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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Sep 16. 2022

나에게 가장 좋은 글

모니터로만 보던 글을 종이로 읽는 기쁨

나는 네이버 블로그 글을 정기적으로 제본한다. 독서나이 프로젝트가 3번 정도 사이클을 돌면 적당히 두툼해질 정도의 리뷰가 블로그에 쌓인다. 그렇게 좀 뜸을 들이다가 '이제 한번 엮을 때가 되었군' 싶을 때가 바로 종이로 엮을 때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네이버 블로그에는 글 저장이라는 설정에 들어가 리뷰 포스팅을 PDF로 변환해 저장 다음, 제본 사이트에서 파일을 보내면 끝이다. 만 원 정도면 거의 200-300페이지 정도의 리뷰를 흑백 스프링 노트로 받아볼 수 있다. 그것도 배송비 포함으로. 여기까지 소요시간은 보통 10분 내외 정도. 이 작업을 1년에 1,2번 정도 진행한다. 


가장 최근은 이번 주였다. 점심시간 끄트머리에 '아, 해야 되겠네'싶어 제본을 맡겼더니 토요일 도착했다. 나는 택배 박스에서 스프링으로 묶인 그것을 꺼내 서재 구석에 놔뒀다. 읽을 때가 되면 다시 꺼내봐야 하지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그렇게 만든 노트가 네 권이다. 그 안에는 대략 270개 정도의 리뷰가 날것 그대로 들어가 있다. 휘리릭 펼쳐보다 보면 많이도 읽었군 싶다가도, 기록의 힘이란 쌓이니 대단하네, 새삼 느낀다. 


제본한 노트는 내 방 어느 한구석을 잠자코 차지하다고 있다가, 어느 순간 꼭 필요해진다. 머릿속에 얽힌 생각들이 여름 장마에 낀 회색 구름 덩어리처럼 짙게 깔려있을 때. 그럴 때 나는 직감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 노트를 읽어야겠다고. 한 번쯤 멈춰 서야 할 시기, 더 읽지 말아야 할 순간, 새로운 것보다는 내 안에 받아들인 것들을 다시금 꼭꼭 씹어봐야 할 때라고. 


주말의 오후, 점심을 먹은 뒤의 나른함이 조금씩 잦아들면 나는 책상에 앉아 스프링 제본 노트를 꺼내 읽기 시작한다. 신중히, 그리고 정성스럽게. 책상에 바른 자세로 앉아, 형광펜과 볼펜을 들고.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밑줄 그으며 찾아낸 문장들을 다시 되새김질한다. 모니터로 봤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예전에 글을 썼을 때도 내가 좋아하는 것만 추려냈기 때문에 콕콕 박히는 문장뿐이다.  '와 이 문장 진짜 좋다.' '전에 읽었을 땐 몰랐는데, 이렇게 다시 해볼까' 하며 마음이 두근두근 해진다. 가끔 발견한 오타에 얼굴이 빨개질 때도 있고, 황급히 블로그에 고치기도 하지만 페이지를 거침없이 넘긴다.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바쁘게 왔다 갔다 한다. 마치 한쪽 박스에 쌓아둔 조각들을 모조리 바닥에 부어 하나하나씩 들여보는 기분이랄까. 더욱 마음에 드는 조각이 생기면 똑같이 따라 써보기도 한다. 가끔은 다시 쓰면서 더 와닿게 되는 말도 있다. 


며칠간 그렇게 읽다 보면, 나는 다시 완전히 충전된 배터리처럼 활력을 얻는다. 그리고 다시금 새로운 책을 찾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런 과정이 1년에 며칠도 채 되지는 않지만, (고작 해봐야 일주일도 되지 않는다) 나는 가끔 이 순간을 위해서 블로그에 리뷰를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느낀다. 내 리뷰는 첫 번째로 나에게 유익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렇지 않으면 쓸 이유가 없어지므로.




블로그를 하다 보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약간의 금전적인 도움이, 또 남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기쁨이.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블로그는 기본적으로 나를 위한 기록이라는 거다. 나는 이 원칙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에게 가장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오래 하기란 쉽지 않기에. 네이버 블로그뿐만 아니다. 브런치에 올리는 글 역시 그렇다. 오랫동안 글을 쓰고 나니, 결국 나는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내가 읽었으면 좋겠다고 느끼면서 글을 쓴다는 걸 알았다. 결국 내 자기장에서 벗어나지 않는 글로 계속 채우고,  정기적으로 글을 읽어보는 작업을 함으로써 자신의 가치관을 더 견고히 한다는 걸 요즘 나는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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