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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Nov 11. 2019

예의 없는 세상, 예의 없는 임금 체불

사람 잘못 건드리셨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2013년, 내가 보내야 했던 문자 메시지 한 건


원장님, 지난달 급여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대학생이던 2013년. 나는 영어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쉽지가 않았다. 학교도 있었거니와 은근히 먼 학교와 학원의 거리, 그리고 영어 강사 치고 그리 높지 않은 시급에 통근 시간을 합치면 시급은 더 낮아졌다. 가끔씩 알바비도 하루 이틀 늦게 들어왔다. 나는 결국 이 일을 내려놓기로 결정했다. 

 

원장은 내게 한두 달 정도 다른 선생님을 구할 때까지 일해달라고 했다. 나는 아이들을 위해 그러겠노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원장이 도통 새 선생님을 채용할 의지가 보이질 않았다는 것이었다. 한 달여가 지났다. 이렇게 가다가는 내가 이 학원에 영영 붙잡혀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결국 그에게 최후통첩을 날린 뒤 일을 그만뒀다. (노동법 상 그만둔다는 직원을 회사가 무가내로 붙잡을 권리나 규정은 없다. 우리가 계약서를 썼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안 썼던 것 같은데 세금은 뗐다. 흠.)


그리고 급여날이 다가왔다. 원장은 급여를 입금하지 않았다. 나는 또 며칠 늦는구나, 했다. 그런데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삼일이 가도록 그는 급여를 입금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원치 않았지만 그에게 연락을 해야 했고, 돌아온 대답이 가관이었다.


선생님이 그렇게 갑자기 그만두셔서 학원의 피해가 막대하니 소송이라도 걸겠습니다. 아니면 다시 나오세요.


소송이라도 걸겠습니다. 아니면 다시 나오세요.

소송이라도 걸겠습니다. 아니면 다시 나오세요.

소송이라도 걸겠습니다. 아니면 다시 나오세요.

소송이라도 걸겠습니다. 아니면 다시 나오세요.


다분히 협박 투였다. 그는 자신의 지위를 십분 이용하고 있었다. 사회인과 대학생.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직도 자신이 나의 상관 인양 행동했다.

하지만 저따위 협박에 쫄 내가 아니었다. 고소? 우스운 소리였다. 물론 실제로 직원의 무단 퇴사로 사측의 손해가 있을 때 민사 고소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 손해를 확실히 증명할 수 있어야만 고소가 성립된다. 그런데 저 원장이 무슨 중견기업 대표도 아니고, 내가 최소 몇 백만 원은 되는 손해를 학원에 끼친 것도 아니고, 동네 구멍가게 수준의, 그것도 직원 임금도 밀리는 학원 원장이 무슨 수로 나를 고소해. 정말 재수 없었다.


나는 당장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 접속해 내가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다행히 임금체불 신고가 가능했다. 그러나 나도 이런 법적 대응까지는 가고 싶지 않았다. 왜 있잖아, 소시민에게 법적 대응은 약간 꺼려지거.


원장님, 이러시면 저도 고용노동부에 임금체불로 신고하겠습니다.


다시 그에게 문자를 넣었다. 그러자 그의 문자.


하세요.


너 따위는 우습다는 투였다. 그러면서도 소송을 건다 만다는 소리는 없었다. 결국 소송은 완벽한 허풍이었던 것이다. 나는 "네"라고 간단히 답장한 뒤 진짜 고용노동부에 그를 신고했다.


신고 후 수사관이 배정되고 조사에 들어가고, 판결이 나기까지는 또 몇 주가 소요된다고 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버틸 자금력이 됐고, 이 원장이 너무 얄미웠다. 기왕 시작한거 끝까지, 이길때까지 가자. 원장에게 메시지를 해 신고했다고 친절하게 신고번호까지 보내주었다. 설마 진짜 할 줄은 몰랐는지 늘 기세 등등하던 그는 한참 동안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뒤에 도착한 그의 메시지.


이제 신고하셨으니 돈 받는 데까지 더 오래 걸리시겠네요.


음? 아마 신고하겠다는 나의 말이 허풍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뒤 자기도 나름대로 검색을 해본 것 같았다. 참 졸렬한 사람. 그럼 뭐, 내가 신고 안 했으면 자기가 넓은 아량이라도 발휘해 내게 돈을 빨리 줬을 거라는 소리야? 나는 화가 나서 빈정댔다.


네, 상관없어요. 대신에 수사한다고 학원에 수사관들 왔다 갔다 하면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다 볼 텐데 학원 이미지에 참 좋겠네요.
그리고 제가 학교 커뮤니티에 꼭 이번 사건에 대해 올릴 거니까
다시는 저희 학교 학생들 선생님으로 고용할 생각하지 마시고요.


그는 더 이상 내게 답장하지 못했다.


다음 날, 밀렸던 급여가 조용히 입금되었다.




이 사건을 겪으며 친구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의 덩치 크고 몸 좋은 공대, 체대 친구들은 "아~ 우리가 가서 한번 뒤집어 줄까?", "우리가 한번 가서 드러누워줄까?" 하며 농담 섞인 말들로 울적한 나에게 웃음을 주었다. 빈말이었을지언정 고마웠다. 내게도 완력으로 도와줄 남자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진담이었어도 실행 못하게 내가 말렸을 것이다. 얘네가 그랬으면 진짜 경찰 왔다.


혹여나 내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까 봐 먼저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던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괜찮았다. 그래도 그 마음들이 참 고마웠다.


이 땅의 임금 체불 알바생 여러분들, 고용노동부와 노동청은 여러분 세금 축내려고 있는 기관이 아닙니다.  


이 땅의 임금을 체불하려는 고용주 여러분들, 고용노동부와 노동청은... 말 안해도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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