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단계 - 초고

by 요니
두 번째 단계. 초고


다음 단계는 초고다. 어느 정도 한 편의 글의 구성을 만들고, 꺼내놓은 단계다. 헤밍웨이는 '초고는 쓰레기'라고 했다. 문학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이들 조차 자신의 초고는 형편없다고 한 것이다.


왜 초고는 별로일까. 글쓰기는 의식과 무의식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작가들에게 하는 오해 중 하나는 그들의 쓰는 글은 이미 머릿속에서 생각이 정리되어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들조차도 쓰지 않고서는 잘 알지 못한다. 가끔 까먹지만, 우리의 생각을 스스로 다 알지는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머릿속에는 내가 제어하지 못하는 생각들이 대부분이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 매일 꾸는 꿈,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쓸 수 있는 의식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알지 못하는 머릿속에서는 방대한 것이 들어있다. 그러니 작가도 그것을 글로 정리하려고 표현하다 보니, 정확하게 꺼내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초고에는 앞뒤가 안 맞거나, 또는 쓸데없어 보이는 것들이 가득 들어있다.


무의식은 창작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초고 역시 대부분의 무의식을 자유롭게 놓아줄수록 더 잘 써진다. 오히려 조금만 더 다듬어 내는 작업만 한다면, 기존에 다 정하고 쓴 글보다 더 멋진 생각이 탄생한다. 그래서 나는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는 연습을 매일 한다. 머릿속에 생각나는 흐름대로 그대로를 써보는 것이다. 내가 정한 시간 또는 분량까지 쓴다. 마치 기초훈련처럼 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정해진 분량만큼 써 내려간다. 노트 2페이지를 보통 30분 정도만에 쓴다. 단숨에 써 내려가는 것 외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여과 없이 흘러나온 대로 쓴다. 터무니없어 논리 없는 글이다. 글씨체도 엉망이다. 하지만 마치 운동을 하기 전에 하는 스트레칭처럼 이런 연습을 하면 이후부턴 차분하게 다음 글을 쓸 수 있다. 마음대로 쓰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면, 한 줄 한 줄씩 지우고 싶은 욕구가 불쑥 생길 수도 있다. 뒤를 돌아서 다시 내가 무엇을 썼는지 알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숙달되면 몇 천자의 글을 쓰더라도 계속 써 내려가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글의 내용을 모두 구상한 뒤에 나은 글을 쓰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우선은 쓰다 보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더욱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적이 많았다. 적어도 내가 글을 쓸 수 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우선은 씁시다.

글쓰기를 가로막는 장애물 중 하나는 그럴듯한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멋지다고 생각할만한 글을 쓰고 싶은데, 그럴만한 글을 쓸 수 없을 때가 그렇다. 좋은 글을 쓰지 못한다면, 새로운 생각이 없다면 차라리 쓰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감을 기다린다. 자연스럽게 찾아오면 글을 술술 써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시작하지 않고서는 생각은 찾아오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전원을 누르지 않으면, 아무것도 빨려 들어오지 않는다. 전원을 누르는 행위는 쓰는 것이다. 내가 이제 글을 쓸 거야 하고 글을 쓰는 순간 내면에 있는 많은 글감들이 달라붙는다.


우리의 내면에는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음
자신들보다
세상 모든 일들을 더 잘할 수 있는 누군가가 안에 살아 숨 쉰다.
-헤르만 헤세


나는 가끔 내 안에 정말 어떤 존재가 존재하고, 나보다 더 괜찮은 면이 많을 거라고 상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만드는 것이 썩 괜찮다고 느껴진다면, 그 친구가 잘했다고 생각한다. 내면의 비평가가 있는 반면 자유로운 영혼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글을 쓸 때는 최대한 자유롭게 쓰려고 한다.


내 글을 평가하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된다. 당장은 내가 할 수 있는 이 시간에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그대로 써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개방한 다는 것은 나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는 일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글을 쓰게 되고 난 후, 정말 글쓰기를 더욱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소명 한 가지를 찾았다고 느꼈다. 정말이다.


그러니 우선은 쓰자. 초고가 엉망진창이어도 괜찮다. 내가 쓰는 글이 모두 독자를 위해서 쓰는 게 아니다. 적어도 글이 꽤나 허술해도 나에겐 도움이 된다. 지금 글을 쓰면, 나중에는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다. 나의 글을 쓸 수 있는 능력만큼 우선 쓰면 된다. 글쓰기 실력은 생각의 깊이만큼 비례한다. 생각의 깊이는 써야 생긴다. 두 가지 일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한다. 쓰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 무척 글을 잘 쓰는 이들이 많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읽어서 주눅이 들 수 있다. 그럴 때는 그들의 초고를 상상해보자. 분명 단번에 그런 글을 쓸 수 있지 않았을 것이다. 쉬운 길로 가고 싶겠지만, 쉬운 길은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시간은 걸릴 만큼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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