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억되고 있습니까?

편집위원 단화

by 문우편집위원회

1. 소년의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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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반항 없이 생각한다. 저 사람들은 왜 모두가 행복한 얼굴일까? (...) 항상 괴로운 마음과 몸 떨어진 신발에 남이 입다 버린 헌 때뭉치 옷을 입어야 하나. 누구 하나 그 소년의 의문을 풀어줄 사람이 없다.”


지난 7월 20일, 전태일 열사의 목소리를 담아낸 음악극 <태일>이 막을 내렸다. <태일>은 2인극으로 진행되는데, 태일 목소리 역을 맡은 배우와 태일 외 목소리 역을 맡은 배우가 각각 나와, 전태일과 전태일 주변 인물(어머니, 여동생 순옥, 바보회 동료, 근로감독관, 평화시장 여공 등)의 목소리를 전한다. 음악극 <태일>은 뜨거웠던 열사 전태일이 아닌, 따듯했던 청년 전태일의 인간적인 모습을 주로 다룬다. 이 극은 대사와 가사를 전부 실제 전태일의 수기와 조영래의 『전태일평전』에서 가져오면서, 인간 전태일의 이야기를 꾸밈없이 진솔하게 관객에게 전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열사’ 전태일보다 ‘인간’ 전태일을 그리고자 한 음악극 <태일>의 취지를 이어받아, 사람이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썼던 한 명의 ‘노동자’ 전태일, 따듯한 청년 전태일을 중심으로 ‘노동’ 이야기를 할 것이다.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외치며 분신한 지 올해로 55주기가 되었다. 전태일 시대 이후, 우리는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노동하고 있을까? 음악극 <태일> 속 전태일이 겪은 6-70년대의 노동 환경과 비교하였을 때, 작금의 노동 환경은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음악극 <태일>이 왜 계속 공연되어야 하는지, 그의 목소리가 2025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닿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2.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러한 환경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1]


평화시장의 여공들은 대부분 12~14세의 어린 소녀들이다. 이 소녀들은 하루 14시간씩 한 달 내내 휴일 없이 일을 한다. 그렇게 해서 하루에 받는 급여는 50원. 당시 물가 기준으로 고작 커피 한 잔 사 마실 수 있는 돈이다. 재봉보조공이었던 전태일은 교통값을 빼면 남는 것도 없는 월급 3000원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교통비를 아껴 여공들에게 한 개에 1원하는 풀빵 30개를 사주곤 했다. 자신은 교통비가 없어 청계천 6가부터 도봉산까지 3시간을 넘게 걸어가는 수고를 감내하고서라도 말이다. 매일 같이 여공들이 겪는 참상을 목도한 태일은 죽어가는 여공을 살리겠다는 생각을, ‘우리를 비정한 현실의 쓰레기로 만드는 저 잔인한 노동조건을 내 힘으로 바꾸어보자’[2]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극 중에서 여공들은 ‘조느라 작업 밀리면 안 되니까 잠 달아나는 주사를 놔줄 테니 졸지 말고 일해라’, ‘일하다 손가락 잘리면 시집 못 간다’, ‘평화시장 여공 8년 차에 얻는 거라곤 온갖 병치레에 노처녀 신세 뿐이니 그만둬라’ 등의 말을 들으며 일을 한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태일은 여공들의 일을 도와주며 그들을 살뜰히 챙기지만, 여공은 “재단사님 진짜 이상한 사람이라고 했어요. 욕도 안 하고 청소도 거들어 준다고. 근데 그거 당연하게 여겼다간 딴 데 가서 고생하니까 아쉬운 소리 말고 뭐 부탁하지 마 이년들아! 이랬어요.”라고 말한다. 같은 노동자를 존중하고, 구박하지 않고, 욕을 하지 않는 게 특이하고 이상한 일인 것인가? 왜 전태일처럼 행동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고, 당연하게 여기면 다른 데 가서 고생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근래 세 차례의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인 파리바게트의 제빵기사는 80% 이상이 여성이다. 2022년 6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제빵기사의 절반이 근골격계질환을 겪고 있고, 호흡기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했다. 10명 중 1명꼴로 생리불순, 난임, 유산을 겪기도 하였다. 이는 SPC 계열사인 SPL 공장의 남성과 여성 노동자의 비율이 6 대 4로 여성노동자의 수가 결코 적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노동환경이 여성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환경이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다. 대다수의 보호장비는 ‘표준 미국 남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여성 노동자들은 밀가루나 분진 등이 호흡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노동 환경 속에서, 남성에게 맞춰진 무의미한 보호장비를 사용해야만 했다. 작업에 사용되는 기계 역시 남성과 여성의 신체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인 크기로 제작되어 여성 노동자들에게 위협적이다. 성별의 구분없이 단일한 사이즈의 작업복을 사용하여 체구보다 큰 작업복을 입고 노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몸을 움직이는 과정에서 남성 노동자보다 기계에 작업복이 낄 위험이 크기에 사고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된다. 남성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거나, 근속기간에서 차별을 받는 등의 여러 문제들이 존재하기도 한다.[3] 2022년 10월 15일 평택시 SPL 제빵공장에서, 2023년 8월 8일 성남 샤니공장에서, 2025년 5월 19일 시흥 시화공장에서 일하다 죽은 노동자 3명 모두 여성이지만, SPC는 여전히 여성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 평화시장에서 어린 여공들이 재봉틀에 손가락이 베이고, 화장실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먼지구덩이 작업장 속에서 피를 토하고 다치고 죽어나간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생리휴가의 보장은커녕 열악한 환경 속에 노출되어 잦은 생리불순을 겪어야 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어려움은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숱한 차별 속에서 노동이 이루어진다.



태일의 여섯 식구 중 돈을 버는 사람은 전태일 하나뿐이었다. 태일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배운 재단 기술로 남들보다 빨리 월 7000원의 급여를 받는 재봉사의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월 3000원 받는 재단보조공이 되겠다고 나선다. 집의 가장이었던, 여섯 식구의 생계를 홀로 온전히 책임지던 태일에게 이와 같은 결심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하루 열 몇 시간씩 일하여 작업물을 완성하면, 그제서야 주인과 공장장 둘이 상의하여 가격을 멋대로 정해버리니, 태일은 피땀 흘린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없는 불합리한 현실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아주 큰 공장을 제하고는 공장장이 따로 없고, 재단사[4]가 공장장을 겸하면서 재단사 한 명당 노동자 20명을 거느리기에, 태일은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 노동자의 편에 서서 주인과 타협할 수 있는 재단사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서 태일의 재단사 친구 김개남(가명)이 등장한다. 개남은 평소 조용하고 말씨 없던 태일이 책을 옆구리에 끼고 노동 운동 얘기만 나오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열띤 이야기를 늘어놓는 모습을 보고 그가 존경스러웠다고 말한다. 자기는 그저 돈 벌 생각만 했지 근로기준법 같은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말이다. 태일이 평화시장에서 일했던 1960년대, 근로기준법을 공부하고 노동 운동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 많아봤자 얼마나 있었겠는가. 당시 생소했던 노동 운동에 대해, 특히 시다들 편의 봐준다고, 시다들이 해야 할 일 대신 해 줬다고 태일을 해고하기 일쑤였던 당시 노동 환경 속에서 노동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뜻을 모은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겠는가. 하지만 태일의 재단사 친구들은 그 어려운 일에 기꺼이 함께 뜻을 모으기로 하였다. 노동자 모두를 위한 평화시장을 만들기 위해서,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평화시장을 만들기 위해서.


태일은 시다들의 편의를 봐줬다는 이유로 업장에서 해고 당한 후, 평화시장의 재단사를 비롯한 노동자들을 모아 ‘바보회’를 결성한다. 태일은 자신이 해고 당한 것보다도, ‘최소한의 인정도 나눌 수 없는, 사람을 물질 기계로 만드는’ 당시의 노동 현실을 더 답답히 여겼다. “돈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아서라 말아라 어차피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신세 망치는 건 너희들 뿐이다”라는 가사처럼, 여섯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일해야 했던 태일에게 노동 운동은 실질적 도움을 주는 행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태일은 바보회 구호로 이렇게 외친다. “기계처럼 일만 하다 죽느니 사람답게 사는 바보로 살자.” 태일은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노동자이기 전에 한 명의 인간이었기에, 기계처럼 부당한 현실 속에서 챗바퀴 돌리듯 살 수 없었다.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투쟁했다. 그리고 태일은 바보회 결성 이후, 평화시장 내 위험분자로 찍혀 어디에서도 태일을 받아주지 않게 되었다.


태일이 바보회를 결성했다는 이유만으로 평화시장에서 쫓겨나야 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여전히 노동 운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거나 부당해고를 당하는 노동자들이 수많이 존재한다. 2023년 7월, 쿠팡CLS 일산 물류 캠프에서 노동조합을 알리는 홍보물을 돌렸다는 이유로 택배노조 조합원 3명이 입차제한 조치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캠프에서 물류를 받아 배송을 해야 하는 운송노동자에게 입차 제한은 해고조치와 같으며, 명백한 노조 탄압이다. 1년이 지나 2024년 12월 대법원은 쿠팡CLS의 입차 제한 조치는 부당하다며 입차제한 관련 출입방해금지 가처분 소송의 원심을 파기 환송했지만 아직까지도 쿠팡CLS 측은 노동자들을 복직시키지 않고 있다.[5] 2023년 대구에서는 대구 테크노산업단지에 위치한 조양·한울 노동자 20여 명이 직장 내 갑질과 괴롭힘, 임금 삭감 등을 이유로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했다가 고초를 겪었다. 긴 파업 끝에 회사로 복귀한 조합원들을 사장이 폭행하거나, 공장 및 화장실 청소를 하지 않은 채 사업장을 방치하다가 조합원들에게만 화장실 청소를 시키는 등의 온갖 비인간적 대우가 이어졌다. 또 노동위원회 부당해고 판정서에 명시된 해고기간 동안의 임금 지급을 이행하지 않는 등, 돈으로 노동자들을 협박하는 일도 있었다.[6] 노동조합 결성 및 활동은 법에 명시되어 있는 권리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지만 현실은 기업의 노조탄압과 혐오가 법 위에 존재하는 권리인 것처럼 보인다. 지난 2월 국회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에서는 ‘민노총 귀족노조의 패악’, ‘노란봉투법의 최대 피해자는 기업’ 등의 망언이 쏟아지며 노조를 향한 원색적인 비난 발언이 거리낌 없이 이어졌다.[7] 왜 세상은 아직까지도 인간답게 살기 위해 노동운동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귀족노조’, ‘건폭노조’ 같은 혐오 표현을 내뱉는 것인가? 왜 같은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범죄자이자 가해자로 낙인 찍으면서 기업은 선량한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평화시장의 ‘위험분자’ 태일은 여전히 이 세상 곳곳을 떠돌며 존재한다.



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알게 된 후, 새로운 현실에 눈뜬다. 그는 평화시장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근로환경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설문지를 근로감독관에게 가져가 내민다. 하지만 근로감독관은 그런 전태일을 ‘참 특이한 사람’이라고 칭하며, 다른 일을 알아보면 될 것이지 그동안 아무 문제 없었는데 왜 들쑤시고 다니냐며 설문지를 읽어보지도 않고 그를 돌려보낸다. 태일은 자신들의 부당한 노동 실태를 알리면 근로감독관이 들어줄 것이고, 그러면 ‘일할 맛 나는’ 평화시장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 높고 단단했다.


지금도 70년의 태일처럼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는 노동자들이 있다. 금속노조 주얼리분회는 종로에 위치한 라임사업장 앞에서 지난 11월 4일 파업 선포 이후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종로 일대 귀금속제조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날카로운 도구와 화학약품을 다루는 위험한 노동 환경 속에서 제대로 된 보호장치 없이 일한다. 산재의 위험이 큰 작업장인데도 불구하고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부상과 질병에 대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이며, 5인 미만 사업장으로 분류되어 근로기준법의 테두리를 벗어나기 위해 월급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환경에서는 재직증명서도 발급할 수 없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한 단축 근무 이후 임금이 삭감되었지만, 동시에 야간연장근무를 강요받고 ‘포괄임금제’라는 명목으로 야간수당은 지급받지 못해 노동 시간에 비해 받는 임금은 턱없이 적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8] 근로계약서 작성 및 건강검진 실시를 비롯한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 요구를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활동을 시작하자 업체 노동자들은 임금체불과 부당해고를 당해야만 했다.[9] 작금의 주얼리 분회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 55년 전 평화시장 여공들이 먼지 나는 다락방에서 환풍기나 조명 시설, 화장실 없이 일하면서 온갖 잔병치레를 달고 살아야 했던 실정과 무엇이 다른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고 투쟁해야 하는 현실은 1970년의 평화시장에서 2025년의 종로까지 그대로 재현되고 있을 뿐이다.


“다 같은 인간인데. 와, 우째서?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아이들이 때묻고 부한 자들의 거름이 되어야 합니까? 빈부의 법칙입니까, 사회의 현실입니까? 나는 이게 아주, 아주 의문입니다.”


태일은 우연히 노동청 앞에서 출입기자를 만나게 된다. 이를 통해 평화시장에서 혹사당하는 여공들의 이야기가 신문에 나게 되고, 극 중 여공은 고맙다는 의미로 신문값에 100원을 지불한다. 원래 20원이었던 신문을 무려 5배의 가격을 주고 산 것이다. 그러면서 여공은 “우리 이야기 신문에 나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하고 이야기한다. 태일은 여공이 준 100원을 소중히 근로기준법 책 사이에 두고, 극의 마지막 장면까지 쓰지 않고 간직한다.


신문기사를 보고 노동청에서 나와 실태조사를 실시하지만, 국정감사가 끝나자 노동청은 전태일과 삼동회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지 않는다. 전태일은 시다 월급 100% 인상안과 창문 및 환풍기 설치를 비롯한 8개의 건의 사항을 내걸었지만, 노동청은 한 가지도 들어주지 않고 요구사항을 묵살한다. 태일은 그럼 빛 들어오게 창문 달고, 조명 시설 개선하고, 환풍기 달고, 화장실 늘리고, 여자들 생리할 때만이라도 쉬게 해 달라고 목 놓아 외치지만 근로감독관은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태일은 그럼에도 끝까지 환풍기만이라도 달아달라며 소리친다. 뻔뻔한 태도로 나가라고 소리치는 근로감독관에게 태일은 근로기준법 책을 내밀며 이렇게 울부짖는다. “우리 얘기 들어준다고 했잖아요!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만약 노동청이 기업주들과 결탁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기업주들 뿐만 아니라 근로감독관, 노동청 아니 그 이상까지도 상대로 하여 싸워야 한단 말인가? 이 현실에서 근로기준법이 지켜지기를 도대체 어떻게 바랄 수 있을까? 나는 과연 저들 모두를 상대로 하여 싸워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저 악마와 같은 현실의 벽은 도대체 얼마나 두꺼우며 도대체 어디까지 뻗어 있는 것인가?”[10]


여공의 이야기가 처음으로 신문에 나고, 태일이 직접 근로감독관을 찾아가도 바뀌지 않던 두꺼운 현실의 벽은 지금도 허물어지지 않았다. 부당해고로 인해 2024년 1월부터 지금까지 500일 넘게 고공농성 중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들과, 2025년 2월부터 지금까지 100일 넘게 고공농성 중인 세종호텔 노동자들이 있다. 가만히 서 있어도 사람이 쓰러질 것 같은 폭염이 이어지는 날씨 속에서 노동자들은 고공농성으로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100일, 500일... 기약없이 늘어가는 시간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담보로 고공농성을 멈추지 않고 이어나가는 노동자들이 버젓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회사는 그러한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노동자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그들의 생명과 삶이 기업의 한두푼 실익과 비교하면 마치 쓸모없는 종이장인 것처럼 여기며, 그들이 이 세상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생명인 것처럼 무시한다. 마치 태일이 마주한 근로감독관처럼.



태일은 신문 한 귀퉁이에 난 기사 하나에 기뻐하며 계속 싸울 의지를 다졌다. 지금은 그때와 달리, 주류 언론이 다루지 않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하나하나에 주목하는 노동 전문 매체가 등장하여,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인터넷을 통해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또한 민주노총 총파업, 공동투쟁 집회 등 수많은 노동자가 함께 연대하고, 거리로 나와 투쟁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태일의 투쟁은 외로운 길이었다.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는 게 별나고 이상하게 비춰지던 시대에서, 근로기준법 책을 옆구리에 끼고 동료 재단사들을 설득해 투쟁을 이어나가던 태일. 그는 노동자들이 억압받는 게 당연한 시대 속에서 외로운 길을 걸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근로기준법 준수, 노동권 보장이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라는 것을 깨달은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거리로 나와 투쟁할 것이다.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이 올 때까지, 태일이 허물지 못한 현실의 벽을 완전히 무너뜨릴 때까지 말이다. 이미 무수히 많은 금이 그어져 있다.



3.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대로 살아가면 안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이대로 죽어가면 안되지 않을까”


태일은 어머니가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떠난 후, 반복되는 아버지의 폭음과 매질을 피해 대구를 떠난다. 처음 서울로 올라올 때, 죽더라도 마지막으로 어머니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죽자는 마음이었다. 태일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바로 어머니, 가족이었다. 그런 태일이 어머니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집을 나서는 순간 어떤 마음이었을까. 11월 13일 아침[11], 그렇게 막냇동생 순옥이를 아끼던 태일이 돈이 급하다며 부탁하는 순옥이를 뒤로 하고, 어머니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어떻게 몸에 불을 붙일 수 있었을까. 그 투쟁으로 뛰어들 수 있었을까.


태일은 인간의 나라를 꿈꿨다. 인간을 물질화하는 부한 환경도, 부유하고 강한 자들의 횡포와 탐욕도 모두 분해된 세상을 꿈꿨다. 자본가들을 위한 도구로서 기계 취급을 받고 ‘바보’처럼 살아가는 이들이 하나의 인간으로서 인정 받기를, 괴로운 노동이 아닌 즐거운 노동을 하게 되기를 바랐다. 태일은 ‘소외된 밑바닥 인간들’을 너무나도 뜨겁게 사랑하여, 그들이 자신을 가두는 억압과 착취에 맞서 싸울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아가들 고사리 같은 손에 지문이 다 닳아 없어지고, 매일 같이 참상이 벌어지는 노동자들의 삶을 도저히 못 본 척할 수 없던 태일은 주변에서 ‘노동운동 같은 신세 망치는 일 하지 말아라’,’ 참 별난 사람이다’ 등의 말을 들으면서도, 숱하게 닥쳐오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 싸웠다.[12] 평화시장을 언제나 자신이 돌아가야 하는 고향으로 생각한 태일은, 어머니와 순옥이를 비롯한 가족만큼이나 평화시장의 노동자를, 모든 밑바닥 인생을 사랑하여 그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죽이고 떠났다.


전태일의 사상은 노동 투쟁의 이정표이다. 앞서 언급한 금속노조 주얼리 분회 투쟁 현장에서는 공휴일과 휴일을 제외한 평일 오후 4시, 4시 15분, 4시 30분, 4시 45분, 총 4회차에 걸쳐 ‘주얼리 분회와 함께하는 『전태일평전』 읽기’ 시간을 가진다. 거리로 나와 투쟁하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전태일의 목소리는 여전히 유의미한 힘을 가진다.


“인간의 존엄을 버리지 않고 인간다운 대접을 요구하며 싸우는 것이 바보인가? (...) 오늘의 현실이 절대 변화될 수 엇는 영구불변한 현실이라는 미신에 사로잡혀 있는 ‘약은’자들이 참된 현실주의자는 아니다. 체념하고 굴종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일 수는 없다. 삭막한 겨울벌판의 나무둥치 속에서 내일 화사하게 피어날 꽃잎을 바라보고 오늘의 꿈이 내일의 현실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고난의 길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현실주의자인 것이다.”[13]


지금의 노동자들은 무엇을 위해 투쟁하는 것일까? 이유는 전태일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부당 해고를 당하는 일이 당연시되면 안 되기 때문에,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고 임금 체불을 겪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열약한 환경에서 일하다가 죽어가면 안 되기 때문이다. 더는 다른 노동자들에게 괴로움을 물려줄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을 위한 부자재나 도구로써 노동자가 쓰이고 버려지는 게 아닌, 존엄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노동하고 살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은 여전히 거리로 나와 소리친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음악극 <태일>의 ‘바보회’ 가사처럼, ‘기계처럼 일만하다 죽느니 사람답게 사는 바보’가 되기 위해 거리로 나온 모든 노동자들에게, ‘되든 안 되든 들이받고나 죽자’ 결심한 노동자들에게, 아직도 근로기준법 개정이 아닌 ‘준수’를 외치는 노동자들에게 태일의 목소리를 전한다. 태일이 바라던, 깨끗한 환경에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으며, 아프면 쉬고 일하다 다치면 제때 치료받으며 일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음악극 <태일>은 계속 공연될 것이다. 50년이 지나도 시들지 않는 태일의 외침을 끊임없이 배우의 목소리를 빌려 전할 것이다. “나는 기억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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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영래,『전태일평전』, 아름다운전태일, 2020(,25쪽) (책의 내용이나, 음악극 <태일> 노래의 가사이기도 하다. 책의 구절과 노래 가사/대사가 겹칠 경우, 가사/대사를 기준으로 하여 작성하였다.)

[2] 조영래, 『전태일평전』, 아름다운전태일, 2020(,156쪽)

[3] 박다해, “20kg을 수시로 들며 일했던 SPC 여성노동자”, 한겨레21, 2022.10.29.,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2792.html

[4] 6-70년대 의류 공장의 조직도는 다음과 같다. 맨 아래의 시다를 시작으로 연차에 따라 재봉사, 재단사 순으로 올라가는데 이때 재봉사와 재단사 아래에는 각각 재봉보조공과 재단보조공이 존재한다. 보통 시다에서 재봉보조공이 되기까지만 해도 몇 년의 시간이 걸리며, 재봉보조공에서 재봉사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로 몇 년이 걸린다.

[5] 서비스연맹, “대법판결 무시하는 쿠팡CLS… 택배노동자, 복직촉구 철야농성 돌입”, 노동과 세계, 2025.01.15., https://worknworld.kctu.org/news/articleView.html?idxno=506377

[6] 연정 르포작가, “[르포] 우리의 요구는 단 하나, “노동조합 혐오 중단과 노동조합 인정””, 노동과 세계, 2024.11.08.,https://worknworld.kctu.org/news/articleView.html?idxno=505855&page=2&total=860

[7] 한님, ““특공 계급” “귀족노조 패악” 여당, 말끝마다 “민주노총””, 매일노동뉴스, 2025.02.25.,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6458

[8] 손광모, “종로 주얼리 노동자에게 절실한 ‘4대 보험의 따뜻함’”, 참여와 혁신, 2020.11.12., https://www.laborpl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886

[9] 이상윤, “도심의 유령 “밀실해고 규탄, 노조탄압 중단”을 종로에서 외치다”, 노동과 세계, 2025.02.21., https://worknworld.kctu.org/news/articleView.html?idxno=506541

[10] 조영래, 『전태일평전』, 아름다운 전태일, 2020(, 201쪽)

[11] 1970년 10월 7일, 평화시장의 노동 실태에 관한 기사가 신문에 실린 후 노동청과 기업주들은 사회적 여론에 따라 노동 환경을 개선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도 잠시, 평화시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사그러들자 노동청과 기업주들은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았다. 전태일을 비롯한 삼동회 회원들은 10월 24일 노동 환경 개선 촉구를 위한 데모를 열었고, 기업주들로부터 11월 7일까지 선처해 주겠다는 답을 듣게 된다. 그러나 11월 7일이 지나도 기업주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이에 분노한 전태일은 11월 13일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열어 최후 투쟁에 나서게 된다.

[12] 조영래, 『전태일평전』, 아름다운전태일, 2020(, 315쪽)

[13] 조영래, 『전태일평전』, 아름다운전태일, 2020(,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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