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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o Oct 14. 2021

위드 코로나, 북유럽 승무원의 비행 복귀 준비 썰.

오전 여덟시, 10월의 핀란드에는 아직 어둠이 제대로 걷히지 않은 시각.

나를 포함해 스무 명의 승무원들이 회사 트레이닝 센터에 모였다. 코로나 19로 장기 휴직 상태에 있다가 복귀를 앞두고 받는 트레이닝 첫 날.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코시국을 어떻게 보냈는지, 비행에 복귀하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아니면 최소한 이렇게 다시 보게되어 반갑다든지 하는 안부와 걱정, 안도와 기쁨이 뒤섞인 말들을 요란하게 주고 받아쳤겠지만, 핀란드인들은 조금 다르다. 아무리 설레거나 긴장이 되어도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더군다나 여러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사적인 목소리는 최대한 낮춘다.


1년 넘게 반백수로 살았다.

비행을 아예 하지 않았으니 백수라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러 나라의 항공사에서 구조조정과 해고 등의 기사들이 폭탄처럼 터져 나올 때 다행히도 우리 회사는 승무원들을 해고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그렇게 우리 승무원들은 '무기한 휴직'상태에 들어가 '실직자'상태는 면했다.

코로나가 무르익어 가며 대형항공사들의 인수와 파산 소식이 들릴 때면 조마조마하기도 했지만, 국가가 많은 지분을 갖고 있는 우리 회사는 간간히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생명줄을 이어갔다. 내 생명줄만 걱정하면 되었다.


북유럽의 실업급여는 생각보다 많이 적다.

옆 나라인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모르겠지만 일명 '북유럽'이라고 하면 '복지국가'라는 말이 꼬릿표처럼 붙는것 치고는 당황스러운 수준이다. 프랑스에서 살 때 받았던 실업급여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나는 백수 경력자다). 대학생들의 용돈 수준 정도다.

그래서인지 많은 근로자들이 회사 안 팎의 노조에 가입을 하는데 이럴 경우, 근무 종료 전 마지막 3개월동안 받은 월급의 70-80퍼센트에 해당하는 금액을 실업급여로 받게 된다. 기한은 휴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약 400일이나 되어 1년 반을 넘게 놀면서 수입의 상당 금액을 매달 꾸준히 받으며 생활 할 수있다. 물론, 노조 회원비를 매달 월급에서 빼서 꾸준히 냈을 때의 이야기다.


어쨌든, '실직자'가 아닌 '휴직자'인데 실업급여가 나왔다. 외국인이라고 하니 무료로 핀란드어 수업에 등록시켜 주며 차비도 챙겨주고, 집이 월세라고 하니 그 일부를 매달 지원해주었다. 이것 저것 합하고 나니 놀면서도 생활이 되네, 떼었던 '복지국가' 꼬리표를 다시 붙여 주기로 했다


1단계, 약물 테스트 통과.

승무원들의 필수 서류 중 건강증명서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갱신을 하는데, 이에는 약물 테스트 음성결과도 포함된다. 대마초같은 마약이 공공연한 유럽에서는 승무원 직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이 테스트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현재 프랑스의 항공사에서 일하는 한 친구는 승무원에 지원하기 1년전 부터 대마초를 끊었다고 했다.


약물 테스트는 환각효과를 내는 마약 뿐 아니라  심신을 미약하게하는 각종 약물을 검출해낸다. 2015년 우울증을 앓던 독일의 한 항공사 '져먼윙즈' 부기장의 자살추락으로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후, 약물검사는 더욱 강화됐다.

소변 검사를 하러 회사에서 지정해준 병원에 갔다. 소변을 받을 플라스틱 용기를 건네주며 간호사가 말했다.


"화장실에 카메라가 달려 있어요. 당신의 소변인지 여부를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지켜볼거에요. 우리 병원 간호사는 모두 여자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요"


오전 여덟시 출근, 저녁 다섯시 퇴근.

비행 복귀를 앞두고 하루종일 5일간 재교육을 받았다. 이 중 첫 날은 하루종일을 넘어 새벽까지 이어진 온라인 강의를 듣고 넷째 날에는 다섯 개의 시험을 통과했다. 일반 직장인들에게는 평범한 출퇴근 시간이지만 불규칙한 생활패턴이 더 익숙한 승무원들에게는 이 또한 하나의 관문이었다. 시간에 칼 같은 직업이기에 지각이 발생하는 일은 거의 없다. (비행시 지각을 하면 비행기를 놓치게 되므로 자동 결근처리가 된다.) 하루종일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몸보다는 머리를 쓰며 하루를 보내는 일이 가장 큰 도전 과제다. 그래도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6주간의 트레이닝에 비하면 투덜댈 일이 아니지만, 언제 다시 일하게 될지 모르는 상태로 1년을 넘게 비행과는 먼 뉴노멀 (New normal)한 삶에 적응되다 보니 이 조차 부담스러워 잠을 설쳤다는 이들이 나 말고도 또 있었다.


승무원들은 무엇을 배울까.

승무원 교육이라고 하면, 손을 공손하게 모으로 90도를 허리를 꺾어 인사하기나 컴플레인 하는 승객들을 응대하는 실습과정 등 티비에서 잊을만 하면 비쳐지던 장면들을 상상하겠지만 이런 교육은 아예 없다. 애초에 서비스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우대해서 채용하는데다 유럽 항공사에는 경력직들의 입사율이 높아 서비스분야에 베테랑급은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스킬들을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회사가 지향하는 서비스 마인드를 언급하고 각자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시간이 있긴하지만, 이는 승무원 교육의 5% 도 차지하지도 않는다. 특히나 재교육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개꿀노트를 진짜 개꿀노트로 만들어버리겠다는 의지를 불 태우며 재교육에 임하는 중.


입사교육과 마찬가지로 재교육에는 안전교육에 관해 집중적으로 되짚어 보고 항공법이나 회사규칙에 의해 변경된 사항들을 다같이 체크한다. 비행기라는 특수한 공간, 하늘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크고 작은 사고들에 대처하는 방안들이 이에 해당한다. 같은 사고라도 지상에서보다 비행기 안에서 일어날 때 그 결과가 더 처참하다. 예를 들면, 기내의 전자기기나 승객의 부주의로 인해 수백명이 빼곡한 객실에서 화재가 난다든가, 갑자기 상공에서 비행기 기체의 결함으로 비상착륙을 해야하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비상착륙의 경우 지상과 바다 뿐 아니라 사막이나 북극같은 곳에 착륙할 가능성까지 열여두고 적절한 탈출방법과 생존 전략을 교육받는다 (전원 사망이라는 가장 큰 가능성은 우선 배제하고).


의료교육도 상당 부분 차지한다. 비행기 안에서 승객이 출산을 했다는 소식은 해외뉴스를 통해 한 번쯤은 들어본 바 있을 것이다. 기내에는 이에 대비한 의료도구가 이미 마련되어 있고, 승객들 중 자격증을 소지한 의사가 없을 경우 산파역할은 승무원이 하게 된다. 이 외에도 고혈당, 저혈당증, 협심증 등 다양한 기저질환을 갖고 있는 승객들과 비행기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멀쩡했던 사람이 처음 겪게되는 공포증과 과호흡증 등을 다루는 방법부터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심폐소생술이 필요하거나 사망자가 발생했을 경우의 대처법등은 매 년 반복해서 머릿 속에 쐐기를 박아버리는 것 중 하나다.


승무원들의 교육은 '서비스'보다는 '승객의 안전'에 촛점이 맞춰있는데 반해, 한국의 방송에서는 승무원들의 연예인을 능가하는 외모나 꼳꼳하면서도 유연하게 잘 접히는 허리, 보살급 친절함을 위주로 보여줘 아쉬움을 느낄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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