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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Yonu May 20. 2022

영국도 받았었다, IMF 구제금융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도 IMF 구제 금융을 받은 적이 있다. 때는 1976년이었으니 몰랐어도 다들 괜찮다. 우린 젊으니까(?)


경제 파탄 조짐은 70년대 들어 강하게 나타났고, 영국만큼 노조가 강성한 나라가 없었다. 오죽하면 양대 당 중 하나가 노동당.


영국은 복지병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 때마침 터진 오일쇼크에 반사이익을 본 석탄노조는 엄청난 임금 인상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리고 이는 곧 철도 등 다른 노조들에게까지 번진다. 보수당은 이를 막으려다 실각하고 노동당은 노조들의 의견을 무조건 수용한다.


노동당은 이어 민간기업 공영화를 착착 추진한다.

실 노동당이 추진한 공영화는 이전 보수당이 추진하던 공영화와도 같았다. 그때는 그러면 경기가 살 줄 알았다. 하지만 노동당이 강경히 추진한 민영기업 공영화는 최악의 경기추락만 낳았고 이러는 동안에도 노동당은 내각을 계속 차지한다.


왜?

민주주의니까. 국민들이 뽑아만 주면 된다.

그러나 점점 나빠지는 상황에 국민들도 노동당에게서 등을 돌렸고 1976년, IMF가 터진다!

노동당은 허둥지둥했다. 그리고 그때, 그녀가 왔다.



영국 최초 여성 총리 보수당 마렛 대처.


마가렛 대처와 보수당은 국민 지지를 받아 의회에 입성했으나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일단 공영화를 취소하고 다시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했고, 복지 예산도 깎아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조 임금 깎기에 돌입하는데, 특히 탄광노조의 반발이 엄청 거세서 유혈충돌도 자주 발생했다. (서양은 시위대가 시위 라인을 넘거나 폭력을 행사하면 바로 두들겨 팬다.)


다행히 대처의 공공지출 삭감은 세금 감면과도 맞아떨어졌고, 민영화된 기업들의 생산성은 그전에 비해 50% 가까이 증가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아르헨티나가 영국령 포클랜드 제도를 침공한다. 당시 남미의 위상은 지금의 그것 한참 달랐다.


문제는 영국이 지금 집안 사정도 안 좋은데 군비 지출은 더 꺼리는 상황이라 의회는 물론 영국 국방부 장관까지 아르헨티나와의 전면전을 반대하고 나선다. 국방부 장관은 아예 사퇴하겠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대처는 물러설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게 포클랜드 전쟁. 결과는? 영국 승.



당시 대처는 사망한 영국군의 가족들에게 자필 위로 편지를 보내는 정성을 보였다고 한다.


그렇게 민영화로 높아진 생산성, 적당해진 복지와 낮아진 정부 지출로 인해 줄어든 세금 및 국민부담, 바로잡힌 노조 임금, 포클랜드 전쟁 승리로 마가렛 대처는 무려 11년 211일간 영국의 수상으로 자리했다. 20세기 영국 정치 역사상 가장 긴 기록이다.


포클랜드 전쟁을 반대하며 영국 국방부 장관이 사임까지 들먹일 때 영국 해군참모총장 헨리 리치 제독만은 끝까지 전면전을 주장했다. "대체 왜"냐는 질문에 그는

 우리가 질질 끌며 조심조심하다 보면 몇 달 내에 우리 말을 경청하는 나라는 한 곳도 없어질 것

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나는 비트코인을 만든 사토시 나카모토가 영국인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영어 사용 습관(스펠링, 문법 등), 글을 남긴 시간대 등으로 유추해봐도 일단 미국인은 아니며, 최소한 영국에 거주했다는 이론이 설득력이 있다.


비트코인 제네시스 블록. 우측 하단 'Chance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of banks'


특히 비트코인 제네시스 블록에는 ‘은행들의 두 번째 구제금융을 앞둔 U.K 재무장관’이란 문구가 적혀있다. 이런 역사를 겪은 국가 출신이라면 자유의 머니 비트코인을 만들어낼 충분한 사상과 배경을 가진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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