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와 함께한 5년
브런치로부터 작가 승인을 받았을 때를 기억한다. 두툼하고 질 좋은 노트 한 권을 선물받은 기분이었다. ‘여기에 무엇이든 써도 됩니다. 대신 오래오래 써 주세요.’라고 적힌 편지도 함께말이다. 글쓰기 버튼을 누르고 나는 모니터 앞에 한동안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노트 첫 장을 편 채 볼펜을 손에 쥐고 서성이는 것처럼, 키보드에 살짝 손을 댄 채로. 그러다 오랜 기억 하나가 떠올라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하나씩, 글을 쌓아 올렸다.
첫 글을 발행한 지 5년이 지났다. 그동안 158편의 글을 올렸다. 다른 플랫폼에 올린 글에 비하면 턱없이 적지만 가벼운 기분으로 쓰지는 않았다. 책 리뷰와 다르게 내용을 채우는 건 오롯이 내 몫이었으니까. 기억, 경험, 지식. 끌어모을 수 있는 건 모조리 동원해서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부족해 보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글의 완성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지금도 글을 내보이는 것은 늘 부끄럽다. 발행 버튼을 누를 때면 심호흡부터 한다. 습작 소설까지 올리고 있으니, 부끄럽지 않은 것 아닌가? 싶지만 여전히 용기가 필요하다.
여러분이 글을 쓰고 싶다면, 종이와 펜 혹은 컴퓨터 그리고 약간의 배짱만 있으면 된다.
최근 읽고 있는 로버타 진 브라이언트의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라는 책의 문장이다. 여기서 나는 배짱을 뻔뻔함이라고 바꿔 읽었다. 바보같이 보이는 글일지라도 뻔뻔하게 글을 발행해야 실력이 는다고 믿는다. 한 편의 글을 시작하고 완성하는 것 이외에는 더 잘 쓰는 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 당장 머릿속에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잡다한 고철 조각 같은 생각이라도 이어 붙여 형태를 만드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좋다. 하얀 공간을 검은 글씨로 채워내는 일을 반복해야만 마법 같은 무언가가 생겨난다. 쓴 글은 떠나보내고 새로운 글을 쓰는 일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렇기에 나는 브런치를 계속한다. 간편하다. 복잡한 기능이 없다. 자유롭지만 적당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점도, 하나의 주제를 정하면 책처럼 만들 수 있는 점도 마음에 든다. 심지어 동기 부여도 된다. 1년에 한 번씩 브런치북 프로젝트를 목표로 한 권의 브런치북을 발행하게 된다. 매번 참가하고 떨어지지만 괜찮다. 내게는 글이 남으니까.
플랫폼의 의도대로 나는 여기서 글을 쓰고 출간 제안을 받았다. 오리지널 초고인 브런치북의 분량을 늘리고 다듬어서 나온 책이 2권이니까, 꾸준히 쓴 만큼 기회가 왔었다. 생각해보니 EBS와 함께한 공모전에도 당선돼서 라디오 녹음도 해봤다. 목소리가 잠긴 채 녹음된 탓에 지금도 생각하면 얼굴이 빨개지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밀리의 서재에 오리지널북으로 나왔고 AI 오디오북도 생기니 신기해하며 서재에 담았던 기억이 난다. 글을 팔아 소소한 수입을 얻고 있다는 점도 감사하다. 브런치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일들이다. 운도 많이 따라준 것 같다.
요즘 큰 목표는 없다. 글 쓰는 이유도 찾지 않는다. 꿈꾸던 출간도 이른 시기에 해버리고 나니 들뜬 마음도 사라졌다. 그럼에도 쓰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현재의 삶이 흥미로우면 에세이를 쓴다. 내 이야기를 너무 많이 썼다 싶으면 소설을 쓴다. 그마저도 아니면 책을 읽거나 필사를 한다. 지극히 단순하다. 소개 글에 적은 ‘매일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 제가 사랑하는 일을 합니다.’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며칠 전에 자기소개를 하는 자리에서 나는 말했다. ‘책 읽는 거 좋아하고, 글 쓰는 거 많이 좋아합니다.’ 5년 전에도 똑같이 대답했다. 아마 5년 뒤에도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그때도 여전히 나는 뻔뻔하게 글을 써서 발행버튼을 누르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