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것들
“힘들었지만 아이의 신생아 시절이 가끔 그리워.” 육아 선배들이 하는 조언의 끝에는 이 말이 자주 붙었다. 돌이켜보면 잠은 제대로 못 자서 힘들고, 몸도 욱신거리며 아프지만 그래도 그때 더 안아주고 오래도록 눈에 담을 걸 그랬다며, 그 시절이 그리워 둘째를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출산하기 전이었으므로 그 말이 잘 와닿지 않았는데, 과연 신생아 시절이 지나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짧은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신생아 특유의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다.
신생아를 품에 안았을 때의 첫 느낌은 ‘작고 좋은 냄새가 난다’였다.
아이는 작다. 그런데 신생아 시절에는 더 작다. 출산 후 나는 뱃속에서 생명이 태어난 자체도 신기했으나 팔뚝만 한 크기에 얼굴과 몸이 모두 존재하는 게 더 그렇게 느껴졌다. 작은 아이는 부모의 품에 쏙 들어갔고, 두 팔로 감싸 안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어른보다 체온도 높아서 따뜻하기도 했다. 새근새근 자는 아이를 품에 폭 안고 있으면 내게 딱 맞는 따뜻한 난로 안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퇴근한 남편은 아이를 품에 안고 싶다고, 내 품에서 아이를 자주 데려갔다. 그러곤 “아이를 품에 안고 소파에 앉아 있으면 하루의 피로가 사르르 녹아”라고 말했다. 크기도 작지만 살결은 또 어떤가. 처음으로 몸을 씻길 때 아이의 등을 만져보고 깜짝 놀랐다. 찹쌀떡보다 부드럽고 실크보다 섬세하다고 하면 상투적일까. 적합한 비유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말랑말랑하고 티 없이 맑은 피부는 신성하게까지 느껴져 함부로 만지기조차 조심스러워진다. 아이를 만지기 전에 몇 번이나 내 손을 씻었는데도 여전히 병균이 묻어있는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아이에게서는 은은하고 달달한 향도 난다. 흔히 맡는 베이비파우더 향이나 바디워시 향은 아니었다. 분유 향이라고 하기엔 모유를 먹는 아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아이 주변을 감싸는 향이 달콤해서 아이의 머리카락에 코를 파묻고 킁킁거리는 게 중독될 정도였다. 남편과 나는 진지하게 왜 이런 좋은 향이 나는지 고민하기도 했다. 결론은 아이가 태어나 부모에게 더 보호받기 위한(옥시토신을 자극하기 위한) 하나의 무기가 아닐까,라는 이성적인 결론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향이 사라진 것 같았다. 내가 먼저 느꼈고 이후에는 남편도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집에 놀러 온 여동생에게 “더 이상 아이에게서 달콤한 아기 향이 안 나는 거 같다”고 했더니, “아니야. 여전히 나는 걸. 그리고 언니에게도 형부에게도 나. 똑같은 향이.”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코를 킁킁댔지만, 느껴지지 않았다. 같은 향이 난다는 게 기분이 좋으면서도 나는 더 이상은 그 향을 맡을 수 없겠구나 하는 허전함도 들었다.
신생아 시절을 지나도 여전히 아이는 작고 귀엽다. 하지만 예전 모습은 거의 사라졌고 몸무게도 두 배를 넘은 지 오래다. 특유의 표정과 배냇짓도 사라졌다. 지금도 아이에게 향이 날지도 모르지만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아이의 체온도 살결도 익숙해져서 예전만큼 놀랍지도 않다. 그리고 이제는 아이를 안으면 옆구리 사이로 다리가 삐죽 튀어나온다.
아이의 어린 시절을 보고 싶으면 휴대폰을 꺼내면 된다. 하지만 아이의 감촉과 향을 떠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을 수밖에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