 새로운 정체성 또한 사회화 교육의 영향권 안에서 존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온라인 활동을 오프라인의 연장선으로 여겨왔던 기존의 사회적 통념과는 달리, 현재 온라인에서 형성되는 다중정체성은 오프라인과 단절된, 육체에 속하지 않는 새로운 종류의 정체성으로 볼 수 있다. 탈육체화된 온라인 정체성은 기존에 갖고 있던 물리적, 공간적 한계를 쉽게 극복할 수 있으며, 주변 공동체의 인식적인 한계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러나 동시에 기존의 사회화 교육과의 괴리 또한 겪게 된다.
정체성을 책, 사회화를 도서관으로 비유하자면, 기존에 육체에 속한 정체성들은 모두 도서관에서 분류되고 정리되어왔다. 그러나 최근 생겨나는 온라인 다중정체성은 현재의 도서관에서 처음 나타난 유형의 책으로, 도서관에 존재하는 기존 서가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다. 잘 운영되고 있는 도서관을 가진 누군가는 새롭게 나타난 책을 면밀하게 분석해서 기존의 서가 중 가장 적합한 곳에 배치하기도 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 책을 위해서 필요한 서가를 새롭게 만드는 과정을 겪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도서관의 시스템이 완성되지 않았다던가, 굳이 이 책을 도서관 안에 보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이들은 새롭게 등장한 이 책을 도서관에서 분리시켜 검증되지 않은 방식으로 다룰 것이다. 온라인 다중정체성이라는 책은 이렇게 사회화의 도서관에서 쉽게 떨어져나간다.
이와 같이 울타리에서 벗어난 정체성이 생겼을 때, 이 정체성을 사회에서 적절하게 운용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회화를 통해 사회적 경험과 기준을 쌓아올려야 한다. 온라인 정체성을 위한 새로운 사회화는 온라인 사회에 대해 새롭게 정의내리면서 시작한다. 기존에 존재하는 사회화 방식은 온라인 사회를 오프라인 사회의 연장선으로 취급하면서 이를 구분하지 않았다. 그러나 온라인 다중정체성의 시대에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사회가 각각의 특성을 갖고 있는 별개의 공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하며, 이에 따라 구분된 사회화 방식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온라인 정체성의 적절한 사회화에 실패했을 경우, 온라인 정체성은 육체상의 제약을 벗어버리고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발산하는 것을 중점적인 목표로 삼는다. 이렇게 발산하는 욕구에는 인정 욕구, 성적 욕구, 폭력적인 욕구 등 오프라인상에서 사회화 혹은 사회적 제약으로 인해 해소하지 못하는 불건전한 욕구들이 있는데, 이들은 이러한 욕구를 온라인 정체성을 통해 서슴없이 해소하고자 한다. 오프라인 사회에 비해 온라인 사회는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즉각적으로 충족시키기 쉬운데, 이러한 특성은 온라인 정체성이 충동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가지게 만들기도 한다.
사이버 범죄는 온라인에서 폭력적인 정체성을 새롭게 형성한 후, 다른 정체성들이 이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기면서 발생하곤 한다. 일시적으로 불건전한 욕구를 해소하고자 형성한 불완전한 정체성이 만족감을 가져오면서, 이를 주된 정체성으로 채택하고 다른 정체성을 탈락시키는 것이다.
이를 쉽게 살펴볼 수 있는 사례가 바로 텔레그램 ‘n번방’ 미성년자 성착취 사건이다. 이들은 폭력적이고 성적인 욕구를 해소해서 만족감을 불러일으키는 온라인 정체성을 만들고, 이를 주된 정체성으로 이용했다. n번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이 ‘악마의 삶을 멈춰줘서 감사하다’고 말한 것처럼, 이들은 온라인 상에서 또다른 삶을 살고 있었으며 자칭 ‘악마의 삶’을 주된 위치로 삼았던 것이다. 또한 기존 정체성으로 살아가면서 생긴 불만들을 자신의 온라인 정체성을 통해 해소하려고 했고, 자신을 폭력적이며 약자를 지배하는 모습으로 나타낸 것이다. 조주빈은 자신의 정체성을 ‘악마’라고 표현하며 우상화했고, 이후 다른 범죄자들이 자신의 온라인 정체성을 과시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미성년자 성착취 음란물을 제작·유포한 최찬욱은 포토라인에서 얼굴을 당당하게 공개하며 ‘도와줘서 감사하다’고 말했고, 온라인에서 만난 여성을 스토킹·살해한 세모녀 사건의 가해자 김태현도 직접 얼굴을 공개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온라인에서 제왕적 위치에 있던 친구들이기 때문에 자존감이 고양된 상태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는 미성숙하고 위험한 모습으로 만들어진 온라인 정체성이 주된 정체성이 되어버린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이 만든 온라인 정체성을 주로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나’로 인정하지 않는데 이는 책임의 무게가 ‘나’에게 도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들이 온라인 정체성을 ‘내가 아니었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온라인 정체성을 탈락시켜 범죄의 책임을 회피하고 자신의 행동에 어떠한 죄책감도 갖지 않음을 나타낸다. 이들이 대중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피해자에 대한 죄의식을 갖지 않는 것은 범죄를 일으킨 것이 자기가 아니라는 인식에서 비롯되었으며, 자신 또한 주도권을 빼앗긴 정체성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핸들이 망가진 차를 몰고 도로로 나가 사고를 일으킨 운전자가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모양새이지만, 운전자가 직접 그 핸들을 망가뜨렸다는 것을 모두 알고있다. 이들이 계속해서 자신에게 가해지는 책임을 회피한다면 이는 재범으로 가는 가장 쉬운 길이 될 것이다. 가해자들은 이전과 동일한 범죄를 저지를 일말의 기회가 생긴다면 범죄에 사용한 정체성을 또다시 사용하며, 자신의 행동으로 인한 책임 모두를 어렵지 않게 회피할 것이다.
이러한 사건의 주요 가해자들은 적게는 10대 후반에서 대부분 20대 중후반으로, 현재 온라인 상의 다중정체성 문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향유하고 있는 층과 유사한 나이대이다. 이들은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다중정체성 간의 연속성을 배제하고, 이와 극단적으로 다른 정체성을 형성한다. 이 정체성은 사회적인 필요 혹은 요구와는 상관 없이 개인의 부정적 욕구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과장된 정체성과 극단적인 일탈행동으로 이 정체성의 필요를 입증한다. 기존까지 갖고 있었던 ‘나’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하는 의도가 내포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온라인 상의 정체성을 통해 타인이 바라보는 내가 아닌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들어 나간다. ‘내가 원하는 나’라는 것은 적절하게 실현되었을 경우 목표 달성의 수단이자 동기부여의 시작이다. 그러나 이렇게 범죄로 이어지는 ‘내가 원하는 나’는 과도한 자존감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사회화를 겪지 못하면서 극단적으로 배출되는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예시는, 온라인 사회 안에서의 불완전한 사회화와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이버 범죄로서 온라인 다중정체성이 가져온 부작용 중 가장 극단적인 예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극단적인 사례 외에도 일반적으로 다수가 겪는 다중정체성의 부작용 중에는 ‘세컨드 라이프’가 있다. 세컨드 라이프란, 사회가 강요하는 정체성이 주는 압박과 불만족을 거부하고, 온라인 사회 속의 다중정체성에 자신을 의탁하는 현상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중정체성은 건강한 나의 정체성이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며, ‘본질적인 나’와의 연결성을 의도적으로 부정하는 정체성이 될 수도 있다.
한 정체성이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나’ 자체와의 연결성을 단절한다면, 각각의 정체성이 주장하는 바, 방향성, 가치 등이 제각각일 것이다. 그 사람은 결국 불완전한 다중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개인이 어떠한 정체성을 선택해서 말하고, 행동하고, 표현할 때마다 이 방향성이 ‘나’를 향하지 않는데, 이는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책임의 무게가 ‘나’에게 제대로 도달하지 않는 상태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렇게 정체성이 나에게 속하지 못할 때 다중정체성이 서로 어긋났다고 하는데,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각각의 정체성은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부정할 것이며, 정체성의 공존에 대한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괴리를 겪은 사람은 다중정체성이 불완전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괴리감을 불러일으키는 기존의 정체성을 하나 둘 탈락시키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오랜 기간 존재하며 ‘나’에 가장 근접했던 정체성이나 사회적인 상호작용에 반드시 필요한 정체성이 탈락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럴 경우 결국 자아 불안정 상태를 갖고 오며 ‘나’에 대한 소모적인 의심을 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세컨드 라이프 대신, 어떠한 방식으로 다중 정체성을 형성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미디어 학자 ‘레브 마노비치’가 저술한 책, ‘뉴미디어의 언어’에서 찾을 수 있다. 마노비치는 이 책에서 ‘모듈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 개념은 각자의 블록을 연결하고 조합해서 다양한 모양을 만들 수 있는 레고에 비유할 수 있다. 레고 블록은 블록이라는 공통 속성 하에서 구성하고 조합하는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른 모형을 만들 수 있는데, 이처럼 한 사람의 작고 독립적인 특성들이 기존의 정체성을 유지한 상태에서 서로 합쳐지거나 변화하고, 또 수정 가능한 상태로 이어지는 것을 바로 모듈성이라고 한다.
모듈성의 개념을 다중정체성에 적용했을 때, 개인의 각 특성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으며, 특성들이 조합되어서 다양한 정체성의 형태로도 도출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특성들이 반복적으로 조합되고 분해되어도, 결국 한 상자에서 나온 레고처럼 ‘나’라는 하나의 궁극적인 아이덴티티 안에 속해있을 수 있다.
이때 궁극적 아이덴티티는 모든 정체성을 아우르는 특질로 이야기할 수 있는데, 각각의 정체성이 모두 동시에 속할 수 있는 거대한 범주라는 것이다. 만약 레고 블럭으로 다양한 모양들을 만든다고 가정할 때, 집,자동차나 과일, 동물 등 다양한 것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레고 블럭을 언제, 어떻게, 얼마나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모양은 끊임없이 달라질 것이고, 레고 블럭이 늘어날수록 동시에 여러 개의 모양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들 속에서도 그 모든 모양들은 레고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도 다양한 특성을 조합해 다양한 온오프라인상의 정체성을 만들어내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을 하나로 통칭할 수 있는 지점이 ‘궁극적인 나’가 된다.
디지털 사회에서 바람직한 다중 정체성이라고 명명되는 모습들은 모듈성을 통해 실체화될 것이다. 이때 자신의 다양한 성향과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조합하여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모듈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며, 이들은 각자가 가진 긍정적인 특질을 포용해서 자신이 표현하는 수많은 정체성을 하나의 ‘나’로 끌어안을 수 있을 것이다.
‘나’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자기동일성을 전제로 하는 완전한 단일정체성을 지향해왔다. 하지만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익숙해지고 있는 지금, 온라인이 차지하는 범위는 끝없이 확장되고 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다중정체성은 이미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고 있으며, 이제는 정체성을 무조건 통합시키는 데에 집중하기보다는 다중정체성을 적절하게 형성하고 사용하는 법을 알아가야할 것이다.
참고문헌
레프 마노비치, 『뉴미디어의 언어』, 커뮤니케이션북스(2014)
김신곤, [자유성] 사이버 다중정체성, 영남일보, 2020-10-27,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01026010003244
정희윤, 기자회견하듯… 포토라인 선 MZ세대 성범죄자 독특한 심리, 중앙일보, 2021-06-27,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091169
김선희, 자아정체성과 다중자아의 문제, The Science Times, 2005-04-29,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C%9E%90%EC%95%84%EC%A0%95%EC%B2%B4%EC%84%B1%EA%B3%BC-%EB%8B%A4%EC%A4%91%EC%9E%90%EC%95%84%EC%9D%98-%EB%AC%B8%EC%A0%9C/#.YSEbh28146o.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