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해꾼 3: 특별함씨
처음 글을 시작하면 보통 '뭘 쓰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것이다. 내 인생에서 특별한 경험을 떠올려본다. 남들과 다른 면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리 대단한 일은 없다. 남들과 비슷하게 학교를 다녔고, 아르바이트를 했고, 여행을 다녔고, 취업을 했다. 결혼 이후도 비슷한 것 같다. 그러니 딱히 남들에게 들려줄 흥미로운 건 없는 것 같다.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서 머뭇거려진다면, 3번째 방해꾼 때문이다. 바로 '특별함'이라는 존재다.
처음엔 나 역시도 특별한 소재 찾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대학생 시절 나는 한 달 동안 인도에 혼자 배낭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 시기는 내 인생에서 꽤 중요한 시기였고, 여행 자체가 특별하다고 여겼었다. 그래서 나중에 글쓰기 소재로 가장 먼저 고른 것도 여행 에세이였다. 여행지에서 썼던 일기를 토대로 하나둘씩 시간의 흐름에 따라 써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중에 그만두고 말았다. 내가 쓴 글이 여행 가이드북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소중한 추억이었으니 대단한 글을 쓸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내가 특별하다고 여겼던 소재를 쓰면서도 나에게 그리고, 남에게 큰 감흥을 주진 않았다. 그 이후 나는 오히려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 쓰기 시작했다. 마음을 편하게 먹고, 내가 느낀 것들을 하나씩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글쓰기는 소재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처음부터 특별한 걸 쓰려고 해 봤자, 엄마의 화장대에서 화장을 한 어린아이처럼 느껴질 뿐이라는 걸 말이다. 내 삶은 너무 평범해서 아무것도 쓸 것이 없는 걸까? 그런데 생각해보자. 글은 특별한 이야기만 쓰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쓸 수 없는 특별한 소재를 찾아 쓰는 것만이 글쓰기의 의미는 아니다.
대부분의 스토리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는 나온다. 그리고 자신조차도 평범한 소재를 다루더라도 무척 재미있게 읽은 글은 있을 것이다. 최근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 <무라카미 T>를 읽었다. 작가가 지금까지 모은 티셔츠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였다. 지금 내 방에도 10벌 정도 있는 그 티셔츠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책을 읽는 내내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70대의 작가가 티셔츠를 이야기하지만, 나는 읽은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무라카미 T>에서 하루키 자신도 이렇게 말한다.
오래 살다 보니 이렇게 모인 티셔츠 얘기로 책까지 내고 대단하다. 흔히 '계속하는 게 힘'이라고 하더니 정말로 그렇군. 뭔가 나 자신이 계속성에만 의지하여 사는 듯한 기분마저 들 정도다.
딱히 비싼 티셔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예술성이 어쩌고 할 것도 없다. 그냥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낡은 티셔츠를 펼쳐 놓은 뒤 사진을 찍고 거기에 관해 짧은 글을 쓴 것뿐이어서, 이런 책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뭐, 나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 이 사소한 컬렉션을 그런대로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 무라카미T 프롤로그 중에서
글쓰기는 특별한 이야기를 짧은 순간에 쓰고 끝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하나씩 들여다보고 꾸준히 쓰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 내가 발견한 것, 느낀 것을 쓰는 것이다. 남들이 보지 않는 것을 오래 보거나, 사소한 사건 하나에 더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글쓰기다. 빛나는 소재가 없어도 괜찮다. 오히려 특별한 소재에 의지하면, 꾸준히 글을 쓸 수가 없다.
나는 글을 쓰다 보면 나의 기억들을 자주 떠올린다. 오래 잊고 지낸 사건들에 대한 감정, 생각들이 다시 자라난다. 나는 왜 이 일을 기억하고 있는지, 어떤 인상이었는지, 그리고 그게 어떻게 지금까지 연결되었는지를 깨닫는다. 하나둘씩 파고 들어가다 보면, 내가 살아온 삶들이 더 생생하고 , 의미 있게 다가온다. 그런 작은 발견 하나가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 그러니 사소하지만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 나에 대한 이야기, 주변에 관한 이야기도 괜찮다. 또는 눈에 보이는 사건, 사물에 관한 이야기도 괜찮다. 정말 사소한 소재를 하나 정해서 그것에 대해 써보는 게 좋다. 최근 내가 쓰는 에세이의 소재는 소박하다. 노트, 맥주, 또는 어렸을 적에 있었던 일. 하지만 그 소재에서 내가 무엇을 보고 느끼는 건지를 적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표현하는 세상을 보는 시각을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이력서에 400자 자기소개를 쓰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글 400자를 쓰는 것이 나를 더 잘 드러낸다.
물론, 여전히 특별한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면 <타이탄의 도구들> 나왔던 이 말을 떠올린다. "대단한 것을 주려하지 말고, 좋은 것만 주자. 좋은 것만이 오래 살아남는다". 이 말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힘을 풀게 된다.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것만 잘 쓰려고 노력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