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단계. 퇴고
글을 잘 쓰는 방법은 계속 수정하는 것이다. 어떤 작가는 글쓰기는 글을 고치는 일이라고 한다. 이 말에 무척 공감한다. 헤밍웨이 조차 <노인과 바다>를 쓸 때 11번 이상 고쳤다고 말한다. 글을 꺼내놓는 것까지는 무의식에 맡기되, 나중에 글을 고치는 일은 마치 숙련된 기술자처럼 조율하는 것이다.
퇴고는 어느 정도 하면 좋을까? 미국 소설가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예전 자신의 원고를 거절한 편집자에게 받은 쪽지가 자신의 틀이 되었다고 한다.
리스본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96년 봄에 쪽지를 받았는데, 그 쪽지는 내가 소설을 수정하던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프린터로 인쇄된 편집자의 서명 아래 이런 명언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수정본 = 초고 -10%. 행운을 빕니다'
퇴고는 대부분은 지우는 작업이다. 퇴고는 마치 정교한 조각 작품을 만드는 것처럼 군더더기를 제거해야 한다. 처음에 모호하던 틀고 구체적이고 단순해지는 작업을 한 뒤에야 좋은 글이 탄생한다. 단어를 고치고, 접속사, 부사, 조사를 바꾸고, 시제를 일치시키고, 문장을 지우고, 문단을 바꾼다.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은 다시 쓴다. 퇴고하기가 귀찮은 수도 있다. 나 역시 처음에는 퇴고를 무척 싫어했다. 자신의 글을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퇴고를 하고 읽어보면, 전보다 훨씬 나은 글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글쓰기에 욕심이 생긴다면 아마 나중에는 기회만 생기면 고치고 싶어질 것이다. 글은 고칠수록 좋아진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신이 써놓은 초고를 일정기간 동안 묵힌다고 한다. 최소 일주일 정도 뒤에, 내가 무슨 내용을 쓴 지 잘 기억나지 않을 때까지 나뒀다가, 남의 글처럼 읽을 수 있을 때 퇴고를 시작한다고 한다. 나 역시 전의 출간한 책을 그렇게 퇴고했다. 무슨 내용을 썼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라면, 퇴고하기 아주 좋은 시기이다. 퇴고를 무시하고 한 번에 완벽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오히려 글쓰기에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착상, 초고, 퇴고 이 3단계를 알더라도 글을 쓰다가 길을 여러 번 잃을 것이다. 나는 글쓰기가 내가 예상한 것만큼 쉽게 흘러가지 않을 것을 안다. 그 과정에서 머리를 쥐어뜯을지도 모르며, 뛰쳐나가고 싶을 수도 있다. 적절한 생각, 단어를 찾기 위해 퍼즐 맞추듯 이리저리 끼워보다 키보드를 부수고 싶을지도 모른다. 쓰지 않고 도망치고 싶을 수도 있다. 글쓰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척 힘든 일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글쓰기 생각 쓰기>의 윌리엄 진저는 이 말을 떠올린다. "절망의 순간에 이 말을 꼭 기억하기를 바란다. 글쓰기가 힘들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글쓰기가 정말로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묵묵히 단계를 밟으며 써내려 나가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잘한 일이라는 것만은 안다. 그러니 천천히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