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비상
으레 ‘술이 들어가면 나오는 이야기’라고 하는 걸쭉하고 우울한 말들이 있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지만, 알코올 없는 상태에서도, 나에게 종종 찾아오는 슬픔을 쏟아내는 순간이 있다. 친한 사람이 면접에 떨어졌거나, 큰 병에 걸렸거나, 어떤 사람과 이별했거나, 사고를 당했거나 할 때 말이다. 나도 그렇고 우리 모두는 믿을 수 있는 가까운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슬픔을 나눈다. 어떤 어두운 식당에서, 집에서, 길거리에서, 새벽까지 눈시울을 붉히거나 열띤 얼굴을 하며.
이 글을 읽는 대부분에게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내가 나누었던 내밀한 이야기 중엔 분명 밝히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다. 하지만 반대로, 그중에는 사회에 대놓고 말하지 못해 미쳐버릴 것만 같았던 이야기들도 있다. 이 글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을 공공연히 말하지 못해 속이 곪아들어갔던 상황들에서 내가 겪은 혼란을 통해, 내가 바라는 세상의 모습과 우리의 미래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
“이번 시험 완전 망했어. 학점으로 묘비 세웠다니까? 이거 무슨 말인 줄 알아? D+ 옆으로 돌려 봐.”
“난 걔가 진짜 좋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손절하게 됐는지 모르겠어. 너무 마음이 안 좋아.”
“그분 어릴 때 몇 번 뵀었는데 돌아가시다니 솔직히 안 믿기고 인생 너무 알 수 없는 것 같아.”
전부 내가 했던 말들이다. 이런 것들은 아무 곳에서나 말할 수 없다. 보통 친한 사람들 앞에서만 말할 수 있었고,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나에게 선뜻 위로를 건네주었다. 그렇게 얘기하고 나면 나는 조금 더 홀가분해졌고, 이 슬픈 일들을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조금 더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개인적인 자리에서 말하고, 슬픔을 나누고, 기억하고, 돌아보는 식으로 차츰, 조금씩 더 나아질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머리 짧게 자르고 대충 ‘안 여자같이’ 입고 다니니까 손님이 나한테 뭐라고 막 하는 거야. 남자냐고.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고 왜 그렇게 하고 다니냐고. 그리고 계속 중얼중얼… “그래서 여자냐?”고 물어봐. 진짜 짜증 나더라.”
“저번에 그 사람이 나보고 되레 욕을 하더라고. 미친년이라고. 지가 나를 협박했으면서, 그래도 되는 거야? 건장한 남자가 내 집도 다 알고 협박도 하는데 안 무섭겠냐고. 정말 정신이 나갈 것 같아.”
“같이 (트랜지션) 수술비 모으자고 이야기도 막 했었고, 키배도 같이 뜨고 그랬었는데. 유서도 읽었는데 장례식장에 가지도 못하고. 아직도 그날만 생각하면, 그날 꿈을 꾸면 너무… 모르겠다 그냥 설명을 못 하겠어.”
이것들도 전부 내가 했던 말들이다. 이 또한 보통 친한 사람들 앞에서만 말할 수 있었고, 나의 친한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위로를 건네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느꼈던 아픔이 그다지 해소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나는 어쩐지 화가 났고, 이런 말들을 아무 곳에서나 할 수 없다는 걸 여실히 느꼈다. 이 말들은 부모님 앞에서도, 어떤 공공연한 장소에서도 할 수 없었다.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다른 슬픈 일이 남긴 상처들과는 아예 종류가 다른 아픔이 느껴졌고 그걸 낫게 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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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는 어떻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차이가 너무 아팠다. 사실 이 차이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적합한 언어를 고르기조차 힘들었다. 무어라 말하면 좋을까, 내가 말하지 못했던 것들은 무엇일까? 그런 것들의 공통점을 찾자면, 대놓고 공공연하게 말했을 때 나의 사회적인 위신이 떨어지고 누군가에 의해 공격을 받을 것 같은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 사회의 지배적인 인식이 공감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었다. 까놓고 말하면 페미니즘, 퀴어, 만성적 정신질환, 위계에 의한 폭력의 경험, 그런 어쩌구들. 나의 슬픔이나 경험에 이런 소수자성이 관련되기만 하면 누군가 내 입을 틀어막고 그런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았다.
위에 언급한 예시들을 다시 보아도 그렇다.
“내가 머리 짧게 자르고 대충 ‘안 여자같이’ 입고 다니니까 손님이 나한테 뭐라고 막 하는 거야. 남자냐고.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고 왜 그렇게 하고 다니냐고. 그리고 계속 중얼중얼… “그래서 여자냐?”고 물어봐. 진짜 짜증 나더라.”
이건 어디 가서 말하면 누군가에게 너 꼴페미냐, 좀 더 여자같이 하고 다니면 될 일 아니냐, 이런 말들을 들을 소리고.
“저번에 그 사람이 나보고 되레 욕을 하더라고. 미친년이라고. 지가 나를 협박했으면서, 그래도 되는 거야? 건장한 남자가 내 집도 다 알고 협박도 하는데 안 무섭겠냐고. 정말 정신이 나갈 것 같아.”
이건 뭐랄까, 말하기엔 으레 사회에서 폭력의 피해자를 바라보는 ‘네가 미친년’이라는 시선을 받을까 봐 무섭고. 뭔가 이걸 밝히자니 내가 이런 피해를 입었다는 걸 드러낸다는 점 자체가 나를 약한 사람으로 만들고 나를 무너뜨리는 기분이고.
“같이 (트랜지션) 수술비 모으자고 이야기도 막 했었고, 키배도 같이 뜨고 그랬었는데. 유서도 읽었는데 장례식장에 가지도 못하고. 아직도 그날만 생각하면, 그날 꿈을 꾸면 너무… 모르겠다 그냥 설명을 못 하겠어.”
이건… 트랜지션이 무슨 뜻인지부터 말해야 할 것 같은데, 트랜지션은 시술 혹은 수술을 통해 트랜스젠더가 자신이 성별불쾌감을 느끼지 않는 몸을 찾아가는 과정 혹은 그 행위를 뜻한다. 그러니까 이 주제에 대해 말하려면 일단 상대한테 커밍아웃부터 해야 하고. 내가 말하는 상대나 사회가 퀴어들이 죽어 나가는 이유를 이해할지도 모르겠어서 말하기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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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그런 ‘말하지 못함’의 상태에 머물러 있기 싫었다. 그러니까 ‘내가’ 침묵해야 한다는 점에 화가 났다. 나를 이렇게 괴롭게 한 건 사회인데, 세상인데, 왜 세상 아무도 슬퍼하지 않지? 이 아픔에 책임이 있는 너희는 왜 들으려고 하기는커녕 모르쇠하고 있고, 내 입을 틀어막지? 이런 생각들이 계속되니, 나와 마찬가지로 소수자성에 기반한 아픔과 폭력을 겪거나 이를 주변에서 목도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궁금해졌다. 그러니까 나도 이랬는데, 다른 사람이 이런 감정을 한 번도 느끼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그렇게 나는 점차 개인적인 애도와 사회적인 애도를 구분해 갔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 애도라고 하면 누군가 죽었을 때 보내는 슬픔과 아쉬움의 감정들을 총칭하지만, 나는 그 의미를 좀 더 넓게 사용하고 싶다. 나에게 개인적인 애도란, 아까 말했듯 내밀한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위로와 지지 같은 것이다. 이것들은 지금도 나름 잘 이루어지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인 애도는 이와 다르다. 내가 말하는 ‘사회적 애도’란, 명백히 사회의 책임인 슬픈 일, 폭력, 비극이 발생했을 때, 사회 제도와 모든 구성원이 그 발생에 대한 사회의 책임을 인정하고 슬픔과 연대를 표현하며 이 비극을 멈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말하는 ‘사회적 애도’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대상에 따라 사회적 애도를 받을 자격을 심사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폭력과 비극의 피해 대상이 ‘사회의 시선에서’ 못마땅하다면, 그들의 슬픔은 우리의 책임이 아니라는 듯 외면한다.
예를 들어보겠다.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Transgender Day of Remembrance, TDOR)을 아는가? 매년 11월 20일은 차별과 혐오로 숱하게 목숨을 잃거나 폭력에 시달린 트랜스젠더들을 추모하기 위한 날이다. 이날, 세계 곳곳에서는 행진 및 시위가 열린다. 참가자들은 트랜스젠더들에게 가해졌으며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모든 폭력을 기억하라, 추모하라, 그리고 애도하라고 소리친다.
이들이 거리로 나오고 행진하며, 지금 여기 서 있는 우리를 보고, 스러져 간 이들을 추모하라며 소리 질러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이들의 슬픔은 이때까지 말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종류의 것이다. 트랜스젠더 당사자(혹은 연대자라도)가 사회에 나와 소리를 지르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이렇게 소리를 질러도 그 아픔에 연루되지 않은 대다수는 그 폭력을 모른 척하거나 ‘그래도 되는 것’으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트랜스 패닉(Trans Panic) 방어’에 대해 아는가? 트랜스젠더에 대해 혐오 폭력/살인 범죄를 저지르면, 가해자가 자신을 ‘소수자인 상대방이 성적으로 접근하여 패닉한’ 피해자라 항변하는 것이다. 유사한 궤변으로, 피해자가 동성애자인 경우에 가해자가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게이 패닉(Gay Panic) 방어’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진술에 대해, ‘그럴 만했다’라고 배심원이 형량을 낮춰 주거나, 판결이 더 유해지는 경우는 계속 존재해 왔고 아직도 반복되고 있다. 성소수자 당사자의 아픔과 피해 사실이 전혀 사회적으로 애도되지 못하고, 지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뿐인가? 사회적인 폭력과 차별이 작용하며 애도를 어렵게 하는 예시는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장애인 지하철 시위)에서도 말이다. 장애인이 원하는 곳으로 수월하게 이동하지 못하고, 안전하지 않은 리프트에서 추락해 중상을 입거나 사망하는 일은 2001년 오이도역에서, 2002년 발산역에서, 서울역과 신길역과 혜화역 등 많은 지하철역에서 반복되었다. 그렇기에 장애인 및 연대자는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권리를, 장애인이 원하는 곳으로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를 보장하라며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이에 대해 우리 사회는 현재 어떻게 대답하고 있는가? 공권력을 동원해 그들이 지하철에 들어오는 것을 강압적으로 막고, 보조기구를 파손하였으며, 이들의 시위를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규정지으려 하고 있다. 경찰과 서울교통공사의 폭력적인 퇴거 조치와 압박만 이동권 시위를 가로막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대낮에, 출근 시간에 웬 시위냐며 시끄럽다고 귀를 막고, 손가락질하고, 불편하다며 짜증의 눈길을 보낸다. 그러나 이 사회의 많은 시설, 제도, 공간 등이 비장애인의 기준에 맞추어 설계되었으며,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는 ‘정시 출근’ 등의 여러 이념 또한 그러하다. 그럼에도 이 사회는 장애인이 마주하는 차별과 폭력에서 사회의 책임을 인정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차별과 폭력을 멈추라 요구하는 목소리를 비난하고 있다.
다른 예시를 하나 더 들어보겠다.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강제폐쇄 사건을 아는가? 파주시는 2023년 용주골의 성매매 집결지를 마음대로 없애버리겠다고 선언하고서, 갈 곳이 없는 성노동자[1]에게 현실적인 주거와 생계유지 대안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성노동자는 안정적인 주거 공간이 없어 일터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용주골에 모여 일하는 성노동자 역시 그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용주골은 그들의 일터이지만 집이기도 하였다. 파주시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한순간에 살아갈 곳을 잃을 위기에 처한 용주골의 성노동자들은, 지금까지도 파주시와 파주시의 결정을 옹호하는 사람들에 맞서 삶의 터전을 지켜내기 위해 투쟁 중이다.
그러나 파주시는 용역을 불러 성노동자를 물리적으로 밀쳐내고, 끌어내리고, 갖은 폭력을 가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성노동자도 이 사회를 구성하는 존재이다. 그들도 살아갈 권리가 있다. 성노동 현장의 혐오와 폭력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는커녕 터전을 지상에서 밀어내버리는 파주시 및 파주시의 결정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행위는, 틀림없이 성노동자를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누군가는 불법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니 없어져서 잘 되었다고 하고, 누군가는 성노동자에 대한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언사를 쏟아낸다. 그들이 성노동에 유입된 배경에서 어떤 사회적 폭력과 소수자성이 작동했는지, 사회가 (용주골 사건에서는 파주시가) 어떻게 성노동자를 차별하고 멸시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말이다. 이렇게 성노동자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격 심사’에서 연거푸 탈락하였으며, 살아갈 자리를 잃고 사회적 멸시를 감당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애도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외에도 사회가 마땅히 애도하여야 하지만 애도하지 않은, 애도하지 않고 있는 것은 수두룩하다. 그런 애도되지 못한 많은 것들이 사회적 시선과 압박 속에서 아예 발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소수자가 겨우 목청을 높여 사회에 소리치더라도 위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사회적 애도를 받기란 매우 어렵다. 지금, 소수자에게는 사회에서 마땅히 주어져야 할 애도가, 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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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앞서 열거한 예시 속 소수자들의 소리치는 목소리와 공명한다. 이 글은 사회의 모든 이에게, 소수자가 겪은 사회적 차별과 폭력에 대하여 애도해 달라고 울부짖고 슬픔에 동참하라고 윽박지르는 글이다. 왜냐? 소수자가 겪은 아픔과 폭력은 개인적인 위로만으로 해결되기도 어렵고 그래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다른 개인 간의 가해-피해 관계가 그렇듯, 사회가 해를 가했다면, 당연히 사회가 그 피해의 회복과 재발 방지에 동참하여야 하니까 말이다. 소외당하는 집단과 차별받는 성원을 사회에서 들여다보고, 관심을 가질 때에만 소수자는 이 사회에서 내가 폭력을 당하고 차별받을 일이 점점 줄어들리라 안도할 수 있다. 그제야 진정한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소수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주체는 사회 그리고 사회적 구조이다.[2]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런 큰 사회 속에서, 사회에 영향을 받는 개인들과 함께 살아간다. 개인이 폭력의 주체가 될 수 있음과 더불어 우리는 사회를 떠나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사회가 그 속의 존재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폭력에 책임이 있을 때, 해당 존재에게 사회적 애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존재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는다. 그렇기에 나는 우리에게, 사회에 의해 숱한 아픔을 겪은 모든 소수자에게 애도를 표하라고 사회를 향해 외치고 싶다. 그것이 소수자를 사회의 성원, 권리 있는 존재로 인정하는, 응당 필요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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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과정이 어떻게 진행될 수 있는지, 그 방향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여태껏 소수자들이 하던 대로, 소리를 지르고 울부짖고 투쟁하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서서히 소수자의 비극을 알려가는 것 외에 어떤 방법이 있는지 고안해 보려 했지만 역시나 어려웠다. 역사적으로, 이런 방법들이 많은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사실이다. 창문을 깨고 불을 지르고 달리는 경주마 앞으로 몸을 던지며 여성 참정권 및 여성 인권을 위해 투쟁한 서프러제트처럼, 분명 이런 방법들이 빛을 발한 순간들은 많다. 그렇기에 여전히 많은 존재가 투쟁하고 있으며 희망을 잃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몇백 년을 축약한 역사책이 아니라 일분일초가 정직하게 흘러가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로서는, 변화될 세상이 너무 멀게만 느껴질 때가 분명히 있다.
그래서 나는 현실적인 방법을 고민해 보는 대신, 기쁜 상상을 해보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모든 존재를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그들이 겪은 사회적 차별과 아픔에 애도하는 사회가 찾아온다면, 그건 어떤 모습일까? 이에 대한 나만의 답으로 내가 정말 좋아하는 볼룸 문화와 하우스에 대해 소개하고 싶다.
‘볼(Ball)’은 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혹은 라틴 아메리카인 퀴어들이, 사회적 성별 고정관념에 들어맞지 않는 옷을 입고 치장하며 멋있는 사람을 겨루는 행사로 시작되었다. 이는 1960~1970년대에 런웨이, 패션, 보깅 등 여러 대결 카테고리를 서로 겨루면서 퀴어하고 ‘색다른’ 자신을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뽐내는 ‘볼룸(Ballroom) 문화’로 발전하게 된다. 볼은 주로 ‘하우스(House)’에 의해 개최되었다. 하우스는 유럽, 아메리카 등지에서 길거리에 내몰리고 가족과 주변인의 폭력에 시달리고 갈 곳이 없던 퀴어들이 모여 만든 공동체이다. 그렇기에 하우스는 원가정의 대안으로서의 의미를 가지는 동시에, 같은 하우스에 소속된 사람들끼리는 서로를 살뜰히 돌보고 서로의 아픔을 치유하며 ‘안전한’[3]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힘쓰는 동시에 폭력에 맞섰다.
결과적으로, 하우스에서는 아프고 폭력에 휩싸인 서로를 돌보고 애도하는 동시에, 웃고 춤을 추었다. 이 하우스 및 볼룸 문화는 영화 ‘파리 이즈 버닝(Paris is Burning, 1991)’, 서바이벌 프로그램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Rupaul&s Drag Race)’, ‘레전더리(Legendary)’ 등을 통해 영미권에서 대중적으로도 유명해졌다. 동시에 그 출연자들이 겪은 아픔과 폭력, 하우스 문화의 애도도 조명을 받으면서 (아직 충분하지는 않지만) 성소수자 차별에서부터 HIV 감염인 차별, 유색인종 차별 등 여러 소수자성 혐오에 대한 많은 대중적 반성과 사회적 애도를 이끌어내고 있다.
하우스 및 볼룸 문화는 21세기가 되어 한국에도 들어오게 되었다. 물론 해외의 것을 한국에서 참고하여 들여왔기 때문에 창시된 배경이나 맥락이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서바이벌 프로그램 ‘퀸덤’의 ‘너나 해’ 무대나,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댄서이자 한국의 하우스인 ‘하우스 오브 러브’의 마더(Mother)[4] 러브란(Love Ran)의 출연으로 이런 문화들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나는 한국의 하우스들이 개최하는 볼을 자주 보러 다니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나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신나게 자신을 뽐내는 광경과, 그럴 수 있는 자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행복하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나는 그 이면에 있는 슬픔을 안다. 다르다고 질타받는 아픔, 사회에서 기대하는 모습이 아니라서 겪는 폭력. 이 볼룸을 나가 길거리를 걷고 사회 속에 나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볼룸을 즐기는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다. 볼룸 속 우리는, 우리의 고통을 알리고 해소하기 위해 용기를 내서 사회에 소수자성을 드러냈을 때 애도 받을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실제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런 존재는 퀴어함으로 인해 질타를 받는 존재들뿐만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예시들을 넘어서도 수많은 각기 다른 존재들에게는 비장애 중심 사회에 의한 폭력, 노동 형태에 따른 차별, 민족이 다르다고 가해지는 폭력 등 수도 없는 아픔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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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 모든 소외당하는 존재에 대한 ‘사회적 애도’를 달성하는 건, 우리 사회가 몇십 세기를 지나는 동안에도 완벽히 이루어내지 못한 일이다. 이 일은 지난할 것이고, 많은 이를 소진시킬 것이며, 사실 완벽히 달성할 수도 없을 것이다.[5] 하지만 나의 마음속에는 기쁜 상상이 하나 있다. 나는 우리 세상이 하나의 거대한 하우스, 거대한 볼룸이 되어갈 수 있으리라 믿고, 그렇게 변하기를 바란다. 하우스 속 존재가 슬픈 이야기를 나누면 그것을 다 함께 받아들이면서, 신나게 춤을 추는 그런 자리 말이다. 이 모든 비극과 폭력의 이야기가 활발히 공유되어, 거대하고 복잡한 이 사회라는 볼룸 속에서 잊히고 흐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하우스에 속한, 볼룸에 참여한 모든 자의 슬픔에 자리를 같이하는 모든 존재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으면 좋겠다. 당당하게, 같이 우리의 세상을 바꾸어가 보자고 이야기할 수 있고 서로를 돌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미래에서는 볼룸 속을 당당하게 활보하는 것이, 그러니까 이 사회를 멋있게 횡단하는 삶이 더욱 쉬워질 것이다. 그런 미래에서는 누구나 이 험난했던 볼룸 속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멋있게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슬픔과, 애도와 대놓고 함께하는 삶들이 가득해지는 곳이, 역설적이게도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상이리라. 더 많은 눈물이 흐를수록, 우리는 더욱 신명나게 춤출 수 있으리라.
[1] 성노동자라는 단어의 사용은 그들을 노동하는 존재이자 노동 현장에서 불합리한 차별을 당해서는 안 되는 존재로 호명하기 위함이다. 이는 ‘성노동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며 성노동을 그만할 수 있게끔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담론과 양립할 수 있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이미 성노동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그 노동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안녕과 처우 개선에 대한 목소리 또한 정당하며 꼭 경청되어야 하는 이야기이다. 이를 위해 사용되는 전략이 성노동을 노동으로 호명하는 것이다.
[2] 그리고 그 사회와 사회적 구조 속에서, 각 개인도 폭력의 주체가 되어 사회의 차별적인 이념과 혐오를 답습하고 재현한다. 이 글은 그런 개인의 폭력과 혐오에 대한 책임을 묵인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라, 그런 개인의 폭력과 혐오도 사회와 사회적 구조에서 파생되었음을 짚고자 한다.
[3] 안전한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은 사실 허상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모든 폭력을 막겠는가. 하지만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그 노력과 기민함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노력과 기민함이 계속되는 것이 허상처럼 보이는 ‘안전한’ 공동체를 세상 곳곳에 위치시키는 데에 기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4] 속히 말해 하우스에서 ‘엄마’ 같은 기능을 하는 사람. 자신보다 늦게 하우스나 볼룸 문화에 입문하는 성소수자들을 ‘칠드런(Children)’으로 두고 돌본다. 보통 여성으로 정체화하거나, 여성성을 강조하는 드랙을 선보이는 사람, 즉 드랙퀸이거나 하는 경우 이 호칭을 쓴다.
[5] 완벽히 달성하였다 믿는 순간, 우리가 누군가를 지우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이미지 출처(본문에 등장하는 순서대로)
Julie Kratz. “An Allyship Guide to Celebrating Transgender Day Of Remembrance”. Forbes, 2023.11.20., https://www.forbes.com/sites/juliekratz/2023/11/20/an-allyship-guide-to-celebrating-transgender-day-of-remembrance/.
조각보. “TDOR 메모리얼 파티 <그리고, 춤추자> : 프로그램 소개”. https://transgender.or.kr/29/?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6896659&t=board&category=8KAIWkI04e.
“In the Name of Love: Paris Is Burning (1991)”. gateway film center, https://gatewayfilmcenter.org/movies/paris-is-burning-1991/.
“Legendary”. IMDb, https://www.imdb.com/title/tt11048090/?ref_=tt_mv_close.
Stephen Daw. “Queens to the Rescue: ‘RuPaul’s Drag Race All Stars’ Season 9 Reveals Official Cast & Release Date”. billboard, 2024.04.23., https://www.billboard.com/culture/pride/rupauls-drag-race-all-stars-9-cast-release-date-1235663802/.
Mnet K-POP. “[풀버전] ♬ 너나 해(Egotistic) - AOA @2차 경연 컴백전쟁 : 퀸덤 3화”. 유튜브, 2019.09.12., https://www.youtube.com/watch?v=n-w_ski7mt0.
Mnet K-POP. “[EN/JP] [스우파/5회] '가슴이 뜨거워지는 공연' 라치카 퍼포먼스 비디오 @메가 크루 미션#스트릿우먼파이터 | Mnet 210928 방송”. 유튜브, 2021.10.01., https://www.youtube.com/watch?v=P5YvVn93Ofk.
참고문헌
루인. “게이/트랜스 패닉 방어 두려움과 혐오 폭력”. 『판결문과 사례 분석을 통해 본 성적 소수자 대상 ‘혐오 폭력’의 구조에 대한 연구』.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2015.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용주골 강제폐쇄 대응(2023~2024)”.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티스토리, https://sexworkproject.tistory.com/category/%EC%9A%A9%EC%A3%BC%EA%B3%A8%20%EA%B0%95%EC%A0%9C%ED%8F%90%EC%87%84%20%EB%8C%80%EC%9D%91%282023%7E2024%29?page=3.
이예진. 「국내 보깅댄스 유입 및 댄스 장르로의 정착 – 한국 볼 문화를 기반으로」. 석사학위논문, 세종대학교 융합예술대학원, 2023.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TDOR 메모리얼 파티 <그리고, 춤추자> : 프로그램 소개”. https://transgender.or.kr/29/?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6896659&t=board&category=8KAIWkI04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