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의 작품은 뮤즈로부터, 혹은 폭력으로부터

수습편집위원 찰리

by 문우편집위원회


1.


며칠간 잠을 설친 듯 허옇게 질린 얼굴. 꼭 깨문 입술. 나무 책상 위에 펼쳐 놓은 낡은 노트를 골똘히 응시하는 동공이 깊어진다.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가 좁은 방의 침묵 위로 흐른다. 고질적인 불면의 흔적이 이따금 어깨를 지그시 누른다. 짙은 한숨을 쉬면서 얼굴을 쓸어내린다. 손가락마다 연필 자국이 부옇게 번져 있다. 창문도 없는 방 속에 갇힌 시간은 잠시 멈춘다. 사랑을 잃고 지나간 계절의 한가운데, 나는 삐걱대는 의자 위에 자세를 낮추고 앉아 기다린다. 단 한 음절의 노래, 그 천상의 목소리, 세계 어디에도 존재한 적 없는 완벽한 서사를 받아적기 위하여.[1]


누군가는 시를 쓰고 누군가는 시를 읽는다. 누군가는 시를 가르치고 누군가는 시를 배운다. 문학을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한다. 문학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쏟아져나오고 있는 문학 작품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범세계적으로 이루어지는 문학 활동의 한 조각이 된다.

문학비평이라는 틀을 통해서, 혹은 비평을 통하지 않고서라도 일상적인 대화나 개인의 SNS 등에서 작품은 종종 화젯거리가 된다. 문학 작품에 대한 논의는 주로 작품의 텍스트 그 자체에서 이루어진다.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되는 문학 활동의 중심이 바로 문학 작품이므로 대개의 논의가 텍스트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물론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렇게 창작물에 관한 이야기가 오갈 때 창작자는 어느 의자에, 어떤 자세로 앉아 있을까. 우리는 잠깐 고개를 들어 창작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문학 작품에 대한 논의에서 창작물은 마치 창작자와 완전히 분리된 하나의 대상처럼 취급된다. 창작물과 창작자의 이러한 분리는 바람직한가. 여기서‘분리’라는 말은 문학 작품을 분석하는 내재적, 외재적 관점을 나누는 접근과는 다르다. 작품을 분석하는 데에 작가의 삶을 끌어와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논하기에 앞서 창작물의 기원이 창작자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나치게 명백하지만, 너무 자주 잊히는 사실이다. 창작자가 창작물을 만들었기 때문에 둘 사이의 분리라는 것은 애초에 성립할 수 없다. 창작물에 창작자의 의도가 얼마만큼 반영되었든지 간에 창작물은 창작자와의 절대 끊어낼 수 없는 연결고리를 가진 채 만들어진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까지 ‘누구’의 작품을 읽고, 가르치고, 공부했는지 의심해야 하는 이유이다. 누가 당신의 손에 들린 그것을 만들어냈는지, 당신이 종종 회상하게 되는 그 문장들은 도대체 누구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창작자란 누구인가. 이 질문을 읽은 지금,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그 창작자는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



2. 순수한 청년 소설가의 비극적인 사랑: 김유정과 박녹주


1908년 1월 11일, 강원도 춘천 출생.

1937년 3월 29일, 폐결핵으로 29세에 요절.

5년 남짓의 작가 생활 동안 30편에 가까운 작품을 남기고 떠난,


김유정. <봄봄>, <동백꽃> 등의 작품을 쓴 소설가 김유정은 그의 사랑 이야기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대상은 당대의 저명한 명창이자 기생이었던 박녹주이다. 김유정은 박녹주에 대한 사랑, 그와의 관계를 자신의 소설 속에 녹여내기도 했다.

<두꺼비>는 기생 옥화를 사랑하는 '나'와, 이 사실을 알고 둘을 연결해주겠다는 핑계로 ‘나’를 이용하는 옥화의 동생 두꺼비의 이야기이다. 물론 문학이라는 예술 양식의 특성상 작품에 나타난 내용을 온전히 작가 본인의 체험담으로 보는 것은 비약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를 통해 자신과 박녹주의 관계에 관한 김유정의 인식을 유추해볼 여지가 있다.

우선 김유정은 소설에서 박녹주에게 보낸 구애의 편지를 언급한다.

“어디 사람이 동이 났다고 거리에서 한번 흘깃 스쳐본, 그나마 잘났으면이거니와, 쭈그렁 밤송이 같은 기생에게 정신이 팔린 나도 나렷다. 그것도 서로 눈이 맞아서 들떴다면이야 누가 뭐래랴마는 저쪽에선 나의 존재를 그리 대단히 여겨 주지 않으려는데 나만 몸이 달아서 답장 못 받는 엽서를 매일같이 석 달 동안 썼다.”

‘답장 못 받는 엽서를 매일같이 석 달 동안 썼다.’라는 표현을 통해 일방적 편지가 주 매개가 되었던 김유정과 박녹주의 관계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점은 ‘어디 사람이 동이 났다고’, ‘쭈그렁 밤송이 같은’이라는 수식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기생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는 박녹주를 대변하는 인물인 기생 옥화의 주체성을 깎아내리는 언행이거나, 부끄럼 많은 소설가의 ‘츤데레’라고 볼 수 있겠다. 소설을 조금 더 살펴보자.

“너는 학생이라서 아직 화류계를 모른다, 멀리 앉아서 편지만 자꾸 띄우면 그게 뭐냐고 톡톡히 나무라더니 기생은 여학생과 달라서 그저 맞붙잡고 주물러야 정을 쏟는데, 하고 사정이 딱한 듯이 입맛을 다신다.”

“그러자 문득 생각나느니 계집이란 때 없이 잘 느끼는 동물이다. 어쩌면 옥화가 그동안 매일같이 띄운 나의 편지에 정이 돌아서 한번 만나고자 불렀는지 모르고…(중략)”

소설 속 기생은 위처럼 ‘그저 맞붙잡고 주물러야 정을 쏟는’ 대상이고, ‘나’가 생각하는 여자란 ‘때 없이 잘 느끼는 동물’이다. 여기서 말하는 ‘때 없이’는 변덕스럽다는 의미를 띄며 ‘잘 느끼는’은 ‘그의 구애를 받아들이는’의 의미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주인공은 자신의 여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옥화가 지금껏 답장 한 번 하지 않았으나 ‘어쩌면 편지에 정이 돌아서’ 그의 사랑을 받아줄 수도 있을 거라 예상하는 것이다. 즉 여성의 무응답, 침묵을 ‘YES’라고 받아들이는 인식이 기저에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또한 ‘그저 맞붙잡고 주물러야 정을 쏟는’이라는 부분에서 ‘그저’라는 부사어도 여성의 응답에 상관없이 성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의미를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 주물러야 정을 쏟는다는 인과관계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강제적인 성관계가 곧 마음의 교감으로 이어진다고 읽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주인공을 만난 기생 옥화는 그를 알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아래의 인용은 기생 옥화와 주인공이 소설 속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장면이다.

"나는 복장이 두근거리어 나도 모르게 한걸음 앞으로 나갔으나 그는 나에게 관하여는 일체 본 척도 없다. (중략) 하고 그 손을 꽉 잡으니까 대뜸 당신은 누구요, 하고 눈을 똑바로 뜬다. 뭐라 대답해야 좋을지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제가 이경홉니다, 하고 나의 정체를 밝히니까 그는 단마디로 저리 비키우, 당신은 참석할 자리가 아니요, 하고 내 손을 털고 눈을 흘기는 그 모양이…(중략)"

옥화와 주인공이 공식적으로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주인공만 혼자 옥화를 몇 달이나 짝사랑하면서 답장도 없는 사람에게 자신과 같은 마음이기를 기대했다는 설정을 고려하면 이 짧은 소설의 끝도 조금은 섬뜩하게 읽힌다.

“지금은 본 체도 안 하나 옥화도 늙는다면 내게 밖에는 갈 데가 없으려니, 하고 조금 안심하고 늙어라, 늙어라, 하다가 뒤를 이어, 영어, 영어, 영어 하고 나오나 그러나 내일 볼 영어시험도 곧 나의 연애의 연장일 것만 같아서 에라 될 대로 되겠지, 하고 집어치우고는 퀭한 광화문통 거리 한복판을 내려오며 늙어라, 늙어라, 고 만물이 늙기만 마음껏 기다린다.”

김유정은 서울에도 백여 칸이 되는 집을 가지고 있을 만큼 부유한 춘천 실레마을의 대주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일곱 살이 되는 해에 어머니를 잃고, 2년 후에는 아버지를 잃는다. 이후 큰형의 방탕한 생활을 기점으로 가세는 점점 기울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외로운 성장기를 보냈던 그는 항상 어머니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1928년, 스물한 살의 김유정은 첫사랑 박녹주를 만나게 된다. 조카 김영수에 따르면 박녹주는 김유정의 어머니를 매우 닮아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첫눈에 반한 유정은 밤마다 자신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술을 먹으며 너를 생각한다. 지금쯤 너는 어느 요정에 가서 소리를 하고 있겠지. 이 추운 밤에 홀로 술을 드는 나를 생각해보라. 사랑이란 억지로 식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지금 이 순간도 너를… 사랑한다."[2]

박녹주는 편지를 다시 하숙집으로 돌려보내지만, 유정의 편지는 끊이지 않았다. 그는 레코드판에서 녹주의 사진을 뜯어 ‘당신을 연모합니다. 저의 사랑을 받아주옵소서.’라는 글귀를 적어 보내기도 했다. 이에 박녹주는 행랑어멈을 시켜 김유정을 오게 한 다음, 학생은 오로지 공부에 전념해야 한다고 타일러 보냈다. 그러나 유정은 녹주의 말을 듣지 않았다. 박녹주가 자신은 소리하는 사람이므로 학생과 연애할 수 없다고 하자, 유정은 학생과 소리하는 사람이 사랑해서 안 된다는 규정이 어디에 있냐고 대들며 사랑이란 국경이 없는 것이라고 소리쳤다.

이후 편지를 보내도 답장이 없자 유정은 녹주의 집을 찾아가 대성통곡을 한다. 이날 녹주의 동생 태술이 유정을 달래게 된 것을 계기로 둘은 친분을 쌓았다. 그날로 유정은 친구 태술을 만나러 간다는 핑계로 녹주의 집을 찾아갔고, 편지도 태술을 통해서 전하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끈질긴 구애에도 녹주가 마음을 돌리지 않자 유정은 그에게 병적인 집착을 하기 시작했다. 박녹주가「한국일보」에 38회 연재(1974.01.05.~02.28)한「나의 이력서」에도 유정과 녹주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루는 인력거를 타고 돌아오는데 검은 그림자가 인력거를 향해 돌진해왔다. 직감적으로 김유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인력거꾼에게 정거하지 말고 빨리 앞으로 달려가라고 소리쳤다. 김유정은 번쩍이는 뭔가를 손에 들고 있었다. ‘칼이다’ 하는 생각이 들자 온몸이 오싹해졌다. 인력거꾼은 재빠르게 앞으로 달려갔으나 김유정이 더 빨랐다. 그는 인력거 채를 움켜잡고 나에게 소리쳤다. “녹주, 오늘 밤은 너를 죽이지 않으마. 안심하고 내려라.” 그가 들고 있던 것은 하얀 몽둥이였다. 그는 자기 얼굴을 내 얼굴 가까이 들이대더니 불 뿜는 듯한 눈초리로 노려보면서 물었다. “너는 혹 내가 돈이 없는 학생이기 때문에 나를 피하는 거지?” 나로서는 너무나 의외의 질문이었다. 잘못 대답하면 내가 돈에 의해 좌우되는 천한 여자가 될 것만 같았다…(중략)

“오늘 너의 운수가 좋았노라 그 길목에서 너를 기다리기 3시간, 만일 나를 만났으면 너는 죽었으리라.” 이 정도의 협박편지가 들어온 것은 그해 즉 1928년 겨울쯤이다. “엊저녁에는 네가 천향원으로 간 것을 보고 문 앞에서 기다렸으나 나오지를 않았다. 만일 그때 너를 만났다면 나는 너를 죽였을 것이다. 그러나 좋아하지 마라. 단 며칠 목숨이 연장될 따름이니까.” 나는 몸이 오싹해졌다. 편지는 잉크로 쓴 게 아니라 혈서였다.”[3]

박녹주는 유정의 광적인 구애를 피해 1928년에 한 달, 그리고 1929년에는 두 달간 원산에 있는 삼방 저수지에 머물며 창 공부를 했다. 그가 종적을 감추었던 동안, 유정은 그의 집 앞을 서성이며 점점 더 격한 사랑의 마음을 쌓았다. 유정의 감정은 연모인지 분노로 가득 찬 복수의 심정인지 모르게 모호해졌다. 당시 유정은 몸 상태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술을 마셨고, 늑막염을 앓고 있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허약했다고 한다.

몸이 쇠약해져 감을 느낀다. 점점 무거워지는 시간의 무게를 뚫고 가려운 잔기침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가만히 누워 추락하는 기분을 도저히 참아낼 수 없다. 아무도 닿지 않는 곳까지 떠내려갈 것만 같다. 결국, 오늘 밤도 또다시 빈 종이 앞에 몸을 놓인다. 지난날을 잔상 속에서 답습하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경험적으로 배운다. 그러나 눈 뜬 채 지나가는 밤을 견디기 위해 다른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어머니를생각한다실은어머니를닮은여자를생각한다당신이노래할때짓는표정과이제내가눈감고도그릴수있는그몸짓을



3. 천재와 광인 사이 : 박제되어버린 이상


때로는 기쁘다. 내가 아닌 그에게 지배당하는 육체. 신 같은 게 있다면 내 몸을 겪으면서 그의 언어가 전하는 것. 이 나약한 몸 하나가 그의 힘에 완전히 사로잡히고 뒤집히고 울부짖으면서 내 입술로 가장 완벽한 문장을 읊어내는 것. 도무지 인간의 의지로는 거부해낼 수 없는 그 거룩하고도 희미한 존재의 원천. 그것의 뿌리가 지금 내 몸 안에, 어디라고 이름 붙여야 할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깊은 곳에서부터 꿈틀거린다. 내가 그를 앓으면서 그가 나를 앓는다. 그러나 그가 내가 아닐 리가 없으므로 내가 지배하는 나의 육체, 정신, 박제된 비극과 비로소 온전해지는 나의 세계. 나는 자주 기쁘다.


우리는 왜 사랑과 폭력을 혼동하는 것일까. 예술이라는 이름을 내건 창작 활동과, 이에 종사하는 창작자들의 폭력은 훨씬 더 쉽게 용인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예술이라는 말이 풍기는 뉘앙스 때문이다. 예술가, 천재, 광인. 이 단어들은 모두 어딘지 모르게 현실과는 동떨어진, 신비로우면서도 이상야릇한, 어쩐지 범접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을 공유한다. 그 이유는 ‘광기’에 있다.

광기는 예술사의 오래된 화두로서, 수많은 이들이 예술의 근원이자 원천으로 광기를 제시해왔다. 예술성, 창조성, 천재성이 한데 얽혀 예술에 있어 광기란 필수 불가결한 요소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술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미치광이’의 모습, 즉 광기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광기와 예술이 일정 부분 공유하는 정서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둘이 완전히 동일하게 인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광기의 모호성은 광기에 관한 역사적 논의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이성을 매우 중시한 동시에 신이 준 광기를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는『파이드로스』에서 신적인 광기의 네 번째 종류로 사랑의 광기인 에로스를 제시하고 에로스를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최대의 행운으로 여긴다. 플라톤에게 에로스는 이데아를 알고자 하는 이성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 따르면, 중세에 광기는 종교적으로 이해되면서 광인은 이성적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신적 계시를 전하는 자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광인은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또한, 중세의 광인은 사회에서 배척당하지 않았으며 비(非)광인과 함께 살았다. 이와 달리 르네상스 시대의 광인들은 비광인과 함께 도시에 머무르지 못하고 ‘광인들의 배’에 태워져 육지로부터 격리되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의 광인들은 종종 도시에 정박하여 다른 세계로부터 방문한 신비한 자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들은 여전히 중세의 광인처럼 어떠한 앎을 보유한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이처럼 광인들의 배는 광기의 두 가지 위치, 격리된 광기와 앎을 보유한 광기의 모습을 동시에 드러낸다. [4]

그러나 데카르트의 철학이 등장하면서부터는 광기를 완전히 배제한 논리가 펼쳐진다. 그는 이성을 진리의 척도로 내세우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두 손이 그리고 이 몸통이 내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는가? 이것을 부인하는 것은 미치광이의 짓과 다름없을 것이기에 말이다. 미치광이는 검은 담즙에서 생기는 나쁜 증기로 인해 두뇌가 아주 혼란되어 있기 때문에 알거지이면서도 왕이라고 (…) 우겨댄다. 그렇지만 이들은 한갓 미치광이일 뿐이다. 그래서 내가 이들의 언행 가운데 몇 가지만이라도 흉내 낸다면 나 역시도 미치광이로 보일 것이다.”[5]

근대적 광기는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와는 다르게 ‘병리적 영역’으로 취급되기 시작한다. 그 계기는 근대적 의미의 정신병원과 정신질환자의 출현에 있다. 푸코는 이를 “광기는 정신현상학을 통해 부분적으로만 벗어나게 되는 배제의 영역 안에 놓여 있다.”[6]고 표현한다. 현재까지도 광기에 대한 설명으로 정신병리학적 접근이 우선시되고 있다. 그러나 광기가 정말 하나의 질병인지, 혹은 천재성이나 예술적 영감인지, 아니면 본능적인 욕망과 충동의 집합, 그것도 아니면 이 모든 것을 포함한 개념인지는 학자마다 정의를 달리해왔다.

어쩌면 우리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을 전부 모아 ‘광기’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식과 무의식, 이성과 비이성의 경계마저도 뚜렷하지 않은 이 시점에서 우리는 광기 자체의 허구성에 대해 의심해봐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병과 천재성, 그리고 광기에 대한 논의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한국 문단의 문제적 작가, 이상에 대해 살펴보자.


1910년 8월 20일(음력) 출생.

1937년 4월 17일 오전 4시경, 동경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영면.

약 7년에 지나지 않은 작가 생활 동안 천재적인 작품을 남긴,


이상. 실험적인 형식의 시와 소설을 다수 발표한 작가 이상은 그의 짧은 생애에서 함께했던 수많은 여성과의 관계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한 연구에 의하면 이상이 처음으로 ‘내통’한 여자는 경성고공 동급생 가와카미시게루의 집 아래층 일본 음식점 작부 종업원인 ‘기누코’였으며, 흔히 그의 첫 번째 애정 상대로 일컬어지는 여성은 ‘금홍’이다. 금홍은 이상이 개업한 <제비> 다방의 마담이었고, 이후 이상이 경영하려다 실패한 카페 <무기>와 <쓰루>의 여급이 될 예정이었던 ‘권순희’도 그가 애정의 대상으로 삼았던 여성 중 한 명이다. 1936년 결혼하게 된 여자는 친한 친구였던 구본웅의 이모 ‘변동림’이다. 이상과 연애, 여성과의 관계는 시기별로 구분되기보다는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기에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상 평전: 암호적 예술의 숲을 찾아서』에서는 금홍을 이상 여성 편력의 시초로 보며, 제2, 제3의 여인과 이상의 관계는 금홍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분석했다.

이상의 이러한 여성 편력은 다양한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가 작품에 등장시킨 여자는 거의 모두 성판매 여성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날개」, 「종생기」, 「봉별기」, 「애야」의 주인공 여자는 전부 성판매 여성이며, 열 편이 넘는 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중 하나를 살펴보자. 「광녀의 고백」의 주인공은 성판매 여성인 ‘S자’이다. 그는 시 속에서 부처의 제자인 아라한과 성관계를 맺고, 아라한을 잉태하고, 낙태한 다음 어느 사찰인지를 향하여 떠나게 된다.

"얼굴은여자의이력서이다.여자의입은작기때문에여자는익사하지아니하면아니되지만여자는물과같이때때로미쳐서소란해지는수가있다.온갖밝음의태양들아래여자는참으로맑은물과같이떠돌고있었는데참으로고요하고매끄러운표면은조약돌을삼켰는지아니삼켰는지항상소용돌이를갖는퇴색한순백색이다.”

‘퇴색한순백색’에서 우리는 ‘순백색’이라는 단어가 즉각적으로 불러일으키는 순수하고 순결한 이미지에 주목해야 한다. 여성은 순백하고 순결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 안에서 성판매 여성인 ‘S자’는 ‘퇴색한’ 순백색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남성을 받아들이고 쾌감을 얻으면서 성을 판매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아래 인용구에서 초콜릿은 남성의 성기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웃는여자의얼굴에는하룻밤사이에참아름답고빤드르르한적갈색초콜릿이무수히열매맺혀버렸기때문에여자는마구대고초콜릿을방사하였다. (중략) 나한은비대하고여자의자궁은운모雲母와같이부풀고여자는돌과같이딱딱한초콜릿이먹고싶었던것이다”

“여자는마침내낙태한것이다.트렁크속에는천갈래만갈래로찢어진POUDRE VERTUEUSE가복제된것과함께가득채워져있다.사태死胎도있다.여자는고풍스러운지도위를독모毒毛를살포하면서불나비와같이난다. (중략) 여자는콧노래와같은ADIEU를지도의엘리베이션에다고하고No.1~500의어느사찰인지향하여걸음을재촉하는것이다."

그녀는 성 구매자로 추정되는 남성과의 성관계를 ‘즐긴’ 다음, 낙태하고, 옛날의 자신이 아니라며 아무 의무도 없이 자유로워진 채로 떠난다. 시 속에서 여성은 순수란 없고, 돈과 탐욕만 남은 인물이 된다.

여성 인물 유형의 부정성 극대화는 이상 작품의 커다란 모티프이다. 「대상관계이론을 중심으로 본 작가 이상과 그의 작품세계」에서는 이상의 문학에 등장하는 여성을 부도덕, 악덕의 대명사로 분석한다. 작품 속 여성들은 남자를 속이거나 집을 나가고, 심지어 살인을 시도한다. 이상은 여성의 악마 같은 속성을 그려내면서 이러한 악마성에도 불구하고 남성에게 있어 항상 그리운 대상인 여성의 면모를 보여준다고 한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폭력적인 구조는 악마적인 여성상을 그려 여성에 대한 증오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면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상은 성의 이중 기준을 통해 여성을 두 종류 집단으로 분할하는 가부장적인 인식을 채택한다. 성녀 대 창녀, 아내나 어머니 대 매춘부, 결혼 상대 대 놀이 상대. 이상의 작품 속에서 여성은 ‘창녀 상像’이거나 ‘어머니 상像’이다. 그가 궁극적으로 지향한 것은 당연하게도 모성적 애정을 주는 어머니 상의 여성이었으나 하층민의 삶을 산 그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창녀 상의 여성이었다. 그는 자신의 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창녀를 창녀로 생각하지 않는 방법으로 만족감을 얻는다. 다시 말해, 그가 생각하는 ‘창녀 상’의 여성에게 ‘어머니 상’의 프레임을 덧씌우게 되는 것이다.

“내가 매춘부에게 은화를 지불하면서는 한 번도 그네들을 매춘부라고 생각한 일이 없다”

“시골에 있는 ‘고향의 복장’을 한 창녀를 환상하자 ‘여자의 백치 비슷한 표정마저도 꿈같이 그리웁게 보인다.’”

그가 반복적으로 성판매 여성을 성모나 신부로 묘사하고, 창녀촌을 ‘성모의 시장’으로 부르면서 여성을 신격화하려 했던 시도도 이중 프레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존경하고, 신성시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은화를 지불’하여 ‘구매’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또한, 그의 아내 변동림과의 한 일화에서도 그의 여성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나는 방품림을 걸으면서 많은 소재를 이상에게 제공했다. 사랑이라든가 질투라든가 하는 애정의 문제로 얘기했다. 그럴 땐 나는 남녀란 어디까지나 1대 1의 인간 대 인간이란, 인간의 존엄성을 들고 나왔다. 그러면 이상은 골짜기가 메아리치는 웃음을 터뜨렸다. 연거푸 웃었다. 처음 들어본다는 듯이 웃었다.”[7]


이러한 이상의 여성에 대한 인식은 여성 공포증, 즉 유년 시절에 여성으로부터 비롯된 정신적 상처와 트라우마의 후유증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상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네 살 때 백부집에 ‘양자’로 가게 된다. 이상과 백부의 사이에는 조부의 유산 상속 문제가 있었는데, 이는 특히나 백모 김영숙의 아들 ‘문경’을 중심으로 더욱 첨예해졌을 것이라고 예상해볼 수 있다. 백부의 집에서 20여 년간 양자로 산 시간은 그에게 고독과 소외에 대해 일깨워준다. 이상의 여동생 김옥희가 쓴 글 <오빠 이상>에 보면 아래와 같은 부분이 나온다.

“오빠의 성격을 서막부터 어두운 것으로 채운 사람은 우리의 큰어머니(김영숙)였다고 집안에서는 다 그렇게 생각한다. 김연필씨는 슬하에 자식이 없었기에 큰오빠를 양자 삼아 데려다 길렀다. 그런데 자식을 보겠다고 안간힘을 쓰시던 큰어머니께 큰오빠 존재가 마땅치 않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어린 시절 겪은 생모와의 이별, 생모로부터 버려졌다는 자각과 더불어 입양 간 집에서 백모와의 대립은 그에게 유년 시절 아픈 기억을 남겨주었다. 이 때문에 오랜 그리움의 대상인 동시에 자신을 버린 증오의 대상인 어머니가 그에게 변형된 여성성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제레미 홈즈는 불안정 애착의 근본적인 문제는 자신을 거부하거나, 예측 불가능하게 행동하는 보호자와 애착을 유지하려는 데에서 유발된다고 보았다.[8] 유년 시절의 상처가 일종의 ‘광기’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광기가 이상의 예술적 원천이 되어주었을까. 이상은 자신의 광기를 토대로 창작에 임했을까.

광기를 정신질환으로 한정해서 생각해보자. 광기와 예술 사이의 상관관계는 통념인 동시에 다수의 연구로 뒷받침되고 있다. 작가를 중심으로 예술가의 정신장애에 관해 연구했던 안드레아슨의 연구에서 작가군은 일반인과 비교했을 때 정서장애, 즉 우울장애나 흔히 조울증이라고 불리는 양극성 장애(bipolar disorder) I, II형을 갖고 있을 확률이 월등하게 높았다고 한다.[9] 2001년에 헝가리의 시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서도 시인 중 67.5%가 양극성 장애의 진단기준을 충족했다. 일반인 집단에서 우울증 유병률이 7~10% 정도, 조울증 유병률이 각각 0.6~3% 정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분명 유의미한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10]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연구들이 정신질환과 창의성 사이 상관관계의 존재 여부를 증명했을 뿐, 두 요인이 정확히 어떠한 관계인지는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를 섣부르게 인과관계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과 예술적 창의성이 두드러지는 사람의 교집합은 분명 존재하나 정신질환이 훌륭한 예술을 낳는다거나 예술을 하면 정신질환을 얻게 된다는 결론에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임상심리전문가 임민경의 칼럼 「예술적 창의성과 정신장애」에서는 창의성과 정신질환의 관계란 매우 복잡하며, 무엇 하나가 증가하면 다른 하나가 감소한다는 식으로 간단하게 설명될 수 없다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이상의 광기가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앞서 살펴봤듯이 광기가 예술을 ‘야기’했다는 인과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상이 유년기의 트라우마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고 다양한 예술 활동을 펼쳐왔음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의 광기가 예술의 원천이 되었다거나 예술을 하며 광기가 생겨났다는 식으로 귀결할 수는 없다. 또한, 궁극적으로 예술이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강력한 부정이 필요하다. 예술은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가 아니라 다만 하나의 표현양식일 뿐이기 때문이다. 예술을 매개로 한, 혹은 예술로 포장된 폭력을 묵인할 때 예술은 폭력 재생산의 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이른바, 폭력을 '괜찮은 것'으로 보이게끔 하는 것이다. 연쇄적인 폭력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 폭력이 폭력으로 인정되는 일은 필수적이다. 이는 지나치게 명백하지만, 예술이라는 이름 앞에서 너무 자주 잊히는 사실이다.

김유정과 이상. 중고등학교 국어 교육과정 상에서도 절대 빠뜨리지 않는 이 두 명의 작가는 한국 문단 내에서 공고한 입지를 다져왔다. 그들의 예술성, 천재성과 그 문학적 성취에 관한 논문이 지금까지도 쏟아져나오는 등 그들이 남긴 '작품'은 여전히 추앙받고 있다. 이러한 절대적인 위상은 그들 삶의 궤적과 작품을 연구하는 데에 지대한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그들이 행해온 폭력을 은폐시켰다. 이미 수많은 사람의 인식 속에 그들은 짧지만 강렬한, ‘진정한’ 예술가다운 삶을 살고 떠난 ‘천재’로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예술가는 예술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 예술은 단지 인간의 창조 활동 중 하나이며 그 어떤 악행의 면죄부도 되어줄 수 없다. 왜 예술가는 다르고, 예술은 괜찮은가. 그 어느 예술가도, 그 어떤 장르의 예술도 괜찮지 않다. 지금껏 사람들은 예술가의 극적인 연애와 뮤즈, 완벽한 작품을 위해 파멸한 뜨거운 사랑 이야기에 주목했지만 아무도 예술가가 ‘사랑’한다고 말했던 대상에게 어떠한 폭력을 행했는지, 그 흔적이 작품 속에 어떻게 내재하여 있는지에 관심 두지 않았다. 이제 우리가 예술가의 삶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할 때이다. 왜 예술가는 ‘그럴 수 있지’ 않은지, ‘그래도 되지’ 않는지 따져야 한다. 예술가라고 해서 한 사람을 함부로 위협하고, 대상화하고, 깎아내린 다음 그 모든 행위를 사랑이라고, 혹은 예술이라고 포장해버릴 수는 없다. 그러므로,

지금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그 창작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혹시 그가 사랑이라고 말하면서, 예술적 영감이라고 말하면서, 누군가를 성적으로 갈취하고 대상화하면서, 자신이 천재라는 자의식에 취해 있지는 않은가.


[1] 전체 원고 중 이탤릭으로 표기된(브런치에서는 나눔명조로 표기) 모든 부분은 내용의 전달을 돕기 위해 제가 상상한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으로, 어떠한 고증도 이루어지지 않은 완전한 허구입니다!

[2] 한국일보에 연재(1974.01.05.~02.28.)된 박녹주의 <나의 이력서> 중 유정이 녹주에게 보낸 편지 일부

[3] 한국일보에 연재(1974.01.05.-02.28.)된 박녹주의 <나의 이력서>

[4] 황수현(Hwang, Suhyeon)."비극적 경험으로서의 광기와 그 기능 - 미셸 푸코의 광기 분석과 플라톤의 에로스를 중심으로-비극적 경험으로서의 광기와 그 기능 - 미셸 푸코의 광기 분석과 플라톤의 에로스를 중심으로-." 생명연구, (2016): 55-87

[5] 르네 데카르트, 이현복 옮김, 『성찰』, 문예 출판사, 2013, 35쪽.

[6] 미셸 푸코, 박혜영 옮김, 『정신병과 심리학』, 문학동네, 2002, 133쪽.

[7] 김유중·김주현 편, 『그리운 그 이름, 이상』, 지식산업사, 2004, 200쪽

[8] Jeremy Holmes (2010). 존 볼비와 애착이론 (이경숙 역). 서울: 학지사. (원저 2001 출판)

[9] Andreasen, N. C. (1997). “Creativity and mental illness: Prevalence rates in writers and their first-degree relatives. Eminent creativity”, everyday creativity, and health, 7-18.

[10] Czeizel, E. (2001). “Aki költő akar lenni, pokolra kell annak menni?: magyar költő-géniuszok testi és lelki betegségei”, Táncos Grafi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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