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니 Oct 12. 2023

모닝페이지을 쓴지 700일이 넘었고,

나의 하루는 모닝페이지로 시작한다. 눈이 떠지고 몽롱한 상태일 때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펼친다. 그리고 볼펜을 들어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노트 한 페이지의 마지막 줄에 닿을 때까지 펜을 놓지 않는다. 그저 '자동 입력 모드'로 설정된 로봇처럼.


딱히 의미 있고 중요한 내용을 쓰는 건 아니다. 몇 초 뒤면 금방 까먹고 말 기억의 흐름을 그대로 쓴다.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어제 본 영화라든지, 오늘 꾼 꿈이라든지, 무지갯빛처럼 선명하고 날것 그대로의 감정이라든지, 아니면 끝을 맺지 못한 생각의 덩어리들 같은 것들 말이다. 흐름은 뒤죽박죽이다. 글은 과거와 현재, 일상과 꿈을 오간다. 글씨도 엉망이라 알아보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누군가 노트를 펼쳐 읽어본다면 '이게 뭐야'하고 내팽개쳐 버릴지도 모른다.


쓰고 난 글은 다시 읽지 않는다. 당연히 머릿속에도 사라진 상태라 뭐라고 썼는지 모른다. 예전에는 몇 달 후에 가끔 펼쳐 흥미로운 글자를 동그라미 쳐놓기도 했으나, 요즘에는 그마저도 없다. 이런 글을 사실 글이라고 표현하기도 그렇다. 누군가에게 말하기도 애매한, 에세이나 일기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이런 일을 나는 700일이 넘도록 하고 있다.


다행히 이런 강박적인 주술 행위 같은 일을 나만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식으로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글쓰기를 '프리라이팅'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프리라이팅이 '모닝페이지'다. 이 방법은 1934년에 출간된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 수업>에서도 모닝페이지가 등장했다. 그리고 줄리안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 에 소개되어 20년 전에도 유행했다고 한다. 아마 모닝페이지의 역사를 파헤쳐 보면 좀 더 오래됐을지도 모른다.      


"어떤 종류든 상관없으니 이른 아침의 공상과 비판의 시각을 들이대지 않고 빨리 쓰는 것이 관건이다. 글의 우수성이나 궁극적인 가치는 아직 중요하지 않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행동을 기록하면서 수면 상태와 깨어있는 상태의 중간 지대에서 쉽게 글을 쓸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작가 수업> 도러시아 브랜디      


거의 100년 가까이 누군가에게 소개되고 누군가는 남모르게 행동하는 일이다. 모닝페이지의 요령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몽롱한 상태에서 정해진 페이지를 아무 글이나 쓰며 채우는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비판의 시선을 두지 않고 글을 쓰도록 연습하는 것으로 비판의 시각이 가장 약할 때가 아침이기 때문에 이런 연습을 하는지도 모른다.


가끔 흠모하는 작가의 인터뷰에서 등장하거나, 글쓰기 커뮤니티에서 모닝페이지가 소개될 때면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소설을 쓸 때 '자기 판단 중지'연습으로 프리라이팅을 장려했으니, 어느 정도는 일부 사람에게는 유효한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일은 아니다. 일어나자마자 스트레칭도 없이 몸을 웅크리고 글을 쓰는 건 관절에 무리가 생길 위험이 있다. 나 역시 방법을 바꿔 스트레칭 후에 모닝페이지에 쓰거나, 달리기 이후에 하는 등 시도해 보았지만, 여전히 눈뜨자마자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걸 해서 글쓰기 실력이 늘었는가 하면, 획기적인 변화는 없어 보인다. 소설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은 오히려 그런 일에 힘 빼지 말고 그것 소설이나 쓰라고 조언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잠시 모닝페이지를 그만둔 적도 있었으나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모닝페이지를 쓰지 않고 소설을 썼더니 글을 쓸 때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글쓰기의 방법론만 본다면 나는 팔짱을 끼게 된다. "효과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어요."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걸 매일 한다고 실력이 쑥쑥 늘어날지는 장담할 수 없을뿐더러,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이 일을 하는 것 자체로 스트레스받을 사람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글쓰기의 프로인 작가라고 무조건 하는 일도 아니고, 글을 쓰는 사람은 이런 일을 하는 바에야 좀 더 정돈되고 제대로 된 이야기를 쓰는 게 좋을지도 몰라요.라고 조언을 들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닝페이지를 해야 하는 다른 이유가 뭘까. 모닝페이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쓰기 전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다. 감정을 크게 발산하는 타입도 아니라, 무언가 감정이나 생각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모닝페이지는 그런 것들을 그대로 쏟아낼 수 있다.


모닝페이지를 반복하고 나서 한 가지 변화가 있는데, 눈을 뜨기 전부터 머릿속은 이리저리 부유물이 가득 찬 상태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내가 제어하지 않은 생생한 생각들이 머릿속의 이리저리 헤집고 다닌다. 자, 이제 이런 내용을 내가 생각해 냈으니, 빨리 모닝페이지에 부워버리라고, 하는 듯하다. 거기엔 무의식적인 어떤 것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꿈도 예전보다 잘 꾸고, 훨씬 더 잘 기억하게 된다. 이게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상태에서 일어나 그대로 글로 바꾸어 적는다. 계속 꺼내어 놓는다. 정제되지 않은 줄 글을 펼쳐진 상태로 뽑아낼 때. 혼란스럽지만 어느 정도는 비워가는 느낌이 든다. 차분하게 일상을 보내면서 차곡차곡 쌓인 부유물 들을 막대기로 걷어내는 역할을 모닝페이지로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모닝페이지를 쓰고 나면 한층 더 머리가 맑게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모닝페이지는 맑은 물이 나오기 위한 정수기 같은 필터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효과적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다만 나는 이미 일상에 스며들어 어찌할 도리가 없을 뿐. 그러나 이것이 집착이 된 건지 도움이 되는 건지 여전히 아리송하다. 늦잠이라도 자서 모닝페이지를 빠뜨리는 날엔 아침이 불안하고 하루가 엉망진창처럼 느껴지니 안 쓸 수도 없고. 이 정도면 강박증이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아침에 일어나 노트를 펼치고 무작정 쓰는 것. 그리고 불완전한 나를 만나고 뱉어내는 것이, 결국 그대로의 나를 만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전 17화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