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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66호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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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편집위원회 Feb 24. 2024

전쟁은 무엇을 무너뜨리는가

수습편집위원 60, 봉화, 편집위원 검은

전쟁은 무엇을 무너뜨리는가 – 기후 위기 및 식량 위기를 중심으로


  그간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인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전쟁은 인간이 영위해 온 일상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인간이 인간과 맺어온 다양한 관계를 파괴하며 결국 인류가 스스로 절멸할 가능성도 가진다는 수사법으로 이야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수사가 간과하는 것은, 인간이 일으키는 전쟁이 인간뿐 아니라 인간을 둘러싼 환경과 비인간 존재의 삶을 파괴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 글의 목적은 인간과 비인간의 생명이 가지는 가치의 경중을 일일이 따지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이 글에서는 전쟁을 일으키는 상황이나 전쟁을 유지하는 가치관이 지구의 생태계뿐만 아니라 결국 이와 연결되어 있는 인간에게까지 모두 피해를 주기 때문에, 전쟁으로 인해 망가지고 무너지는 것이 비단 인간의 삶만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전쟁의 발발과 더불어 군대, 무기, 전쟁 전략 등 전쟁과 관련된 모든 요소들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시급한 문제로 대두되는 기후 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이런 모든 상황은 인간의 생존에 있어 필수적으로 마련되어야 할 식량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1. 전쟁과 기후 위기의 악순환


  전쟁과 기후 위기는 서로가 서로를 되먹이는 악순환의 관계에 있다. 예를 들어, 전시 중에 사용된 무기나 전략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난 지역에는 심각한 환경 오염이 일어난다. 반대로 기후 위기로 일상을 영위하던 환경이 점점 생명이 살기 어려운 곳으로 변하고 식량을 비롯해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자원이 부족해지면서, 집단 간 갈등과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환경 오염과, 궁극적으로는 기후 위기가 더 심해지는 결과가 초래된다. 이와 관련된 사례는 1970년대에 일어났던 베트남 전쟁과 1980대부터 2000년 초까지 이어진 수단 다르푸르 분쟁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비단 전쟁 전후뿐 아니라 전쟁 중에도 식량 자원은 매우 중요한 전략적 물품으로 기능하는데, 바로 이 점 때문에 적군의 식량 생산지, 혹은 보급로를 차단하는 것은 효과적인 전쟁 전략 중 하나로 간주된다. 베트남 전쟁에서 제초제를 대량 살포하는 ‘랜치 핸드(Ranch Hand)’ 전략은 적군과 그 동조자들의 식량이 될 만한 농작물을 없앨 뿐 아니라 적군의 은신처를 드러내 공중폭격 지점의 시야를 확보할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해당 작전에서 미 공군은 독성물질인 다이옥신을 혼합하여 만든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 그리고 그 외의 다양한 고엽제를 비행기나 헬기로 베트남 농토지에 쏟아부었고, 산림벌채용 불도저로 매일 800헥타르씩 숲을 밀어냈다. 이는 전쟁에서 베트남의 산림과 농작물을 단순한 ‘잡초’로 취급했기에 자행될 수 있었다.

  이 작전으로 베트남 전체 산림의 5분의 1 이상에 해당하는 2만 제곱킬로미터 면적의 녹지와 남베트남의 맹그로브숲 40퍼센트가 사라졌고, 수천 제곱킬로미터의 논과 밭이 반영구적으로 훼손되었다. 이로 인해 토양이 오염되고 숲이 사라지며 홍수도 잦아지게 되었다. ‘랜치 핸드’ 전략으로 발생한 피해는 이뿐만이 아니다. 전쟁 이후, 해당 지역에는 고엽제에서 비롯한 독성물질에 노출되어 후유증을 앓거나, 토지의 오염 때문에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자신의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한순간의 전략이 돌이킬 수 없는 환경 훼손과 피해를 낳은 것이다.


  수단의 다르푸르 분쟁은 미국 전략국제연구센터에서 21세기 최초의 ‘기후 전쟁’이라고 부를 만큼, 전쟁의 발발 원인과 결과까지 기후 위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다르푸르는 다양한 인종과 부족들이 공존하는 지역이다. 북부 지역에는 Zaghawa, Bideyat과 같은 아프리카계 부족과 아랍계 무슬림이, 서부 지역에는 아프리카인과 Fur, Masaleet 등의 비아랍인 부족들이, 남부 지역에는 Reziegat, Taisha Bani-Helba 등의 아랍 혈통의 부족들이 분포하고 있다[1]. 이들 다양한 민족과 부족 간의 다툼은 기후 위기와 함께 시작되었다. 1980년대에 수단의 연속적인 가뭄이 발생하면서 다르푸르는 점점 생존이 어려운 환경으로 변해갔다. 이로 인해 부족해진 자원을 둘러싼 아프리카계 농경민과 아랍계 유목민 사이의 갈등은 더욱 잦아졌고, 결국은 폭력적인 분쟁으로 번져갔다. 1990년대에 들어 분쟁에 가담한 부족들이 더 철저한 군대를 갖추기 시작하면서 다르푸르 내의 갈등은 격화되었다. 중앙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지원을 받는 잔자위드(Janjaweed) 민병대가 조직되자, 서부와 남부 지역은 잔자위드 군대와 정부에 대항하는 반대조직인 SLA(the Sudan Liberation Army)와 JEM(the Justice and Equality Movement)을 결집한 것이다. 특히 2003년, SLA와 JEM이 다르푸르의 일부 정부 조직을 공격하며 당초 부족 간 갈등이었던 분쟁 상황은 훨씬 큰 규모로 번져갔다.

  다르푸르 분쟁으로 2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2백만 명 이상의 국민이 난민이 되었다. 분쟁으로 인한 피해는 인명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일례로, 수단 정부는 전쟁을 피해 수도 카르툼으로 도망친 피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피난민 수용소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곧 피난민 수용소 근방 반경 10km의 지대는 전부 황무지로 바뀌고 말았다. 피난민들이 취사와 난방을 위한 땔감으로 인근 나무를 전부 채집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이에 더해, 잔자위드 민병대는 마을을 습격할 때마다 집이나 시설물을 방화하였으며 더불어, 나무를 불태우거나 벌목하는 등의 공격을 자행하였다. 이로써 피난민들은 돌아갈 곳을 잃게 되었으며, 지역의 생태계는 손 쓸 틈 없이 망가지고 말았다. 결국 기후 위기로 인한 갈등은 사람들이 원래로 돌아갈 일상과 살아갈 환경을 완전히 파괴하고, 이로 인해 다시 자연의 파괴로 귀결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2. 무기가 된 자원과 기후 변화


  전쟁을 일으키는 과정뿐 아니라 전쟁에서 쓰이는 총기, 폭탄, 탱크 등을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탄소 배출이 발생한다. 그러나 전쟁에서 사용되는 무기는 위에 적힌 것만 있지 않다. 전쟁 과정에서 파괴된 것뿐만 아니라 전쟁과 상관없이 나타나는 기후 변화와 그로 인해 생기는 어려움을 악용하여 아군의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에 대하여 이스라엘로부터 불법 점유와 전쟁을 겪고 있는 팔레스타인, 그리고 올해 발발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을 사례로 제시해보고자 한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침략 이후 이스라엘의 불법 점유뿐 아니라 ‘기후 식민화’[2]로 곤경에 처해 있다. 다르푸르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또한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폭염과 홍수가 증가한 지역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불법 점유하며 과거 제국주의 국가가 식민지에 행했던 것처럼, 기후 식민주의적 행동을 실행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로 분리하여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도록 만들었고, 기존의 팔레스타인이 관리하던 건조한 땅을 방치함으로써 사막화와 기후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행하는 기후 식민화 작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이미 심겨 있던 올리브 나무를 1967년부터 2012년 사이에 약 80만 그루를 벌목하였고, 팔레스타인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에는 오히려 나무를 심는 행동을 벌이고 있다. JNF(Jewish National Fund)를 통해 네게브 사막 베두인 마을에 숲을 조성해서 그들의 귀향을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심지어 이스라엘군은 드론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이 파슬리, 완두콩, 밀, 보리 등을 심은 밭에 제초제를 살포함으로써 팔레스타인인들의 농사에 직접적으로 방해를 가하며 이들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자원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사용하며 착취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이는 팔레스타인이 지닌 수자원의 수탈에서 잘 드러난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는 라말라 지역의 강우로 형성되는 마운티 대수층을 주요 수자원으로 사용하는데, 이의 80%를 이스라엘이 가로채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측의 허락을 받아 물을 사용하여야 하며 사용 가능한 물의 양 또한 통제되어 있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스라엘 측에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새로운 수원을 강구할 틈 또한 주지 않고 있다. 1967년 이래 이스라엘은 수자원의 생산성이 가장 높은 서(西) 대수층에 팔레스타인인이 사용할 우물을 새롭게 파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이스라엘은 이미 존재하는 수원 시설도 파괴하고 있다. 2011년 이스라엘은 수자원 관련 시설 89개를 허물었는데, 이 중 21개가 우물이고 34개는 농사와 목축에 필요한 빗물 탱크로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삶과 생업에 필수적인 것들이었다. 이러한 수자원 수탈의 결과,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내 대수층과 요르단 강 유역, 그리고 탈염된 물과 함께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수자원을 차지하였고, 이로써 이스라엘인들은 팔레스타인인의 물 소비량의 8배에 달하는 수자원을 향유하고 있다. 이 밖에도 팔레스타인을 비롯해서 자신들이 침략하고 불법적으로 점유한 지역의 에너지를 수탈하고 있는데, 팔레스타인 내의 천연가스를 추출해 유럽에 수출하여 불법적으로 이익을 챙기기도 하였다.

  이런 불법 행동을 지속함에도, 이스라엘은 ‘그린 워싱’[3]으로, “팔레스타인은 기후 변화를 악화시키고 있으며 이스라엘이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라는 선전을 통해 국제사회의 신임을 얻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외부의 개입을 원천봉쇄하는 동시에 팔레스타인이 처한 기후 위기를 본인의 입맛대로 사용한다. 결국 이스라엘의 기후 식민주의는 팔레스타인인들을 기후 난민으로 전락시키며, 이스라엘이 영토를 체계적으로 확장하도록 만들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갈등은 전쟁이 발발한 올해에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어 소련의 한 부분이었던 우크라이나가 소련으로 독립했을 때부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서방화를 막기 위해 힘썼고, 이 때문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충돌이 지속되어왔다. 2022년 2월부터 진행되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두 국가 간 갈등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고 언제 끝날지 요원한 상황이다.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수많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자신이 살던 터전을 떠나야 했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일상이 파괴되었으며, 이들의 삶을 지탱해주던 대부분의 기반 시설도 무참하게 무너졌다. 그러나 러시아의 침공과 전쟁이 망가뜨린 것은 두 국가 간의 사람들이 그간 영위하던 삶만은 아니다. 

  두 국가 간 전쟁은 유럽의 에너지 위기와 동시에 전 세계의 식량 위기를 낳았다. 유럽이 처하게 된 에너지 부족의 상황을 먼저 살펴보자. 러시아는 유럽의 천연가스 수요에 맞춰 필요량의 35%를 공급하는 주요 에너지 수출 국가이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명분을 확인하고 유럽의 전쟁 개입을 차단하고자 천연가스를 무기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즉, 러시아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유럽으로 공급되는 천연가스의 양을 임의로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전쟁의 발발 이후 이미 12개의 EU 회원국에 천연가스 공급을 줄였고, 에너지 소비의 상당량을 러시아의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는 국가들은 직접적인 에너지 부족의 피해를 겪고 있다. 에너지 공급의 주도권은 여전히 러시아에 있기 때문에 ‘유럽은 올해 가장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한다’는 우려가 나타날 정도로 유럽이 겪는 피해는 현재에서 끝나지 않고 지속될 전망이다. 물론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직접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국민과 유럽 국가의 국민을 결코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가 유럽 국민의 정상적인 일상생활의 지속마저 어려움에 처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러시아로부터 온전하게 에너지를 수입하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여러 유럽 국가들이 자국에서 에너지를 생산하겠다며 탄소 배출이 가장 심한 화석연료와 환경적인 면 외에도 여러 위험성을 지닌 핵발전을 늘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전 세계적으로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는 등의 실천을 통해 기후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 탄소 배출을 줄이고자 시도해왔다. 그러나 이번 전쟁으로 인해 유럽의 화석연료 소비가 다시 증가하였고, 궁극적으로는 조금이나마 논의되어 온 기후 위기의 심각성이 다시 전쟁과 일상생활에 묻혀버리는 악영향이 초래되었다.

  앞서 서술했듯이 러시아가 활용하는 무기는 비단 천연가스만 있지 않다. 현재 진행 중인 전쟁이 초래한 식량 위기는 유럽 국가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식량 위기’라는 말이 허풍이 아닐 정도로 유럽 이상의 규모로 피해의 확산이 커질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전 세계 농산물 주요 생산국 및 수출국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수출하는 농산물이 전 세계에 공급되고 점유되는 비율은 옥수수 13.6%, 밀 8.5%, 해바라기 가공품인 해바라기유와 해바라기 박은 40%가 넘을 만큼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의 식탁에 차려지는 주요 식자재의 수출량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면서, 우크라이나가 수출해 온 농산물의 생산량은 이전에 비해 많이 감소했다. 우선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농토지와 농사에 필수적인 비료‧식자재 농장이 다수 파괴되어 농작물을 길러낼 환경조차 망가져 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는 우선 당장 전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자국의 피난민과 군인에게 필요한 식량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이기에 농산물의 수출을 규제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우크라이나의 농산물 수출 경로가 막힌 것도 수출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우크라이나에서 생산한 농작물은 흑해를 거쳐 전 세계로 수출되어왔는데, 러시아가 수출 규제를 내림으로써 많은 항구 도시가 막혀 해상운송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농산물을 생산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비료의 감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러시아는 매년 세계 생산량의 13%에 해당하는 5000만 톤의 비료를 수출하고 있는데,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비료 수출을 중단하였다. 농사를 짓고 있는 많은 사람이 비료를 이용해 농작물을 키우고 있다. 비료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면 수확량이 절반까지 감소할 수 있어 비료 감소가 농작물 생산 감소에 미치는 영향은 역력하다.

  식량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감소한 식량 생산량은 결코 우크라이나에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지속되는 전쟁으로 우크라이나로부터 농산물을 비롯한 식자재를 들여오기 어려운 많은 나라가 해바라기유 대신 식용유나 콩기름을 수입하는 등 ‘대체재’를 찾는 중이다. 결국 해바라기유뿐만 아니라 해바라기유의 대체재인 식용유와 콩기름에 대한 수요가 이전보다 많이 증가하면서, 이들 가격도 함께 상승하였다. 해바라기유, 밀을 비롯한 여러 식자재의 수요와 공급—그리고 가격의 변화는 작금의 사태와 관련 없어 보이는 국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예시로 한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한국은 우크라이나로부터 농작물을 많이 수입하지 않지만, 이번 전쟁으로 물가의 변동을 겪고 있다. 한국은 주식인 쌀뿐만 아니라 치킨, 짜장면, 밀 떡볶이, 갈비탕 등 우리가 즐겨 먹어온 밀을 사용한 음식이 우리의 제2의 주식이 될 정도로 밀의 수요가 많다. 그렇기에 우크라이나의 밀 수출이 규제된 상황은 이러한 밀의 가격이 상승하면서 한국의 요식업계에도 큰 타격을 입히고 있다. 당장 우리가 실감하고 있는 가게의 여러 음식과 식자재 비용이 오른 원인 중 하나는 결국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부터 파생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올해 발생한 폭염과 홍수 등으로 이전보다 심하게 기후 변화가 나타나 식량 생산이 더욱 감소하면서, 생존에 있어서 꼭 필요한 음식마저도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닿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심화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기후 변화와 식량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전쟁에서의 자원과 식량 등 무기가 아닌 것의 ‘무기화’는 우리를 근시안으로 만든다. 당장 눈앞에 있는 전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결국 먼 미래를 보지 못해서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만다. 이번 전쟁이 끝나고도 자원과 식량의 무기화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의 식탁이 위험하다. 한 번의 흉작이 있었고 내년에는 풍년이 오기를 기도하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경작 시기를 놓쳐버린 해에는 농작물 생산을 할 수 없다. 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진 땅에선 예전만큼 농작물을 생산할 수 없을 것이다. 물가의 상승과 변동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도 모른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우크라이나에서는 전과 같이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의 수출 규제 역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전쟁 상황에만 쓰이는 총, 탱크 등의 무기뿐만 아니라 자원과 식량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타국 간의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타격에 대해 더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3. 전쟁 이데올로기가 차린 식탁


  앞서 전쟁에 의해 기후 위기와 식량 위기가 초래되고 가속화될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특히 ‘전쟁이 휩쓸고 남기고 간 것’은 전쟁으로부터 살아남은 생명들이 그 잔해를 일상으로부터 치우고 새로운 텃밭을 일구는 순간까지도 곁에 남아있다. 군사주의와 전쟁의 패러다임은 일상을 전쟁으로 만든다. 생존에 필요한 식량을 재배하는 모든 과정에서 전쟁을 배제할 수 없고, 전쟁을 이끌어내는 논리가 그 과정을 옹호하기 때문이다. 농산물의 경작마저도 세계화와 단일화를 거치게 되고, 지구는 끊임없는 전쟁의 공격을 고스란히 받아낸다.

  반다나 시바는 현대 인류의 식량을 책임지고 지탱한다고 ‘믿는’ 산업농의 방식과, 주류 담론으로부터 괄시당했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전통적인 농업 방식을 비교하면서 현재의 농업 방식에 대한 재고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시바는 ‘폭력적인 지식 패러다임, 화학비료, 독과 살충제, 단일경작, 대규모 산업형 농업, 종자 독재, 세계화, 기업’이 가장 효율적인 농업이라는 믿음이 ‘산업농’이라는 신화를 만들었고, 지금의 농업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이끌었다고 말한다. 시바는 앞에서 언급한 단어들로 대표되는 농업 시스템을 ‘농생태학’으로의 패러다임 변화를 통해 현재의 식량 위기를 해결해나가야 함을 역설한다. 시바의 의견을 빌려서, 우리는 직접적인 전쟁의 과정과 결과뿐만 아니라 그간 전쟁을 뒷받침해온 논리들이 어떻게 현재에 초래된 식량 위기와 함께 세계적인 빈곤과 불평등을 야기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전쟁에서 당연한 상식으로 통용되는 군사주의적 사고방식은 ‘아군’과 ‘적군’을 상정하고 적군으로 판단한 이들을 편하게 착취하거나 필요에 따라서 절멸한다. 전쟁에서 아군에 필요한 것들을 착취하고 쓸모없고 무가치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망설임 없이 제거하듯이, 현재 세계적인 대기업에 의해 진행되는 농업 방식은 군사주의적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생태계의 모든 자원을 대기업이라는 일부 세력의 입맛에 따라서 조작하고 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시바가 이러한 ‘산업농’을 근거하는 이론적 근거를 두 가지 이론으로 보았는데, 첫 번째는 뉴턴-데카르트식의 분리 이론이다. 뉴턴은 세상을 더는 쪼개질 수 없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이는 자연을 살아있는 것이 아닌 죽은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으로써 시바는 이를 ‘레고 세트’로 비유했다. 잃어버린 레고 조각을 언제든지 같은 모양의 다른 블록으로 대체하듯 뉴턴의 이론은 자연을 인간이 필요에 따라서 변형시키고, 수정할 수 있는 것처럼 왜곡한다. 근대 과학이 만든 자연에 대한 그릇된 해석은 유전자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고 이는 유전물질이 지배 분자로서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주장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 믿음 체계는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유전자변형식품)로 계보가 이어진다. GMO는 특정 인종의 우월함을 외치며 학살을 벌인 이들의 믿음과 다르지 않은 사고방식에서 기초한다. 바로 유전적으로 “우월한” 종을 인류를 위해서 남겨야 한다는 우생학처럼, 유전 공학을 통해서 인간에게 “유익하고 좋은” 종만을 번영시키겠다는 의도는 궁극적으로 생물 다양성을 해칠뿐더러 자연의 총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기괴하게 보인다. 그렇지만 이는 산업농에서 “생산량의 증대”라는 목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두 번째는 다윈의 진화론이다. 다윈은 종의 경쟁을 생존의 패러다임으로 설정하였고, 이로부터 비롯된, 식물이 종의 생존을 위해서 다른 종과 싸울 수 있다는 믿음은 산업농의 방식에 영향을 주었다. 산업농이 만들어낸 단일 경작법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또한 다윈의 이론은 농작물을 두고 곤충과 인간이 대립하는 구도를 만든다. 다윈주의와 뉴턴-데카르트식의 분리 이론은 착취의 논리를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는 지식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도록 도왔다. 인간만을 위한 이해관계에 따라 만들어진 지식 패러다임은 자연을 무기질로 전락시켰고, 이는 산업주의로의 원만한 변환을 주도했다.

  앞선 이론을 등에 업은 산업농의 방식은 자연을 침략해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식민지로 만든다는 점에서 제국주의적인 행보와 다르지 않다. 산업농은 지구의 아픔과는 상관없이 당장 필요한 것을 뱉어낼 수 있도록 동식물을 죽이고 용도에 맞게 개량한다. 지구를 정복할 수 있다는 개념은 언뜻 농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영토를 정복하기 위한 전쟁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에서 현재의 농업이 전쟁의 과정을 일부 재현하도록 만든다. 이는 농업에서 흔히 쓰이는 살충제에서 잘 나타난다. 전쟁에서 비롯된 산업농 패러다임은 한때 인간을 말살하는 데 사용되었던 화학 물질을 사용해 자연을 무참히 파괴하고 있다. 산업농이 사용하는 농화학 물질이 전쟁의 산물이자 그 본래 목적이 살생에 있었던 점은 곧 산업농의 자연에 대한 전쟁 선포로 이해할 수 있다. 농업은 인간의 생존이라는 목적 아래에 지속되지만, 그 과정에서 무기를 이용해 인간을 비롯한 다른 생물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점에서 살충제는 전쟁에서 산업농이 휘두르는 무기의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농업에서 나타나는 해충과의 전쟁은 이해관계에 따라 편을 나누고 상대편을 죽이는 전쟁의 구도와 다를 것이 없다. 해충도 인간의 관점을 벗어나 보면 결국 자연에 속하는 구성원이며 모두 그 나름의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해충(害蟲)이라는 단어도 인간에게 “해롭고 방해를 준다”고 여겨져 만들어진 개념에 불과하다. 그리고 살충제가 종자 소독에 그치지 않고 농지에 서식하는 다양한 생물을 죽인다는 점 역시 특정 생명을 적으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이 낳은 폐해이다.

  지금까지 생태계를 파괴하는 산업농 패러다임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와 비교해 ‘반환의 법칙’에 대해 살펴보자면, 이 법칙 속에서의 인간은 농사로 맺은 결실을 다시 그 근원인 자연으로 돌려주었다. 반환의 법칙이 중심이 되었던 과거의 농업에서는 생산자인 인간과 결실을 맺어주는 자연이 반환의 순환을 통해 이어졌다. 이러한 연결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농업이 충분히 자연이 감당할 만한 선에서의 공존을 이룰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살충제를 비롯해 오늘날 인간이 생산 효율만을 높이기 위해 벌이는 시도는 그간 반환의 법칙과 그로 이뤄내 온 균형을 파괴한다. 살충제와 비료로 만든 생산량은 결국 환상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전통적인 방식의 농업은 토양 내 유기물의 균형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지만, 화학비료는 반대로 토양을 더 이상 농사를 지속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든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유기물이 없는 텅 빈 토양에 비료를 부어 농업을 지속하는 것은 농작물의 영양분에 심각한 손해를 만들어낸다.     


  식량은 때로는 생산자—인간의 문화이자 그의 정체성이 된다. 인간이 환경에 맞춰서 농사를 짓고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하는 과정에서 이룩한 문화는, 결코 전쟁이 만들어 낸 단일경작의 효율성에 대한 믿음에 굴복하여 판매의 목적만을 가진 작물들로 치환될 수 없는 고유의 정신을 지닌다. 그렇지만 산업농의 사고방식이 확고해지면서, 이 식물들에 대한 침탈과 일률적인 단일 종 경작으로 내몰린 토양과 반환의 법칙 정신은 전쟁의 이데올로기로부터 공격받기 시작했다. 전쟁은 단순히 자원의 소모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는 희생되는 생명이 분명히 존재한다. 식량도 마찬가지로 단순하게 소비되기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면에는 전통 농법과 비옥한 농토를 빼앗긴 생산자가 있다. 산업농으로 생산된 농작물을 소비하는 자신마저도 생산 과정에서의 폭력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더 이상 식량을 단순한 상품으로, 전쟁을 단순한 지나간 역사의 일부분으로만 생각할 수 없다.

  산업농을 비롯한, 전쟁의 패러다임 속에서 인류는 자연에 순응하기보다 자연을 정교하게 변형하고 파괴하는 신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을 위해 만들어낸,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기술로 오히려 스스로를 궁지로 내몰고 있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업이 짜놓은 판에서 인간은 ‘녹색 혁명’의 신화를 추앙하며 막상 그로 인해 잃어가는 것들을 외면한다. 인간은 결국 더 많은 것을 앗아가는 파괴적인 패러다임을 진실이라고 믿으며, 내가 아닌 존재의 죽음이 주는 안락함에 길들여져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잊고 있다. 현재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농업이 극소수의 자본가만이 이익을 취하고 소농과 소비자는 언제나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자연과 식량을 잃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식량 생산의 권력을 어째서 극소수로부터 뺏어오지 않는 것인가? 우리는 지금껏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로부터의 탈피와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모든 생물 종을 멸절해야 하는 적으로 간주하는 군사주의적 사고방식을 벗어나, 인류를 지구 가족의 일원으로 보고 꽃가루 매개자들과 익충들을 먹이 그물 내의 공동 생산자로 인정하는 세계관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때다.”[4] 시바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다른 분야뿐만 아니라 농업에서도 전쟁이 만든 사고의 철회가 절실하다.

 

  지금까지 거칠게나마 전쟁과 기후 위기의 연관성, 그리고 전쟁의 사고방식으로부터 비롯된 식량 생산에 관해서 다뤄보았다. 전쟁, 기후 위기, 식량 위기—그리고 오늘날 농업 패러다임을 지배하는 것으로 보이는 식량 생산의 방법은 여러 파편으로 흩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전쟁은 다양한 무기로 비인간 존재도 파괴하면서 결국 이와 연결되어 있는 인간의 삶을 직간접적으로 무너뜨리고, 전쟁의 이데올로기는 비단 전쟁뿐 아니라 일상생활의 식탁에서도 나타나 우리를 지배한다. 

  이 글 너머로 지금 이 순간에도, 더 큰 전쟁들이 일어나고 있고, 글에 쓰이지 않은 더 많은 희생이 나타나고 있다. 간략한 형태로 제시된 국가와 지역 이외에도, 현재에도 벌어지는 수많은 전쟁들에서 우리는 민간인의 생명과 함께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결국 여전히 필요한 반전(反戰) 운동과 실천에 있어서, 우리는 전쟁뿐만 아니라 기후 위기 대응과 농업을 비롯한 다른 산업들의 구조적 착취의 탈피를 어렵게 만드는 전쟁 이데올로기를 함께 사고하고 이에 맞서야 한다. 




[1] 윤혜수, 「Climate Change, Environmental Scarcity and Violent Conflict: A case study of Darfur」. 숙명여자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8, 38.

[2] 분자생물학자 및 철학자 크리스토프 레만 수터(Christoph Rehmann-Sutter)는 그의 논문 ‘기후 식민주의를 중단하라’에서 ‘기후 식민주의’라는 용어를 제시하였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기후 위기의 ”이면에는 선진국에서 부를 창출해낸 개발 모델이 숨어 있다.“ 과거 제국주의의 양상으로 식민 국가에 자국의 상품을 들여오고 자국민이 정착하게 만든 것처럼, 부유하고 선진화된 국가들이 기후 위기의 책임과 생태발자국을 상대적으로 더 적게 남기는 국가에 ”외주화“하는 것이다. 기후 식민주의에 관해 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다음 자료를 참고하라. 쇤회퍼, 페트라. 「새로운 지배구조로서의 기후 식민주의」. 조예슬 옮김, Goethe Institut, 2019.10. https://www.goethe.de/ins/kr/ko/kul/ges/nac/21715212.html

[3] 그린 워싱은 친환경을 뜻하는 ‘Green’과 세탁을 뜻하는 ‘White washing’의 합성어로 실제로는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행동을 하고 있으나 광고 등을 통해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내세우는 행위를 말한다.

[4] 시바, 반다나.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우석영 옮김, 책세상, 2017,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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