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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Nov 14. 2019

한화 이글스 1번 타자 강동우. 나는 당신이 좋다.

그에게 늘 따라붙는 수식어 '비운의 천재'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야구가 좋다. 야구만큼 수학(확률)이 많이 활용되고 전략이 많이 요구되는 스포츠가 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야구에는 테이블세터 Table setter라는 개념이 있다. 보통 1번과 2번 타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출루율이 좋은 타자들이 테이블 세터가 된다.

먼저 출루해 루를 채우고, 이어지는 3,4,5번 타자들에게 득점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테이블 세터들은 도루도 한다. 상대팀이 정신이 팔린 사이 훅-하고 루를 훔쳐 팀과 득점이 더욱 가깝게 만든다. 이런 합법적인 도둑들.

때로 테이블세터들은 투수의 진을 빼놓는 역할도 한다. 최대한 공을 많이 던지게 해서 투수를 지치 게하는 것이다. 투수가 지칠수록 다음 타자들이 안타를 쳐낼 확률은 높아진다.

아무리 잘난 4번 타자가 와서 홈런을 뻥뻥 쳐내도 테이블 세터가 없으면 그 팀은 1점밖에 못 가져간다.


어찌 보면 고생해서 남주는 타자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얼마나 멋진가. 다른 타자들과 팀 전체를 빛내기 위한 타자라니. 그래서 나는 1번 타자 같은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내게도 잊지 못할 1번 타자가 있다. 바로 한화 이글스의 강동우. 



그는 무려 불혹, 마흔의 나이까지 배트를 손에서 놓지 않다가 2013년 한화에서 은퇴했다. 현재는 두산에서 타격코치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런데 강동우에게는 늘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비운의 천재' 그는 프로야구 데뷔 첫 해인 1998년 타율 3할이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을 수립한다. 이 기록이 깨지는 데는 17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는 따라올 이 없는 괴물신인이었고 이대로라면 야구계의 스타이자 명실공히 한 4번 타자가 될 날이 멀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사고가 터진다.



같은 해 10월 16일, 외야수이던 그는 수비를 보다가 펜스와 부딪혔고 정강이뼈 골절이라는 큰 부상을 입는다. 이 사고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출처 = 스포츠 서울, 이웅희 기자


위의 기사 내용처럼 당시 그의 부상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그리고 그 부상이 어떻게 그의 인생을 '전락'시켰는지는 아직도 회자된다.


야구는커녕 정상적 생활도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의사의 소견에도 강동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2년간 재활에 열심히 시간을 투자했고 친정 삼성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이 단 한 번의 부상으로 그는 좀처럼 기량을 되찾지 못했고 결국 저니맨이 됐다. 삼성에서 두산으로, 그다음엔 기아로, 마지막엔 한화로 왔다.


보이는가. 1번 타자에게는 '홈런'을 날려달라고 하지 않는다. 테이블 세터의 역할. '안타'를 날려달라고 한다.


강동우가 75년생이기 때문에 2009년 한화에 입단했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서른다섯이었다. 그래도 그는 입단 첫해 153안타(KBO 5위), 출루율 3할 8푼 4리를 기록하며 1번 타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사실 기록만 놓고 봤을 때 강동우가 뛰어난 1번 타자는 아니다. 출루율이 3할대 중반이니 평범한 1번 타자라고 보면 맞겠다. 타율도 그리 높진 않다. 하지만 장타율이 높을 땐 4할까지 간다. 그래서 타율이 높지 않아도 장타를 무기로 출루를 하는 그의 모습과 저 멀리 날아가는 그의 타구를 보고 있노라면 내 가슴이 다 시원했다.  


기사 제목 '그만해 아파'


1번 타자지만 강동우는 가끔 홈런까지 뻥뻥 쳐내서 한화 팬들이 '나이 때문에 뛰기 귀찮으니까 그냥 홈런 쳐버린다'는 기분 좋은 농담까지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1번 타자답게 비록 실패할지언정 온몸을 던져 도루도 시도했다.



물론 성공한 도루도 있다. 서른여섯, 일곱 먹은 아저씨가 이만큼 달리기를 하기란 쉽지가 않은 것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앞서 말했든 강동우는 뛰어난 1번 타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강동우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인시절, 외야를 보다가 큰 부상을 입었기에 외야수 자리를 극도로 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극복했다. 한화 이글스에서도 그는 외야에서 또 용감히 공을 잡아냈다.


그리고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비운의 천재' 수식어. 강동우는 신인 시절 자신보다 못했던 선수들이 눈부시게 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배가 아파, 억하심정에 야구판을 떠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야구판에 남았다. 평생 부상만 탓하며 과거에 안주하기보다는 1번 타자로써 묵묵히 다른 타자들을 빛냈다.



한화 이글스의 1번 타자 강동우. 나는 당신이 좋다. 우리의 동우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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