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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May 14. 2020

38년생 할머니와 고기


 코로나 긴급지원금 선불카드를 수령하러 주민센터에 갔다. 어느 할머니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들어오셨다.


저기, 뭐 전화와서 나한테 뭐 받으러 오라던디...


할머니, 몇년생이세요?


38년 x월 x일이요.


오늘 할머니 재난지원금 신청하는 날이네. 여기와서 이거 쓰세요.


 공무원은 그 자리에서 당연하다는 듯 할머니에게 서울시재난지원금 신청서를 건냈다. 할머니는 공무원의 도움을 받다가, 다른 막무가내 노인들 때문에 방치도 받다가, 어찌어찌 체크는 다 했는데 주민등록번호를 못쓴단다.


노인이 되면 다시 아이가 되는지 모른다. 아니면 우리가 그들을 아이처럼 대하는지 모른다. 아이처럼 돌봐주는 건 빼고 그냥 약한 존재로.

 

 공무원이 할머니 주민등록증을 받아 할머니는 이제 못외우고 헷갈려서 쓰지도 못하는 할머니의 주민등록 번호를 대신 적어주고 신청을 해주었다. 그런데


 어? 할머니 신청되어있는데요?


 그랬다. 노인이 받은 전화는 신청금을 지급받으라는 전화였다. 그제야 공무원들은 노인을 신청급 지급 줄로 옮겨주었다. 물론 나도 공무원분들을 이해했다. 고집부리고 떼쓰는 다른 노인들에게 하도 시달리다 보면 나는 저것보다 더 못된 인간이 되었으리라.

 

 어쩌면 노인이 되면 아이가 되는게 맞는지도 모른다. 좀 미운 아이. 이렇게 30년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만세를 외치고 한국전쟁에 처참히 부숴지고도 나라를 일으켜세운 한 세대가 바스라지고 있다.


 선불카드 수령대기줄로 옮겨온 할머니는 공교롭게도 기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내 옆에 앉게 되었다. 눈이 마주치자 내가 웃었고 잔뜩 긴장했던 할머니는 그제야 맘이 좀 놓이는지 표정을 풀고 내게 물었다.


 저기... 이거... 얼마줘요?


 음... 최소 30만원이요. 사람마다 좀 다를거에요. 저도 잘은 모르겠네요...


 나는 이런거 하나도 몰라요. 적십자에서 전화가 와서 뭘 받으러가라하길래 왔어요.


 적십자... 좋은 일 하시네요.


 이거 말고 또 있어요.


 또요?


 전국재난지원금. 그건 다음주부터 신청하면 돼요.


 엄밀히는 이번주부터지만 노인분들은 현장 신청을 많이하시기에 다음주라고 말씀드렸다. (현장 접수는 다음주부터)


 그건 언제 오면 돼요?


 할머니 마스크 사는 날이요.


 지금 생각하면 최악의 답변이었다.


 저는 마스크 안사요... 센타에서 주면 받고, 이것 그냥 빨아써요.


 그제야 나는 그녀가 내가 이 사회에 없다고 생각해온 블라인드 스팟이었음을 깨달았다. 지금은 구매가 쉬워진 공적마스크 가격조차 부담갖는 사람들.


아 일단 여기까지만 써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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