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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66호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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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편집위원회 Feb 24. 2024

멋지고 비싼 안보를 결제하시겠습니까

편집위원 단(丹)

1.

  대한민국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수 차례의 전쟁을 치러온 국가이다. 인근 국가뿐 아니라 국가 내부에서도 거듭 전쟁이 발생해왔고, 아직까지도 분단 체제가 유지되고 있을 만큼 전쟁과 맞닿아 있다. 게다가 이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국민의 생활 속에 굳건히 자리 잡은 징병제, 민방위 경보훈련 등은 국가의 전쟁이 결국 일반 국민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언제라도 전쟁이 다시 시작될 수 있음을 방증한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전쟁을 역사 속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그에 대해 일종의 오락, 유흥거리나 콘텐츠 소재 정도의 가벼운 무게감을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가벼움은 전쟁의 서사를 지배하고 있는 ‘군대’의 영웅화에 기반하고 있다. 군사력을 동반하는 행위인 전쟁은 국민들의 안보와 생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만, 국민들은 이를 위협으로 인지하지 못한다. 이렇듯 전쟁의 공포에 둔감해진 우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등 외국의 전쟁이 미디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서야 어딘가에서 전쟁이 일어났음을 인식한다. 게다가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사례와 같이, 적국이 운용하는 군사력 그 자체에 공포를 느끼기보다는 자신과 같은 시민이 피 흘리고 쓰러지는 광경을 본 후에야, 충격을 받고 전쟁을 실감한다. 이처럼 ‘군대’라는, 전쟁의 일선에 서 있는 행위자는 전쟁이라는 사건에 연루된 ‘민간인’의 존재를 망각하도록 하고, 나아가 군대에 속해 있지 않은 ‘우리’가 언제든 전쟁의 당사자가 될 수 있음을 은폐한다. 그 때문에 국민들은 적국의 군사력과 시민들의 긴 피난 행렬, 보호받지 못하는 시민의 생명이 모두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 안에 연루되어 있음을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전쟁은 지금, 바로 여기에서 발생하지 않는 한 미디어를 통해서 전해진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 그리고 약자들이 겪는 전쟁의 참혹성은 미디어에 상대적으로 적게 노출된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전쟁이 자신의 목전에 드리워졌을 때, 자신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떠올리지 못한다. 또한 미디어에서는 전쟁 상황의 시나리오를 군인, 혹은 민간인 영웅에 국한하여 전개함으로써 재현의 불균형을 초래한다. 국민이 지닌 전쟁의 이미지는 총을 들 수 없는 사람, 도망갈 수 없는 사람, 죽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용맹하게 적군을 쏘아 이기는 군사 영웅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군대의 이야기에 지나치게 열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문화 인식은 국민의 일상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다시금 전쟁과 전쟁을 둘러싼 문화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드러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2.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2022년 3월 초, 전직 UDT 군인 ‘이근’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한 게시물이 올라왔다. 바로 자신이 속한 민간군사기업 ‘무사트’가 우크라이나 측의 의용병 요청에 응하여 우크라이나로 향한다는 내용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우크라이나를 여행금지 국가로 지정하고 출국을 엄격히 금하였으나, 이들은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 없이 비공식적 절차로 출국하였다. 이에 외교부는 이들이 여권법을 위반하였다고 지적하였으며, 여론 역시 개인의 안전에 관한 우려와 더불어 러시아와의 외교 관계 악화를 이유로 이들의 행태를 질타하였다. 이근 대위의 행보에 관한 수많은 의견 중 특히 주목할 만한 지적은 이근의 참전이 순수한 국방지원보다는 일종의 마케팅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출국을 알리는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자신이 협찬받은 가방 사진을 올리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이에 일각에서는 본인들의 국방 사업체인 ‘무사트’를 홍보하고 인지도를 얻기 위한 용도로 사회적 규율을 무시하고 전쟁을 이용한 것이 아니냐고 비판한 바 있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27일, 이들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대중들은 여전히 의용병 팀, 특히 그 리더격인 이근이 저지른 범법 행위와 사익을 위한 참전을 비판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충실하게 참여하였다는 증거와 인터뷰, 이들의 전공을 높이 사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응원 메시지가 공개되면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대중의 비판은 쉽게 사그라들었으며, 이근은 일부 팬들에 의해 참전 위인으로까지 격상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출국 이전과 참전 중, 그리고 귀국 후 이들의 행보를 면밀히 살피며 그들의 행동, 그리고 여론의 변화를 가능케 한 거대한 흐름이 무엇이었는지에 관해 비판해야 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근의 우크라이나 불법 참전처럼 전쟁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활용하는 사례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만 한다. 이근과 같이 전쟁에 상업적인 이유로 참전한 이들이 쥐고 흔드는 것이 무엇인지, 이들이 가진 무기가 유명인으로서의 인기만이 아님을 제대로 인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우크라이나 출국은 이근이 지금까지 쌓아온 크고 작은 논란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 계기였을 뿐이다. 대중은 유구하게 자신과 자신이 속한 기업의 ‘남성적’인 ‘강함’, 그리고 그에 따른 안보 및 구호 능력을 과시하고, 상업적으로 홍보해온 그의 행위에 대해 불편함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이근의 행보는 전혀 이상한 것이 없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이근 개인의 삶에 대한 도덕적인 판단과 별개로, 그의 본질은 엄연히 집단 혹은 개인의 안전을 자본의 저울 위에 올려놓고 금액을 흥정하는 사업가이기에 이 점을 면밀하게 주시해야 한다.


  안보를 판매하는 주체로서 이근의 정체성은 그의 직업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이근이 운영하는 민간군사기업 ‘무사트’는 원래 정부의 공적 책임에 속하는 광범위한 군사 및 안보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전쟁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사업체이다. ‘무사트’에 속한 프리랜서 용병들은 소비자가 제시한 금액에 맞춰 해당 서비스를 수행한다. ‘무사트’와 같은 민간군사기업은 그 등장부터 시장 논리에 크게 빚지고 있다. 1990년대 냉전이 종식되며, 전 세계적으로 군대의 감축 흐름이 이어진 바 있다. 이때, 양질의 군사교육을 받은 군전문 인력의 공급 과잉이 발생하면서 이근의 ‘무사트’와 같은 민간군사기업이 확장된 것이다. 군인들은 이제 국가에 소속되어 정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안보를 책임지는 대신, 자금을 통해 국가에 필적하는 안보 행위를 펼칠 수 있는 자본가의 도구로써 군사력을 발휘한다.

  이근 대위의 경우가 증명하듯, 자본에 따라 작동하는 안보는 비단 국경에 국한되지 않고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에 깊이 자리 잡혔다. 국가는 자신의 경찰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였고, 국민들에게 스스로를 보호하라고 독려한다. 1900년대 거리에 통행금지령이 내려지고 경찰 순찰을 하였던 것과 달리, 캡스와 KT텔레캅, 아파트 경비원이 돈을 받고 주민을 지킨다. 병원 앰뷸런스뿐만 아니라 사설 업체의 앰뷸런스가 환자를 이송하며, 돈을 더 지불하더라도 안전한 삶, 혹은 성공적인 구호를 바라는 이들이 사설 경호원과 사설 구조대를 채용한다. 오랫동안 자본주의의 법칙 속에서 살아온 국민들은 돈을 주고 구매한 자신들의 안전이 절대적인 권리를 지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렇게 자본주의의 논리로 서로의 신뢰를 구매하는 환경은 합리적이고 유용해 보이지만, 사람의 생명이 1분 1초가 급박한 상황에서 저울 위에 놓일 때, 합리를 상실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대부분의 재화를 구매할 수 있는 힘을 지닌다. 그리고 이 재화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일치할 때, 적절한 가격이 책정된다. 자본주의는 각자가 자신의 자원을 손에 단단하게 쥐고 흥정할 수 있어야지만 양측에 합리적이고 정당한 결과를 제공한다. 그러나 상업화된 안보가 거래하는 재화는 자본이 ‘구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취급하는 것은 자본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사람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목숨이 위태로울 때 구매자는 흥정과 선택의 여지 없이 안보를 제공하는 이의 요구를 그대로 따를 수 밖에 없다. 안보에 있어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구매자는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상업화된 안보’의 논리가 지닌 허구성이다. 자본에 의해 가감될 수 없는 것이 바로 안보에 달린 생명이기 때문에, 안보는 절대로 자본주의의 논리에 치환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공적 안보가 무능해지는 가운데, 정부와 개인은 상업화된 안보에 의지하고 있으며, 상업화된 안보를 판매하는 판매자들은 무소불위의 힘을 키워나가고 있다.


  이러한 ‘상업화된 안보’의 위험성은 다양한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4년, 4.16 세월호 참사는 민간 안보에만 의지하던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판매자’인 민간 구조사들과 ‘구매자’인 정부가 구조 비용을 논의하며 시간이 지체되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피해자가 생겨났다. 진행 과정을 지켜본 국민들은 예상치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요구하는 민간 구조사들, 그리고 이를 조율하거나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는 정부의 모습에 큰 불안을 느꼈다. 훗날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공적 책임의 주체인 정부가 또다시 시장에서 책임을 질 ‘대상’을 구할 것이라는 불안감,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안전을 거래 당할 수 있다는 긴장감이 팽배해졌다. 세월호 참사는 ‘상업화된 안보’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정부 또한 무력한 구매자에 불과하며, ‘구매해야만 하는 안보’의 희생자가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이라는 위험을 지시한 사건이기도 했다.


  안보의 사설화, 다시 말해 안보 주체의 변화는 곧 ‘모두를 위한 안보’를 불가능의 영역으로 밀어 넣는다. 이에 따라오는 것은 곧 안보 서비스가 주거지역, 직장 등 개인의 경제적 배경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안보 영역의 계층화’이다. 과거 모두는 국가가 공평하게 모든 개인의 안위가 보호받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국가가 개인의 안전을 완전하게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난 지금, 국민은 정부에 의지하지 않고 민간 안보 시장의 ‘구매자’로서 자본을 쥐어야지만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 안전을 구매할 자본이 없는 사람, 혹은 예견하지 못한, ‘안전을 구매할 겨를이 없던’ 사고를 당한 사람 등등은 각종 위협 앞에서 무력할 뿐이다.

 

  민간 안보에 지나치게 의지한 구호 활동이 가져온 참사를 역력히 보여준 세월호 참사는, 우크라이나에 의용병으로 출국한 이근과 모종의 관련을 지닌다. 민간 잠수부들의 대표로서, 고급 장비와 위험수당을 이유로 높은 가격을 부른 것이 바로 이근이기 때문이다. 당시 답답함과 초조함 속에서 현장을 지켜본 이들은 이근의 우크라이나 출국 소식을 접하고, 자본주의의 파편이 된 안보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하여 의용병 참전을 공익을 위한 공공주체의 재능기부가 아닌, 민간 군사 기업의 홍보이자 영향력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 또한 무리가 아니다.


  세월호 참사는 이렇게 공공 영역의 안보 서비스를 민간 시장에 사고 팔리는 상품으로 내놓음으로써, 인명을 거래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약점을 보여주었다. 이에 밀접하게 연관된 이근이 의용병으로서 참전을 마무리하고 귀국했을 때도, 그가 수반한 문제점은 해명되거나 개선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자본주의적 안보의 맥락을 지니고, 이를 계속해서 강화하고 있을 뿐이었다. 무사트가 ‘보여주기식 안보’를 표방하는 상황 속에서 과정 속 참전이 불러온 긍정적 영향을 예로 들며, 홍보 활동을 북돋아야 한다는 결과주의적 여론을 강화하는 일부 대중도 존재하였다. 이처럼 모두가 분명히, 혹은 어렴풋이나마 안보의 상품화를 통한 문제를 인식했음에도, 결국은 면죄부를 주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야만 한다.

  왜 대중은 자신의 사익을 위하여 국가의 법을 위반하고, 타국의 전쟁을 돈벌이로 활용한 이들을 용납했을까? 심지어 전쟁 영웅으로까지 격상시키는 등, 그의 부정적인 영향을 간과하고 그를 우상시 하는 일부 여론의 행동이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의 화제성만으로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다. 현시대의 대중들은 참전, 그리고 참전을 통해 이근이 재현한 우상화된 남성성에 열광하고 있다.


  이근은 5~6년 전에는 그저 민간 안보 기업의 일원이었으며, 군사 기술을 가진 일반인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는 성장하는 미디어 콘텐츠를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근래의 군사 프로파간다의 흐름을 새롭게 구축하였고, 유명세뿐만 아니라 상업적 성과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인식하는 안보 패러다임에 변화구를 던졌다.



3.

  2010년대 초중반, TV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진짜사나이>라는 프로그램을 기억할 것이다. <진짜사나이>는 MBC에서 2013년 방영한 리얼 버라이어티 병영 체험 프로그램으로, 약 4년 동안 장수한 인기 콘텐츠이다.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연예인, 스포츠 선수 등의 유명인들이 군부대에서 실제로 생활하는 모습이 방영되었는데, 전성기에는 20%에 가까운 시청률을 보이며 시청자의 인기를 끌었다. 시청자들은 프로그램 속 유명인들이 훈련을 통해 ‘진짜 사나이’로 성장하는 모습에 열광하였다. 이는 소위 신자유주의적 자기 계발 서사에 군사훈련을 녹여냄으로써 시대가 원하는 바람직한 인재상에 군사화된 태도를 개입시켰기에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군사로서의 ‘되기’의 과정은 극영화 <소령 강재구>(1966) 이래로 수십 년 동안 미디어에 지속적으로 반복된 공식이었고, <진짜사나이>도 이의 연장선에 놓인 콘텐츠이다.

  <진짜사나이>의 성공으로 ‘군인 되기’의 아이디어는 후속 콘텐츠들에 적극 활용되었는데, 이근이 훗날 유튜브에 제작한 <가짜사나이> 콘텐츠는 이러한 군 콘텐츠 성공의 공식을 깨고 새로운 흐름을 제시한다.


  2020년 유튜브에 업로드된 시리즈 콘텐츠 <가짜사나이>는 이근이 속한 민간군사기업 ‘무사트’가 강도 높은 동명의 UDT 훈련을, 유명인들에게 체험시키는 프로그램이다. 1기 프로그램에는 흔히들 ‘군기가 빠졌다’고 일컬어진 남성 인터넷 방송 BJ들, 군 복무를 하지 않는 외국인, 전역한 평범한 예비역 연예인이 참여하였다. 이 콘텐츠는 수백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였으며,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유행어가 언급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더불어 해군의 날을 기념하며 후속편으로 CGV에 극장판 개봉을 계획했던 만큼, 당해 가장 큰 화제가 된 미디어 콘텐츠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가짜사나이>의 성공 비결에 대하여, 크게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하나는 선배 콘텐츠라고도 할 수 있는 <진짜사나이>의 성공 신화를 따라, ‘일반인’에 가까웠던 참가자들이 혹독한 훈련을 겪고 ‘군인’으로 재탄생하는 ‘되기’의 요소이다. 기존에 <진짜사나이>에서 진행한 보편적인 군부대 훈련보다 고강도의 훈련을 진행하면서 군 복무를 마친 남성들에게 공감과 새로움을 가져다주었고, 동기부여로 이어지는 군사로서의 ‘되기’가 이번 콘텐츠에서도 훌륭히 작동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성공 비결이 <가짜사나이>가 제시한 새로운 콘텐츠 패러다임에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미 ‘완성된 남성성’을 갖고 출연하는 교관들이다.


  <진짜사나이>에서는 일반병으로 자리한 출연자들이 조망 받았으며, 함께 등장하는 실제 교관들은 출연자들이 체험하는 군 생활의 ‘NPC’로서 여겨지며 크게 주목받지 않았다. 그러나 <가짜사나이>에서는 교관들이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으며 인기몰이하였다.

  교관들은 전부 특수부대 출신으로, 민간군사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콘텐츠 진행 도중에 잘 단련된 신체와 함께 전쟁 무기를 다루는 기술을 선보이곤 하였다. 이러한 모습이 인기를 끌면서 수많은 팬이 생겨났다.

  ‘군인되기’의 콘텐츠를 번복하기 위해 탄생했던 <가짜사나이>는 강한 남성성의 과시가 얼마나 큰 인기를 끌고 영향력을 지니는지 확인하면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이는 군사성을 바탕으로 성장한 남성성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가짐을 보여주었다.


  해당 콘텐츠를 시작으로 특수부대 군인들의 완성된 남성성을 조망하는 콘텐츠가 늘어났고, 이에 대한 관심도도 폭발적으로 높아졌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채널A의 TV 프로그램  <강철부대>에 <가짜사나이>에서 교관으로 등장한 전직 특수부대원들이 출연한 점이다.

  <강철부대>는 <진짜사나이> 이후로 큰 인기를 끈 군 배경 프로그램이다. 이때, 과거 군을 모티브로 한 TV 프로그램이 ‘누구나 되어야 할 군인, 군인으로 되기’를 비추면서 전 국민이 군의 자질을 갖춰야 함을 어필했다면 <강철부대>는 ‘최정예 특수부대 출신 예비역들이 팀을 이뤄 각 부대의 명예를 걸고 싸우는 밀리터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는 설명처럼, 누구나 될 수 없는 ‘특별한 군인’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수한 군사 상황 속에 놓인 강인한 남성성이 하나의 상품으로 미디어에 노출되면서, 자본주의와 결합한 군사성이 매력적인 상품, 더 나아가 하나의 우상으로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군인으로서 갖게 되는 남성성에 대한 찬양은 예전부터 존재해왔다. 그러나 그 찬양이 목표하는 바가 달라졌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필요한 군대의 모습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전쟁 이후부터 현대사회까지, 특히 징병제로 운영된 우리나라의 군은 모든 남성이 거쳐야 하는 관문으로 여겨져 왔다. 과거의 전쟁에서 강한 국방력은 곧, 상대편보다 많은 군인의 수를 의미했다. 이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군사화 프로파간다는 ‘모두가 될 수 있는 군인’에 대한 찬양이었다. 그리하여 징병을 마친 남성들이 군대에서의 경험을 무용담처럼 여기고, 군 징병이 인간적인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회 풍조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현대전에서 요구되는 군대의 모습은 달라졌다. 군사의 수가 더이상 전쟁의 유불리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지 않았다.

  한국군 ‘국방개혁 2.0’의 여러 분야별 목표 중 특히 세세하고 길게 강조되는 것은 ‘전방위 안보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첨단 과학기술에 기반한 군 구조 발전’이며, 인공지능, 드론, 로봇, 무인기, 우주 장비 등 최첨단 장비 개발로 성취하게 될 차세대 세계 방위산업에서의 선도적 위치이다. 다시 말해 한국군은 더 이상 다수의 일반군이 필요한 안보 체계를 구축하고 있지 않으며, 사실상 인력이 필요하지 않은 안보를 비전으로 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처럼 군사로서의 ‘되기’를 답습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나 한국 군사력과 그로 인해 비롯되는 안보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와 찬양을 잃는다면, 현재 군 체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군이 필요로 하는 지원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군은 목표로 하는 안보의 모습과는 모순적인 군 홍보를 지속하며, 국민을 혼란시키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정부가 제공하는 군의 모습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기보다는 모순된 군의 겉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만 있다.



4.

  이 상황의 특이점은 기존의 군대가 갖고 있던 위치에서 비롯된다. 현대적인 군 체제가 형성된 이래로, 군대의 수직적이고 일방향적인 소통구조와 악습, 폭력의 대물림에 대한 비판은 끊이지 않고 존재하였다. 이러한 미시적인 비판은 군대에 직접 참가한 자, 혹은 이들과 연관된 모든 국민의 몫이며, 파편에 대한 개인의 비판에 그친다. 그러나 군의 국방 행위에 수반되는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에 비판을 가하는 것은 민간 대중에게 어려운 행위일 뿐만 아니라, 군 당사자 또한 개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국방 행위’라는 것은 간단히 ‘공익을 위한 것’으로 프레이밍되었기 때문에, 국가에 속한 개인은 이에 거시적인 비판을 주저하게 된다. 오랫동안 전쟁 정치를 유지해온 대한민국에서 정부의 공적 행위에 대한 비판은, ‘적’과 ‘우리’를 구분하는 전쟁 정치식 논리 하에 ‘적’으로 규정되는 행위이다. 국가 내부에서 살아야만 하는 국민은 ‘적’이 되지 않기 위하여, 국방 행위를 옹호하고 묵인하는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고관습은 하나의 가치관처럼 굳어져, 그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 국방·안보 행위이든 반사적으로 작용한다. 민간 군사 사업이 빠르게 확장하고 있는 오늘날, 특정 행위자가 자본주의적 성과를 위해 국방 행위를 이용한다고 할지라도, 행위 주체에 대한 결격을 지적하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 역시 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국민들은 상업적 이해관계가 드러나는 국방 행위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오늘날 국가는 이미 국가로서 제공하는 공적인 안보와 신뢰를 다수 민간 기업에 넘긴 상태이다. 그 때문에 국민들은 충분히 국가의 안보를 대할 때, 자본주의 시장의 상품을 다루듯 검수하고, 비판하고,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 흥정할 수 있어야만 한다.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하여 직접 안보를 요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안보를 결정할 ‘자유’를 가지고 있고, 가져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끊임없이 ‘우리는 국민이 원하는 훌륭한 안보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내세우고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특별하고 강인한 남성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국민이 국가가 제공하고 성장시키는 군사와 안보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군대는 공적 기관으로서 우상화를 이어 나가며, 성역과도 같이 존재하는 군 체계, 그리고 밀접하게 존재하는 상업적 이해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별하고 강인한 남성성’을 선택한 군은 대중이 군인에 대해 갖고 있었던 기존의 아이디어를 유지하는 동시에, ‘완성된 남성성’이라는 특수성을 부여하여 국방 개혁과 안보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군 체계의 보여주기식 국방, 실질적 안보와 동떨어진 홍보 수단의 결과가 모든 국민이 큰 재력을 투자해야만 얻을 수 있는 안보 시장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들이 안이한 안보의 변화를 겪기 전에, 국가는 국민들이 안보를 무리하여 구매하지 않을 수 있는 안전한 체계를 구축해야 하며, 국민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국가에 우위에 서서 요구할 수 있는 주체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의 생명을 자본으로 저울질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고, 자본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의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는 안보를 구축하고자 자본주의적 안보에 대한 고찰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국가가 공적 안보를 약화하고 상업화된 안보를 선택한 결정이 과연 어디까지 유효할지 재고해보아야 한다. 강한 공적 안보는 자칫 국민들을 억압하는 군사력이 될 수 있으나, 국민들에 대한 통제와 보호를 적절하게 구분하여 ‘누구나 보호받는 국가’를 만드는 것이 국가가 존립하는 한 언제까지나 존재하는 과제이다. 상업적으로 발 뻗은 국방 행위자의 위협과 사고팔 수 없는 생명, 그리고 자본주의적 안보가 서로 팽팽하게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힘을 지닌 거대 주체들 사이에서 개인은 어떠한 안보를 꿈꿔야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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