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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Mar 13. 2022

한없이 피지컬 한 일

작년 가을, 나는 왼쪽 무릎을 다쳤다. 아무래도 나이를 못 속이겠다는 마음에 조금 울적했다가, 한동안 달리기나 운동은 못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전까지는 달리기에 꽤 재미를 붙였는데( 한동안 10km 달리기까지 했었다) 이런 상태로 계속 달렸다가는 큰일이 날 듯 싶었다. 그런 결심을 한 뒤부터는 온종일 집에만 있었다. 


막상 달리지 않는다고 해서 몸이 근질거린다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점점 추워지고 있었으므로 겨울은 푹 쉬는 것도 괜찮지 않나 하는 달콤한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재택근무로 일주일에 2번 정도 출근했으니, 내 인생에서 가장 움직임 없이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상에 앉아 있거나 거실에 누워있거나 침대에 누워있거나. 정말 그게 다였다. 집에서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운동을 할 법도 했지만 굳이 할 필요가 있냐는 마음까지 들었다. 그렇게 이 주가 지나니 예전 운동을 꼬박꼬박 하던 나는 이미 머나먼 세계 같았고, 달콤하고 늘어지는 생활에 푹 젖어있었다. 


그렇게 생활하다 보면 살이 찌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신경 쓰이는 일은 다른 데 있었다. 글쓰기의 리듬이 점점 흐트러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점점 늦게 일어나기 시작했고, 글을 쓰는 시간, 책을 읽는 시간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출간 작업 원고는 끝낸 뒤였고, 새로 시도한 단편 소설은 일주일 정도를 쓰면 되니 지속해서 글을 쓰는 일이 없었다. 블로그와 브런치도 뒷전이었다. 모닝페이지는 꼬박꼬박 쓰고는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내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문제는 내 마음이었다. 정신이 쉽게 흐트러지고 집중하기 어려웠다. 예전에 가지고 있던 번뜩거리는 아이디어를 잡았다는 감각도 사라졌다. 특히 한 가지 생각이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돌곤 했었는데 그런 일이 거의 없었다. 투명하게 비추던 호수가 점점 짙은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게 된 것 같았다.


체력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은 연관되어있다는 건 일반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머릿속에서 안다고 느낄 때와 체감하는 것은 전혀 달랐다. 과거에도 늘어지게 있던 시절은 있었지만(20대 시절의 대부분이다), 아마 내가 글쓰기를 시작하고 나서는 피부에 바싹 와닿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이것도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얘기지만) 그에 따라 사고 능력이 미묘하게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사고의 민첩성, 정신의 유연성도 서서히 상실됩니다. 나는 어느 젊은 작가와 인터뷰할 때, "작가는 군살이 붙으면 끝장이에요"라고 발언한 적이 있습니다. 그건 좀 극단적인 말이었고 예외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혀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물리적인 군살이든, 메타포로서의 군살이든. 많은 작가들이 그런 자연스러운 쇠퇴를 문장 기법의 향상이나 성숙한 의식 같은 것으로 보안하지만 거기에도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글쓰기는 큰 힘이 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은 칼로리 소모도 적어 보이고, 다른 일 보다 행위 자체가 쉬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꽤 많은 양의 글을 쓰면서 깨달았는데,  단순히 한 편에 글에서 끝나지 않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며 글을 쓰는 것은 보통 노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적어도 건강한 상태가 아니고서는 해내기 힘든 일이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가 아니라면,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그 노동에서 가치 있는 무언가를 건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나는 의미 있는 한 가지일을 오랜 세월 동안 고수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평생의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그들은 하루의 일상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산다. 자신의 하는 일이 무척 단순하게 만들어놓고 그것을 오로지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계속 닦아 내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닮고 싶다. 똑같은 일을 계속 반복한다는 것이 열정의 이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누군가는 열정을 가진 사람을 거대한 붉은 불꽃이 타올라 거침없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행동하는 사람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고요한 밀실에서 아무 말 없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반복하는 사람이 떠오른다. 조용히 타오르는 푸른 불꽃을 자신 안에 가진 사람을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런데 그런 열정에는 피지컬적인 뒷받침이 있노라고, 단순한 정신적인 의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사실을 체감했다. 


건강한 신체가 바닥에서 버티고 있기 때문에 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니 더 이상 운동은 선택의 문제로 둘 순 없었다. 아마 나는 체력을 관리하지 않으면 더욱더 군살이 붙게 될 것이고, 더 나은 상태로 글을 쓸 수 없게 된다. 운동이 단순히 아름답게 살기 위해서 하는 목적이 아니게 된 것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꾸준히 유지해나가려면 결국에는 피지컬적으로도 양호해야 한다. 그러니 어쨌든 나는 운동을 함께 가져가야 된다. 더 이상 운동이 나에게 필요할 때만 하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어쩌면 일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고 느꼈다.


가끔 나는 이런 당연한 기본적인 일을 잊고 산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닫는다. 내가 원하는 일은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노동이다. 하지만 또 까먹고 흐트러져도 된다고 생각하며 시간을 보낸다. 아직 젊으니까 이 정도 여유는 부려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미루기도 하고, 모르는 척하기도 하고, 빼먹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기분이 들 때도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래도 되냐 싶은, 알람이 울린다. 결국에는 나는 그런 알람 때문에 다시 방향을 잡고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가려고 한다.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때 다시 기초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그런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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