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김뀨뀨
문우 55호의 메인기획은 노동개혁과 전쟁위협이었다. 55호 독자모임은 “문우 애독자 토크쇼”라는 이름으로 56호에 실렸다.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는 하나였다. 전쟁위협 메인기획이 전반적으로 어땠는지 묻는 질문이었다. 한 독자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 같아서 공감이 잘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더 묻자, 그는 “당장 내 앞에 있는 문제들이 더 크게 느껴지고, 전쟁을 떠올렸을 때 잘 상상이 안 가고, 전쟁을 막는 일은 내가 할 수 없을 거라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참여자들은 어떤 표정이었고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편집위원들이 무슨 코멘트를 덧붙였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저 말만이 내 기억에 남아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은 고민으로 남아있다.
고민이라고 해봤자 매일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건 아니다. 오늘도 아무 일 없이 카페에서 단 것을 마시며 원고를 쓴다. 평화로워 보인다. 사드를 배치했으니 이제 그 후속조치는 분명 누군가가 논의하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미국과 동맹을 더 공고히 할지 중국 눈치를 더 볼지 뭐 이런 건 가끔 뉴스를 통해 듣는다. 코리아 패싱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진다. 북한에서는 또 미사일 도발을 한다. 문 정부가 북한에게 너무 무르고 강대국들 사이에서 박쥐처럼 굴어서 이 사단이 난 거라며 문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댓글을 쓱 훑고 무시한다. 아마 국방부 장관이나 외교부 장관 혹은 대통령 정도가 알아서 잘 하겠지. 상상력이 빈약하지만 어쨌든 내 일은 아닌 것 같다. 누군가 아니면 무언가가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친구와 동생은 몇 주 전에 입대했다. 두 사람 다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심란해보였다. 어머니는 남들 다 가는 거니까, 내 아들만 귀한 건 아니니까 라며 슬픔을 덮어버렸다. 이모는 군대 안 가겠다고 부모 속 썩이는 애들도 있으니 내 동생은 효자라며 어머니를 위로했다. 인간의 존엄성이나 자유, 인권 따위가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배웠지만, 그곳에선 다른 것을 배운다고 한다. 지난 해 누군가는 군 기강이라는 미명 아래 게이라는 이유로 색출당하고 처벌받았으니까. 군대에 갔다 오면 죽음에 대한 공포마저도 잊는지, 재작년쯤엔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하자 SNS에서 군복 인증 대란이 있기도 했다. “제가 나서서 나라를 지키겠습니다.” 제대한 동기들이 학교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4학년, 그 애들은 2학년이 되었다. 내 친구는 삼각지역에 있는 미군부대 내의 버거킹에서 알바를 했었다. 그 애는 영어가 늘었다며 깔깔 웃고는 했다. 등교하다보면 집 근처에 있는 군부대 때문인지 군복 입은 사람들을 종종 마주친다. 내 또래겠구나 생각한다. 내 동생의 친구의 아버지는 군인이다. 그 아이는 몇 차례의 초등학교 전학 끝에 아버지와 따로 사는 것을 택했다. 그 아버지는 엄격하지만 좋은 사람이라 이따금 딸의 친구들을 군부지에 있는 계곡에 초대하기도 했다. 그 날 동생은 북한 땅을 봤다며 나와 할아버지에게 자랑했었다. 나의 할아버지는 6·25 전쟁 당시 10대 중반이었고 북한 평안도에 부모와 6남매를 두고 남한으로 내려왔다. 전쟁과 군사는 우리 삶 속에 자연스럽게 존재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너무나 일상이고 흔하고 당연하게 보인다.
1. “전쟁이 나면 어쩌죠?”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강해져야지”
당연하게 생각하니까 일상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아무런 이벤트가 없으니 이것을 평화로운 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뒤바뀐다거나 산산조각 날 때도 있었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생각했다. 어설픈 규제완화와 그동안 만연했던 적재량 초과 눈감아주기 등등 얼굴이 없는 무언가 혹은 누군가 때문에 수많은 얼굴들이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을 겪으면서도 생각했다. 그동안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성차별이, 남성중심적인 사회문화가 결국 하나의 얼굴을 죽였다.
현재 많은 이들이 상상하는 전쟁의 모습도 이와 비슷하다. 얼굴 없는 거대한 무언가가, 예를 들면 정부나 민족국가가 우리 개인들을 대변하고 전쟁으로부터 지켜줄 것이라고 막연히 상상한다. 외교문제는 흔히 의인화 된 국가들로 설명이 된다. 남한에게는 북한이라는 말썽쟁이 쌍둥이 동생이 있어요. 남한은 두 친구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갈팡질팡 해요. 여기서 남한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의 얼굴은 지워지고 오로지 “남한”이라는 큰 이름에 묶인다. 하지만 전쟁과 관련된 모든 의제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개인들은 그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전쟁을 겪어내고 살아남아야 하는 것은 결국 어떤 민족국가가 아니라 개개인이다.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을 견뎌내야 하는 것은 나일 것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민족국가와 ‘나’를 동일시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생각해왔을까.
그 이유로 하나의 사상만을 꼽을 수는 없다. 다만 한국 사회는 “군사”라는 가치를 우선시하며 그 가치에 대한 문제제기가 어렵다는 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군”이 가치 판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상황들은 흔하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예시를 끌어와 본다. 때가 되면 한국 국적의 법적 남성들은 반드시 군복무를 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법의 이름으로 처벌받는다. 여기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냉소적이다. 남북분단 및 휴전 상황이라는 위험한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당장 전쟁이 나면 어쩔 거야?”라고 묻는다.
위의 질문에서는 그 전쟁을 시작하고 겪고 끝맺는 주체가 각각 누구이고 무엇인지 생략된다. 국가와 개인을 동일시하는 사고가 익숙하기 때문이다. 민족이나 국가라는 개념은 태초부터 있던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 사람과 대한제국 사람과 대한민국 사람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대단위를 인지한다. 자본주의와 산업, 전쟁에 동원되기 위해 근대의 개개인 – 2018년 우리 또한 포함한다 – 은 민족과 국가를 상상하는 법을 훈육 받았다. 독일인은 근면성실하고 시간 약속을 매우 잘 지켜. 영국은 신사의 나라지. 대체로 한국인들이 다른 민족에 비해 유별나게 노래를 잘 부른대. 교환 갔을 때 다른 나라 애들이랑 노래방 갔는데 다들 내가 노래를 잘 부른다고 칭찬해줬어. 그리고 이런 “보편”에 대한 이야기들은 어린이 동화책에서부터 중고등 교과서, 심지어 교양서적에서까지 당연한 듯이 사용된다. 그리고 스스로와 그 보편의 접점을 바탕으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것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여전히 익숙함을 느낀다.
또한 이곳, 남한은 반공이 계기가 되어 반공을 기반으로 세워졌다. ‘공산주의에 대한 부정’을 자신의 속성으로 삼는 셈이다. 가장 첫 정부였던 이승만 정부 때부터 반공을 전제한 훈육이 지금까지도 계속된다는 점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21세기 오늘 초등학교에서 반공을 주제로 웅변대회를 하지는 않으나, 남한사람들은 해가 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북한의 모습을 대중매체를 통해 보며 자란다. 남한에서 북한은 미지의 세계로, 타자로 그려진다. 남한에서 나고 자란 나는 북한사람이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단편적으로만 알 뿐이다. 가난으로 고통 받는 모습, 김일성과 김정일을 찬양하는 모습, 자유를 찾아 탈북을 했다는 탈북민의 모습 정도가 언론을 통해 드러난다. 이따금 김정은이 큰 동작으로 박수를 치는 모습이나 핵발전소의 모습도 비쳐진다. 남한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북한이다. 게다가 이쯤 되면 이런 모습들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당연해 보인다. 나와 내가 아닌 타자를 구분 짓고, 그것을 기반으로 남한과 남한사람들에 대한 정체성은 굳혀진다.
다시 돌아와 “그렇다면 당장 전쟁이 나면 어쩔 거야?”에서 생략된 것을 끄집어내보자. “그렇다면 당장 (북한정부와 남한정부가 전쟁을 선포해서 양자 간에) 전쟁이 나면 (여기 남한에 사는 우리는) 어쩔 거야?” 이것은 국가와 개인을 동일한 ‘생존의 주체’로 사고하는 인식이다.[1] 나는 감히 되묻고 싶다. “얼굴도 모르는,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는 어떤 힘에 떠밀려 내가 전쟁에 휘말려야 해?” 세계를 전쟁과 공포로 가득 찬, 무지막지하게 위험한 곳으로 인식하게끔 하는 발언들은 개인의 시야를 막고 또 다른 길에 대한 상상력을 차단한다. 이런 이유들을 바탕으로 전쟁이나 외교 등 국가 간의 문제는 개인들에게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당장 내 앞에 있는 문제들이 너무 크게 느껴지고, 전쟁을 떠올렸을 때 잘 상상이 안 가고, 전쟁을 막는 일은 내가 할 수 없을 거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그 무기력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민족 혹은 민족국가에 무비판적으로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을 잠시 멈추려고 한다. 그동안 실체 없는 거대한 ‘상상의 공동체’에 스스로를 내맡겼다면, 이제는 다르게 상상해보려고 한다. ‘나’, 그리고 나처럼 곳곳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을 다른 누군가‘들’의 얼굴을 하나씩 그려본다.
2. “전쟁이 나면 어쩌죠?” “괜찮아, 오빠가 지켜줄게.”
나는 “지켜준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상당히 쉽게 돌변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공평”하게 전쟁을 겪지 않는다. 전쟁 상황이 아니었던 때에도 차별받아왔던 약자 혹은 주류에서부터 소외되어온 사람들은 그 차별과 혐오의 구조에서부터 여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일상에서 소외되어 왔던 이들은 결국 강자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위치 혹은 전쟁의 객체 자리에 놓인다. 이들은 남성성과는 다른 속성을 지니고 있고 그 때문에 힘을 가질 기회조차 없어왔다. 조선만이 아니라 일본,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아 전역의 여성들이 동원되었던 일본군 ‘위안부’와 베트남 전쟁 때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여성 강간이 겹쳐 떠오른다. 여성은 전투에 지친 전사들을 ‘위로’하는 도구로 내몰렸다. 적에게 공포를 심겠다는 이유로 여성과 아동 등은 학살의 대상이 되었고, 독일에서의 장애인 집단학살은 유대인 홀로코스트의 본보기가 되었다. 군내 여군 성폭력 사건이 매번 수면 위로 반짝 드러났다가 사라진다. 군 기강을 이유로 군내 성소수자는 색출당하고, 군법에서조차 그는 죄인으로 낙인찍힌다. 그래서 “지켜주겠다”는 말은 너무 변덕스럽고 얄팍하다.
남성성을 우월한 가치로 여기는 사회에서는 그 가치로부터 이탈한 이들을 어딘가가 결여된 대상이자 보호의 대상으로 여긴다. 이들에게는 마치 태초부터 힘이 없었던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여자들은 힘이 없어서 정수기 물통 갈아 끼우는 것도 못해. 불순교제로부터 청소년들을 멀리 떨어뜨려놔야 해. 저 애는 정신지체장애인이니까 네가 이해해주렴. 여기서는 이들의 수동적인 모습이 부각되고 이로 인해 이들이 주체로서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이 흐릿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에서 소외받아왔던 이들은 위기상황에서조차 아무런 목소리를 낼 수 없다.
한편 보호의 주체가 되는 이들은 남성성을 적극적으로 습득하기를 요구받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힘은 박탈되고 그는 언제든 약자의 위치로 떨어질 수 있는 위태로운 존재가 된다. “오빠가 (너를) 지켜줄게”라는 발언을 들여다보자.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보호자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남성성을 끊임없이 드러내야 한다. 특히 그중에서도 자신이 강하다는 어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타자(너)를 약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대할 때 이루어진다. 마치 나를 남한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북한에 대한 관념이 필요했던 것처럼, 그를 “진짜 사나이”, “강한 남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연약한 타자에 대한 관념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보호자는 피보호자를 힘의 논리로 휘두를 수 있게 된다.
결국 위기상황에서 “보호자”는 남성적인 속성을, “피보호자”는 여성적인 속성을 부여받는다.[2] 양성(兩性)을 바탕으로 한 이분법적인 구분은 가정 밖이 남성의 영역이며 가정 안은 여성의 영역이라는 전형적인 가부장제 논리를 떠올리게 한다. 가정 안에서 수많은 폭력들이 가시화 되지 못했던 나날들처럼 전쟁 중에 피보호자의 위치에 놓인 이들이 겪어왔던 고통 또한 수면 아래로 갇힌다. 보호자가 말하는 “지켜주겠다”는 결국 허상인 게 탄로 난다.
강자가 지켜 주리라 예상되는 평화 또한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반복을 막고 이에 대해 일본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수요집회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위안부 끌고 갔듯이 일본 여자들을 끌고 와 그 짓을 하고 싶다"는 발언이 나왔다.[3] 이것은 바로 그 구멍이 숭숭 난 평화이다. 여기에는 남자의 모습으로 상상되는 일본민족과 힘없이 강제로 “그 짓”을 당하는 조선여자, 그것을 막을 수 없는 남자로 그려지는 조선민족이 등장한다. 약했기 때문에 내 것을 빼앗겼다는 분노 혹은 내 것이 더럽혀졌다는 굴욕이 숨 쉬고 있다. 그리고 이 불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발화자는 이제 일본여자를 강간하겠다는 말과 함께 일본민족을 여성화 된 약자의 위치에 놓으려고 한다. 힘을 충분히 길렀다는 믿음이 말 아래에 깔려있다. 이것을 만약 평화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것은 누구를 위한 평화인지 질문하겠다.
고통스럽게도, 여성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남성성이라는 힘 앞에서 고깃덩어리나 성욕 처리와 복수의 도구로 여겨진다. 이것이 힘을 가지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며 여성을 비롯한 비(非)남성에게는 힘을 가질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의 민낯이다. 보호자-피보호자 구도는 전시상황에서든 평화상황에서든 개인들을 상처 입힌다. 다시 되묻는다. “누가 혹은 무엇이 당신을 강해져야 한다고 내모는가.”, “누가 혹은 무엇이 당신을 피보호자의 자리에 가두는가.”
우리는 전쟁 및 군사주의, 남성성을 완전히 분리하여 이해할 수 없다. 전쟁은 남성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목숨을 잃는 무대이고, 살아남기 위해서 개인은 “강함”이라는 속성, 흔히 남성적이라고 분류되는 속성을 몸에 익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약자의 위치에 내몰린다. 이것은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얼굴이 없는 민족국가 또한 마찬가지이다. 스스로의 강함을 드러내야 하고 그것을 위한 수단으로서 남성성이 요구된다. 미사일을 펑펑 쏘고 핵 도발을 하고 거기에 대해 강경하게 대북 확성기를 틀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나는 현재의 얄팍한 평화에 만족할 수 없다. 민족국가의 유지를 위해 개인을 동원하려는 논리와 불평등한 젠더위계를 기반으로 하는 힘의 논리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 전쟁, 외교 등 민족국가들 사이의 일이라고 여겨지는 영역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상상력은 무척이나 좁아진다. 개인은 그저 그들의 피보호자로 여겨져 그 얼굴들은 지워진다. 우리들의 안녕은 남성성으로 무장한 보호자에 의해 위태로운 줄타기를 할 뿐이다.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약육강식을 근거로 하여 생존하는 것이 아닌, 다른 생존의 방법을 함께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와 민족국가를 동일시하는 사고방식, 성차별에 뿌리를 두고 있는 힘의 논리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 바람과 다짐이 나에게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개개인에게까지 닿기를 원한다.
글을 마치며, 아래에서는 민족/민족국가와 남성성으로부터 벗어난 반전평화운동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우리 이름으로 안 돼”(Not in our Name)[4]
(사진 1 캡션 - 집회참가자들은 이 운동을 지지하는 의미에서 "내 이름으로 안 돼"가 적힌 카드를 들었다.)
현재 국가의 보호자라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은 세계‘가 ‘위험한 곳’이라고 기술하고 세계를 위험한 곳으로 바꿔 놓으면서 이익을 얻는다. (참고: ‘잔인한 세계 신드롬(mean world syndrome)’[5]) 그리고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화 된 보호자는 여성화 된 피보호자보다 강하고 똑똑하다고 간주되므로 자연스럽게 피보호자를 통제하는 자로 여겨진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수 있다. 그래서 국가 안보 연구 및 정책 기획이라는 영역은 ‘여성과 아이들’의 안보를 책임질 만큼 충분한 합리성을 지니기 위해 ‘남자다워야 한다’는 가부장적 신념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이 구조에 대해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모여 반전평화를 외쳤다. 네온 불빛으로 찬란하고 분주한 신주쿠에서 금요일 밤, 위민인블랙Women in Black 평화 집회에 참가하는 도쿄 여성들은 ‘우리 이름으로 안 돼!’를 선언하는 표지판을 들고 서 있음으로써 일반적으로 ‘국가 안보’ 체제의 기반인, 남성화된 보호자-여성화된 피보호자라는 가부장적 이원화를 의도적으로 분열시키고 있다. ‘우리의 이름으로 안 돼!’를 자신의 정치적 선언으로 만들기 시작한 여러 국가의 여성들은 자신이 단순히 여성화된 피보호자가 아니라고 선언한다.
2) “나는 전쟁이 두렵습니다.”[6]
(캡션 2 - 전쟁 가해국에 속한 여성들도 기꺼이 반전을 외치는데, 다국적 반전 네트워크인 '위민인블랙(Women in Black)'은 팔레스타인 침략에 반대한 이스라엘 여성들이 시작했다.이들이 2002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는 모습. Ⓒ삼인)
남성화된 보호자가 자신의 강함이나 용맹함을 드러내지 않으면 그는 쉽게 약자의 자리로 추락한다. 강함을 어필하는 것은 자신의 생존과 국가의 생존을 같은 것으로 사고하는 방식을 통해 잘 드러난다. 2015년 여름, 전쟁이 나면 자신이 나라를 지키겠다는 내용과 함께 군복 사진을 올리는 것이 SNS에서 한창 뜨거웠다.
이런 문화가 당연하게 느껴지는 와중에 일본에서는 징병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단체 행동으로 문화를 바꾸고 있다. 그들은 반전 시위에 나와 "전쟁이 무서워 떨린다"를 표어로 삼았다. 표어만 보면 전혀 용감하지 않다. 그러나 개인이 스스로의 강함을 표현하도록 강박하는 사회에서 "무서워서 떨린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용기이다.[7]
<참고문헌>
- 권인숙, 『대한민국은 군대다』, 청년사, 2005
- 신시아 일로,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 바다출판사, 2015
- 조정훈, 「‘위안부’ 첫 증언 김학순, 수요시위 다시 서다」, 통일신문, 2016.01.06.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5038
- 「George Gerbner Leaves the Mean World Syndrome」, Justice News, 2006.01.08.
- 최유리, 「“진정한 페미니즘은 약자와 약자가 연대하는 것”_<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치즈코와의 대담」, 뉴스앤조이, 2017.07.26.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232
[1] 권인숙, 『대한민국은 군대다』, 청년사, 2005, p37
[2] 신시아 일로,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 바다출판사, 2015, p117
[3] 조정훈, 「‘위안부’ 첫 증언 김학순, 수요시위 다시 서다」, 통일신문, 2016.01.06.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5038
[4] 신시아 인로,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 바다출판사, 2015, p117
[5] Mean world syndrome is a term coined by George Gerbner to describe a phenomenon whereby violence-related content of mass media makes viewers believe that the world is more dangerous than it actually is.
‘잔인한 세계 신드롬’은 조지 거브너에 의해 만들어진 용어로, 대중매체를 통해 비춰지는 폭력적인 내용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세계가 실제보다 더 위험하다고 믿게 만드는 현상을 설명한다.
「George Gerbner Leaves the Mean World Syndrome」, Justice News, 2006.01.08.
[6] 이 반전평화 운동은 필자가 2017년 7월 25일 성평등 주간을 맞아 서울특별시 여성가족재단이 주최한 “여성혐오의 시대, 무엇을 할 것인가” 대담에서 들은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되었다.
[7] 최유리, 「“진정한 페미니즘은 약자와 약자가 연대하는 것”_<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우에노 치즈코와의 대담」, 뉴스앤조이, 2017.07.26.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2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