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해꾼 4: 귀찮음씨
마지막 방해꾼은 귀찮음씨다. 글을 미루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오늘 저녁에 써야지. 내일 써야지. 이번 주말에 써야. 이번 달 안에 써야지. 이렇게 미루다 보면 영영 쓸 날은 오지 않는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보자. 그때 '그래,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의미 있는 삶이었어'라는 말이 내 입으로 나온다고 치자. 과연 나는 인생의 어떤 일들을 떠올리면서 그 말을 했을까? 내 삶의 무엇이 가치 있었다고 생각할까?
나는 그중 하나로 좋아했던 일을 꾸준히 추구한 것, 글을 계속 쓴 것을 꼽을 것 같다.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인생에서 글을 쓰는 것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매일 글을 쓴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인생에서 몇 번쯤 들어야 한다면, 자신은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 맞다. 물론 이것 하나는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글을 쓰고 싶은 것이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하는 건지, 아니면 진심으로 쓰고 싶은 마음이 든 건지. 오랫동안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아도 쓰고 싶다면, 내 삶에 글쓰기가 의미가 있다는 증거다.
처음에는 사람들은 글을 쓰면서, 글을 쓰는 이유를 찾는다. 행동에 의미를 부여해야지만 꾸준히 할 수 있는 걸 직감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이유가 된다. 하지만 한번 의미를 정한다고, 행동이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속에 귀찮음 씨가 등장하고 의미를 자주 까먹게 만들기 때문이다.
의미가 있다고 정했다면, 앞만 보고 가야 한다. 중간에 멈추고 다시 시작점을 돌아볼 필요는 없다. 이미 시작을 했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의미가 있다면 그걸로 괜찮다. 시작을 한 뒤에는 바로 지금에 집중해야 한다. 과거와 미래는 당장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는 '지금'만 계속 살아간다. 어쩌면 우리는 계속 현재만을 살고 있는 건데도, 불안하기 때문에 과거와 미래와 같은 시점을 만든 건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의 글쓰기가 의미 있다고 여겨진다면, 오늘 쓸 글에 집중하자. 집중력이 허락한다면 우리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이고, 글을 쓸 수 있는 만큼 성장한다. 물론 그 시간이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즐거울 때도 있을 것이다. 글쓰기가 즐거운 적이 한 번도 없다면 문제가 있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잘하고, 잘하는 것이기에, 의미가 있기에 지속한다.
대단한 작가가 처음부터 될 수는 없다. 나는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개인적인 즐거움으로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꼭 전문작가여야만 글을 써야 하는 건 아니다. 궁극적인 삶의 놀이처럼 생각해도 충분히 의미 있다 다른 즐거움만큼 글쓰기 역시 즐겁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는 글쓰기가 가장 즐겁다. 다른 예능 프로를 보는 것보다,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 스스로 만들어내는 세계에 빠지는 것이 행복하다. 그러니 창작은 고통이니라고 말해도 계속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는 그 행위 자체에서 얻는 기쁨 때문일 것이다. 나를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지극히 사무적인 회사원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내면에서는 온갖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자신만의 세계를 형성하는 기분이다. 그러니 글쓰기에 푹 빠지는 일은, 무척이나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다. 취미라고 해도 좋지 않은가? 너무 진지하게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의미를 가지면, 귀찮음씨를 물리칠 수 있다. 이왕 글을 내가 놓지 않을 것 같으면 좀 더 일찍부터 시작해보자. 우리는 모두 다른 개성이 있다. 드러나지 않는다고 없지 않다. 우리가 기대한 만큼 가능성이 있다. 이를 믿지 못했을 뿐이다. 내 안에 묻혀있는 건 나만이 볼 수 있다. 내가 쓰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