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간

by 요니

아이를 재운 뒤 주변을 둘러본다. 설거지는 되어 있고, 빨래는 아직 안 해도 된다. 빈 시간이 생겼다. 출산 전에는 당연하듯 보냈던 이 시간. 오랜만의 공백에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됐다. 책이나 읽을까 소파에서 서성이다가 방으로 들어가 책상에 앉았다. 오래전부터 반복했던 일들을 떠올린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모닝페이지와 필사, 또는 소설을 썼던 나날들. 그때와 똑같이 해 보려 머그잔을 책상에 내려놓고 만년필을 집어 든다. 잉크가 말라붙은 컨버터에 좋아하는 색을 채워 넣고 종이 위에 사각사각 글을 써 내려간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잡념일 뿐이지만, 한층 차분해진 기분이다.


1시간이 조금 넘었을까.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안방으로 들어가 눈을 꿈벅거리는 아이를 안아 올리며 콧노래를 부르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고작 1시간이었을 뿐이었는데 놀랄 만큼 에너지가 넘친다. 이미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서 그랬을까, 아이가 더 반갑고 힘이 난다.


며칠 전만 해도 나는 우는 아이와 24시간을 함께 붙어 있었다. 잠은 늘 부족했고, 머리는 멍했으며,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 덕분에 기운조차 없었다. 기억력도 떨어졌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거울에 비친 푸석해진 얼굴을 보고서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한 시간 동안 하염없이 걷기도 했다. 육아는 마라톤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혀 보니 쉽지 않았다.


부족한 잠도 문제였지만 내 시간이 없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홀로 보내는 시간이 예전에 당연했던 일이었으나 그러지 못하고 있었으니,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아이가 깨어 있는 시간도, 자는 시간도 같이 있어야 하니,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나를 돌볼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또 책을 찾았다. 트레이시 호그, 멜린다 블라우의 저서 <베이비 위스퍼>에서는 아이와의 육아 루틴을 E.A.S.Y로 가져가길 권한다. eat(먹고), act(놀고), sleep(자고), your time(당신의 시간)의 약자다. 당신의 시간, 곧 양육자의 개인 시간이다. 이 your time이라는 시간이 내게는 없었다. 아이를 달래 재우는 법을 몰라 보통 낮에 안고 재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밤에 잠은 홀로 잘 자는데, 낮잠을 안고 자야 하는 것이 습관도 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낮과 밤의 수면 패턴이 어느 정도 구별이 되면서부터 나는 적어도 자는 시간만큼은 내 시간으로 가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가 침대에서 자는 습관을 들여야 했다. 책에서 소개한 졸리지만 완전히 자지 않은 상태로 안고 침대에 내려놓아 스스로 잠들게 하는 방법(안눕법)은 효과가 있었고, 다행히 아이는 금방 적응했다. 그리고 나는 아이가 낮잠을 자는 시간에는 적극적으로 내 시간을 가지며 에너지를 충전했다. 오히려 아이를 안고 할 일 없이 휴대폰을 만지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다.


가끔 떠올린다. 비행기에서 비상시에 산소호흡기를 착용해야 할 경우, 아이 먼저가 아닌 부모가 먼저 착용해야 한다고 적힌 문구를. 나의 기분과 컨디션이 당연히 아이에게 전달되는데, 묵묵히 참고 견디는 생활을 오래 할 수는 없다고. 나도 내 시간을 충분히 만들어 보내고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은 또 즐겁게 보내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에서 내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는 잘 안다. 집안일 역시 공을 들이지 않으면 시간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나는 매일 세탁하지도 않고, 설거지는 끝낼 것이 아니라면 (보통 2분 이내 끝나면 바로 하지만) 저녁까지 미뤄 한 번에 한다. 청소나 장난감 정리도 매일 하지 않는다. 아이의 입에 들어가는 부분에는 청결에 신경을 쓰지만 나머지에는 그다지 정리 정돈에 열정을 갖지 않는다. 낮에는 간단히 먹고, 저녁에 남편이 먹는 요리만 1시간 정도 시간을 들인다. 그러니 요즘 아이가 낮잠을 잘 때 여유가 생긴다.


많은 시간도 아니다.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는 시간. 30분 또는 1, 2시간. 그 정도면 충분했다. 물론 아이의 상태에 따라 하루, 이틀 개인 시간을 못 보낼 때도 있지만 괜찮다. 그래도 곧 머지않아 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컴퓨터 모니터 옆에는 ‘하루 3시간’이라고 적힌 포스트잇이 있다. 오래전 오롯이 하루에 3시간만 내 시간을 보내자, 다짐하며 써 놓았던 말이다. 육아를 하면 전혀 내 시간을 보낼 수 없을 거라고 걱정했지만 역시 삶은 어떻게든 살아진다. 이렇게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며 글도 쓸 수 있다. 예전보다 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 살아갈 수 있다. 어쩌면 수면 습관을 들이지 않아도 나중에 시간이 해결해 주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조금 더 긍정적으로 스스로 기운을 낼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매거진의 이전글어쩌다 보니 모유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