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니 Aug 15. 2021

나의 속도대로 걷는다

  우리 집과 회사의 거리는 10Km다. 40분 정도 걸린다. 지하철 2호선 외선 순환열차를 타고 두 정거장을 지난 뒤, 5호선으로 갈아탄다. 5호선에서 세 정거장을 지나 내린다. 버스를 기다린다. 1시간이 걸려 회사에 도착한다. 특히 2호선 외선 순환열차는 배차간격이 길다. 한번 놓치면 1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나는 걸음이 느린 편이다. 그래서 출근은 항상 급하다. 정해진 스케줄에 맞추어 걸어야 한다. 


  반면 퇴근 시간은 다르다. 전철시간표를 확인하는 일도 거의 없다. 지쳤기에 서둘러 집에 가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상사가 지시한 업무는 끊이지 않고, 내선전화는 쉴 틈 없이 울린다. 마감이 정해진 일들은 동시에 밀려온다. 자리에서 일어날 틈도 없이 나는 꾸역꾸역 일을 해치운다. '빨리빨리'만 요구하는 회사에서 나는 일하는 기계처럼 입력과 출력을 반복한다. 퇴근 시간이 되면 더 이상 남은 기력은 없다. 


 회사 앞에 있는 버스를 타고, 5호선을 탄다.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반대편 전철의 2호선 문이 열려 있는 것이 보인다. 적어도 50걸음 정도는 걸어야 한다.


  내 앞에 다섯 사람이 걷고 있었다. 그들도 같은 곳으로 가고 있었다. 2호선 전철의 출입문은 열린 채, 닫힐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외선 열차의 종착지이기 때문에 한동안 닫히지 않는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계속 천천히 걸었다. 갑자기 맨 앞에서 걷고 있던 한 사람이 뛰기 시작했다. 나머지 네 사람도 덩달아 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자 뛰어야 할 것 같았다. 발걸음도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10걸음은 전력 질주하는 선수처럼 달렸다. 출입문을 통과했다. 숨소리가 거칠었다.


  지하철은 한동안 그대로였다. 10분 정도 지나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출입문 옆 난간에 기대어 생각해보았다. 나는 왜 앞사람 따라 달린 걸까? 생각할 것도 없이 발걸음이 빨라진 걸까? 아마 사람들은 지하철이 언제 출발할지 몰랐을 것이다. 정확한 시간을 알고 있었다면 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고 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달렸고, 지하철은 10분 후 출발했다. 


  처음 달리기 시작한 사람은 문이 닫힐까 봐 조급했을 것이다. 그 행동을 보자 나머지 사람은 마음이 급했을 것이다. 그들의 행동에 나 역시 따라 달렸다. 마치 목적도 모른 채 빨리빨리를 외치는 목소리를 따라 회사일을 처리하듯 말이다. 퇴근하고서도 내 걸음을 누군가에게 맞추고 있었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아도 허겁지겁 달렸다.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나는 내 걸음을 누군가에게 맞추지 않아도 된다. 


  그 이후 나는 지하철에서 더 이상 남의 걸음을 신경 쓰지 않는다. 누군가 내 앞에서 지하철 문이 닫힐까 달려도 발걸음을 유지한다. 기다릴 시간은 충분하다. 빨리빨리를 외칠 필요도 없다. 나는 나의 속도대로 걷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