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니 Mar 05. 2022

꾸준히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매일 아침 글을 쓴 지 300일이 넘고 나서 드는 생각들 

일어나자마자 글을 쓴 지 10개월을 넘어섰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닝페이지를 쓰기 시작한 지 309일째다. 아침에 글을 쓴다는 이야기는 전에 브런치에도 몇 번 썼는데, 시작은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였다. 나는 책의 한 챕터를 읽자마자 여기서 제시한 모든 과제를 해보리라 마음먹었고, 3개월 동안 시간을 들여 과제를 해냈다. (책 자체가 12주 과정의 글쓰기 워크북 형태였다)

그 중 모닝페이지라는 것이 흥미로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정해진 분량만큼, 아무런 의식없이 쓰는 것이라니. 매력적인 일이네라고 생각했고, 이런식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화면에 뜬 시간을 확인한 후 침대에서 일어나 식탁까지 느릿느릿 걸어간다. 의자에 앉아 빈 줄로 가득한 노트를 펼친다. 볼펜으로 모닝 페이지 00일이라고 쓰고 형광펜을 그 위에 칠한다. 한 칸을 띄운 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다. 두서없이. 끄적끄적. 


매일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쓰는 것

12주의 모든 과정이 끝났어도 모닝페이지만은 내 일상 속에 남아있다. 지속력의 힘이랄까, 더 이상 힘든 일이 아니게 된 일과는 계속해서 되풀이되고 있다. 어차피 습관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대로 해도 상관없지 않나 싶다. 더 솔직한 마음으로는 아직까지 더 이상 하지 않을 이유를 못 찾았다. 그렇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지렁이 같은 글자가 빡빡하게 적힌 노트 5권을 가지게 되었다.  


몰스킨 라지 노트. 지금 흰색 노트의 반 정도를 넘었다. 


그렇게 쓰고 싶은 말이 많았나 싶으면서도 정확히 어떤 주제를 가지고 썼는지는 번뜩 생각이 나진 않는다. 1년 동안 나의 관심사는 아마 다양했을 테니까. 그래도 뭐 이런 내용을 쓰지 않았나 싶다. 


아침에 글을 쓰면서 생긴 것 같은데, 거의 매일 꿈을 꾼다. 그래서 생생한 꿈을 꿨다면, 모닝 페이지의 첫 부분은 꿈 이야기다. 바로 잠에서 깨어났으니, 그나마 구체적이다. 가끔 예전 노트를, 이런 꿈을 꿨었다고 싶은 정도로 기억이 나지 않는 글들이 써져 있다(내가 썼다고 싶을 정도다)


꿈을 모아두는 게 도움이 될까 싶다가도, 가끔은 너무 재미있는 꿈을 꾸면 깨어난 게 아까울 때도 있으니까. 이어서 꿈을 꾸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글을 쓰다 보면 마지막 즈음에는 거의 맨 정신이지만 말이다.


영향을 받은 것들 

꿈 이야기 이후로 많이 쓰는 이야기는 '보고, 듣고, 느꼈던 일'이다. 만약 한참 재미있는 유뷰트나, 영화, 드라마를 봤다면 어김없이 그다음 날에는 그 이야기에 대한 글이 빼곡하다. 책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내가 영향을 받았던 것들에 대해 거의 쏟아낸다. 그렇게 술술 써지면 평소보다 더 분량을 빨리 채우기도 한다. 


고민거리

고민거리도 꽤 많이 등장한다. 요즘 많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답 없는 질문들이 되풀이되곤 한다. 이 과정이 도움이 된다고 느껴지는데, 해결되리라는 기대보다는 적다 보면 머릿속이 오히려 맑게 비워지는 기분이 들어서다. 가끔 답을 찾기도 한다.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떻게 보면 일기 같아 보이겠지만, 내가 느끼는 감각은 다르다. 첫 번째로 일기보다 글의 구성을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고, 두 번째로 하루를 기록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막힘없이 글을 쓰는 훈련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내가 글을 쓰는 막글과 더 비슷한데, 글의 문맥을 따지지 않고, 직관적인 글을 계속 받아 적는 느낌이라서 다시 읽어도 무슨 말인지 정말 모르겠는 경우가 많다. '의식의 흐름대로 모조리 적는다'라는 말이 적합한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오늘은 뭘 써 봐야지라고 생각하며 쓰는 종류의 글은 아니다보니, 그저 내 뜻대로 쓰고 싶은 것을 그때그때 쓰는 게 다인 것 같다.


한 가지 단점을 말하자면 아무래도 시간이다. 모닝페이지를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30-40분. 아침에 시간은 넉넉하진 않은 편이라, 모닝 페이지와 다른 일몇 가지를 하면 금방 출근시간이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이기 때문에 모닝 페이지를 쓰지 못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나중의 하려고 마음먹은 것들은 자주 밀린다. 어떻게 보면 그만큼의 시간을 다른 글로는 쓰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닝 페이지를 쓰면 오늘 하루의 분량은 끝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우기도 쉽다.  (블로그와 브런치의 글이 많이 줄었다는 것만 봐도 나는 속으로 자주 뜨끔한다)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로 오래 할 줄은 몰랐는데, 이제는 언제 멈춰야 할지 잘 모르겠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이 정도로 꾸준히 할 수 있구나 싶으면서도, 이렇게 지속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또 고민을 하게 된다. 


지금 떠오르는 한 가지의 힘은 매일 같은 시간에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 의미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글쓰기를 오랜 기간, 그리고 되도록이면 많이 쓰고 싶다. 쓰고 싶을 때만 쓰는 게 아니라, 써야 해서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걸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중 하나가 '모닝페이지'에 있다고 어느 순간 믿게 된 건 아닐까.


글을 쓰는 일이 일상이 되지 않는다면 어떨까. 오히려 특별한 일이 되어버리면 나는 글을 쓰지 못한다. 글을 잘 써야 된다는 압박이 들 때는 어떤가.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글을 못쓴다. 가끔 내 글이 형편없다고 느껴질 때, 나는 멈출 것 같은 두려움이 든다. 그렇게 글쓰기를 가로막는 것들은 꽤 많다. 그런 두려움을 물리치기 위해 필요한 것. 그게 나는 모닝페이지같다. 막무가내로 아침마다 내리 쓰는 나만의 예방주사. 


'나는 어차피 이런 막글을 매일 쓰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다른 글을 잘 못쓰더라도 괜찮아. 나는 글의 퀄리티에 상관없이, 글을 쓰는 사람이야.' 이런 마음을 먹게 한다.  꾸준히 해냄으로 인해서 그래도 괜찮다는 위안을 얻는다. 일종의 증명 같기도 하고 의식 같기도 하다.


꾸준히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단순히 이 이유만으로도 내가 모닝 페이지를 계속 써야 하는 이유는 충분한 것 같다.  그래서 300일이 조금 지났지만, 앞으로도 1년을 더 쓰고, 더 써보려고 한다. 중간에 그만둘 이유가 생기기 전까지, 매일 꾸준히 쓰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요니의 네이버 블로그 

요니의 출간서적 <미라클리딩>, <일상채우기기술> (밀리의서재 오리지널)


매거진의 이전글 글을 짓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