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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Apr 30. 2022

노트 정리를 하다가

에버노트에 2000개의 노트가 있었다.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기록하는 걸 좋아한다. 단어나 문장일 때도 있고, 장면인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아이폰을 열어 에버노트 아이콘을 누른다. 초록색 코끼리 아이콘이 잠깐 떠있다 노트 화면으로 바뀐다. 나는 아래에 있는 플러스 버튼을 눌러 새 노트를 만든다. 빈 화면에 커서만 깜박거린다. 지금 생각을 잊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손이 가는 대로 쓴다. 쓰고 나면 미련 없이 어플을 종료한다. 이와 같은 행동을 계속 반복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퇴근길에,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책을 읽다가, 자기 전까지. 나중에 읽다 보면 뭐라고 쓴 거야 싶은 글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속 쓴다. 돌멩이 안에 작은 반짝이는 것들이 숨어있길 바라면서.


그러다 오늘 아침 에버노트의 노트수가 2000개를 넘고야 말았다는 걸 깨달았다. 내 기억으로는 1200개 정도였던 것 같은데, 언제 그새 늘었을까. 3년 가까이 쓰다 보니 노트가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지만 이 정도까지 늘어나는 건 아니다 싶었다. 다시금 정리할 때게 된 것이다.


나는 노트들을 하나씩 들여다봤다. 짧게 쓴 메모 이외에도 다른 노트들이 보였다. 주간 일지, 독서노트, 강의노트, 초고, 퇴고, 가계부, 최근 소설 습작, 투자 관련 노트, 스크랩 노트. 대부분 PC에서 만들어놓은 것들이었다. 9개의 카테고리 안에서 어느새 쌓여있었다. 마치 내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빠짐없이 집어놓은 모양이다.  


나는 마우스를 움직인다. 더 이상 필요 없는 덩어리들은 지운다. 같은 내용은 합친다. 끝난 것들은 완료 카테고리로 옮겨놓는다. 반복하고 반복한다. 마치 무표정으로 사무적인 일을 처리하는 회사원처럼.


밖에서 보면 무척 지루한 작업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내 머릿속은 바쁘다. 정리하면서도 이런 생각들이 머리에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이때는 한참 내가 이것에 빠졌구나'

'추천도서 노트는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이 책의 문구는 정말 마음에 와닿았던 건데'

'작년에 이 달은 유독 열심히 일했구나'  


그 와중에도 '이건 이제 필요 없어'

'이건 더 발전시켜 봐야겠는걸'같은 판단도 하고 있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나면 머리에 열이 난다. 의자에서 일어서 이리저리 걸음을 옮긴다.  20% 정도는 줄였을까, 노트는 1597개다.  과감하게 지웠다고 생각하지만 확연히 줄어든 것 같진 않다.


하나하나 메모를 들여다보는 것은 품이 들지만 나는 결국 노트 정리를 한다. 이런 과정도 연례행사처럼 반복된다. 노트 정리가 중요한 이유는 정리하지 않으면 결국 어떤 노트가 중요한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리 에버노트 검색 기능이 좋아도, 카테고리별로 노트를 잘 정리해놓더라도 많은 노트는 찾으려는 의지를 떨어뜨린다. 결국 찾지 않는 메모는 의미는 없어지고 만다. 물론 이 말에 동의한다. 메모는 예전의 기록을 다시 돌아볼 때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되니까.


하지만 단순히 중요한 것들만 남기는 것이 메모 정리의 순기능의 전부는 아닌 것 같다. 나는 메모를 정리를 하다 보면 내 머릿속도 함께 정돈되는 기분도 느끼기 때문이다. 가끔 나는 현재의 상황에 매몰되어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아주 작은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불안해한다.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조급함이 생겨서 전전긍긍한다. 그럴 때 노트 정리를 하다 보면 내 시야가 넓어짐을 느낀다.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여  쌓여버린 노트를 정리하는 것처럼 머릿속에서도 지나간 일들을 한데 모아서 합치고, 더 이상 필요 없는 것들을 지우게 된다. 아직까지도 이어지는 일들을 재발견한다. '내가 이 생각을 예전에도 가지고 있었구나' ' 이렇게 고민했던 것이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구나'하고 느낀다.  지우고 합치고 다시 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마음 정리가 된다.  마치 미로 속에서 헤매다 탈출구로 이어진 노란 실을 발견한 기분이다.


결국 마음까지 정리하는 것. 다시 한번 나아갈 힘을 얻는 것. 어쩌면 이것이 노트 정리의 더 큰 순기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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