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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May 28. 2021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

고등학교 때부터 쭉 이어서 해오는 것이 있다. 바로 일기다. 초등학교 때  방학숙제로 써야 했던 일기는 그렇게 싫더니 고등학생이 되자  스스로 일기장을 펼쳤다. 무엇이 일기를 쓰도록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쓰고 싶었다.  힘들었던 시절에 나를 지탱하기 위해 썼다. 스스로의 무능함에 창피했을 때도 썼다. 남몰래 감정을 퍼붓고 싶을 때고 썼다. 아무도 보여줄 필요가 없었던 글을 나를 위해 썼다. 미래의 내가 읽을지 말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내 인생이 기록할 정도의 가치는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 쓴 것 같다. 


대학생이 되었고, 직장인이 되었고, 결혼을 했어도 나는 계속 일기를 썼다. 어렸을 때는 그냥 싸구려 노트를 일기장으로 썼지만, 돈을 벌고 나서는 동일한 규격의 몰스킨으로 바꿨다. 몰스킨 가격이 비싸고 생각하는 이도 있겠지만, 나는 그래도 10년 가까이 동일한 노트를 팔아주는 것 자체가 좋았다. (아마 미래에도 이 회사는 망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몰스킨으로 쓴 일기는 어느덧 13권째다. 물론 그 기간 동안 매일 쓰진 않았다. 가끔은 3개월이 지나도 쓰지 않은 적도 있었다. (어쩌면 6개월 동안 쉬었을지도) 하지만 기록이 영원히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쉬어갈 뿐이었다. 가끔 다른 기록으로 대체된 적은 있었다. 남에게 보여주는 글이나, 메모, 또는 편지로 말이다. 다른 취미는 6개월마다 바뀌었고  중간에 실증이 나 그만두기도 하지만 일기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나는 일기를 쓰는 사람으로 계속  남아있었다. 


일기를 쓰다 가끔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내가 죽고 나면 무엇을 남기고 싶을까? 답은 너무 쉬웠다. 나는 매번 내 일기를 우선순위로 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그 신볍잡기의 글들을 가장 먼저 남기고 싶어 했다. 아니면 그냥 내 무덤에 일기를 함께 묻어주면 좋겠다.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다 간 사람이 있었다. 뭐 이런 의미다. 


내가 이렇게까지 일기를 오래 쓴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쓰고 싶어서 썼다. 아무도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데 정성스럽게 꾸몄다. 왜 나는 계속 쓰고 있는 걸까? 그저 내가 원래부터 써야 했어야 했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일기는 결코 누군가의 제안이나 요청에 의해 쓴 것도 아니다. 내가 꾸준히 하고 싶은 일을 내 손으로 정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렇게 인생에서 아무런 이득없이도 오래 해 온 일이 몇이나 될까? 써야 했으니 썼다.  그리고 쓰고 싶어서 썼다.  이런 생각마저 드니, 일기가 단순한 취미생활을 넘어선 그 무언가가 아닌가 싶다. 소명이라고 하기엔 매우 거창하지만, 달리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지금 계속 글을 쓰고 있는 시작점이었겠거니 생각해본다. 


일기는 가장 나를 나답게 만들어준다.  나답다는 것은 자기의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옳다 그르다의 판단을 떠나 본연의 나를 좋아하는 것이며, 남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다. 


기록하는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지니면서

글을 쓰는 순수한 행동 자체가 가치 있다 느낄 때

나는 가장 온전한 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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