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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Oct 13. 2023

글을 쓰자, 계속

메모가 일상이 된 지 제법 됐다. 출근하다가 발견한 수상한 공터라든지, 샤워하다가 떠오른 어릴 적 기억을 기록하는 식이다. 대부분은 별로 삶에 도움도 안 되고 금방 사라져도 무관한 내용이다. 하지만 나는 그걸 꾸역꾸역 노트에 적어놓는다. 몰스킨 노트는 예전 노트들이 그랬듯 금방 뚱뚱해질 것이고, 2,000개가 훌쩍 넘은 에버노트는 계속 세포가 분열하듯 늘어갈 거다. 이 정도면 스스로도 기록중독자가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채집한 메모의 일부분은 글의 소재로 활용된다. 내 습작 소설에 대부분은 일상에서 했던 메모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모은 재료 중 모두가 쓰이는 것은 아니다. 아주 극히 일부만 활용되고, 나머지는 또 상상력으로 채워진다. 그러니 늘 메모는 재고로 남아있다. 쓰임을 아직 찾지 못한 메모들. 이건 정말 소재로 쓰고 싶은데, 아직 시작도 못 한 것도 참 많다.


1년 전에 한 미술관의 전시를 보러 간 적 있다. 사람이 많아 조각가의 작품을 오래 볼 시간은 없어 대충 훑어보려고 가려던 차였다. 우연히 구석에 놓인 전시물이 눈에 띄었다. 화가가 팸플릿 위에 갈겨쓴 글이었다.

"윤이 반질반질하게 닦인 마룻바닥을 좋아한다"

이유는 지금도 모르지만, 나는 한 문장이 마음속에 남았다. 그 자리에서 메모해서 계속 남겨두었다. 이런 말을 할 법한 인물을 언젠가 그려보지 않을까 하며. 그러나 여전히 그런 인물을 활용한 이야기를 쓴 적은 없다. 평생 그런 인물을 만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의 개인적인 기억도 그렇다. 서른이 훌쩍 넘어버린 덕분에 경험은 보통사람만큼 쌓였다. 그러나 그걸 소설에 다 쓸 수 있는 건 아니었으므로 창고 안에 먼지가 쌓인 채 방치된 지 오래였다. 그런 기억의 조각들은 계속 계속 생성되고, 먼지 쌓인 채로 놔두긴 아까웠다. 이걸 어떡하면 좋을까 하던 도중 텀블벅에서 <보통의 서사>를 발견했다.


에세이를 함께 쓸 인원을 모았고, 회사 동료 3명과 함께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 주에 1편씩 쓰기로 하고, 비공개 카페에 올리기로 했다. 한 1주에 1편씩, 12편의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이 정도 분량은 처음이다. 보통 소설의 인물은 내가 아니므로 거리감이 느껴졌는데, 에세이는 나의 이야기라 너무 가깝다. 평소 같으면 민낯으로 홍대 한복판을 걷는 기분을 느끼며 썼을 것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유통되지도 않는 글인데 (언젠가 어딘가에 올릴 수는 있겠지만). 재활용이라고 하면 뭐 하지만, 일종의 남은 과자 부스러기로 만드는 이야기랄까. 부담은 없었다.


모임 멤버들과 한 달에 한두 번, 점심에 만나서 샌드위치도 나눠 먹었다. 글쓰기가 어렵네요, 그래도 재밌네요, 그 글 참 좋았어요, 식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또 마지막에 우리는 비슷한 말을 꺼냈다.


 "질문을 정해줘서 좋지만, 또 고르자니 그것도 어렵더군요"


그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젝트는 16개의 질문 중 12개를 골라서 써야 한다. 나의 결에 꼭 맞는 질문도 있었고, 이건 아니다 싶은 질문도 있었다. 12개를 고른 질문에서도 선뜻 쉽게 써지지 않아, 질문을 바꿔서 쓴 글도 있다. 예를 들어 '최근 들은 말 중 인상의 남는 말은?'이라는 질문에 어릴 적 아빠에게 들은 말을 썼다. 나중에는 자유롭게 주제를 정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가능한 한 질문에 대해 고민하고 썼다.


에세이는 어렵다. 하긴 안 그런 글쓰기가 있을까. 글쓰기에 처음 빠져들 때 미쳐 날뛰던 시절이 이후로는 점점 더 물이 찬 솜 주머니가 어깨 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어떡하겠는가.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는걸. 티셔츠에 물든 와인 자국처럼 다시 하얗게 변하긴 글렀다. 잘 쓰진 못하더라도 계속 좋아하며 쓰고 싶다.

요즘 나를 움직이는 목표는 '더 나은 글을 쓰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랬다. 글을 쓰고, 고치면서 나도 조금씩 성장했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에세이도, 흥미롭고 미스테리한 소설도, 용기를 주는 자기계발서도 모두 써버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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