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하지 않은 몸으로 온전한 미래 꿈꾸기

수습편집위원 밤

by 문우편집위원회

0. 들어가며: 또 하나의 질병 이야기

이 글을 쓰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질병 경험을 말하는 글이 세상에 넘쳐나는데 나까지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가, 어느 정도까지 내밀한 부분을 드러낼 수 있는가, 병명을 꼭 밝혀야 하는가, 내 증상을 자세히 적어야 하는가 같은 의문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글을 쓰고자 유쾌하지 않은 기억을 들춰내고 타인의 질병 경험담을 참고 자료로 읽다 보니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져 좀처럼 글쓰기에 진전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라는 책을 접하고 어떻게든 써야겠다고, 늘 돌덩이처럼 마음에 얹혀 있는 저 산을 넘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저자 엄기호는 책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가장 괴로운 것으로 여기는 고통의 절대성, 그리고 이로부터 비롯되는 고통의 고립성 및 소통 불가능성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는 고통은 말할 수 없기에 말할 필요가 없고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과도 맞서야 한다. 고통은 말할 수 없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말할 것이 남아 있다 . . . .


. . . 내가 겪고 있는 ‘것’인 고통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지만 내가 ‘겪고’ 있음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 . . . 불가능에 좌절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불가능과 대면하고 싸움으로써 우리는 그 둘을 동시에 기록하고 나눌 수 있게 된다. 고통이 아니라 고통은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는 그 과정을 말함으로써 우리는 서로가 고통받고 있음을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다. 말할 수 있다.[1]


다시 말해 바로 그 소통 불가능성이 보편적이라는 깨달음으로부터 고통을 ‘겪는’ 것에 대한 소통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좀 더 고민한 끝에 내 질병의 위험성과 갖가지 적나라한 증상들을 나열하며 자극적으로 내 고통을 묘사하기보다 질병과 공존하며 내가 겪어온 나날을 묘사하고 이에 대한 몇 가지 고찰을 내놓기로 했다. 병명은 밝히지 않겠다. 내 질병의 몇 가지 특성만 알아도 글을 문제없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긴 서문을 마치며, 내가 아픈 몸으로 살기 시작한 순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겪어온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경험을 풀어보겠다.



1. 만성질환의 세계로: 믿음과 환상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초반에 희귀 난치성 질환을 진단받았다. 겨울방학 내내 살이 급격히 빠지기 시작하더니 하루에 30분 산책을 하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쇠약해져서 여러 병원을 찾아갔다. 그러다 난생처음 듣는 병을 진단받았고, 그 병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확진받은 지 정확히 일주일 만에—입원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나흘 뒤, 장기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렇게 갑작스레 인생의 2막에 내던져졌다. 입원 초반은 회고와 자책의 나날이었다. 그 당시 나는 질병의 전조증상과 원인을 분석하는 일에 골몰해 있었다. 탄생과 함께 동반된 아토피와 새집증후군, 언어폭력과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소아우울증, 카페인 과다 섭취와 밤샘 공부, 대학병원과 한의원을 전전해 봐도 낫지 않던 피부염, 불규칙한 식사 습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어 삶 전체를 되짚고 또 되짚었다. 내 가족과 친척 역시 이 분석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여러 추측이 오갔고 전부 듣는 것만으로도 벅찼지만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자업자득’이라고 누군가가 던진 말 한마디였다. 나 자신조차도 원인을 단정짓지 못했는데 타인이 내게 비난의 화살을 성큼 날린 것이다. 그 화살은 마음속에서 소용돌이를 치며 점차 부피를 키워갔고 결국 내 사고방식의 근간이 되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탓에 내 몸은 쓰레기 같은 몸이 되어 버렸고, 이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정신을 개조해야겠다고. 그때부터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키워나가며 건강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식단을 철저히 관리하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남는 시간에는 공부를 틈틈이 하다 보면 몇 개월간 앓아누워 있느라 밀린 학습 진도를 따라잡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실제로 퇴원하고 나서 학교로 복귀한 뒤 빠른 속도로 학습 기간의 공백을 메워 냈다. 몸 상태도 서서히 좋아지고 있었다. 가족들은 기뻐하면서도 내게 더 큰 기대를 걸었다. 내가 완치 판정을 받은 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먼 훗날 이 시련을 극복했다며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것 따위를 말이다. 그 당시에도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었지만 내가 아파할 때마다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던 집안 분위기라든가 이미 지출해 버린 병원비 몇천만 원 등등을 떠올리며 까짓거 한번 비질병인에 가까운 상태에 도달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내가 졸업한 기숙사형 특수목적고등학교는 정상성에서 크게 이탈해 본 적 없는 사람들 위주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대부분 명문대-대기업-결혼-4인 가정 꾸리기 따위의 미래를 꿈꾸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고, 이들 사이에서 여러모로 ‘정상인’이 아니었던 나는 열등감에 시달렸다. 억지로라도 무한 긍정 마음가짐을 스스로에게 주입해야만, 공부와 건강 챙김을 포기하지 않고 그들처럼 ‘건강한 20대 초반 인서울 대학생’이라는 정상성을 지닌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과 다른 길을 걷는 것이 당시엔 두려웠다. 이미 병원비를 많이 지출해 버린 상황에서 재수는 절대 하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무리해 가며 공부하느라 건강을 망가뜨려 다시 그 정도의 병원비를 지불하게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먹는 음식과 수면 시간을 철저히 통제하는 등, 강박적으로 건강을 챙겼으며, 깨어 있는 시간 동안에는 오로지 내신을 챙기는 일에만 몰두했다. 그 당시에는 생리적 욕구를 완벽하게 통제 가능하다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 내 질병을 관리하는 데 있어 식습관은 굉장히 중요했다. 그랬기에 하루의 어느 시간에 무엇을 먹을지, 얼마만큼 먹을지, 얼마나 오랫동안 먹을지 고민하며 급식표에서 내가 먹을 수 없는 것을 지워갔다. 조그마한 연두부 하나를 점심시간 1시간 동안 잘게 쪼개 먹는 등 다소 기이한 식습관들을 시도하면서도 정신이 망가져 가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 이렇게나 몸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감각에 고양감을 느끼곤 했었다.


이 환상은 꽤 오래갔다. 적어도 1학년 말까지는. 1학년 말에서 2학년 초 사이, 나는 급격하게 방황하기 시작했다. 건강을 챙기면서 학업까지 잘 해내는 일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건강을 최우선으로 챙기자니 자꾸만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 같아서 조금씩 더 빨리 급식을 먹어 치웠으며, 고통을 꾹 참고 수업과 자습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공부를 우선시하니 이번에는 몸이 점차 망가지기 시작했다. 억눌려 왔던 회의감이 터져 나왔고 당시 일기 곳곳에 이를 표현했다.


11.30 (화)

기숙사에 도착하고 옷을 갈아입으면서 쳇바퀴 같은 경쟁 구조에 회의를 느꼈다 . . . . 이대로 살다가 나는 어떻게 될까? 어쩌다가 1순위인 건강을 놓아주고 공부, 성적, 내신 이런 사회적인 기준에 목매게 됐을까. 아무리 자유분방한 개인도 하나의 거대한 조직에서 생활하다 보면 틀에 자신을 맞추게 되는 것일까 . . . . 왜 나는 시스템에 순응했는가. 초 단위로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나 혼자 분, 시간 단위를 택하기 두려웠던 것이다. 남들이 다 밥을 빨리 먹고 일어날 때, 종소리에 맞춰 제시간에 특정 장소에 잘 도착할 때 나도 그래야 한다는 강박이 은연중에 솟아나 있었던 것이다. 원치 않는 삶의 모습을 그대로 이행하면서 밝고 긍정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는 사회적 가면을 매번 쓰는 것 같다.


2.6 (일)

거짓과 가식으로 점철된 이 삶이 불만족스럽다 . . . . 괜찮지 않은데, 매일 우울한데, 왜 나는 몇 개월 동안 아무 생각 없는 척, 행복한 척, 다 괜찮은 척 했을까. 실은 단 한 순간도 괜찮지 않았다.


일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 나는 그 당시 무기력증을 앓고 있었다. 지나친 통제와 강박 끝에 모든 루틴을 내던지고 우울의 늪으로 빠져든 것이다. 다시 회복에 집중하자며 공부를 잠시 놓고 건강을 챙겨보기도 했지만 한번 나빠지기 시작한 건강은 계속해서 악화했다. 2학년 중반에는 급기야 짧게 재입원하게 되었고, 퇴원 뒤에는 급속도로 공부와 멀어졌다.


그 뒤로는 어떤 일상이 이어졌는가? 일관되지 않게 살았다. 어느 날에는 확진 초기를 떠올리며 다시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따랐고, 또 다른 날에는 그냥 이대로 좀 아프고 무기력한 채로 살라는 목소리를 따랐다.


건강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치는 시기에는 하루 종일 하염없이 걷기, 밀가루 음식 2달 동안 먹지 않기, 고기 한 달 동안 끊기, 탄수화물 일주일 동안 먹지 않기, 액상과당 제한하기 등 여러 시도를 했지만, 정신적으로 한계에 다다랐을 때에는 5년째 먹지 않던 햄버거 자정에 먹어버리기, 겨울에 일부러 빙판길에 주저앉아 차가운 땅바닥에 온몸 붙이기, 배고프지도 않은데 폭식하기와 같은 기행을 펼쳤다. 이렇게까지 노력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에 화풀이하고자 일종의 자해성 행위들을 한 것이다. 질병이 나를 이렇게까지 미친 사람으로 만들 줄은 몰랐다. 나는 항상 어딘가 미쳐 있고 화가 나 있고 우울하고 아픈 몸으로 최근까지 어영부영 살아가고 있었다. 많은 선택지와 가능성을 포기하고 반쯤 체념한 채로. 몸을 돌보긴 하되 스트레스를 받으면 내팽개치는 식으로.


그리고 지금 이 모든 것들을 되돌아보며 글을 쓰고 있다. 질병과 헤어질 수 없는 몸으로 이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겪은 일들을 언어화하고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자. 그리고 필연적으로 이런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인지 그 의문에 답을 찾고자.

2. 질병에 대한 환상 해체하기

나는 부친께서 내 허락도 받지 않고 지인들에게 내 질병의 병명과 수술 이력, 입원 생활과 증상 등을 다 털어놓는 것이 달갑지 않다. 남들이 내 사생활을 알아버리고, 내 삶을 멋대로 속단하고 온갖 조언, 동정, 추측을 내어놓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사실 내 질병이 ‘자업자득’이라는 말은 부친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내가 고통에 울부짖다가 입원을 한 날, 그 말을 들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한 편이었고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단 한 순간이라도 안 아픈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자퇴하고 싶다고 항상 부모님께 말씀드리곤 했었다. 그러나 매번 절대로 안 된다는 거절만이 돌아왔다. 내가 보내던 신호는 그렇게 무시하더니만 고등학생 때 희귀 난치성 질환이 찾아오고 나서야 부친께서 내 아픔이 마치 나만의 잘못이라는 듯 얘기한 것이다. 그 태도에 당황했고 큰 상처를 입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가족의 말이었기에 그 말을 진실로 받아들이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런 말에 귀 기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물론 살면서 해온 내 행동들이 병을 키우는 데 일조하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생활 습관을 지닌 다른 사람들—친언니, 친구들, 사촌들—에게는 나처럼 수술받을 일도, 정기적으로 면역 억제 주사를 맞으러 갈 일도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우리 자신이나 주변 사람이 심각한 병에 걸렸을 때 과거 행적으로부터 원인을 찾아내려 하고 자책이나 비난 따위를 해버린다.


설령 실제로 어떤 반복적인 행동이 병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하더라도 발병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여전히 옳지 않다. 원인의 원인, 즉 더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적 문제에 있기 때문이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저자 김승섭은 사회역학자로서 폐암의 원인을 흡연에 돌리고 흡연자를 비난하는 것에 의문을 품으며, 금연 실패의 원인이 개인의 의지 부족인지, 아니면 의지를 좌절시키는 환경인지[2] 질문한다. 안전하지 않은 작업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미래에 폐암에 걸릴 수 있으니 담배를 끊으세요.”라는 말은 크게 와닿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 다치거나 죽을지 모르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기에 먼 미래를 위한,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금연을 하기보다는 그날그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담배를 핀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처럼 병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곤 하는 특정 행동을 왜 개인이 지속하는지 사회적으로 고찰해 봐야 한다. “공동체와 완전히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개인은 존재할 수 없기에, 사회적 환경과 완전히 단절되어 진행되는 병이란 존재할 수 없”[3]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장이고, 나는 이에 뼈저리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력 신화에 속아 몸을 혹사하며 공부했던 한국의 수많은 젊은이 중 하나로써 10대의 우울증과 만성질환이 한국에 왜 만연해 있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질병의 원인이 대개 한 가지로 일축될 수 없을 만큼 굉장히 복합적이기 때문에 질병인의 무지나 부주의, 의지 부족을 탓하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


더불어 질병의 원인을 알아내려는 집착은 몸을 통제하려는 강박과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으로 이어지곤 한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집착을 좀 더 과감하게 내려놓을 필요도 있다. ‘긍정적인’ 태도와 ‘180도 달라진 생활 습관으로’ 질병에 ‘맞서 싸워’ 완치 판정을 받아냈다는 서사를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어느 병원을 가도 못 고치는 병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나 천신만고 끝에 기적적으로 병을 물리쳐 낸 이야기를 말이다. 이런 서사는 같은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좌절된 반대 케이스를 은폐하며, 아픈 사람과 그의 가족에게 희망을 심어줌과 동시에 자책감이나 억울함을 안겨주기도 한다. 자신은 그 영웅담의 주인공처럼 충분히 긍정적이지 못했고, 충분히 노력하지 못해 계속 아픈 거라는 생각에서 자책감이 비롯된다. 혹은 자신도 그 사람만큼이나 고군분투했는데 결국 질병과의 싸움에서 패배했다는 사실에서 억울함과 무력함이 비롯된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강한 의지와 희망으로 질병을 이겨내고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기를 강요하는 사회에 반대한다. 특히 만성질환, 난치병과 같은 질병들은 갖가지 치료와 수술과 개인의 지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몸에서 물러나지 않으므로 그런 질병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극복하라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병은 종종 한 개인의 생에서 분리될 수 없는 형태로 찾아오며, 이를 억지로 몸에서 분리하라고 강요할수록 그 사람의 존재 자체는 부정되어 간다. 『거부당한 몸』에서 수전 웬델은 “몸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의 여러 종류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이나 영구적인 장애에 적응해 가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다”[4]며 “올바른 식이요법과 운동 프로그램을 실행하거나 바른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면 누구나 완벽하게 건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5]이 질병인에게 미치는 유해성을 진술한다. 호전시킬 수 있는 경미한 병은 호전시키되, 사회에서 흔히 생각하는 몸의 기본값, 즉 아무 문제 없이 건강한 몸이 아닌, 아픈 몸을 기본값으로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얼른 이겨내라며 완치되기를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 나는 가족의 ‘완치 요구’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난치성 질환인데 무슨 완치냐며, 내가 그걸 어떻게 해내냐며. 그러자 얼른 낫길 바라는 마음을 왜 몰라주냐는 대답이 돌아왔는데, 그렇다면 ‘얼른’도 아니고, 평생 나을 수 없다는 걸 아는 내게 왜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는지, 그 발랄하고 현실성 없는 소망은 발화하지 않고 마음속에만 담아둘 수는 없는 건지 의문이다. 불가능한 완치를 간절히 바라면 쟁취할 수 있다고 믿고 노력하는 일만큼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실망감과 패배감을 안겨주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동정과 연민 역시 질병인으로서 완강히 거부하고 싶다. 내 질병을 두고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죽고 싶겠다.”(정확한 단어 선택은 기억나지 않으나 그 당시 내가 크게 충격받았던 것을 떠올리면 이 표현이었던 것 같다) 같은 말을 해버리면 여기 그런 인생을 살아내고 있는 내가 “이토록 힘든 것을 알아주다니 고맙다”라는 반응을 할 줄 아는 것일까? 물론 이런 말을 하는 사람에겐 대개 대단한 악의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부류의 말이 기억에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나 역시 내 인생을 저주받고 열등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또 다른 황당한 반응은 “그래도 네가 병이 있다는 걸 받아주는 사람도 있을 거고 결혼도 하고 평범하게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거야. 병이 있어도 요즘 세상 많이 좋아져서 애도 낳을 수 있어.”라는 말이었다. 내가 “이대로 가다가는 혼자 살다 죽겠어. 너무 외로워” 같은 말을 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다고 했을 뿐인데 이런 말을 들어버렸다. 이러한 말에는 나 같은 사람은 ‘하자’가 있으므로 ‘멀쩡한’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고 받아들여 ‘줌’으로써 관계가 성립될 수 있다는 사고가 기저에 깔려 있다. 그러한 시혜적 사랑은 원치 않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은 내가 시혜적 사랑 없이는 그러한 정상가족 가정을 꾸릴 수 없다고 보았던 것 같다. 웃긴 것은 여성 질병인에게 늘 이러한 말이 따라붙는다는 것이다. 아이를 가지기 어려울 테니 안타깝다는 말, 어떻게든 의학의 힘을 빌려 출산할 수 있으니 포기하지 말라는 말 등 이런 지긋지긋한 말들에는 개인을 하나의 사람이기 이전에 출산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여성으로 먼저 보는 인식이 깔려 있다.


면전에다 “불쌍해” 같은 말을 무심코 던지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이런 일기를 썼다.


12.4 (토)

가엾다는 말이 끔찍이 싫다. 나는 수직적 위치에서 내려보는 듯한 동정을 원하지 않아 . . . . 물론 별 뜻 없이 꺼낸 말이겠지만 그 말이 적어도 나에겐 상처였다. 모두에게 언제나 질병, 장애 등이 찾아올 수 있음을 인지하고 그들이 힘들어할 때 ‘불쌍하다’, ‘안타깝다’라고 말하기보다는 공감의 말을 해주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은데. 이래서 내가 밥을 혼자 먹고 싶어 하는 거야.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편안하게, 천천히 먹을 수 있고 동정의 시선도 받지 않아도 되잖아.


이런 말을 한 번씩 들을 때마다 ‘다른 사람들도 다 속으로는 나를 불쌍해하면서 일종의 우월감을 느끼겠구나’라는 생각마저 든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래도 이런 일기 하나를 쓰고 대충 넘길 수 있었는데, 올해 들어서까지 이런 소리를 들으니 더는 견딜 수 없었다. “불쌍해”라는 말 하나 때문에 며칠간 불면증에 시달렸다. 누군가의 힘듦에 대해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고작 이런 말에 잠을 설치는 내가 너무 예민하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맞는 말이다. 난 예민하다. 그런데 질병과 함께 평생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과 육체적 고통이 이러한 말들과 합쳐졌을 때 어떻게 무던함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무던한 척 인내하지만 속은 착실히 곪아가고 있다. 이런 말이 더는 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아픈 몸들의 사회생활이 더 가시화되고 더 일상화될 필요가 있다.



3. 아픈 몸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 세상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 단지 치료받고 생존할 권리가 누구에게나 보장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아픈 몸이 쉬어야 할 때 언제든 쉴 수 있고, 사회생활에서 배제되지 않고, 차별적이거나 폭력적인 언어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 아픈 몸들이 건강하다고 여겨지는 몸들과 다를 바 없이 삶을 충만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꿈꾸던 세상이 찾아온다면 나는 자유롭게 일하고 쉬고 일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생각할 문제가 있다. 사회적으로 공인된 ‘아픈 몸’만이 쉬어야 할 때 언제든 쉴 수 있게 된다면 병명이 없는 원인 모를 통증을 안고 살아가는, 아픈 몸이지만 아픈 몸이라고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은 항상 타인의 의심 속에서 자신의 아픔을 증명해야 한다. 나는 명확한 병명과 수술 이력이 있다 보니 그나마 어딜 가서든 이러이러한 이유로 병결을 내야 할 것 같다고 했을 때 곧잘 이해들을 해주는 편이다. 그러나 진단명이 없는 사람들의 상황은 다를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중학생 때, 지금의 질병을 진단받기 전에는 아무리 아프다고 외쳐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내 통증을 증명하기가 어려웠다. 병원에서는 내 고통이 약을 먹으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라고 여겼지만, 나는 그에 맞춰 약을 성실히 먹었는데도 나아지지 않는 건강하지 않은 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몸에게 요구되는 것들을 해내야 했다. 움직이기 힘든데도 억지로 체육 시간에 참여했고, 몸이 얼음장처럼 추운데도 숙제를 다 해갔으며, 하굣길을 걷는 일조차 힘들었지만 정신력으로 하루하루 버텼다. 그러다 몸에 더 큰 문제와 확실한 병명이 붙여지고 나서야 내 아픔을 손쉽게 인정해 주고 휴식을 허용하는 것을 보며 기분이 참 이상했다. 병명이 몸에 붙기 전이나 후나 똑같이 아팠는데 말이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때, 기숙사에서 완전히 짐을 뺀 뒤로는 남들과 달리 매일 차를 타고 왕복 1시간 통학을 하면서 남은 고교 생활 1년 반을 보냈다. 기숙사에서 지낼 때는 7교시 이후로 11시까지 쭉 자습하는 것이 의무였기에, 아프다는 이유로 매번 빠지고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자습실에서 졸기라도 하면 감독 선생님에게 경고받았다. 1시간 일찍 귀사하는 것 역시 컨디션이 안 좋다는 것을 사감 선생님께 호소하고 허가증을 받은 뒤에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기숙사에서 나온 것이다. 쉬고 싶을 때 쉬기 위해. 기숙사 거주 의무에서 면제되기 위해서는 의사 소견서가 필요했다. 이를 제출하고 쉴 자유가 확보되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나마 진단명이 있고 아프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으니까 이렇게 아플 때 누워있을 수 있지만, 저기에 갇힌 학생 중 기숙사에서 나올 수 있을 만큼의 질병은 없으나 만성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어쩌지. 그러다 나중에 진단명이 생기고 나서야 쉴 수 있게 된다면? 그때까지, 더 아파질 때까지 우리는 기다려야 하는 건가?


병원에서 “검사 결과 이상 없고 수치도 좋고 멀쩡하네요.”라고 해버리면 아픈 사람은 할 말이 없어진다. 실제로 나는 수술 이후 몇 년째 CT, MRI 등 각종 검사를 꽤 많이 받았는데—전부 어딘가 조금씩 아픈 채로—그럴 때마다 “깨끗하고 이상 없네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나로서는 믿기지 않는 결과다. 물론 내 몸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아픔을 주장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가족들은 내가 평소에 너무 예민하고 걱정이 많아서 아프다고 착각하는 것이 아니냐고, 심인성 질환[6]이 아니냐고들 말한다. 학교 선생님께서도 모든 게 마음 먹기 달렸다며 마음을 편하게 좀 먹어보라고 하셨었다. 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는 이유로 내 고통은 정신이 나약해서 만들어낸 착각과 환상이 된다. 이처럼 수많은 공인되지 않은 아픈 몸들은 거짓말쟁이, 꾀병쟁이, 신경증자가 된다.


아픈 몸의 범위 안에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 병원으로부터 자격이 부여된 환자만이 아픈 사람이 아니다. 누구나 오늘은 실려 갈 것처럼 아팠다가 내일은 멀쩡할 수도 있고 그다음 날 다시 또 아파질 수 있다. 그래서 질병과 고통에 대한 유동적인 인식이 사회에 자리 잡아야 한다. 상대가 아프다고 할 때 의심부터 하기보다 “그래 오늘은 들어가서 쉬어.”라고 하고, 내가 아프다고 할 때 상대 역시 같은 말을 돌려주는 것. 그런 수용의 선순환을 바란다.


오늘도 사람들은 수많은 만성질환과 통증과 피로를 안고 집에서 쏟아져나와 학교에 가고 일터에 간다. 자주 아픈 것을 티 내고 자리에서 빠지면 불이익을 당할까 봐 참아가며. 나는 이들이 자주 병결을 낸다는 이유로,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이유로, 느리다는 이유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지 않다는 이유로 눈치를 보거나 기회를 박탈당하거나 미비한 지원 탓에 실질적으로 배제당하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한다.


내가 여러 진로를 포기한 이유 중에는 그런 배제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나는 현재 피치 못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밀가루 음식을 거의 먹지 않으며, 매운 음식이나 튀김류, 날생선 등도 피하고 있다. 양식점에서 다들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먹을 때 나는 옆에서 샐러드를 먹고, 술자리에서는 물을 마신다. 그런 내 식습관을 잘 아는 가족과 외식할 땐 눈치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가족 외의 지인과 식사할 땐 정말이지 힘들다.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을 파는 식당으로 가자고 강요할 수는 없으니, 우회적으로 ‘이런 것을 먹고 싶다’, ‘이게 괜찮을 것 같다’라는 식으로 제안한다. 하지만 간혹 지인들이 내게 너무 맞춰주는 게 미안해서 그들의 선호에 맞는 매운 국물 요리나 튀김을 억지로 먹을 때가 있다. 이런 나에게 상호 친밀도와 이해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들과 메뉴 통일 식사나 술자리를 갖는 것은 더더욱 기피의 대상이다. 고등학생 때 목표 학과를 미디어에서 문학으로 변경한 데엔 다른 여러 이유도 있었지만 질병도 한몫했다. 한때는 언론인, 국제 공무원 등을 꿈꿨었으나 술 강권 문화로 유명하거나 시간 압박이 크고 쉴 틈이 거의 없거나 많은 사람들과 원치 않는 식사 자리를 가져야 하거나 밤샘 업무가 일상인 직종들을 제외하고 나니 남는 선택지가 거의 없었다. 물론 내겐 질병이 있으니 각종 애로사항을 이해해 주는 곳이 어딘가 있기는 하겠지만, 최대 효율을 추구하는 조직한테 그런 배려를 온전히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관념적 건강한 몸을 기준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내 몸은 어딘가 부족하고 온전치 못한 몸이며, 그렇기에 내 인생 역시 온전하지 않고 제한된 형태로 흘러가게 된다. 이는 달리 말해 삶을 경험하는 권리의 박탈이라 표현할 수 있겠다.


아서 프랭크는 심장마비와 암을 비교적 젊은 나이에 겪고 나서 『아픈 몸을 살다』라는 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픈 사람의 권리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려면 한 인간이 자신을 생산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질문해봐야 한다. 여기에는 먼저 다른 사람이 해주는 돌봄이 필요하고, 다음으론 시간, 공간, 기본적인 생필품 그리고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또 최종적으로는 삶의 여러 조건이 갖추어져서 우리가 받은 돌봄을 다른 이들에게 되돌려줄 수 있어야 한다. 그저 생존하는 것을 넘어 삶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이 모두가 필요하다. 이 권리 중 어느 것도 특별한 권리여서는 안 된다.[7]


그가 주장한 것처럼 삶을 경험할 권리가 축복받은 몇몇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독점적 권리가 아니라 모두의 기본권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삶을 경험할 권리에는 개개인이 자신의 가치관과 선호에 따라 하고 싶은 일을 택하는 권리도 포함되어 있다.


젊고, 튼튼하고, 잔병치레 없는 건강한 몸이 기본값인 사회에는 이러한 권리가 부재한다. 현실에서는 완벽하게 건강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보다 몸 한구석이라도 성치 않은 사람이 더 많지만, 사회는 지금까지 건강한 몸을 기준으로 하루 근무 시간, 업무량, 시간제한 등을 정해왔고 아픈 몸들은 그 기준에 자신을 맞추며 살아왔다. 이들은 피로회복제를 먹고 출근하고, 카페인을 보충해 잠을 쫓아내고, 소화제를 먹어가면서 회식을 버틴다. 몸이 보내는 적신호를 애써 무시하며 무리한다. 그러다 큰 병을 얻게 되면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치료를 받는다. ‘아직까지는 건강한’ 몸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것을 지켜보며 부러워하고 자책한다.


이제는 반대로 가야 한다. 아픈 몸을 기본값으로 상정하고 모든 기준을 재설정해야 한다. 그리하여 누구나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몸을 혹사할 필요 없이 최대한 많은 선택지를 보장받고 온전한 미래를 꿈꿀 수 있어야 한다. 관절이 안 좋은 사람을 위한 낮은 높이의 계단, 소화력이 약한 사람을 위한 긴 식사 시간, 폐가 약한 사람을 위한 환기 시설 등이 당연하게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특정 신체적 특징을 지닌 사람을 예시로 들었지만, 결국 이들을 위한 지원과 변화는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다. 사회를 아픈 몸에 맞춰 변화시킬수록 아프지 않은 사람이 아파지는 것과 아픈 사람이 더 아파지는 것을 지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충분한 수면 시간과 운동 시간의 보장, 비교적 유연한 병가 역시 필요하다. 이처럼 건강중심사회가 느리고 질병존중적인 사회로 변모할 때 온전하지 않은 몸으로도 온전한 미래를 상상하기가 가능해진다. 그런 사회에서 나는 더는 전처럼 내 몸을 두고 무가치함이나 분노나 자책 같은 것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몸에 무리가 가는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응급실에 실려 갈까 봐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된다. 중장년, 노년의 살아있는 나를, 살아서 삶을 충만하게 경험하는 나를 상상할 수 있다. 그런 세상의 도래를 간절히 소망하고 요구한다.




[1] 엄기호,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나무연필, 2018, 114.

[2]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동아시아, 2017, 63.

[3] 위의 글, 71.

[4] 수전 웬델, 『거부당한 몸』, 강진영, 김은정, 황지성 옮김, 그린비, 2013, 202.

[5] 위의 글, 202.

[6] 심인성 질환이란 심리적인 원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을 일컫는 말이다.

[7] 아서 프랭크, 『아픈 몸을 살다』, 메이 옮김, 봄날의책, 2017, 190.


참고문헌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동아시아, 2017.

수전 웬델, 『거부당한 몸』, 강진영, 김은정, 황지성 옮김, 그린비, 2013.

아서 프랭크, 『아픈 몸을 살다』, 메이 옮김, 봄날의책, 2017.

엄기호,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나무연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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