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싱두
실습하러 나오면 좋아요. 직접 돈 벌어서 사고 싶은 것도 사고.
2년 전 휴학하고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 함께 일했던 특성화고 실습생 A가 말했다. 처음에 같은 곳에서 일한다는 점 외에 그와 나에게 딱히 비슷한 부분은 없었다. 출신, 살아온 배경, 취향, 취미 어느 하나도 같지 않았다. 그런데도 묘한 동지애로 꽤 가까워졌다, 월급날이 다가오면 이번 달엔 이걸 하고 저걸 살 생각이다, 도란도란 대화를 이어갔다. 화장품을 좋아하는 내가 A에게 고등학교 졸업 기념으로 생애 첫 립스틱을 선물했을 때, 그는 어린 아이처럼 좋아해줬다. 우리는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하며 같이 출퇴근했다. A가 나보다 더 적은 월급을 받았고, 종종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가게로 직접 연락이 왔다는 게 다를 뿐 우리는 ‘같은’ 노동자였다.
2년이 지났다. 대학생인 내 주변에서 특성화고 학생을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가끔 특성화고에 진학했던 중학교 동창이 어디에서 일한다더라, 같은 지나가는 소문만 들린다. A는 원하던 대로 돈을 모아 자취를 시작했을까, SNS만 보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흐뭇하게 A의 타임라인을 구경하던 중, 다른 이의 게시물에서 손이 멈췄다. 제주의 한 특성화고 실습생이 실습장에서 사망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닌 실습장에서, 감독관 없이 혼자 작업하다 사고를 당했다 한다. 차가운 공장 바닥에서 스러진 이민호 군은 17살이었다.
바랜 기억 속에서 한 문자도 떠올랐다. “아빠 나 콜 수 못 채웠어.” 작년 초 LG 유플러스 콜센터로 실습을 나간 애완동물 전공 B가 아버지와 나눈 거의 마지막 연락이었다. 안산의 한 공단에 실습생으로 파견됐던 특성화고생 C는 상사들의 폭언을 견디지 못하고 공장 옥상에서 투신했다. 희망과 기대에 부분 채 실습장으로 출근했을 학생들은 그곳에서 죽음과 마주쳤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학생과 노동자의 경계에서 이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 결국 일터에서 반복되는 폭력과 소외를 견디다 못한 학생들은 다시 촛불을 들었다. 청소년 인권단체, 특성화고생 권리연합회 등이 흐름을 이끌었다.
올 1월 성남 성보경영고등학교 디자인과를 졸업한 이은애 씨는 얼마 전 특성화고등학생 권리연합회의 운영진이 됐다. 강남의 한 카페에서 은애 씨를 만나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서 학교를 다니고 실습을 나간 친구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그는 슬픔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고 했다. 나도 저렇게 죽으면 어떡하지. 당사자로서 조심스레 내뱉은 걱정 어린 말이 대화 속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의 가까운 친구는 상사의 폭언과 무시에 시달리다, 몸만 상하고 월급은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실습을 중단하고 학교로 돌아왔다고 했다.
“친구는 오전 8시에 출근해서 일찍 끝나면 8, 9시 야근까지 하면 10시에 퇴근했어요. 폭언 수준은 거의 인신공격이었어요, 기침 한 번만 해도 욕을 먹었대요. 친구가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고, 토하다 탈수증상까지 왔어요. 그 상황에서도 실습장 사장은 굳이 병원을 가야하냐며 핀잔을 줬죠.”
작년 청소년 노동단체 청소년유니온이 특성화고 재학생, 졸업생 202명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한 결과, 80.7%가 현장실습 과정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인식했다고 답했다. 임금 체불, 과도한 야근, 욕설 등 언어폭력, 계약과 다른 근로조건 등 다양한 부분에서 학생들은 피해를 입었다. 이렇듯 특성화고 실습제도에서 발생한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학교 수업 파행, 질 낮은 실습 환경, 전공과 일치하지 않는 현장 등의 문제를 인식하고 ‘현장실습 정상화 방안’을 마련해 시행되기까지 했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며 정상화 방안들이 불필요한 규제로 인식돼 파기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는 고졸 취업을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취업률에 따라 특성화고 정부 지원금에 차등을 뒀다.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들은 파기된 규제 하에서 더 많은 정부 지원금을 받으려 질 낮은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규제가 완화되고 정권이 바뀌면서 문제 해결은 지지부진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비극을 낳았다.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났고, 일터에서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중상을 입었다. 죽음에 다가가기엔 너무 억울한 이들이었다. 막을 수 있던 위험이었다.
결국 작년 말 정부는 조기취업 형태의 실습제도 운영을 전면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당사자인 특성화고 학생들 대다수의 반응은 싸늘했다. 사실상 실습제도 자체가 폐지되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특성화고의 존재 의미가 퇴색된다는 것이었다.
“실습 나가서 적게나마 돈 버는 것도 좋지만, ‘돌아갈 곳이 있는 상태’에서 취업활동을 할 수 있는 게 좋아요. 실습하다 적성에 안 맞으면 학교로 다시 돌아와 재취업을 준비할 수 있죠. 그런데 실습제도가 폐지되면 학생 입장에서는 취업 안정성을 잃고, 기업 입장에서는 조금만 가르치면 잘 일할 수 있는 신속하고 비용 대비 효율적인 노동력을 잃어요. 또 졸업 후에 일을 하게 되니까 채용 시기가 안 맞으면 당장 일을 못해요. 그럴 바에 기업은 돈을 더 주고 대학 졸업생을 뽑을 겁니다. 어떻게 보면 고졸 일자리가 더 줄어드는 셈이 되네요. 졸업 후엔 학교도 책임져주지 않을 테니 특성화고의 존재 의미가 사라지게 될 거에요."
정부의 성급한 발표에도 비판의 화살이 돌아갔다. 학생 입장에서 당사자의 의견도 듣지 않은 채 갑자기 폐지를 운운해 당황했다고 한다. 그의 모교에서 실습 관련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졸업 후에 실습을 나가 취업으로 이어지면 어떨 것 같으냐고 물었을 때, 그에 호의적이거나 찬성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이는 실습제도는 유지하되, 다른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기를 원한다는 명백한 의사 표현이었다. 이은애 씨가 소속된 특성화고 권리연합회는 현장실습 폐지를 반대하고, 관련 대책 마련 과정에서 학생 당사자의 의견이 수렴되어야함을 기본 주장으로 삼아 여러 활동을 펼쳤다. 폐지 반대 온라인 및 오프라인 서명운동을 펼치고 국회에 결과를 전달했다. 특성화고 실습생을 대상으로 노동법 강좌도 열었다.
모두가 그렇게 바라 마지않는 특성화고 실습제도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폐지가 능사가 아니라는 걸 당사자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이미 깨닫고 있다. 문제의 근원에 좀 더 다가가기 위해, 특성화고 학생들이 처음 실습을 시작하는 지점에서 출발해보도록 하자. 학생들은 실습 전엔 학교 정규 수업을 듣는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그들은 보통 2학년 2학기부터 3학년 2학기 사이에 전공과에 따라 실습장에 배치되고, 등교하는 대신 작업장에 출근해 수업일수를 채운다. 이때 학생들은 작업장의 고용주에게 직접 고용되는 게 아니라 ‘실습 학생’ 신분으로 학교를 통해 간접 계약을 맺는다. 학교에서 교육받을 땐 “실습장에서 일하는 동안 학생이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하지만, 막상 작업장에서의 처우와 월급 수준은 학생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학교에 가니 노동자라 하고, 일터에 오니 학생 취급을 받는다.
그렇다고 노동 시간과 강도마저 학생 수준인 것은 아닌 모양이다. 노동량은 일반 노동자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그보다 많은 경우가 적지 않다. 일이 어느 정도 손에 익으면 실습생들은 일반 노동자 1로 인식된다. 하지만 아직 ‘학생’이니까 똑같은 일을 하면서 돈은 적게 받는다. 투자 대비 효용이 좋으니 인력난과 재정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은 특성화고 실습생을 은근히 반기는 눈치다. 일반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채용공고를 내지 않고 근처 특성화고에 연락해 실습장 혹은 취업처로 계약하고 싶다 말한다. 학교도 취업처가 하나 더 늘어나는 게 싫지 않다. 내년도 학교 홍보 책자에 한 자 더 늘릴 수 있고, 더 많은 학생을 유치하는 게 사회 내 취업시장에서 학력에 따른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면서 도장을 찍는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학생의 상황이나 의견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기 위한 기업과 학교, 정부의 협력 속에서 실습생들은 자주 고급 업무보다는 당장 일손이 필요한 잡무를 할당받고, 학교와 계약을 맺는 실습장의 상태가 제대로 검증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학교가 백 퍼센트 학생을 신경 쓰지 못해요. 실습이 이후 취업으로까지 이어지려면 좋은 이미지를 가져가야 하니까 주도적인 관리감독이 힘들어요. 실습 나간 학생을 관리하는 선생님이 따로 없어 몇 달에 한 번 담임선생님들이 직접 실습장에 방문해 확인을 하는데, 이마저도 하지 않는 학교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학교도 담임선생님 한 분이 한 반 인원을 관리하는 게 벅차죠. 실습생 관리 시스템이 잘 갖춰져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실습 계약 업체 선정에도 신경을 써줬으면 하는 게, 학교에서 소개받은 취업처가 알고 보니 다단계 업체였던 적도 있었어요.”
인터뷰를 정리하다 보니 어라, 실습생들 상황이 낯설지 않다. 점주님(하청)과의 간접 계약을 통해 대형 프랜차이즈 편의점(원청) 소속으로 일했던 내 상황이 그랬고, 종종 계약직 인턴으로 고용되어 적은 임금을 받고 잡무에만 시달린 내 친구들의 상황이 그랬다. 같은 일을 하지만 어떻게 계약했느냐에 따라 차이나는 월급을 받는 건 노동 시장 내 가장 고질적인 문제인 비정규직 차별과 모습이 거의 똑같다. 질 낮은 실습제도에서 비롯된 문제들은 결국 원청인 대기업과 하청인 중소기업의 비대칭적인 관계,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로 대표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노동시장이 고임금과 높은 직장안정성, 양호한 근로조건으로 대표되는 1차부문과 저임금과 낮은 직장안정성, 열악한 근로조건으로 대표되는 2차부문으로 나뉘어 있고, 2차에서 1차로의 이동이나 진입에 제약이 있을 경우 노동시장이 이중구조화 되어있다고 표현한다.
기존 노동시장의 모순에서 발생한 차별과 소외는 노동자도, 학생도 아닌 모호한 경계에 서있는 불안한 이들에게 그대로 가 닿았다. 제주 특성화고 출신 이민호 군이 실습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을 때, 학교는 먼저 실습장에 책임을 물었고 고용주는 초반 책임을 회피하기 바빴다. 이는 마치 우리 학교 청소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과 임금수준을 규탄할 때, 원청인 대학 본부와 하청인 청소용역업체가 서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 구조 속에서 억압받고 배제되는 것은 역시 학생이고, 노동자이다.
불량한 실습환경에서 일한 학생들은 언제든 대체 가능한 인력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바랐던 고졸 취업 활성화, 노동 시장 내 학력에 따른 격차 해소 등이 ‘진짜’ 달성될 수 있을까? 근본적인 구조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의 문제가 반복되면, 1차부문 노동자와 2차부문 노동자의 간극은 결코 좁혀지지 못할 것이다. 노동 시장 내 양극화와 고착화는 불평등한 사회를 가꾸는 데 지금도 일조하고 있다. 특성화고 학생에 대한 아직은 조금 부정적인 시선과 잔존하는 학벌주의가 그 증거다.
다시 A 생각이 났다. 우리는 동료이자 친구였다. 특성화고 실습생들의 안타깝고 억울한 사고를 접한 후, 그 일이 어쩌면 나의 친구에게 일어났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 한 편이 저릿하고 불편했다. 나는, 우리는 어쩌다 누군가의 사고를, 죽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을까. 얼핏 다 달라보이던 문제들이 자석을 가운데 둔 철가루처럼 한 지점에서 만나, 조금은 먼 너의 문제가 가까운 내 친구의 문제가 되고, 결국 자신의 문제가 되어 어느새 내 앞에 와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크게 달랐던 적이 없다. A와 나는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하며 같이 출퇴근했다. A가 나보다 더 적은 월급을 받았고, 종종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가게로 직접 연락이 왔다는 게 다를 뿐 우리는 ‘같은’ 노동자였다.
자신은 힘이 없다고 말했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어 여러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은애 씨는 알고 있을까. 그는 앞으로 특성화고 학생들에 대한 인식 개선 활동과 실습제도 폐지 반대 및 당사자 중심의 개선 운동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모든 문제를 아우르는 거대한 구조를 파악하고 그것에 작은 균열을 하나씩 낸다면, 앞으로 또 다른 이민호 군, 제 2의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 대학 청소노동자 분들의 부당해고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다시 한 번 안타까운 사고를 당한 분들을 추모하며, 인터뷰 말미에 은애 씨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물었을 때 들은 마지막 한 마디를 적으며 글을 마친다.
그래도 최소한 사람으로서 대우는 받고 일하고 싶어요.
“특성화고 실습생 81% ‘부당대우 경험’”, 내일신문, 2017.11.20.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자살…MB 때 무슨 일 있었나?”, 노컷뉴스, 2017.03.20.
김훈,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고용법제 개선방안”, 월간 노동리뷰, 2015.01, 59쪽
안주엽, “원하청구조와 근로조건 격차”, 월간 노동리뷰, 2015.08, 74쪽
“비용절감 신경쓰는 ‘원청’… 사고위험 내몰리는 ‘하청’”, 동아일보, 2016.06.02.
“산재 사망자 매년 줄어드는데… 하청업체 근로자 사망 늘기만”, 서울신문, 2016.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