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아침 적어도 30분 이상은 글을 쓴다. 6개월 가까이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되다 보니 익숙해졌지만, 처음부터 매일 글을 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막상 글을 쓰자고 마음먹으면 , 어딘가 한구석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같이 생겼다. 그렇다. 글쓰기가 쉽지 않은 이유. 우리가 글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이유. 4명의 방해꾼이 있기 때문이다. 이 방해꾼들은 글을 처음 쓰자고 마음먹었을 때 생겨났다. 그들은 나를 쉴 틈 없이 괴롭혔고, 도중에 그만두게 만들었다.
방해꾼 1: 막막함씨
글을 쓰려고 새로운 빈 문서를 하나 연다.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지만, 쉽게 손가락이 움직여지진 않는다. 처음 몇 줄을 적었다, 지웠다를 한다. '언제 다 쓰지?'라는 막 한 기분이 든다. 과연 적을 것이 있는가 하는 의문에 빠진다.
처음 만나는 방해꾼은 막막함씨다. 대부분 글을 쓰는 사람은 그런 기분을 느낀다. 물론 고민 없이 매번 술술 써 내려갈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그러긴 쉽지 않다. 나도 처음에 빈 공간을 볼 때면,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막막함은 어디서 나올까? 나는 글을 잘 쓰려는 부담감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는 글을 쓸 때마다 좋은 글만 쓰고 싶어 한다. 매번 출판될 정도로 좋은 글말이다. '오늘은 진짜 별로인 글을 써볼까'하고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진짜 우리는 좋은 글만 쓸 수 있을까? 그리고 좋은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으면 써질까. 우리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한번 살펴보자. 무척 좋아하는 책도 있지만 어느 한, 두 권은 덜 끌린다. 그런데 내가 글을 쓰면 나의 글 다 좋은 글이어야 할까. 솔직히 말해서 그건 욕심이다.
다행인 사실은 수많은 글을 쓴 작가도 처음 글을 다시 써야 할 땐 다시 새롭게 배운다는 것이다. 미국의 소설가 폴 오스터는 파리 리뷰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과거에 책을 썼다는 사실은 전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항상 초심자라고 느끼며, 계속해서 똑같은 문제, 똑같은 절망에 부딪히지요." 수십 년 동안 글을 써온 이들도 이렇게 느끼는데, 어쩌면 막 시작한 초보자의 두려움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한다. 항상 처음은 누구나 두렵다.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두렵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은 살얼음 위를 걷는 그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한 발씩 걸어 나갔기 때문이다.
나는 막막하다고 느껴질 때면, 오늘은 30점짜리 글을 써보자고 마음먹는다. 70점도 아니고, 50점도 아니고, 30점이다. '좋은 글이 나오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시작하면 멈추지 않고 글을 계속 쓸 수 있다. 심지어 힘을 빼고 쓴 글이 오히려 제법 괜찮은 글이 되기도 했다.
이런 방식은 자신의 실력을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해준다. 내가 정한 나의 글쓰기 기대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 처음을 시작하기가 어렵다. 어느 정도 구체적인 생각이 떠올라야지만 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을 모두 다 알진 못한다. 꺼내야 알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생각은 계속 떠오르고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쓰면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막막함이 들 때도 일단은 시작해야 한다. 시작을 하지 않으면 나아질 수 없다. 교통표지판을 잘 알고 있어도, 우리가 운전을 할 줄 모르면 소용이 없듯이. 먼저 운전을 해야 한다. 이는 머릿속에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시동을 걸어 상황에 맞닥드려보고 대처해야 한다. 오히려 시작하고 고칠 부분을 찾아보기로 하자. 고칠 것이 없어 보이는 것은 좋은 글일지도 모르지만, 배울 수는 없다. 배울 수 없는 건 그리 글쓰기에서 좋은 것이 아니다.
방해꾼2: 두려움씨
글을 쓰지 못하는 또 다른 방해꾼은 두려움씨 때문이다. 내 글이 틀렸거나, 남들에게 부정적으로 읽히면 어떡할지 고민한다. 혹은 내가 쓴 글이 전혀 반응이 없거나 오히려 비난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자신의 노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게 두려운 건 당연하다. 나도 그렇다. 매번 글을 쓸 때도 두려움을 느낀다. 심지어 예전 글에서도 글의 허술함이나, 오타를 발견할 때면 얼굴이 빨개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글은 반응이 없다. 영상이 지배하는 시대다. 조금 긴 기사에는 어김없이 댓글에 누군가가 요약을 남긴다. 다른 사람들은 그걸 고마워한다. '쓸데없이 현학적인 글은 외면당한다'는 싸늘한 댓글도 달린다. 오히려 비판보다는 외면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지 않은가? 그림도 있고, 영상도 있으며 자신을 표현할 여러 방법이 있는 와중에 글을 선택했다면, 그 정도는 감당해보자. 내가 쓴 글이 처음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써 내려가는 것 의미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의 글은 계속 쌓이고 있으니까. 브런치에 내가 처음 초고라고 부를만한 것을 만들었을 때도 반응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1년 뒤 그 초고는 정식으로 출판 계약을 할 수 있었다. 그다음 책도 그랬다. 독자의 반응은 믈론 중요하다. 분명 나를 위한 글이되, 남을 위한 글을 써야 한다. 적어도 글이 책으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그런 마음이 중요하다. 하지만 결국에 꺼내기로 마음먹었다면, 처음 반응에 너무 연연해서 그만두진 않았으면 좋겠다. 블로그에서 6개월 동안 아무 반응이 없을 때도 내가 글을 써 내려갔다는 사실이 나는 가장 자랑스럽다. 버틴 것은 아니었다. 순수하게 즐거웠고 유용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때 포기했더라면 나는 진정한 글쓰기의 재미를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반응은 찾아온다. 그러니 우선은 내가 즐거워야 하는 주제로 꾸준히 쓰되, 그중에서 반응이 살짝이라도 있는 글을 찾아보자. 아예 없다면 계속 글을 쓰자. 글이 모여야 반응도 나타난다. 쓰는 글만큼 실력은 늘었다. 반응이 오는 만큼, 소재도 늘어났다. 누군가에게 읽힐 글이기 때문에, 좀 더 편하게 읽히고, 유용했으면 좋겠고, 전달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쓰려 노력하게 된다.
누구나 시작은 있다. 수많은 실수가 있었고, 한걸음 올라가는 과정에서 성장한다. 처음부터 멋진 글을 쓸 수 없을 수 있다. 괜찮다. 우리는 이제 시작점이다. 이미 멀리 나아간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만큼 잘못된 것도 없을 것이다. 물론 처음이라도 나은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계속 염두에 둬야 한다.
글을 못 쓴다고 세상이 망하지 않는다. 나의 세계도 무너지지 않는다. 글쓰기는 인생을 빛나게 해 주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아니다. 글을 쓰는 것은 더 즐겁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분명 글을 쓰다 보면, 더 막막 함고 고통스러움이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만들어낸 두려움의 일부일 뿐이다.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는 생각보다 더 큰 가능성을 가진 존재다. 자신을 얼마나 발견하고 행동하느냐의 차이이다. 자신만의 보석은 분명히 있다. 땅에 묻혀 있는 보석을 파내고, 먼지를 터는 것은 자신만이 할 수 있다. 생각보다 원석이 깊이 묻혀있지 않다. 분명 어떻게든 스스로에게 신호를 주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하면 된다. 믿는 게 어려운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믿는다고 내가 잃을 것이 있는가? 우리는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만 후회한다. 더욱이 글쓰기에 실패는 없다. 시간은 충분하고, 우린 글을 쓸 능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