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참 빠르다. 겨울이 지나 봄이 왔고, 지금은 여름이다. 창문에서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아이가 태어난 지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처음에는 너무 작아 안기도 두려웠던 신생아는 이제는 통통하게 살이 차오른 영아가 되었다. 한 손으로 잡아지지 않는 튼실한 허벅지를 보고 있으면 그래도 잘 컸구나 싶다. 아이의 생활은 많이 달라졌다. 낮잠을 2번 자고, 밤에는 오래 잔다. 깨어 있는 시간도 길어졌다. 이유식을 시작했는데 제법 잘 먹는다. 미음보다 소고기를 좋아하는 걸 보면 남편과도 닮은 듯하다. 바닥에서 누워 있는 시간보다 뒤집혀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손과 발로 장난감을 조물거린다. 양손에 인형과 장난감을 쥐고, 발로 오뚝이를 건들거리는 걸 보면 나를 닮아 욕심쟁인가 싶다. 자신의 손가락을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하고, 옹알이를 한다.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가끔은 멍하니 한 곳을 바라보기도 한다. 먹기 싫은 약병을 보면 고개를 돌리며 짜증도 낸다. 아이의 성장을 글로 쓰자면 A4용지 한 장은 거뜬히 채울 정도다. 나는 이런 성장을 매일 발견하고 놀라고 기뻐했다.
아이도 성장했지만 나 역시 많이 변했다. 기저귀 가는 법을 몰라 유튜브에 검색했던 옛 시절과는 달리 나는 아이를 번쩍 안아 들고 엉덩이를 씻겨줄 수 있다. 코를 훌쩍이는 아이와 같이 병원에 갈 수 있게 되었고, 싫어하는 약도 아이를 달래가며 먹일 줄 알게 되었다. 작은 가위로 작은 손톱도 자를 수도 있다.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겨도, 갑자기 소리를 질러도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 했던 ‘엄마’라는 호칭에도 익숙해졌다. 누군가의 엄마라고 불리는 것이 자신의 이름을 잃는 것 같아 싫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듣기 좋다는 것도 깨달았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더니, 과연 내게는 육아가 그랬다.
삶을 살며 급격한 변화를 겪는 시기는 여러 번 있었다. 새삼 놀랄 일도 아니고 다른 사람도 비슷하게 겪겠지만 아이와 함께 한 6개월은 내 삶의 큰 격변기 중 하나였다. 육아라는 일에 익숙해지는 것만은 아니었다. 호르몬의 변화를 느끼며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더 알게 된 것도 변화 중 일부긴 하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깨달았다는 것이다. 임신을 할 때도 나는 내 안에 작은 생명체가 있다는 것 자체는 놀라웠지만 큰 감흥은 없었다. 뱃속에서 느껴지는 태동도 어떤 화학반응 같았을 뿐이었다. 출산 직후 처음 아이를 볼 때는 그저 작은 존재가 신기했고, 조리원에서조차 아이는 아직 낯설었다. 느끼기 시작한 것은 집에 돌아와 아이와 함께 24시간을 붙어 있기 시작하고 나서였다. 잠은 부족하고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힘든데 아이를 보고 있으면 좋았다. 아이는 눈을 감고 모유를 오물오물 먹었고, 새근새근 잠을 잤다. 감정 표현이 아닌 배냇짓인데도 나는 따라 웃었고, 우는 모습마저 귀여웠다. 사람의 살과 살이 닿는 것이 따뜻하고 기분 좋은 것이라는 걸 아이를 안으면서 느꼈다. 한편으로 예전보다 자주 불안하기도 했다. 물티슈의 모서리는 날 선 칼처럼 보였고 뜨거운 커피가 든 유리컵은 폭탄처럼 느껴졌다. 아이가 다치거나 잃을 것 같은 상황이 머릿속에서 불쑥 떠올랐다. 작은 벌레마저도 내 마음을 흔들 만큼 거대해 보였다. 나는 행복했지만 자주 불안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너무나 흔하게 쓰여 무뎌진 명사, 사랑이었다. 출산을 고민했던 과거의 나 자신이 무색하게 나는 아이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 아이와 함께하지 않았다면 사랑이란, 단지 남녀 간의 연애 감정에서 머물렀을 것이다. 다양한 사랑의 형태가 있다는 걸 그저 머리로만 이해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보면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그리고 그 얼굴은 오래 바뀌지 않을 것 같다.
6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기쁘면서도 서운하다.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버리는 것 같아서 아쉽다. 이렇게 지금 이 순간을 잡고 싶었던 적이 있었을까. 잠깐 자는 시간 떨어졌다고 다시 보면 반가운 이가 또 있을까. 아이가 환하게 웃는다. 나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그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