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이글스의 정민철 단장은 뼈한화맨이다. 고향은 대전, 출신고는 대전고등학교. 첫 입단 구단은 지역연고팀 한화이글스. 중간에 요미우리 자이언츠(2000~2001)에 다녀온 것 빼고는 은퇴도 한화에서 했으니 이런 선수를 두고 '원클럽맨'
1972년생인 그의 키는 무려 187cm다. 지금봐도 큰 키인데 당시로는 얼마나 큰 키였을까. 엄청난 지렛대를 가진 투수였다.
정민철은 1992년 입단 첫 해 14승을, 다음 해엔 13승을 기록했다. 2년 차 징크스? 그에겐 그런거 없었다.
입단 초부터 2005년까지 그의 등번호는 55번이었다. 그러나 2005년 그의 등번호는 23번으로 바뀌었고, 이 23번은 현재 한화이글스의 영구결번 번호가 됐다. 선수로써 최고의 영예가 아닐까. 그만큼 그는 한화이글스의 레전드이다.
그의 기록을 살펴보면,
사실 이 정도면 그는 단순히 한화이글스의 레전드를 넘어 KBO의 레전드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
그리고 또 한번 그가 레전드가 될 뻔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1997년 결국 실패했지만 정말 '아슬아슬했던' 퍼펙트 게임이다.
사실 이 날 정민철이 퍼펙트 게임을 놓친 것은 그의 탓만은 아니다. 그의 공을 포수 강인권이 포구하지 못해 타자가 낫아웃으로 진루하게 된 것. 그 다음 타자들은 모두 아웃처리해 노히트 노런 기록은 세웠지만 아쉽게도 퍼펙트 게임 기록은 수립하지 못했다. 지금도 가장 퍼펙트 게임에 근접했던 경기로 회자되곤 한다.
KBO에서 한번도 나온 적 없는 퍼펙트 게임은 과연 언제쯤 나올까.
그리고 대망의 1999년. 한화이글스가 창단 최초로 그리고 지금까지 유일하게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그해에 정민철은 2승을 거둬올리며 우승의 주역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20C 최후의 승자! 한화이글스! 그나저나 또 한국시리즈 우승하는 모습은... 저 죽기전에는 볼수 있겄쥬? 쿨럭 쿨럭
상승세를 탄 정민철은 2000년 일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계약하고 일본으로 건너가나, 성적은 좋지 않았다. 통산 3승 2패.
결국 2002년 그는 친정 한화로 복귀한다.
돌아와서 기량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민철은 2002년 탈삼진 1,300개를 달성을 시작으로 2004년에는 프로통산 4번째로 1,400 탈삼진 기록을 수립했다.
2007년에는 프로통산 2번째 20완봉, 최연소와 최소경기 150승리, 최연소 2,200 투구 이닝 달성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2008년까지 꾸준히 100이닝 이상씩을 소화하다가 2009년 9월 12일 한화에서 은퇴했다.
그리고 또 한화이글스에서 (뼈글스맨) 투수코치로 활동하다 현재는 한화이글스의 단장이 되었다.
사족
감수: 롯데팬 강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