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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Nov 06. 2019

사랑의 사연을 담은 로드 무비,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나는 90년대 홍콩 영화들을 좋아한다. 딱 홍콩이 중국에게 반환되기 전 만들어진 영화들과 반환된 후 몇 년간 중국의 검열이 아직은 힘을 못 쓰던 시절의 영화들. 이런 표현을 쓰면 너무한 것도 같지만 딱 '나 좋아 죽으라고' 만들어 놓은 영화들 같다. 그런 영화를 만드는 감독 중 한 명이 '왕가위' 감독이다. 


왕가위 감독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당연히 내가 유치원생 때였다. 내가 90년생이니까. 나는 그의 이름을 처음 듣고 거대한 가위를 떠올렸다. 섬뜩하면서도 우스웠다. 지금도 왕가위 감독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그때의 섬뜩함과 우스운 감정이 함께 떠오른다. 그래서 나는 항상 그의 이름을 왕자웨이라고 부르는 걸 선호한다. 그러니까 왕자웨이 감독이라고 할게요. 


왕자웨이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평가는 정말 안 좋다.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이 영화가 좋아 죽겠으니까. 그리고 나는 최근 영화 조커조차 비판하는 글을 썼다. 




마이 블루 베리 나이츠는 로드무비다. 사랑을 잃은 엘리자베스가 길을 떠도는 로드무비다. 그러면서 엘리자베스는 사랑의 사연을 가진 다른 이들을 만난다. 엘리자베스가 브런치 작가라면 '길에서 만난 사랑의 사연들'이라는 브런치 북을 낼 수 있을 만큼. 그래서 이 영화는 사랑의 사연을 담은 로드무비다. 


이건 같이 들으면 정말 좋은 실제 마이 블루 베리 나이츠의 OST 캣 파워의 The Greatest




사연 1 가지 말라고, 놓아달라고 서로 애원하는 연인 어니와 수 



엘리자베스는 전 남자 친구와의 추억이 가득한 뉴욕을 떠나 미국을 떠돌며 한 바의 바텐더로 일한다. 이곳에는 어니라는 술주정뱅이가 있다. 그도 낮에는 어엿한 경찰이다. 그러나 밤만 되면 떠나간 아내 수를 추억하며 술만 마신다. 항상 내일은 술을 끊겠다고 약속하지만 내일이 되면 돌아와 술을 마신다. 사실 원조 주정뱅이는 수였다. 둘은 음주 단속을 하다가 인연을 맺었다. 술에 취한 망나니 수를 제지한 것은 말쑥한 경찰관 어니였다. 그런데 이제는 둘의 상태가 변했다.

 

수는 이제 직업도 가질 것이고 돈도 벌 것이며 새 삶 살겠으니 제발 놓아달라고 어니에게 애원한다. 어니는 제발 떠나지 말라고 애원한다. 



서로에게 애원하는 연인 어니와 수. 둘의 사연은 어떤 결말을 맺을까. 


(왕자웨이 감독은 영상뿐만 아니라 음악을 영화에 잘 활용하기로도 유명한데, 수가 등장할 때 바로 깔리는 재즈 음악에 내 심장이 뚝하고 떨어질 뻔했다.)



사연 2 문을 열었는데 안에 아무도 없네, 제레미와 카티아 



앞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또 한 명의 중요한 주인공이 있다. 바로 엘리자베스가 자주 들르곤 하던 뉴욕의 카페 사장 제레미. 그도 많은 사연을 감추고 있다. 늦은 밤 카티아라는 여성이 그를 찾아온다. 여기서부터는 둘의 수수께끼 같은 대화가 시작된다. 둘은 한 번도 직설적인 대화를 하지 않는다. 모든 대화가 은유다. 사실 영화의 많은 대사가 은유로 이뤄져 있어 관객은 유추해야 한다. 이 점이 이 영화의 묘미다. 


둘의 대사를 듣다 보면 곧 알아챌 수 있다. 카티아가 제레미의 옛사랑이었음을. 


둘은 문과 열쇠, 그리고 방을 소재로 대화를 나눈다. 


그때 그 방의 열쇠를 아직 가지고 있어? 가지고 있다면 여전히 그 문을 열 수 있겠네? 

응, 그런데 말이야, 문을 열어도 방에 아무도 없을 수가 있더라. 



아직도 여기 있을 줄은 몰랐어. 나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해. 

그런데 왜 왔어?

궁금했나 봐. 그때 그 감정이 그대로 일지. 


그리고 작별의 입맞춤.


(둘의 대화 내용은 전체 대사가 아니고 축약본이다. 전체 장면과 대사를 느끼고 싶으신 분들은 직접 보시기를 추천한다.)



사연 3 "아버지 얘긴 안 할 거야" 꼬여버린 부녀, 수지와 아버지 


나에게도 한가지 꿈이 있다. 미국을 자동차로 횡단하는 것!


다시 미국을 떠돌던 엘리자베스는 이번에는 도박장에서 재규어를 모는 도박사 수지를 만난다. 

수지는 재규어를 담보로 엘리자베스에게 2천 불을 빌리고 다 잃는다. 마음씨 착한 엘리자베스는 빈털터리가 된 수지를 방금 얻게 된 재규어로 라스베이거스까지 태워다 주기로 한다. 라스베이거스에 가면 수지를 도와줄 남자가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당연히 수지의 아버지였다. 성공한 포커 플레이어인 아버지에게 모든 도박 기술을 배웠다는 수지. 그만큼 풍족하게 자랐지만 그녀와 아버지 사이에도 무언가 서로 빗나간 사랑의 사연이 있는 것 같다. 


"아버지 얘긴 안 할 거야"



당신이 외롭다고, 자책할 것 없다.


사랑도 짝이 있어야 할 수 있다. 때로 우리는 짝이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며 자기 가치를 폄하한다. 


영화는 도입부부터 제레미의 입을 빌려 우리에게 말한다.



제레미: 흠... 그건 마치 파이와 케익과 같아요. 매일 저녁, 치즈 케이크와 사과 파이는 늘 모두 다 팔리죠. 복숭아 코블러와 초콜릿 무스도요... 하지만 언제나 블루베리 파이는 그대로 남아있어요.


엘리자베스: 블루베리 파이의 문제가 뭔데요?


제레미: 블루베리 파이에겐 아무 문제가 없어요. 단지, 사람들이 다른 선택을 할 뿐이죠. 블루베리 파이를 탓할 수 없어요. 그냥... 아무도 원하지 않을 뿐이에요.


엘리자베스: 잠깐! 나 한 조각 주세요.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블루베리 파이. 블루베리 파이는 잘못이 없다.


그러니 자책할 것 없다. 종내에는 엘리자베스처럼, 당신을 원하는 누군가가 나타날 테니까.





마지막은 내가 너무 좋아서 그냥 들여다만 보고 있고 싶은 두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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