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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Jul 11. 2021

반찬통에 담긴 마음

  "딸~ 반찬 좀 보냈다~ 택배 왔는지 봐 봐"

 

  엄마는 반찬을 자주 보낸다. 내가 요리에 서툴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신혼 초기에는 요리에 재미를 느끼기도 했었다. 맛이 없어도 잘 먹어주는 남편이 고맙기도 하고, 자신이 요리를 한다는 것이 대견하기도 했다. 그것도 잠시 6개월이 지나니 요리 노트에 더 추가되는 레시피는 없었다. 처음부터 요리 당번은 나, 청소 당번은 남편으로 정했으면서도 배달 음식이라는 쉬운 방법을 택했다. 그런 사태를 짐작이라도 했는지 반찬이 떨어질 때가 되면 어김없이 택배가 오곤했다.


   엄마는 손이 컸다. 매번 큰 사과 상자에 반찬을 가득 담아 보낸다. 여름에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스티로폼 박스로 바뀐다. 박스를 열면 같은 반찬통이 보인다. 빨간 플라스틱 통이다. 얇은 뚜껑이 덮여 그 주변은 테이프로 붙여져 있다. 테이프를 조심스레 떼어내고 뚜껑을 열면 빽빽이 찬 반찬들이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무짠지 볶음, 남편이 좋아하는 장조림, 그리고 갖은 양념을 손수 섞어  맛을 낸 회심의 김치까지. 택배를 정리한 뒤, 나는 엄마에게 전화한다. '엄마, 이걸 언제 다 먹어~ 다음에는 조금씩만 보내줘'라고 투정 섞인 말이 먼저 나온다. 가끔 반찬을 다 먹지 못해  버리는 게 더  많기도 했는데, 그게 미안하면서도 엄마 탓을 한다.


  이번엔 반찬통이 깨져서 왔다. 김장한 뒤여서 평소보다 김치가 가득 담겨 있었다. 배달이 험했는지, 뚜껑 주변에 꼼꼼하게 붙여 놓은 테이프가 무색하게 통에는 크게 금이 가 있었다. 다행히 내용물은 상하지 않았지만, 반찬통은 쓸 수 없었다. 서둘러 다른 반찬통을 찾았다. 하지만 그만한 크기의 통이 없었다.  작은 통에 담을 수 있는 만큼 담고, 나머지는 봉지째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인터넷으로 반찬통을 찾기 시작했다. 검색하다 시어머니가 가끔 반찬을 주실 때 빌려주셨던 스테인리스 반찬통이 생각났다. 스테인리스는 튼튼하고, 보관도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가격이 비쌀 것이다. 이왕 사는 거 좋은 걸 사자고 생각하며 스테인리스 반찬통으로 다시 검색했다. 꽤 비쌌다. 주문을 하고 하루가 지나니 반찬통이 도착했다. 은색 스테인리스는 고급스러워 보였고, 뚜껑에는 숨을 쉬는 공간을 여닫을 수 있는 기능까지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튼튼하고 좋았다.


   스테인리스 통을 씻어 반찬을 담았다. 엄마 생각이 났다. 친정 냉장고에는 플라스틱 반찬통이 가득했다. 손이 큰 엄마는 많은 반찬을 오래 보관하게될 텐데, 대부분 가장 저렴한 것을 샀다. 이런 스테인리스 김치통은 비싸서 안 샀을 것이다. 나는 반찬 통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메시지로 보냈다.

 

- 엄마 김치통 이런 거 사줄까?

 

3분 뒤 답이 왔다

- 조아

 잇으면조치만괂찬다


  매번 틀리는 맞춤법. 엄마는 또 괜찮다고 했다. 내가 필요한 걸 물어보면, 항상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기념일에 선물을 챙겨드려도 이런 걸 괜히 사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속마음은 알고 있었다. 부담을 주고 싶지 않으셨던 거다. 타지에서 돈을 버는 딸에게 자신이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거다. 하지만 이번에는 좋다는 말 먼저 나왔다. 정말 필요한 거다.


  바로 전화를 해서 어떤 크기가 좋으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사양 하셨지만, 내가 재촉하자 큰 통이 좋다고 하셨다. 반찬통 6개를 골랐다. 17만 원을 결재하고, 넉넉한 크기로 보냈다고 연락했다. 이상하게 마음이 벅차올랐다. 엄마에게 준 선물 중에 가장 특별한 것 같았다. 종종 선물을 보내긴 했다. 하지만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사드린 흔한 지갑, 옷, 신발, 화장품 이런 것이 아니었다. 요리를 좋아하는 엄마가 필요로할 걸, 내가 먼저 생각해서 준 첫 선물이었다.


  선물이라는 한자의 '선'에는 선물이라는 뜻도 있지만, 반찬이라는 뜻도 있다. 매번 진짜 선물을 보내주는 엄마를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나를 처음 만난 나이를 훌쩍 지났으면서 그녀가 주는 선물의 의미를 잘 몰랐었다. 반찬통을 보내며 처음 깨달았다. 선물은 특별한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 사람을 아끼는 마음으로 준다면 무엇이든 선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내가 돈을 번다는 사실이  멋지게 느껴졌다. 그 돈은 나를 위할 뿐만 아니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도 지지할 수 있다. 엄마와 같은 반찬통을 쓰면서 나는 이제 내가 만든 음식을 채워 넣을 거다. 그리고 매번 엄마와 같은 물건을 쓰고 있다는 사실도 떠올리겠지.  앞으로는 엄마에게 이런 말을 더해주고 싶다.

 

"엄마~ 엄마 좋아하는 거 보내 놨어~ 확인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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