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대한민국은 일본 때문에 들썩였다. 일본의 역사왜곡이 문제였다.
일본 문무성이 일본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검정 과정에서 '침략' 대신 '진출'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라는 수정 지시를 내린 것이다. 당연히 대한민국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같은 해 대한민국과 일본은 제27회 세계 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일본과 맞붙었다. 한일전이 열린 잠실야구장은 경기를 관람하러 온 수많은 관중들로 이미 인산인해를 이뤘다.
82년은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이제 막 한국 프로야구가 태동하던 해다. 그전에 실업야구나 아마추어 야구가 존재하기는 했으나 그에 비해 일본의 프로야구 연혁은 이미 깊었다. 어찌 생각하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경기는 초반부터 대한민국에게 불리하게 흘러갔다. 경기 초반 피로가 누적된 선동렬이 일본 타자들에게 선취 2점을 내어주었고 대한민국은 8초회까지 단 1점도 내지 못한 채 일본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패색이 짙은 상황.
8회 말. 한국은 극적으로 2:2 동점스코어까지 경기를 끌고갔다. 그리고 2사 1,2루 상황. 역전의 기회가 엿보였다. 5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설 차례였다. 이때 당시 국가대표팀 코치 배성서 코치가 기지를 발휘했다. 한대화가 국가대표팀 타자 중 타율이 가장 높으니, 원래 7번 타자인 한대화를 지금 올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게 동국대학교 4학년 한대화가 일본 투수 세키네의 앞에 섰다. 둘은 숨 막히는 풀카운트 승부를 벌였다. 그리고 세키네는 결국 슬라이더 실투를 하고 만다.
한대화는 이 실투를 놓치지 않았고
멋지게 방망이를 휘둘렀다.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멋지게 잠실 구장을 날아갔다. 그러나 한대화 자신도 한편으로는 파울볼이 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대화의 공은 폴대를 맞고 튀어나오며 홈런이 되었다! 역전의 3점 홈런. 한대화가 역전 3점 홈런을 쏘아낸 것이다.
한일전 당시 선수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간 경기로 누적된 피로와 한일전이라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압박감. 그러나 점수를 내지 못한 채 8회까지 일본에게 끌려다니기만 했었으니 심리적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까.
그리고 관중들의 울분은 또 얼마나 엄청났을까.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다 씻어내려가게 한 것이 한대화의 3점포였다.
그 해 일본을 꺾은 대한민국은 27회 세계 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한국 야구의 저력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잠실야구장
1980년 8월 22일, 대한민국은 제27회 세계 야구 선수권대회를 유치했다. 그러나 당시 대한민국에는 세계 야구 선수권대회를 진행할 변변한 야구장 하나 없었다. 이를 위해 준공한 야구장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잠실야구장이다.
최근 한일전에서 대한민국이 안타깝게 고전한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것이 스포츠 아니겠는가. 우리 기죽지 말자.
막짤은 '짐이 곧 야구니라' 한화이글스 야왕 한대화 팬아트 저 예끼 nimi 1.....읍읍 은 한화이글스 감독 시절 오심 논란때 심판뒤에서 한대화가 직접 한 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한동안 한와이글스 응원가가 "야! 야! 쪽팔린다 야! 워~ 예끼! 워~ 예끼!"가 이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