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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Nov 02. 2019

어느 날, 지상 최약자로 인생이 추락했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최근 새로운 항암제로 강아지 구충제인 '펜벤다졸'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의학계에서는 당연히 펜벤다졸을 반대하고, 암환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펜벤다졸을 구해 먹는다. 누군가는 효과를 보았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그대로라고 한다. 생명의 기로에 선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가 그리고 그날 먹는 약이 정말 중요할 수밖에 없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 실존 인물 '론 우드루프(메튜 맥커너히 분)'는 치사율이 100퍼센트에 가까웠던 1980년대 에이즈 판정을 받고 AZT라는 신약을 복용하다가 거부하고 멕시코의 한 의사로부터 대안 약물을 처방받기 시작한다. 대안 약물이 AZT 보다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 그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만들어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 에이즈 환자들에게 대안 약물을 판매하고 FDA는 그런 그를 가만 두지 않는다.


영화는 시종일관 FDA와 의약계의 소위 '더러운 커넥션'을 고발하지만 실제 사례를 찾아보니 AZT는 현재도 에이즈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칵테일 요법에 섞어서, 용량을 낮추는 방법으로. 여전히 의학계는 론 우드루프의 대안 약물에 대해 비관적이며 그가 사용했던 대안 약물 요법을 공식적으로 현재 시행 중인 의사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실존인물 론 우드루프는 대안 약물을 복용을 통해 AZT 없이 7년이라는 세월을 더 살다가 죽었다.)


어쨌든 영화와 현실이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니 나도 이번 비평은 '강자에서 약자로 추락한 론 우드루프'에 초점을 맞춰 적어보련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지탄을 받는 그룹 중 하나라는 FDA에 대한 비판은 빼고. 어차피 내가 미국인도 아니고 의학분야에 전문가도 아니니까. 그리고 론 우드루프의 추락과 변화 그리고 그의 주변 인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있는 영화다.



남자 중의 남자 론 우드루프, 추락하다.


론 우드루프(매튜 맥커너히 분, 이하 론)는 남자 중의 남자였다. 관점에 따라 남자의 정의가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그가 생각하기에는. 1980년대, '남자는 거칠어야지'를 미덕으로 알고 살던 남자 론. 그런 그와 걸맞는 그의 출생지 텍사스. 그는 전기기술자로 돈도 잘 벌고 여자와 잠자리도 잘하고 그의 남성미 넘치는 친구들과 음담패설은 기본이요, 온갖 욕도 잘하고 싸움도 잘했다. 그런 남자 중의 남자인 론이 한순간에 세상 최약자라는 에이즈 환자로 인생이 추락한 것이다.



에이즈 판정을 받은 론은 당장 의사에게

날 감히 게이 새끼(Faggot) 취급하다니, 남자 중의 남자인 내가 에이즈 일리가 없어! 너희 의사가 혈액 검사를 잘못한 거겠지. Fuxk


한다. 에이즈는 게이만 걸리는 것이라는 1980년대 남성의 흔한 무지의 첫 번째 증명이자, 게이는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지금도 팽배한 안타까운 무지의 두 번째 증명이었다. 그러자 의사는 동성 간의 성접촉만이 아닌 소독되지 않은 주삿바늘을 통한 약물 투여나 보균자와의 이성간 성관계를 통해도 에이즈에 걸릴 수 있다고 설명해준다. 하지만 지금 론의 귀에 그런 말이 들어올 리가 없다. 그러면서도 이어지는 플래시백. 어느 핸가 격정적으로 성관계를 했던 여성. 그 여성의 팔에서 보았던 무수한 주삿바늘. (실제 인물 론 우드루프는 인터뷰를 통해 에이즈 확진을 받기 약 4년 전 성관계를 가진 여성에게서 HIV 바이러스를 옮겨 받은 것이 아닌가라고 추정했다.)


처음엔 부정했지만 론 자신도 누구보다 건강했던 몸이 망가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망가진 것은 그의 건강만이 아니었다. 그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소문은 금세 퍼졌고 그의 친구들조차 그를 따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남자들의 우정에는 상하관계가 분명하다 했던가. 어제까지 친구였던 그들은 더 이상 최약자인 그를 존중하지 않았다. 오히려 론을 "소녀야"라고 부르며 그의 남성성을 조롱했다.


80년대 당시만 해도 에이즈에 마땅한 치료제가 없었다. 그러던 와중 신약 AZT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그런데 임상실험 기간이라 론은 AZT를 받을 수 조차 없었다. 실험 환자 신청 기간도 모두 끝나 실험 대상자 조차 될 수 없었다. 그는 아마 여기서 자신이 최약자가 된 것도 모자라 최약자 중의 최약자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실험이 모두 마쳐 FDA 승인 절차가 끝 날 때까지 AZT 처방을 위해 몇 달을 기다리라는 말에 론은 폭발한다.


내일 당장 죽을지 모르는 사람한테 몇 달을 기다리라고? FDA 승인 기다리다가 내가 DOA(Death On Arrival: 사망 상태)가 될 판인데?



그래도 론은 수완을 발휘해 병원의 부패한 히스패닉 잡부를 포섭해 몰래 AZT를 빼돌려 복용한다. 그러나 편법에도 한계는 있는 법. 히스패닉 잡부는 얼마간 그에게 AZT를 구해다주다가 자신도 더 이상 방도가 없다며 론에게 약대신 멕시코에 있다는 의사의 주소를 준다. 론은 수작 부리지 말라며 그에게 주먹을 날리지만, 이미 그의 건강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이제는 자랑하던 핵주먹 한방 제대로 날릴 수가 없다. 제 풀에 그대로 바닥에 꼬꾸라지는 론의 처참한 모습을 보며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프던지.


제발 천천히 데려가 주세요

론은 신에게 기도를 올린 채 멕시코로 향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꼽는 이 영화 최고의 명장면이다. 멕시코로 가던 길에 차를 멈추고 오열하는 론. 매튜 맥커너히는 이 역할을 위해 20kg을 감량했단다. 앙상한 체구의 완벽한 에이즈 환자 론이 되어 오열하는 매튜의 열연을 보며 나도 눈물 흘렸다.



론 우드루프, 장사꾼이 되다.



다행히 히스패닉 잡부가 주었던 주소는 가짜가 아니었다. 의사 면허를 박탈당한 미국인 의사가 멕시코에서 비록 불법이지만 에이즈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그가 사용하는 치료법은 비타민과 DDC, 펩타이드 T를 섞은 칵테일 대안 약물이었다. 이 대안 약물이 론에게 통해 론은 기력을 되찾았고 그는 이것으로 돈을 벌 작정을 한다.


당연히 대량의 약을 미국으로 들여오니 세관에 걸리는데, FDA 직원을 마주하는 그의 논리가 또 압권이다.


전부 다 제가 사용할 약물입니다. (판매용이라고 하면 바로 압수당하니까) 이 약들은 FDA 허가가 안 났을 뿐(Unauthorized), 불법은 아니에요 (Not Illegal).



론 우드루프, 또 다른 최약자, 성소수자들에 마음을 열다



론이 에이즈 환자들에게 획기적인 신약 일지 모를 약물을 잔뜩 가져왔건만 막상 판매가 되질 않는다. 에이즈 환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게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가 게이 커뮤니티의 한 부분이 아니어서였을까. 돈은 떨어져 가고 금전적 어려움이라는 낭떠러지에서 또다시 추락의 위기를 맞고 있을 때 그에게 천사 같은 한 사람이 나타난다.



그 사람이 바로 여장남자 레이온(제라드 레토 분) 둘은 론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실 동료로 만난 적이 있다. 론의 호모포비아적 언행과 싸가지 없는 태도에도 불구하고 레이온은 론에게 지지 않았다. 레이온은 론에게 수익의 25%를 요구하면서 판매처를 자신이 알아다 주겠다고 약속하고 론은 레이온과 손을 잡는다.


둘의 사업은 번창하고, 이 규모로 약을 판매하다가는 잡혀가기 십상이니 론은 타 주의 에이즈 치료제 판매 방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오픈한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공식적으로 약이 아니라 클럽 멤버십을 판매하고, 멤버십을 구매하면 혜택으로 약을 '준다'. 법망을 교묘히 피해 가는 것이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사업가들은 정치가들보다 빠르고 돈은 규제를 앞서간다.



악수해


시종일관 레이온을 무시하고 툴툴대는 론이었지만 이 장면에서는 론이 그동안 레이온을 사실은 아껴왔고 그가 그토록 무시해오던 성소수자에 대한 시각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알 수 있었다.

레이온과 장을 보러 간 론은 옛 친구를 마주한다. 자신을 과거와 다를 바 없이 대하는 옛 친구가 반가웠을 법도 한데, 옛 친구가 레이온을 두고 게이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자 론은 거침없이 화를 낸다. 그리고 레이온을 자신의 동료라고 소개하며 옛 친구의 손을 비틀어서까지 둘을 악수시킨다.



또 다른 주인공, 레이온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얘기하면서 레이온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따지고 보면 그의 인생도 론의 인생과 비슷했다. 아니 더 나았다. 알고 봤더니 그는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이건(성정체성, 성지향성) 선택이 아니에요 아버지.



그러나 가족들은 그를 그의 모습 그대로 이해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레이온은 가족에게 의절을 당했다. 그런 레이온이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아버지의 앞에 말끔히 남자다운 모습을 하고 자신을 버린 채 찾아간 이유는 오직 단 하나 때문이었다.


저에게 잘해준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요. 돈이 필요해요.


FDA는 어떻게든 론의 목을 조르고 싶었고, 결국 미국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조직 중 하나라는 IRS, 세무처를 동원해 그를 탈탈 털어버린다. (오죽하면 미국 농담에 '미국은 살인은 용서해도 탈세는 용서 안 한다'는 농담이 있을까.) 론이 경제적 위기를 겪자 레이온이 자신의 남자친구도 아니고, 마트에서 한번 빼고는 틈만 나면 자신에게 모욕적 언사를 퍼붓던 론을 위해 진짜 자신을 혐오하는 아버지 앞에 자신을 버리고 선 것이다. 그러나 비참하게도 그의 아버지는 그의 부탁마저 거부해버린다. 에이즈에 걸려 죽어가는 아들의 마지막 부탁임을 알고 있음에도. 레이온은 이 비참한 기분을 어떻게 감내해야 했을까. 어쩌면 그래서 더 레이온이 마약에 손을 댔는지 모른다.


하나님, 제가 당신 앞에 선다면, 예쁜 모습으로 서고 싶어요.


레이온이 하나님께 올린 마지막 기도.





에이즈로 인한 한 남자의 추락과 변화 그리고 쌓게 되는 우정. 이외에도 의사의 윤리와 병 에이즈를 향한 사회적 혼란과 과도기적 1980년대를 엿볼 수 있는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Dallas Buyers Club이었다.





매튜 맥커너히는 이번 영화와 연기로 2013년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정말 받을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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