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이)의 라임오렌지나무

정리정돈 볍씨

by 문우편집위원회
문우에서 11월 한 달 간 함께한 <97년생 김나영 실천단>은 2017년을 살아가는 청년,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나영이들 공동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수많은 나영이들의 공동의 문제가 개별로 흩어져 이번 생은 망했다는 한숨과 자조로 남지 않도록, 나영이들이 꿈꾸는 변화를 위한 목소리를 모아보고자 했다. ‘97년생 김나영’들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어떤 고민을 안고 살아왔을까, 또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고 싶을까?



[‘나(영이)의 라임 오렌지 나무’ 설문지 전문]


S#1
저는 갓 스물이 된 여대생입니다. 요즘은 눈을 뜨자마자 자취방 방범창을 확인하는 게 일상입니다. 며칠 전에 밤에 덜컹거리는 소리를 들어서요. 누가 들여다보는 것 같았는데, 바람이었겠죠? 빠르게 나갈 준비를 하고 지하철을 타면 출근 시간대라 항상 사람이 많습니다. 겨우 앉았는데 앞에 있는 핸드폰 카메라가 절 향하고 있는 것 같아 신경 쓰였습니다. 재빨리 가방으로 다리를 가렸어요.
학교에 도착했는데, 친구가 최근 성폭행으로 기소된 남자 연예인 얘기를 꺼냈습니다. “걔 불쌍해서 어떡해? 뜬 지 얼마 안됐는데.. 너무 순진해서 꽃뱀한테 당한 거 아니야?”라더군요. 예전에 친한 친구가 성폭력을 당해 신고했는데 경찰이 그 친구에게 본인도 마음이 있던 거 아니냐는 말을 듣고 너무 힘들어했던 것이 떠올라 가만히 듣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아, 안전한 세상에서 살고 싶네요.


S#2
취준생을 끝내고 사회초년생이 된 25살 여자입니다. 세 달 전 여러 곳을 떨어지고 유일하게 한 기업의 최종면접까지 붙었습니다. 두 명씩 면접을 봤는데, 면접관이 저에게 만약 야근을 해야 하는데 애가 아프면 어떻게 할거냐고 묻더군요. 옆에 남성지원자에겐 회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기대처법을 질문했습니다. 마침내 합격통지를 받고 들어온 첫 날. 부장님이 우린 원래 여자 안 뽑는다며, 이제는 양성평등 시대라며 입사를 환영해주셨습니다. 하지만 부장님은 “여자 손이 좀 더 섬세하지~”라며 항상 피피티 디자인을 제게 맡기십니다. 발표는 늘 남자동기의 몫이구요.
어제는 커피 타다 친해진 옆 부서 언니가 퇴사를 했습니다. 옆 부서 차장님이 애칭까지 붙이며 엄청 챙겨주더니 결혼 할 애인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돌변했다고 해요. 지금 사내는 그 언니가 꽃뱀이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저도 스캔들이 나지 않게 조심해야겠어요. 취업할 때, 그리고 직장에서 여성들이 배제되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S#3
저는 졸업을 앞둔 24살 대학생입니다. 며칠 전에 저희 언니가 육아휴직을 마치고 직장으로 복귀했습니다. 언니네 회사에서는 육아휴직을 6개월만 쓰도록 강제하고 있더라고요. 언니는 그동안 임신과 출산과 육아가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형부가 육아휴직을 쓰려고 하니 인사 상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각서를 써야 하더군요. 그래서 형부는 매번 야근을 해야 했고, 결국 언니 혼자 육아휴직기간동안 고생하다가 어쩔 수 없이 엄마한테 조카를 맡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워킹맘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언니가 엄마를 또다시 고생시킬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켜볼 수밖에 없어서 저는 너무 답답했습니다. 그리고 남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저도 나중에 결혼하면 언니와 같은 일을 겪을 테니까요. 저는 일과 육아가 양자택일의 선택지가 아닌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 위 사례는 나영이들이 보고 듣고 겪은 경험과 기사에 실린 인터뷰를 각색해 만든 나영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소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에는 라임오렌지나무인 밍기뉴가 등장합니다. 상처받은 주인공 제제에게 밍기뉴는 슬픔은 위로 받고 기쁨은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입니다. 나(영이)의 라임오렌지 나무가 학우 여러분들께 그동안 주위 친구들과 터놓지 못해 답답했던 고민을 터놓고, 바람을 나눌 수 있는 통로가 되길 바랍니다.


Q.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여러분의 고민과 걱정거리, 한국사회에 바라는 변화를 나(영이)의 라임오렌지와 함께 나눠주세요!

*(본 설문은 2017년 11월 한 달여 간 SNS를 통해 진행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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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통해 모인 답변들 중 일부를 갈무리하여 아래에 실었습니다.


“저는 밤 늦게가 아니라도 택시는 무조건 카카오택시를 이용합니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니까요. 카카오택시를 이용했어도 꼭 가족이나 친구에게 카톡으로 나 10분쯤 뒤에 집 도착하는데 연락 없으면 신고해 달라는 말과 함께 차의 정보를 카톡으로 보내놔요. 도착하면 나 도착했다고 다시 말해줘요. 이런 사소한 불편을 왜 여성 혼자서 고스란히 부담해야 하는지 씁쓸합니다. 걱정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또, 저는 게임을 좋아해요. 그래서 인터넷방송이나 유튜브로 게임 방송들을 자주 보는데, 스트리머 분들 뿐만이 아니라 같이 그 방송을 보면서 채팅을 하는 시청자들이 굉장히 차별적이거나 혐오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심지어는 최근에 큰 이슈가 된 불법촬영 동영상(몰래카메라)을 주제로 드립을 치는 것도 저는 봤어요. 실제 피해자가 존재하고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는 게 분명한 상황에서 이 주제로 농담을 하는 게 저는 같은 인간으로서 믿기지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을 지적하면 ‘메갈’이나 ‘프로 불편러’라는 소리를 듣지요. 같은 방송을 보면서 왜 저만 이렇게 불편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저와 제 주변 여성들은 공중 화장실을 갈 때 불안해하면서도, 같이 화장실을 가달라고 하면 상대방이 귀찮아 할까봐 선뜻 말 못하며 불안감을 안고 그냥 다녀오거든요. 이런 사소한 불편들은 이외에도 굉장히 많아요. 지금 막상 쓰려고 하니까 다 생각이 나지 않을 뿐. 저는 이 프로그램 제목의 아이디어가 된 ‘82년생 김지영’ 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살면서 이렇게 읽다가 울컥해서 덮고 다시 읽고를 반복하면서도 놓을 수가 없었던 책은 처음이었어요. 이 프로그램이 한국에서는 곧 ‘메갈’ 로 통하는 ‘페미니즘’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매장당하지 않길 바라요. 이런 프로그램 용기 내어 시작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저는 더욱 더 공부하고 더욱 용기 내어 싸울 것 입니다. 같이 힘내요! ❤”


“택배가 오는 건 즐겁지만 기사님이 오시면 반갑게 맞이하기가 두렵다. 혹시 기사님이 아니라 위험한 사람일까 봐. 나는 인터폰으로 익숙한 기사님이 확인하고 불안하면 문 앞에 놓아달라고 하는데 남동생이 초인종 소리가 들리자마자 문을 벌컥 여는 걸 보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아무런 의심 없이 문을 벌컥 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하철을 타고 갈 때 제 맞은편에 앉은 남성이 핸드폰을 좀만 높게 들고 있어도 혹시 나를 도촬하는 게 아닌지 괜히 움츠러들고 걱정된다. 남자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내가 누군가의 핸드폰에 몰래 담겨질 수도 있다는 걱정 같은 건 하지도 않겠지? 이런 걱정을 한다고 토로하면 공감을 못할 뿐더러 오히려 제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사람이 되더라. 모든 여성들에겐 이게 현실인데. 나도 제발 이런 내 걱정이 정말 ‘쓸데없는’ 것이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많은 범죄들을 접하면 그러니까 짧은 치마 입지마라, 밤늦게 돌아다니지 마라 등등 "피해자"인 여성에게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이 사회가 너무 기형적이라 생각한다. "가해자"의 잘못도 "피해자"의 잘못인 양 돌아가는 이 세상 속에 살아가는 게 너무 답답하다."


“사회생활 속 여성에 대한 성희롱이 너무나 만연하고 유머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화가 난다. 실제 처벌 수위를 높였으면 좋겠다.”




“아이를 낳을 권리, 낳지 않을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

“성별에 관계없이 능력만으로 취업이 되는 사회”

“여성이 밤늦게 혼자 귀가해도 안전한 사회”

“남자가 지켜줄 필요 없는 세상”

“남자가 디폴트가 아닌 사회”

“여성이 일상을 마음 편안히 다닐 수 있는 사회”

“몰카 처벌을 강화하고 여성이 맘 편히 화장실을 갈 수 있는 사회”

“페미니스트로서 당당하게 자신의 인권을 되찾을 수 있는 여성들이 넘치는 사회”

“임금차별 없는 나라”

“여성이 혼자 다녀도 불안하지 않은 사회”




당신은 어떤 걱정거리를 안고 있나요? 또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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